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40화

수심 43미터의 종

여섯 번의 개방

종이 먼저 울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세 번째 시험까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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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먼저 울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세 번째 시험까지 틀렸다.

해솔은 항구 시험장의 모형 앞에서 밧줄을 놓았다. 분리된 시험대의 작은 종이 한 번 더 흔들리다가 멎었다. 레버를 대신한 표시자는 제자리에 있었다. 누군가의 예상과 달리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로프가 원동력이 아니네요.”

우찬이 말했다.

해솔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밧줄에서 손을 떼기 싫었다. 바다에서 건져 온 기억에는 늘 종이 앞에 있었다. 소리를 듣고 사람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기계도 그랬을 것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사람의 순서를 기계에 입혔다.

제조사 기술자가 모형의 옆판을 가리켰다.

“우리가 받은 주문에서 순서를 넘기는 건 내부 지연장치입니다. 바깥줄이 무엇을 했는지는 별도로 보셔야 해요.”

전날 저녁 따로 확인한 수색 영상에는 부속 암에서 종 쪽으로 이어진 연결줄의 배치가 보였다. 현장에 온 기술자는 그 배치를 모형으로 옮긴 뒤 암의 움직임이 종으로 전달되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해솔은 장치로 들어가는 화살표를 점선으로 바꿨다. 종이 여섯 단계를 하나씩 밀어 준다는 가정은 틀렸지만, 최초 기동에도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점선 옆에는 작은 물음표를 남겼다.

“기울면 줄이 걸려 움직일 가능성은요?”

박은서가 물었다.

기술자는 모형을 멈춘 상태에서 간섭 구간을 따로 살폈다. 그것은 시작을 방해하거나 소리를 다르게 만들 수는 있어도, 확인된 간격을 계속 만들어 내는 주동력은 아니었다. 사고 후 변형된 선체의 상태까지 원래 설계라고 가정해서도 안 됐다.

해솔은 반대쪽으로 그린 화살표를 보았다.

장치에서 종으로.

이 배는 자기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소리를 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그걸 자신을 부르는 소리로 들었다.

네 번째 시험에서는 실제 회수품 대신 주문 도면에 따라 만든 분리 모형을 썼다. 실물은 손대지 않고 옆 화면의 사진으로 위치를 대조했다. 표시등과 눈금이 각 기능을 대신했다. 참관인들에게도 그 구분이 먼저 설명됐다.

첫 번째 위치에서 작은 종이 울렸다.

사십 초는 의외로 길었다. 해솔은 두 번째 소리까지 세 번이나 자세를 고쳤다. 우찬은 움직이지 않았다. 은서는 소리보다 기록 화면을 보았다.

두 번째. 세 번째.

해솔의 목 뒤가 굳었다. 재필이 움직였다는 시점이었다. 모형 앞에는 물도, 기울어진 계단도, 부딪쳐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 부재가 오히려 머릿속에서 모두를 불러냈다.

네 번째 소리가 났다.

해솔은 안전선 밖으로 한 발 물러났다. 모형이 위험해서가 아니었다. 손을 뻗어 멈추고 싶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이번에는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섯 번째 단계에서 개방 위치 표시가 끝에 닿았다. 다음 위치에서 시험용 경보 표시등이 꺼졌다. 종의 잔향은 방에 남아 있었지만 표시등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우찬이 시험 종료를 알렸다.

누군가 시계를 봤다. 누군가 물을 마셨다. 그 평범한 움직임들이 시작되자 해솔도 숨을 깊이 들이켰다. 멈추고 싶었던 손이 아직 주먹을 쥐고 있었다.

“괜찮아요?”

은서가 낮게 물었다.

“예. 이제 사람한테 설명할 차례죠.”

그 말이 실험보다 어려웠다.

중간심의실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침묵이 모였다. 유족들은 소리를 들으려고 조용했고, 회사 사람들은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 조용했다. 뒤늦게 도착한 기자들은 녹음기가 켜졌는지 확인하느라 잠시 조용했다.

재필은 없었다. 그가 오지 않겠다고 한 선택은 오늘도 그대로였다. 대신 심의 뒤 자신이 듣고 싶은 범위만 따로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와 있었다.

우찬은 모든 자료를 한꺼번에 벽에 붙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장만 펼쳤다. 사고 이전 도면이었다. 그다음에는 새 연결이 추가된 도면. 마지막으로 기록에 나타난 여섯 단계가 올라갔다.

해솔은 뒤에서 자료를 바꿨다. 화면 속 사진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이 들어갔던 물의 차가움이 손가락에 돌아왔다.

케이블의 제조 시점. 정비일지의 빈칸. 공구를 실제 이름과 다르게 지급한 내역. 접근판 앞에서 멈춘 검사. 주문이 바뀐 장치. 한 줄로 놓고 보니 쉬워 보였다. 그러나 어느 한 칸도 처음부터 다음 칸을 가리켜 주지는 않았다.

우찬은 마지막 장에서 멈췄다.

“현재 확보한 배선과 압력 기록을 함께 보면, 이 연결에 의한 단계적 폐액 이동과 기울기 악화, 확인된 경보·기록 구간의 차단이 자료를 가장 잘 설명합니다. 최초 기동 방식과 미확인 구간은 별도 조사 대상으로 남겼습니다.”

앞줄에서 선사 변호사가 손을 들었다.

“접점판은 아직 못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작동했다고 판단합니까?”

우찬은 제조사 시험 영상을 다시 틀지 않았다. 사고 기록과 확인된 배선의 대응을 펼쳤다. 어떤 시점과 구간이 맞고, 무엇이 다른 손상으로 설명되는지 이미 표 안에서 나뉘어 있었다.

