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판타지 직업 코미디 41화

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약 봉투는 혼자 걷지 않는다

삿갓비의 약 봉투가 편의점 자동문 앞까지 혼자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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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비의 약 봉투가 편의점 자동문 앞까지 혼자 걸어왔다.

봉투 밑에서 종이 다리 둘이 나왔다. 비닐 포장에 그려진 웃는 얼굴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찌그러졌다. 남해온은 우유 상자를 들고 있다가 멈췄다. 약 봉투는 문 앞 매트에서 세 번 넘어지고 네 번째에 몸을 세웠다. 자동문은 열리지 않았다.

“사람 손님은 아닌가 봐.” 콩쇠가 말했다.

“센서가 못 보는 거지. 문이 진단하겠어요?”

해온은 상자를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봉투가 날렵하게 들어오려 하자 발로 앞을 막았다. 어제 진료를 받은 삿갓비에게 갈 물건이었다. 그러나 보낸 치료소의 표식은 맞아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봉투가 설명할 수 없었다. 해온은 바닥에서 봉투를 주워 들지 않고 치료소에 연락했다.

치료소 접수원이 한숨부터 쉬었다. 약방의 심부름 종이가 주소를 잘못 읽었다고 했다. 해온은 배달 의뢰를 따로 받고, 봉투의 발신표식과 봉인 상태를 확인했다. 삿갓비는 아직 검사가 끝나지 않았고 오늘도 손목을 쉬어야 했다. 봉투 안의 약을 보고 이름이 나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먼저 따라왔다.

“약까지 걸어오면 삿갓비가 더 쉬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콩쇠가 물었다.

접수원은 듣지 못했다. 해온이 수화기를 덮자 봉투가 그의 운동화 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콩쇠는 웃다 말고 작은 다리를 붙잡았다. 종이가 쫙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다행히 찢어진 건 운반용 겉종이였다. 약 봉인은 안쪽에 있었다. 해온은 그 부분을 치료소에 알리고 새 겉주머니를 받기로 했다. 콩쇠는 찢어진 다리를 엄지에 붙인 채 중얼거렸다.

“요즘은 사과할 상대가 자꾸 작아져.”

“종이에게도 하세요. 다음엔 몸통 잡지 말고.”

낮에 채원을 만났을 때 해온은 약 배송부터 이야기했다. 허위 환입의 승인자 빈칸은 아직 비어 있었다. 그 줄과 연결된 지급처 하나가 실제 받은 돈 중 일부를 반환하겠다는 연락을 했지만, 담비 할멈의 서랍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해온은 약을 전한 뒤 그 지급처로 가기로 했다. 오늘 반환금을 받을 수 있을지와 오늘 약을 전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채원은 반환 의사를 확인한 작은 수납함을 맡겼다. 요괴길 안에서 현금이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양쪽 당사자가 닫을 수 있는 함이었다. 지급처의 표식과 금액은 함의 안쪽에 적혀 있었다. 해온은 무게를 들어 봤다. 빈 함은 가벼웠다.

“차라리 장부라도 넣어 주면 묵직할 텐데.” 콩쇠가 말했다.

“그거 넣어서 약방에서 쓸 수 있어요?”

콩쇠는 어제 할멈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밤이 되어 냉장고 셋째 문을 열자 약 봉투가 새 겉주머니 안에서 가만히 있었다. 해온은 출발표에 배송과 반환 수납의 목적지를 각각 적었다. 삿갓비가 사는 방은 폐극장 옆 골목 끝이었다. 낮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가 막혀 있었지만, 요괴길의 가로등이 켜지면 좁은 틈에서 계단 한 줄이 나왔다.

오늘은 계단이 없었다.

옆집 두꺼비 요괴가 창문을 열고 알려 줬다. 아래층 세입자가 등을 옮겨 달았다가 불빛이 계단 밑까지 닿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해온은 검은 틈을 들여다봤다. 손전등으로 벽돌을 비추면 벽돌만 보였다. 요괴길을 여는 등과 사람 손전등은 서로를 대신하지 못했다.

“삿갓비 씨, 아래까지 오실 수 있어요?”

위쪽에서 기침과 함께 대답이 왔다. 내려오는 게 아니라 내려갈 곳을 못 찾겠다고 했다. 해온은 약 봉투를 흔들지 않았다. 어둠에서 종이를 흔드는 행위가 약을 받았다는 표식으로 읽힐까 봐서가 아니었다. 봉투를 떨어뜨릴 것 같았다.

콩쇠가 두꺼비의 창틀을 붙잡았다. 창문으로 넘어가면 빠르다고 말했다. 해온은 그의 발목을 잡아 내렸다. 두꺼비가 눈을 껌벅였다.

