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4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출근버스와 빈 어선

출근버스가 정류장 턱에 바퀴를 붙이자 강만석은 손에 쥔 어촌계 회의지를 접었다. 새벽에 뿌린 비가 종이 가장자리를 불려 놓았다. 길 건너 선착장의 어선들은 깃발만 흔들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젖은 계단을 밟았다. 만석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지난겨울 그가 엔진을 빌려준 사람의 동생, 명절이면 생선 한 상자를 사 가는 사람. 공장 문 앞에 섰을 때는 모두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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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버스가 정류장 턱에 바퀴를 붙이자 강만석은 손에 쥔 어촌계 회의지를 접었다. 새벽에 뿌린 비가 종이 가장자리를 불려 놓았다. 길 건너 선착장의 어선들은 깃발만 흔들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젖은 계단을 밟았다. 만석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지난겨울 그가 엔진을 빌려준 사람의 동생, 명절이면 생선 한 상자를 사 가는 사람. 공장 문 앞에 섰을 때는 모두 같은 작업복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오니 서로 다른 신발이었다.

배세희는 마지막 무렵에 내렸다. 버스 문이 닫히기 전에 뒤따르는 노동자의 우산이 걸렸다. 그녀가 우산살을 접어 빼 주는 동안 만석은 다가가려다 멈췄다. 가람이 약속한 곳은 정문 앞이었지만 막 출근하는 사람의 길을 막으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세희는 우산을 건네주고 만석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았다.

“어제 회의 다시 하자는 겁니까?”

“어제는 회의가 아니었소. 반쯤 하다 끝났지.”

서가람이 도착했을 때 둘 사이에는 버스에서 떨어진 물이 길게 고여 있었다. 그는 오늘 공장 측에 할 질문을 적어 왔다. 자체검사 시각과 배출구 위치를 확인하고, 피해 구역을 함께 볼 수 있는지 물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희의 첫 질문은 물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공장 멈추라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밤새 월급부터 물었어요. 오늘 가서 자료 내놓으라고 하면 그 말부터 나올 겁니다.”

만석이 접힌 종이를 폈다. 어젯밤 회의에서 가장 크게 적혔던 두 글자가 종이 위에 남아 있었다. 폐쇄.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글자의 아래쪽을 누르고 세희에게 내밀었다.

“배는 이미 멈췄소. 저 사람들은 이번 달 월급이 걱정이겠지만 배 타는 사람은 오늘 벌 돈이 없소. 물이 더 들어오는데 문 열어 놓고 기다리라고?”

세희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길을 건너는 노동자 하나가 두 사람을 알아보고 발걸음을 늦췄다가 가람의 가방을 보고 서둘러 정문으로 들어갔다. 만석도 그 모습을 보았다. 어제 회의에서 임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신이 목소리를 높였던 것을 기억했다. 그 뒤로 노동자 가족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의자를 보며 배가 빈 것보다 더 화가 났었다.

“그 물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야 멈출 수 있어요.” 세희가 말했다. “공정을 모르고 공장 전체를 범인으로 부르면 안전자료를 가진 사람부터 입을 닫습니다.”

“입을 닫으면 피해는 누가 봅니까.”

가람은 펼친 회의지 모서리를 잡았다. 빗물이 묻은 종이가 손톱에 달라붙었다. 그는 종이를 만석에게서 빼앗지 않고 두 사람이 볼 수 있게 낮췄다. 버스가 떠난 자리에서 경적이 울렸다. 뒤에 기다리던 차가 앞으로 갔다. 만석이 한 발 옆으로 물러나고 세희도 길을 비켰다. 말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만 출근길을 붙들면 그날은 그것부터 남을 터였다.

“회사 책임은 묻겠습니다. 노동자 월급을 벌금처럼 끊지는 않겠다고 적고요. 지금 공장을 세우자는 요구와 조사를 시작하자는 요구를 따로 놓읍시다.”

만석은 가람을 쳐다봤다. “적는 동안도 물은 들어올 텐데.”