“빠진 부품 하나만으로 결론을 낸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부품을 못 찾았다는 이유로 이 대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추가 자료가 나오면 검토 범위를 넓히겠습니다.”

변호사는 다른 종이를 꺼냈다. 자신들의 설명도 바뀌어 있었다. 선원이 미숙하게 조작했다는 전날 주장 뒤에, 회사가 알지 못한 하청업체 실험이었을 가능성이 새로 붙었다.

해솔은 탁자 아래에서 손을 폈다. 그 말에 화를 내면 오늘의 질문이 회사가 아니라 자신의 태도로 바뀔 것 같았다.

“어느 하청업체의 어떤 실험입니까?”

우찬이 물었다.

“내부 확인 중입니다.”

“선원이 조작했다는 주장과 양립하는지, 각각의 근거를 제출해 주십시오.”

변호사가 볼펜 뚜껑을 닫았다. 그 작은 소리가 방 안에 크게 들렸다.

뒷줄의 가족 한 명이 종에 관해 물었다.

“그 소리가, 사람을 부른 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해솔이 마이크를 받았다. 우찬보다 자신이 답해야 할 질문 같았다.

“장치 움직임을 소리로 알릴 수 있는 연결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들린 모든 종소리를 그 기능 하나로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손으로 울린 소리가 섞였는지도 계속 확인하고 있습니다.”

말이 길었다. 해솔도 알았다. 그러나 ‘그 종은 구조 신호가 아니었습니다’라는 쉬운 문장으로 누군가의 마지막 행동까지 지워 버릴 수는 없었다.

질문한 가족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바라던 대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대답도 아닌 것은 아니기를 해솔은 바랐다.

회의가 끝나기 직전, 보험자 측 담당자가 발언했다. 기술 판단과 계약상 지급 판단은 따로 검토하겠다는 말이었다. 장치가 고의로 설치됐다는 의심 때문에 모든 피해 관련 지급을 한꺼번에 결론 내리지는 않겠다고 했다. 확정 금액도 지급일도 말하지 않았다.

미례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가 밑줄을 하나 그었다.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당장 막히는 생활비는 기존 협의대로 계속 논의하는 거죠?”

담당자는 회의 뒤 실무 창구에서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미례는 자리에 앉지 않고 담당자의 이름을 다시 물었다.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든 뒤에야 의자를 당겼다.

해솔은 그 끈질긴 동작을 보았다. 큰 원인이 밝혀져도 내일 밥값은 저절로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가끔 거대한 결론보다 창구 하나가 더 급했다.

오후에 해솔과 우찬은 재필을 만났다. 재필은 먼저 무엇을 듣고 싶은지 말했다. 사람을 특정했는지는 나중에 묻겠다고 했다. 오늘은 소리만.

우찬은 짧은 도식을 종이에 그렸다. 함에서 움직임이 이어지고, 바깥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난다는 구조였다. 실제 소리가 들어 있는 영상은 재필이 원하지 않아 틀지 않았다.

“저는 누가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재필이 말했다.

해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까지 울리니까 빨리 가야겠다고. 한 번이면 실수일 수 있는데 세 번은 사람을 부르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오른손을 왼쪽 겨드랑이 아래 넣었다. 해솔이 전날 모형 앞에서 했던 자세와 같았다.

“그럼 제가 달려간 동안 누군가는 얼마나 됐는지 듣고 있었다는 거네요.”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는 데까지 확인했습니다. 실제 누가 어디서 들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재필은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까지 아직입니까.”

해솔은 대답하지 못했다. 재필이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정확한 말만 골라서 상처가 덜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뒤 재필이 자기 손을 꺼냈다.

“그래도 저는 사람을 부르는 줄 알고 갔어요.”

그가 다시 말했다.

“그건 안 바뀌죠?”

해솔은 이번에는 바로 대답했다.

“그건 안 바뀝니다.”

재필이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받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했던 행동 한 가지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대책실로 돌아가는 길에 해솔은 항구 끝에 잠깐 섰다. 청람호가 있는 방향은 방파제 너머였다. 종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떼어 전시하거나 새 이름을 붙일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 물건이 있을 자리를 마음대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우찬도 옆에 섰다. 두 사람은 말없이 물을 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정박한 배의 줄이 팽팽해졌다가 풀렸다. 살아 있는 항구는 계속 삐걱거렸다.

“이제 어떻게 가라앉았는지는 많이 좁혔네요.”

해솔이 말했다.

“누가 얻었는지를 봐야 합니다.”

“누가 잃었는지는 이렇게 잘 보이는데.”

우찬은 대답 대신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회의 뒤 전달받은 적하 관련 자료였다. 해솔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까지요?”

“이것 하나만 보세요.”

재생촉매. 익숙해진 품명이었다. 그러나 그 옆에 적힌 금액은 익숙하지 않았다. 우찬은 별도 가격 자료와 비교한 계산서를 겹치지 않고 옆에 댔다. 같은 조건으로 단순 비교할 수 있는지 품질과 계약 시점을 더 봐야 한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그 조건을 감안해도 차이는 컸다.

“약 열두 배입니다.”

해솔은 금액의 자릿수를 다시 셌다. 신고했던 물건, 실제 실었던 물건, 보험에 적은 물건. 세 이름이 같은 줄에 놓인 듯 보였지만 값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방파제 너머를 다시 보았다. 바다 아래에서는 어느 밸브가 열렸는지 찾았다. 육지에서는 누군가의 장부가 열릴 차례였다.

“이 돈 받는 사람 이름부터 봅시다.”

우찬이 종이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