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잠그지 않은 문
별관 문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별관 문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태오는 손잡이를 한 번 당겨 보고 뒤로 물러났다. 관리인 오미경이 복도 끝에서 걸어오며 웃었다.
“그 문은 늘 그렇게 열려요. 안쪽 보관실 문이 잠긴 거죠.”
태오가 머쓱하게 손을 놓았다. 온 길 내내 별관에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낡은 열쇠가 나오고, 먼지 속에 비밀이 서 있고. 실제 첫 번째 문은 바람만 막고 있었다.
미경은 윤태문 제작실이 나간 뒤 여러 단체가 방을 나눠 썼다고 했다. 현재 입주자의 물건을 지나가지 않는 복도만 안내할 수 있었다. 한이솔은 출입 협조 문서에 적힌 방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과거 별관 보관실이던 곳은 지금은 공동 사용 창고였지만, 그 안에도 소유자별 구역이 있었다.
“안에 남은 옛 선반과 벽만 보겠습니다.”
미경은 대답보다 먼저 현재 사용자에게 전화했다. 그가 오늘 작업 물건을 꺼내야 한다며 오후에 와 달라고 했다. 태오는 손목시계를 봤다. 문 하나가 잠겨 있지 않아서 더 오래 기다리게 될 줄 몰랐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별관 옆에는 작은 계단이 있었다. 사진에서 문주가 서 있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태오는 그 계단에 서지 않았다. 사진 속 네 사람을 흉내 내는 순간, 자신이 그날 있었던 사람처럼 말하게 될까 봐 싫었다.
계단 아래 자판기는 새것이었다. 태오는 뜨거운 캔커피 둘을 뽑았다. 한 캔을 이솔에게 내밀었지만 그는 손을 뻗지 않았다. 문주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거기 있나요?* 태오는 곧장 답하지 못했다. 어제 약속한 건 수인의 방이라고 부르지 않겠다는 것이었지, 별관에 들어가기 전 매번 허락을 받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문주가 사진을 보여 준 사람으로서 현관 앞에 선 자신을 알 권리가 있다고 느꼈다.
*관리인과 현재 사용자 동의로 옛 보관실의 선반을 보려 합니다. 사적인 방은 보지 않습니다.*
문주가 바로 답했다. *거기 있는 사람이 오늘 쓰는 방도 있겠죠. 지나가며 악기 소리가 나면 수인이라고 하지 마요.*
태오는 뜨거운 캔을 손바닥 사이에서 굴렸다. 그 말은 친절한 경고였고, 자신을 아직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솔은 문주의 메시지를 읽지 않은 채 태오가 건넨 캔을 받았다. 뚜껑을 따자 작은 금속음이 났다. 태오는 그 소리마저 무슨 음정인지 생각하는 자신에게 질렸다.
“커피 소리입니다.”
그가 말하자 이솔이 웃었다.
“저도 알아요.”
두 사람은 계단에 앉아 마셨다. 문주가 서 있던 자리는 비워 두었다. 태오는 그런 배려를 문주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배려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들기 시작하면 그 배려는 금방 자기 공적이 된다.
“문주 씨 사진은 어디서 찍었을까요?”
이솔이 묻자 태오가 옆 건물의 낮은 창을 가리켰다. 사진의 그림자와 맞았다. 그들은 각도만 확인하고 사람이 찍힌 부분은 꺼내지 않았다.
오후에 다시 갔을 때 미경은 작은 열쇠를 돌렸다. 안쪽 창고는 예상보다 환했다. 새로 낸 창문에서 들어온 햇빛이 바닥을 넓게 비췄다. 태오는 벽에 손전등을 비출 생각이었는데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기증 원반이 지금 그 방에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비어 있는 선반을 보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기대를 숨기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건조한 종이와 먼지 냄새가 났다.
“이 선반은 옛날 것입니까?”
미경은 두 번째 칸 아래를 가리켰다.
“건물 인수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판을 몇 번 갈았는지는 몰라요. 내가 온 건 그 뒤예요.”
노을은 선반을 만지기 전에 바닥부터 살폈다. 옮겼던 흔적이 있는지, 선반 발 아래 목재 색이 다른지 보았다. 태오는 선반 위에 동그란 자리 하나를 찾으려 했다. 원반 상자는 네모였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서야 손을 내려놓았다.
창고 한편에 작은 습도계가 달려 있었다. 바늘은 중간에서 멈춰 있었다. 태오가 창문을 열자 바람이 들어왔지만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망가진 거네요.”
“지금은 그렇죠.”
노을이 말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수리 기록을 봐야 해요.”
미경이 웃으며 물었다.
“숫자 하나 찾으러 오신 줄 알았는데 고장 난 물건까지 좋아하시는군요.”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이솔이 대답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나가면 나중에 이 방을 잘못 말할 테니까요.”
현재 입주자가 남겨 둔 상자는 새 종이 냄새가 났다. 미경은 그것들을 가리며 통로를 만들었다. 태오가 괜찮다고 해도 굳이 자리를 정리했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매일 일하는 사람들의 물건을 밀어 가며 오래전 상자를 찾는 일에 불편함을 느꼈다.
“제가 더 안으로 안 들어가도 됩니다.”
미경은 손을 멈췄다.
“저 선반까지는 오셔도 돼요. 제가 허락받은 구역입니다.”