“그래서 현장을 먼저 보게 해 달라고 요구할 겁니다. 위험한 걸 발견하면 그 부분을 바로 따로 말할 수 있도록요. 어떤 부분인지 모르는데 회사가 괜찮다며 보내는 종이만 받는 건 저도 싫습니다.”

세희가 출근 시간을 확인했다. 손목시계 유리에 빗물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환경팀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다른 부서에서 가져와야 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나누는 듯했다. 가람은 자료를 오늘 전부 갖고 나오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자료를 어디에서 받아야 하는지 함께 적어 달라고 했다. 세희는 그 말을 듣고서야 휴대전화를 꺼내 공장 안에 짧게 연락했다. 늦는 사유를 ‘외부 민원 대응’이라고 말한 뒤 화면을 껐다.

“회의에는 환경팀 말고 노동자도 있어야 해요. 제가 월급을 약속할 사람은 아닙니다.”

“계장 하나가 모든 배의 생각을 대신하지도 못하오.” 만석이 말했다. 그 말끝이 조금 낮아졌다.

가람은 수첩의 새 쪽을 폈다. 어민 세 명, 노동자 세 명, 상인 세 명. 사람을 많이 앉히는 대신 각자 옆자리의 말을 들을 정도로만 모으자고 했다. 만석은 어민 자리에 폐쇄 요구를 하지 않는 사람도 들어오느냐고 물었다. 가람은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세희는 회사 관리자가 노동자 세 사람을 정해서 보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가람은 그 아래에 선임 방식도 각 집단에 물어 확인할 것이라고 적었다.

“아홉 명이 앉았다고 온 마을이 합의한 건 아닙니다. 사실을 함께 확인할 자리를 만드는 거예요. 폐쇄 여부는 그 자료를 보고 계속 다툴 수 있습니다.”

만석은 수첩을 받아 첫 줄을 읽었다. 종이에 쓰인 ‘공동’이라는 말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어제는 같은 말을 쓰고도 회의가 깨졌다. 그는 세희에게 수첩을 넘기지 않고 선착장을 보았다. 깃발이 물에 붙었다가 바람을 받아 잠깐 펴졌다. 하루 더 기다린다는 말을 배에 가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오늘 회의가 잡힌다고 조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지요?”

“아니오.” 가람은 즉시 답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답을 듣고 만석은 수첩을 세희에게 건넸다. 세희는 노동자 자리에 작은 동그라미를 쳤다. 자신의 이름은 아직 적지 않았다. 먼저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 안에 들어가서 다시 나오는 것도 그녀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만석은 회의 시간보다 먼저 배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셋은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돌아갈 길을 정했다.

가람과 만석은 먼저 선착장으로 갔다. 어선 사이에 놓인 물통에 밤새 고인 빗물이 넘쳤다. 가람은 배가 움직이지 않아도 손질할 일이 줄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는 로프를 말아 놓고 있었고 다른 이는 물 먹은 깃발을 매만졌다. 만석이 모였던 사람들에게 아홉 사람이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하자 한 사람이 공장 편을 데려오는 셈 아니냐고 물었다.

만석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 정문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세희의 귀를 막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기 편의 사람들을 달래려고 공장이 멈출 것처럼 말할 수도 없었다. 그는 젖은 회의지를 펼쳐 폐쇄라는 글자를 보여 주었다.

“이 요구를 버리는 건 아니오. 오늘 가져갈 건 자료를 보는 요구요.”

“그러다 저쪽에서 정상이라고 한 장 주면?”

“그 한 장이 언제 어디서 나온 건지도 같이 볼 사람이 있어야지.”

가람은 회사가 공개한 낮 검사 시간이 적힌 자기 메모를 꺼냈다. 종이를 둥글게 말아 움켜쥐던 선원의 손이 멎었다. 지금 갖고 있는 것은 공장의 정상 주장이고, 채취하지 않은 시간의 물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는 결과를 약속하는 대신 같은 지점을 볼 권리와 원본 자료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누가 배에 오르고 누가 기록을 볼지는 회의에서 각자 정하되, 현장을 아는 사람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만석은 자기 배를 향하던 사람을 불러 세웠다가 이름을 적지 않고 보내 주었다. 가족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뒤로 다시 빈 어선이 보였다. 만석은 서명 한 줄이 늦어지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그 손을 잡아 이름을 적게 할 수는 없었다. 가람이 수첩을 닫자 그는 “사람이 없어서 망하는 건지, 서로 못 믿어서 망하는 건지 모르겠소”라고 중얼거렸다.

