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열두 배의 가격
“어느 쪽으로 돈을 줍니까?”
“어느 쪽으로 돈을 줍니까?”
강해솔의 질문에 중개인은 웃었다. 유리벽 안쪽에서는 점심 주문을 받는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그는 수화기를 손으로 덮은 채 대답했다.
“사려는 사람이 파는 사람한테 주죠. 처음 거래하십니까?”
해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 한쪽에 세워 둔 원료 견본들은 모두 비슷해 보였다. 회색 알갱이. 검은 가루. 이름이 다른 갈색 액체. 병 아래 붙은 숫자는 전혀 달랐다.
박은서가 분석표를 유리 위에 놓았다.
중개인의 웃음이 없어졌다. 그는 수화기에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내려놓았다. 종이를 자기 쪽으로 돌리는 손끝이 조심스러워졌다.
“이건 저희가 사는 규격이 아닙니다.”
“비싸서요?”
“아니요. 저희 쪽에 팔 물건이 아니라 처리업체에 맡길 물건인데요.”
해솔은 병들을 다시 보았다. 조금 전까지 물건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이 적혀 있던 자리였다. 종이 한 장이 올라오자 그 돈의 방향이 뒤집혔다.
청람호가 실은 액체는 새로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니켈과 몰리브덴 잔류물, 다른 성분의 혼입, 재사용이 어려운 상태. 이미 바다에서 추적해 온 물질이었다. 오늘 처음 물은 것은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정상적으로 처리하려면 누가 얼마를 내야 하느냐였다.
중개인은 문서의 회사명을 보더니 한 번 더 말을 멈췄다.
“청록메탈하고 관계가 있으십니까?”
은서가 되물었다.
“그 회사 거래를 하셨습니까?”
“거래는 안 했습니다.”
대답이 너무 빨랐다. 해솔은 그 빠름을 기억하되 범인의 표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 항구에서는 사고 이야기가 나오면 결백한 사람도 먼저 주머니를 확인했다. 잘못 엮이면 월말 결제가 밀렸다.
은서는 가져온 비교표를 펼쳤다. 중개인이 파는 재생 원료의 같은 등급, 비슷한 계약 시점, 운송비를 따로 뺀 값이었다. 전날 우찬이 계산한 약 열두 배의 격차가 그 위에 남아 있었다.
“이건 이 표에 있는 물건을 기준으로 한 비교입니다. 실제 실린 액체가 이 등급이었다는 뜻은 아니고요.”
중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이 표의 단위에서 멈췄다.
“여기 환율 적용일은 바꾸시는 게 좋겠습니다. 계약한 날하고 나간 날이 달라요.”
은서는 바로 펜을 꺼냈다. 격차가 조금 달라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해솔은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자신이 실망하려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크게 틀린 상대를 잡고 싶어서, 작은 오류가 고쳐지는 걸 아쉬워하고 있었다.
중개인은 창밖을 보았다. 맞은편 식당 주인이 배달 그릇을 들고 지나갔다.
“견적 문의만 왔습니다. 물건 사진은 없었어요. 등급표 하나 보내고, 그 값으로 확인서를 써 달라고.”
“쓰셨습니까?”
“안 썼습니다. 물건을 봐야 쓰죠.”
그는 서랍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은서에게 건네지는 않았다. 직접 날짜를 찾고 자기에게 온 문의 부분만 보여 주었다. 상대가 보낸 표에는 거래가 성립한 것처럼 보이는 제목이 붙어 있었지만, 그 아래에 중개인의 답은 짧았다.
현물 및 시험성적 확인 후 재견적.
문의와 매매는 달랐다. 해솔은 그 사이가 얼마나 얇은 글씨로 구별되는지 보았다.
“공식 요청이 오면 원문을 보존해서 제출하겠습니다.”
중개인이 말했다.
“제 이름이 먼저 방송에 나가면 그 다음에는 아무도 답을 안 해요.”
해솔은 연락을 맡은 조사관의 번호를 적어 주었다. 증언을 따냈다는 기분보다, 거래를 하나 망칠 수도 있는 약속을 맡았다는 느낌이 컸다.
돌아오는 길에 은서는 차 안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해솔이 시동을 걸자 대시보드 위에 분석표를 놓았다. 그것이 자꾸 미끄러져 결국 무릎 위로 가져갔다.
“왜 화가 났어요?”
해솔이 물었다.
“이름을 바꾸면 사람들이 위험도 같이 바뀐 줄 알아요.”
은서는 손톱으로 종이 귀퉁이를 눌렀다.
“재생 원료라고 적는 순간 운반하는 사람도, 보관하는 사람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다른 얼굴로 대하죠. 바다에 들어가서는 다시 원래 물질이 되고요.”
차가 어시장 앞에 멎었다. 길을 건너는 손수레를 기다려야 했다. 빈 생선 상자들이 덜컹거렸다. 운송할 값이 없는 날에도 씻고 쌓는 일은 남았다.
“오늘 대책실에 먼저 가야겠어요.”
은서가 말했다.
“분석실 말고요?”
“이 표가 누구 밥값을 막고 있는지 봐야겠어요.”
대책실 입구에는 회의 시간을 바꾼 종이가 붙어 있었다.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새 시간 위에 차미례가 다시 밑줄을 그어 놓았다. 그녀는 종이를 떼지 않고 한쪽 모서리를 눌러 붙였다. 어떤 가족은 두 시만 보고 이미 버스를 탔을 터였다.