“우리 집은 오늘 떡을 쪘는데. 들어올 거면 신발부터 벗어.”

콩쇠는 신발을 벗다가 해온과 눈이 마주쳤다. 옆집의 허락은 삿갓비 방까지 넘어가도 된다는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창틀 바깥에 발 디딜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신발을 도로 신었다. 두꺼비는 떡 접시만 창밖으로 내밀었다.

“계단 찾고 먹어요.” 해온이 말했다.

“그럼 남겨 둘게. 김은 빠져도 떡은 안 도망가.”

해온은 아래층 세입자를 불렀다. 검은 비닐을 뒤집어쓴 키 작은 요괴가 문 뒤에서 나왔다. 등은 자기 문 앞을 밝히려고 돌린 거라고 했다. 그 바람에 윗집 계단이 사라졌다는 걸 몰랐다. 콩쇠가 등기둥을 밀려 하자 세입자가 비닐을 부풀렸다.

“내 문도 어두워지면 나는 어디로 들어가?”

해온은 손을 떼게 했다. 등에 붙은 낡은 반사판이 꺾여 있었다. 불빛을 한 쪽으로 몰아서 자기 문턱을 찾는 대신 윗길을 없앤 것이다. 콩쇠가 떡 접시 밑 은박지를 탐냈지만 두꺼비는 손을 안으로 넣었다. 먹을 접시를 길 고치는 데 쓰면 내일 떡을 뭘로 받겠냐는 말이었다.

해온은 가방에서 반송 소포를 받칠 얇은 금속판을 꺼냈다. 개인 장비였고 오늘 마지막 배송까지 필요했다. 이걸 등 뒤에 대면 빛이 반사될 것 같았다. 그러나 고정할 곳이 없었다. 그는 세입자에게 문 옆의 못을 써도 되느냐고 물었다. 세입자는 못 둘 중 하나만 된다고 했다. 나머지는 비닐을 말리는 데 쓰였다.

“한 개면 돌아가잖아.” 콩쇠가 말했다.

“그럼 아래쪽은 내가 받칠게요.”

해온은 손바닥으로 판의 모서리를 받쳤다. 금속이 차가웠다. 콩쇠가 등에 손을 대자 세입자가 먼저 기둥을 잡았다. 셋이 조심스럽게 각도를 돌렸다. 위층에서 삿갓비가 “그쪽 말고 조금 안쪽”이라고 외쳤다. 그림자가 갈라지고 벽 틈에 첫 계단이 나타났다.

두 번째 계단이 생기자 판이 미끄러졌다. 해온은 어깨로 벽을 버티며 손을 다시 넣었다. 손등이 거친 벽돌에 긁혔다. 콩쇠는 그의 가방을 대신 들었다. 평소 같으면 힘으로 판을 벽에 박았을 텐데, 오늘은 세입자가 잡은 못을 한 번 보았다.

“임시로만 이러는 거야. 내일 반사판 고쳐.”

“내일 수리점 열면 갖고 갈게.” 세입자가 말했다.

약을 전하러 온 사람이 길까지 고치고 있었다. 해온은 팔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삿갓비에게 내려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답 대신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났다. 흰 선이 남은 손목을 몸에 붙이고 삿갓비가 한 칸씩 내려왔다. 그가 반쯤 왔을 때 콩쇠가 올라가 가방을 받았다. 손을 끌어당기지는 않았다.

삿갓비는 아래층 문 앞에 멈췄다. 해온은 금속판을 받친 채 치료소가 정해 준 확인 말을 건넸다. 삿갓비가 자기 등록표식으로 답했다. 봉투는 그의 손에 들어가고 나서야 종이 다리를 잠깐 펼쳤다. 새 겉주머니가 우스울 만큼 조심스럽게 부풀었다.

“걸어왔네?” 삿갓비가 말했다.

“마지막은 제가 들었습니다.”

“마지막만 제일 힘들지.”

삿갓비는 봉투를 품에 넣었다. 두꺼비가 창밖으로 다시 떡을 내밀었다. 콩쇠는 손을 뻗었다가 판을 받치고 있는 해온을 봤다. 한 입에 다 넣으려던 떡을 둘로 나누었다. 해온은 손을 쓸 수 없어 고개를 돌렸고, 콩쇠가 그 입에 떡을 밀어 넣었다.

“이러면 배달 완료 찍어야 되나?”

해온은 떡을 씹으며 웃다가 판을 놓칠 뻔했다.