다시 수산거리 쪽으로 나오자 문을 여는 점포보다 닫힌 점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람은 상인들에게도 회의 자리를 알렸다. 배가 못 들어오면 못 파는 것이 있고 공장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못 파는 것이 있다는 말이 같은 가게 안에서 나왔다. 만석은 그 앞에서 어민 이야기를 먼저 하려다 가람의 수첩을 보았다. 아직 빈 상인 세 칸이 있었다. 그는 점포 문을 잡고 기다렸다. 가람이 설명하는 동안 손님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고, 가게 주인은 말을 끊고 물건을 내주었다. 손님이 사라진 뒤에야 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계장이 무슨 약속을 받아 왔냐고 물으면 아홉 명 만든다고만 말할 겁니까?” 만석이 길에서 물었다.

가람은 선착장과 공장 사이에서 뭘 가져왔는지 수첩을 다시 보았다. 받아낸 검사 결과도 지원금도 없었다. 한 번 더 모이면 어제와 똑같이 깨질 수도 있었다. 그는 그것을 감추지 않았다.

“현장접근, 생계지원, 안전정보 공개. 이 세 가지를 같이 요구할 사람을 모으겠다고 말합시다. 받은 것은 아직 없고요.”

만석은 그중 생계지원이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 달라고 했다. 폐쇄가 빠진 문장을 선착장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면 빈 어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표시는 필요했다. 가람은 밑줄을 그었다. 그 아래에는 회사 노동자의 임금을 포함해 논의한다는 메모를 남겼다. 만석이 메모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우라고 하지는 않았다.

공장 정문으로 돌아왔을 때 세희가 잠깐 밖에 나와 있었다. 그녀는 노동자 쪽에서 함께 앉을 의사를 묻기 시작했다고 했다. 오늘 자료를 가져오는 것과 회의에 누가 나가는 것은 따로 확인 중이라고 덧붙였다. 만석은 그 말이 못마땅한 듯했지만 아까 선착장에서 가족과 상의하겠다던 사람을 기억하고 입을 다물었다.

세희가 가람을 조금 떨어진 곳으로 불렀다. 만석에게 숨기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가람은 두 걸음만 옮겼다. 세희는 그 짧은 거리도 한동안 재다가 물었다.

“변호사님은 어느 편이에요?”

가람은 정문 안에서 사라지는 작업복과 길 건너 내려앉은 깃발을 보았다. 둘 중 하나를 가리키면 지금 겨우 잡은 회의 자리가 풀릴 터였다. 그러나 모두의 편이라는 말도 이 아침에는 너무 편했다.

“증거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갈 겁니다. 그동안 굶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 쪽에도 서고요. 같은 답으로 안 되는 때가 오면 그냥 같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세희는 가람의 얼굴보다 수첩을 오래 보았다. 공장 사람이라는 이유로 마지막 줄에 밀리는지 보려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 아홉 명에게 전달할 말을 확인한 뒤 가람에게 수첩을 돌려주었다. 접힌 페이지 위에 손가락 하나를 잠깐 올려놓았다.

“공식 배출구만 보자고 하면 거기서 끝날 수 있어요.”

정문 쪽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세희는 돌아서기 전에 목소리를 낮췄다.

“오래전에 폐쇄했다는 세척배관 목록도 확인해 보세요.”

그녀는 어느 배관인지, 지금 물이 흐르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가람도 뒤따라 이름을 묻지 않았다. 수첩에 ‘폐쇄된 세척배관 목록’이라고 적고 만석에게 보여 주었다. 만석은 글자 아래를 엄지로 눌렀다. 조금 전에는 폐쇄 두 글자를 누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미 폐쇄했다는 말이 둘의 발을 공장 쪽으로 붙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