“담당자가 계약 검토 때문에 늦는답니다.”
미례가 말했다.
“어느 계약이요?”
“그걸 물으려고 한 시간을 더 기다려요.”
회의가 시작됐을 때 우찬은 돈의 흐름을 네 줄로 나눠 놓고 있었다. 정상 원료를 샀다면 지불했을 값. 폐액을 처리했다면 지불했을 값. 선사가 운임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금액. 손실을 주장하며 청구한 금액.
네 줄은 서로 다른 종이에서 왔다. 아직 같은 주머니로 모이지는 않았다.
류경문은 직접 나오지 않았다. 선사 담당자는 준비한 문장을 차분하게 읽었다. 봉인된 화물을 운송하는 회사가 모든 화학적 성질을 검사할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은서가 분석표 대신 현장에서 적어 온 문의 문구 메모를 들었다. 화면 원문은 정식 제출을 요청한 상태였다.
“그래서 누가 보증한 등급을 믿었는지부터 보자는 겁니다. 중개인은 확인서를 발급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원문을 받아 대조하겠습니다.”
“다른 업체에서 받았을 수 있죠.”
“제출해 주십시오.”
선사 담당자는 종이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에도 등급 확인서는 없었다. 해솔은 그가 종이를 한 장 더 넘길 때까지 기다렸다. 종이 소리가 이렇게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도 있었다.
보험자 측 담당자는 화물 청구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액이 높게 적혔다고 그만큼 지급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 물건과 거래를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우찬도 그 점에는 동의했다.
문제는 다음 문장이었다.
“관련 비용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괄 검토하는 게—”
미례가 손을 들었다.
“그 관련이라는 게 어디까지입니까?”
담당자가 말을 멈췄다.
“아래층에 오늘 포집 장비 납품한 사람이 기다려요. 어제는 차를 못 빼서 아이 데리러 못 갔고요. 그 비용이 청록메탈이 받을 돈하고 같은 겁니까?”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 종이도 따로 주세요. 같이 적어 놓으면 아래 창구에서는 같은 일로 미룹니다.”
우찬이 네 줄 아래 새 줄을 긋지는 않았다. 대신 진행 중인 긴급 비용 협의 문서를 옆으로 분리했다. 오늘 문제가 된 화물 청구권과 지금 현장을 유지하는 비용이 뒤섞이지 않도록 담당 창구와 미결 항목을 각각 적었다. 지급을 확정했다는 도장은 찍히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무슨 답을 해야 하는지는 더는 하나의 회색 칸이 아니었다.
회의 뒤 은서가 미례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납품업자는 계단 밑에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은서가 곁에 서자 그가 급히 입을 닦았다.
“다시 가지러 오라는 건 아니죠?”
“아니요. 오늘 확인된 담당 창구입니다.”
은서가 종이를 건넸다. 그가 번호를 저장하는 동안 그녀는 가방을 대신 들어 주었다. 별일 아닌 행동이었다. 그런데 해솔은 그날 은서가 가장 오래 화를 참은 순간보다 그 모습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위층에서 우찬이 불렀다.
사고 담당 조사관이 보내온 범위 내 자료에는 중개업체로 지급된 보험료 처리 내역과 선사 관계사의 비용 대장이 있었다. 금융 경로 전체가 열린 것은 아니었다. 제출된 항목과 계약번호가 서로 맞는지 대조한 결과였다.
청록메탈의 보험 계약에 붙은 납부 참조번호.
선사 관계사의 비용 항목에 붙은 같은 번호.
해솔은 이름보다 날짜를 먼저 보았다. 화물을 싣기 전이었다.
“운송 대행이라 대신 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가 말했다.
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가 얼마를 돌려줬는지도 있어야죠.”
아직 정산 상대를 확인하지 못한 칸이 남아 있었다. 해솔은 이제 빈칸이 나온다고 힘이 빠지지 않았다. 빈칸 앞뒤의 숫자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정해 주고 있었다.
청록메탈의 주소는 항구에서 차로 사십 분 거리였다. 전화를 걸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관리 연락처는 연결됐다. 우찬이 회사 이름을 말하자 상대가 되물었다.
“짐 찾으러 오시는 분입니까?”
해솔이 의자를 당겼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안에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언제부터냐고 묻자 계약서부터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 사이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사무실의 큰 책상 소리가 아니라, 좁은 관리대에서 쌓인 우편물을 옮기는 소리였다.
“회사 간판은 남아 있어요. 임차인이 퇴거한 방이라 관리자가 입회하면 문 앞과 내부 상태는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보관 물품은 따로 절차가 필요하고요.”
“내일 오전에 가겠습니다.”
우찬이 말했다.
통화를 마치자 해솔은 창밖을 보았다. 납품업자의 작은 화물차가 출입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조수석에는 은서가 건네준 종이가 놓여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전화번호 하나를 받아 하루를 더 버텼다. 어떤 회사는 전화번호를 없애 놓고 열세 톤이 넘는 물건을 보냈다.
해솔은 청록메탈 주소를 자기 휴대전화에도 저장했다.
내일은 사람 없는 회사에 가서, 그 회사 대신 움직인 사람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