두꺼비가 집에 보관하던 작은 고정쇠를 가져왔다. 자기 창문 덧문에 쓰던 여분이라고 했다. 세입자는 그 값은 자신이 치르겠다고 했고, 두꺼비는 떡값은 안 받아도 쇠값은 받겠다고 했다. 콩쇠가 판을 고정하는 동안 해온은 벽에서 손을 뗐다. 손등에 난 상처보다 팔이 더 아팠다. 길은 이번 밤 동안 살아 있었다. 판은 임시로 빌려 둔 것으로 적고 내일 반사판 교체 뒤 돌려받기로 했다.

반환 지급처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보다 늦었다. 주인은 골목의 헌 우산을 수리하는 요괴였다. 자신에게 들어온 지급 중 어느 것이 문제가 되는지 채원에게 설명을 들었고, 확인된 부분만 오늘 돌려주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해온이 내민 함을 보고 안심한 얼굴을 했다.

“내 장부 전부를 가져가는 줄 알았어.”

해온은 함 안쪽의 해당 번호만 보여 줬다. 주인이 돈을 세어 넣고, 해온이 금액을 맞췄다. 닫는 순간 우산 하나가 펄럭이며 천장에서 내려왔다. 콩쇠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우산 끝에 달린 종이 쥐가 함으로 뛰어들었다.

해온은 뚜껑을 밀어 닫았다. 종이 쥐의 앞발 하나가 모서리에 끼었다. 쥐가 소리를 지르자 수리점 주인이 놀라 받침대를 넘어뜨렸다. 검은 우산 세 개가 바닥을 굴렀다. 콩쇠가 쥐의 꼬리를 잡으려 했지만 꼬리가 하얀 실로 풀렸다.

“돈에 붙은 거냐?” 콩쇠가 소리쳤다.

주인은 모른다고 했다. 해온은 함을 가슴에 끌어안고 벽으로 물러났다. 쥐는 돈보다 함 안쪽의 지급번호 쪽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번호를 먹으려는 것처럼 입을 움직였다. 해온은 찢어지려는 종이 위에 자신의 반송표를 겹쳤다. 쥐가 빈 종이를 물고 끌어당기는 순간 콩쇠가 뒤집은 우산을 덮었다.

우산 안에서 한동안 발소리가 났다. 해온이 함의 번호와 금액을 다시 확인하는 동안 주인은 우산 손잡이를 양손으로 눌렀다. 자기 가게에서 생긴 일을 남에게 모두 맡기지는 않았다. 채원에게 연락하자 우산째 중립 보관하라는 답이 왔다. 정체를 알기 전 불태우지 말라고 했다.

“우산은 제 건데요.” 주인이 말했다.

“보관 확인과 돌려드릴 날짜도 같이 적겠습니다.”

주인은 콩쇠를 쳐다봤다. 콩쇠가 우산을 납작하게 눌러 놓은 탓이었다. 그는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폈다. 우산을 쓰던 종이 쥐는 조용해졌다. 누가 보냈는지는 안 보였지만, 무엇을 물려 했는지는 남았다.

담비 할멈에게 함을 건넨 것은 새벽이었다. 할멈은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돈을 다시 세었다. 장부의 반환청구 줄 일부가 지워지고, 실제 수납 줄에 작은 액수가 생겼다. 해온은 할멈이 그 돈 중 정해 둔 긴급계정 몫을 따로 넣는 것을 봤다. 상인 보전계정으로 저절로 옮겨지지 않았다.

“손은 왜 그래?”

“약 전하다가요.”

할멈은 상처를 한 번 보고 구급함을 밀었다. 콩쇠가 먼저 뚜껑을 열었다. 반창고를 해온 손등에 붙이는 모양이 종이 다리를 잡을 때보다 훨씬 서툴렀다. 해온은 이번에는 가만히 손을 맡겼다.

함이 비워지자 수리점 주인이 적은 반환표가 드러났다. 승인자 칸은 역시 비어 있었다. 다만 그 옆에 쥐가 물고 뜯으려던 번호의 끝 세 자리가 살아 있었다. 해온은 그 종이를 채원에게 넘겼다. 오늘 약은 삿갓비에게 갔고 돈은 서랍에 들어왔다. 번호를 지우려던 작은 입은 뒤집힌 우산 아래 있었다.

편의점으로 돌아오니 점주가 우유 진열을 끝내고 있었다. 해온이 늦은 만큼 다음 교대도 늦어졌다. 그는 변명 대신 손등의 반창고를 안쪽으로 돌리고 계산대에 섰다. 첫 손님이 우산을 접으며 들어왔다. 해온은 그 우산 안쪽을 자기도 모르게 확인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