그 말을 듣고 태오는 두 걸음만 더 갔다. 나란히 선 이솔의 어깨가 선반에 비쳤다. 이 방을 처음 열어 보던 사람의 시야도 비슷했을까. 그는 곧 자기 생각을 멈췄다. 수인이 이 방에 왔다는 증거는 없었다.
창고 끝에는 바닥보다 벽이 더 젖은 자리 하나가 있었다. 물이 말랐다 젖기를 반복한 듯 얼룩 가장자리가 여러 겹이었다. 노을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을 뻗지 않고 손등을 벽 가까이 댔다.
“오늘은 건조하네요.”
“지난달에 배관 고쳤습니다.”
미경이 말했다.
그 말은 옛 보관 환경을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의 물기와 오래된 흔적을 섞지 않는 데 도움이 됐다.
태오는 문 위에 붙은 작은 표찰을 보았다. 글씨가 덧칠돼 있었다. 손전등을 비스듬히 비추니 오래된 영문 두 글자와 숫자가 보였다. ‘YT’. 그가 크게 부르려는데 노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 판만 오래됐나요, 표찰도 오래됐나요?”
미경은 뒤를 돌아봤다.
“표찰은 전 입주자가 뒀대요. 글자는 덧칠해서 안 썼고.”
윤태문의 이니셜일 수도, 다른 회사의 표기일 수도 있었다. 태오는 노을에게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현재 사용자 구역을 제외한 벽과 표찰을 함께 사진에 담았다.
미경이 방을 닫으려 할 때 작은 바퀴 소리가 복도를 지나갔다. 누군가 다른 방에서 악기 케이스를 끌고 있었다. 태오는 순간 수인의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뒤돌아보니 바퀴 둘 달린 접이식 운반대였다. 운반대를 미는 청년이 무엇을 찾느냐고 묻자 태오는 답을 고르다 웃었다.
청년이 케이스를 복도 벽에 잠깐 세우자 안에서 악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이솔이 주워 주려 몸을 굽혔다가 멈췄다. 청년이 먼저 주워 접었다. 현재의 연주자도 자기 종이를 남이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다. 태오는 방금 전에 오래전 수인의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펼쳐 읽고 싶었던 마음을 떠올렸다.
“왜 다들 그렇게 조심해요?”
청년이 물었다.
노을이 답했다. “저도 누가 제 작업대에 와서 악보를 펼치면 싫어서요.”
“악보는 괜찮은데, 연습 중 찍은 영상은 싫어요.”
청년은 케이스를 손잡이 쪽으로 돌렸다. 태오는 그가 이미 찍힌 영상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 낯선 사람의 옛 원반 조사에 오늘의 연주자가 자기 사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오래전에 이 방을 쓴 물건의 길이요.”
청년은 빈 손의 그를 보고 엉뚱한 사람이라는 듯 웃었다.
“여기선 물건이 자꾸 다른 방으로 가요. 바퀴가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태오에게 오래 남았다. 강제 침입이나 감쪽같은 도둑이 없어도, 열쇠를 가진 사람과 운반대 하나면 물건은 이동할 수 있었다. 누가, 언제, 누구 허락으로 옮겼는지를 찾아야 했다.
미경은 출입 기록부를 꺼냈다. 과거 기록은 없고 현재 사용자의 오늘 서명만 있었다. 이솔과 태오는 자신들이 본 선반과 벽만 적었다. 미경은 두 사람이 원반을 찾지 못해 허탈해 보인다고 말했다.
“원반은 찾지 못했어요.”
이솔이 말했다.
“하지만 이 방이 비어 있다는 말도 아직 못 하겠어요.”
미경이 선반 발치에 걸린 낡은 매트를 가리켰다. 선반 판은 갈았어도 바닥 매트는 건물과 함께 넘어왔다고 했다. 빛이 비껴가자 매트의 눌린 자리가 작은 원처럼 여러 개 나타났다. 태오는 숫자를 세려다 멈췄다. 문 앞에 서서 보는 것과 선반을 들어 정확히 세는 것은 달랐다.
청년이 다시 복도를 지나가다 바닥 매트를 보고 말했다.
“그거 내일 아침에 제가 밀어야 해요. 케이스 카트 바퀴가 자꾸 걸려서.”
미경은 내일 시설 점검 전에 매트를 옮기지 않겠다고 그에게 약속했었다. 청년은 공연 물건을 나르는 날이라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이솔은 조사를 위해 공연 준비를 늦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을은 오늘 허락된 각도에서만 사진을 남기고, 다음 날 청년이 카트를 옮기기 전에 짧게 다시 보는 방법을 제안했다.
“몇 시까지면 돼요?”
“아홉 시 반 전이요. 늦으면 그냥 치울 겁니다.”
청년은 시계를 보여 주고 갔다. 과거의 흔적은 지금 일을 하는 사람의 아침보다 우선하지 않았다. 태오는 시간을 수첩 맨 위에 적었다. 누군가의 빈 칸을 찾는 일이, 다른 사람의 오늘을 막지 않게 하려는 약속이었다.
그들은 매트를 그대로 두었다. 내일 미경이 시설 기록을 가져오기로 했다. 바퀴 소리는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태오는 이 방의 첫 번째 비밀이 잠금쇠가 없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기 있던 물건을 보낸 사람은 문을 부순 사람이 아니라, 열어도 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