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 다섯 센티
호그라인 앞의 손끝
토요일 오후의 빙판은 목요일보다 밝았다. 관중석 창으로 들어온 빛이 호그라인 앞에서 끊겼다. 소라온은 얇은 고무 표식과 검은 선 사이를 봤다. 표식은 선에 닿기 삼십 센티 전의 지점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보면 손바닥 하나 차이처럼 보였다.
토요일 오후의 빙판은 목요일보다 밝았다. 관중석 창으로 들어온 빛이 호그라인 앞에서 끊겼다. 소라온은 얇은 고무 표식과 검은 선 사이를 봤다. 표식은 선에 닿기 삼십 센티 전의 지점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보면 손바닥 하나 차이처럼 보였다.
“오늘은 여기서 놓습니다.”
김단비가 표식을 가리켰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요일에는 여섯 가드를 놓았고, 오늘은 적어도 그중 네 개쯤 같은 곳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날 밤에는 라디오 안테나를 펴다가 스틱을 놓던 손목까지 함께 움직여 봤다. 자기 손으로 고칠 수 있는 동작이었다.
첫 스톤을 받자 단비가 옆으로 왔다. 카메라는 라온의 얼굴이 아니라 손목과 헤드를 향했다. 라온이 렌즈를 보자 단비는 촬영 구역을 보여 줬다.
“놓는 순간만 봐요. 어디까지 들고 가는지.”
“제 돌이 어디 멈추는지는 안 봅니까?”
“일단 선을 통과할 수 있는 돌인지부터요.”
라온은 스틱 헤드를 손잡이에 맞췄다. 바퀴를 고정하고 어깨를 뒤로 뺐다. 고무 코팅 장갑이 손잡이에 붙는 감촉이 있었다. 표식에서 놓으면 돌이 모자랄 것 같았다. 처음 체험 때 삼 미터 짧았던 돌이 떠올랐다. 그는 스틱을 조금 더 보냈다.
“중단.”
단비의 목소리가 너무 빨랐다. 라온은 돌이 하우스까지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중앙 앞에 나쁘지 않게 설 것 같았다.
“스틱에 붙어 있었어요.”
단비가 말했다. 라온은 손의 헤드를 봤다. 이미 떨어져 있었다. 멈춘 돌을 보고 다시 단비를 봤다.
“지금은 떨어졌는데요.”
“호그라인을 지난 뒤에요.”
오미란이 카메라 쪽으로 왔다. 단비가 영상을 멈췄다. 검은 선 앞에서는 헤드와 손잡이가 겹쳐 있었다. 선을 지난 프레임에서도 붙어 있었다. 다음 화면에서야 빈틈이 났다. 라온은 두 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놓았다.
“어느 프레임인지 알겠습니다. 한 번 더 하면 되죠?”
“저 돌부터 뺍니다.” 단비가 말했다.
“점수 안 세는 훈련이잖아요.”
단비는 스톤을 가져오는 쪽을 가리켰다. 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 횟수를 쓰던 기록지 첫 칸은 비어 있었다. 라온은 중앙 앞에 선 돌을 봤다. 자기가 마음에 들게 놓은 첫돌이었다. 가져오는 사람이 그것을 경기 밖으로 옮겼다.
“연습이라서 더 바로 빼야 해요.”
단비가 말하자 라온의 목 뒤가 뻣뻣해졌다. 사고 뒤 재활실에서도 이 동작은 아직 하면 안 된다며 손과 발이 멈춰지는 일이 많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몸의 어떤 부분이 늦고 잘못됐다고 했다. 단비는 자기 어깨가 얼마나 빨리 굳는지 모르고 초시계만 보고 있었다.
“제 손이 느리다는 겁니까?”
단비가 잠깐 말을 멈췄다.
“스틱을 늦게 놓았다는 겁니다.”
“같은 말 아니에요?”
“다른 사람도 선을 넘어서 들고 가면 돌을 뺍니다.”
라온은 림을 잡았다. 생활용 의자로 옮겨 나갈 때 필요한 동작을 몸이 먼저 찾고 있었다. 미란이 어디로 가겠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임태규를 불러 스틱 헤드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단비는 영상을 앞 프레임으로 돌렸고, 라온은 그 검은 선을 보고 앉아 있었다.
태규가 스틱을 받아 작업실로 가져갔다. 라온도 따라 나왔다. 장비실 온도가 빙판보다 높았지만 장갑 안쪽은 차가웠다. 태규는 헤드의 접촉면부터 비췄다. 모서리에 녹이 슬었거나 금이 갔으면 돌에서 늦게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라온은 그 말에 조금 몸을 앞으로 당겼다.
“이쪽이 닳아서 잡고 있을 수 있죠?”
“그래서 볼 겁니다.”
태규는 같은 손잡이에 헤드를 걸어 분리했다. 각도를 바꾸고 다시 걸었다. 비교할 다른 헤드도 꺼냈다. 라온은 자기 손으로 한 번 당겨 보고 싶었지만 태규가 검사하는 동안 기다렸다. 마찰은 분리를 막을 정도가 아니었다. 두 헤드 모두 같은 방식으로 떨어졌다.
미란이 영상을 작업대 위에 놓았다. 그 화면에서 라온의 손은 돌이 계속 붙어 있는 동안 앞으로 가고 있었다. 태규는 프레임을 확대해 헤드 끝을 가리켰다.
“기계가 잡고 있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도 손이 계속 보내고 있어요.”
라온은 내려놓은 장갑을 봤다. 원인을 찾는 일에는 익숙했다. 원인이 자기 동작이면 일을 끝낼 공구가 없었다. 그는 태규에게 어디까지 보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미란이 표식 위치를 휴대전화에 띄웠다.
“선에 닿기 전에 명확하게 떨어져야 합니다. 오늘은 여유를 두고 놓는 순간을 먼저 만들 거예요.”
단비가 작업실 문에 서 있었다. 아까 화가 난 목소리는 없었지만 사과하러 왔다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녀는 라온의 스틱을 들고 들어왔다. 태규가 검사한 것을 확인하고 손잡이부터 라온에게 건넸다.
“이상 없답니다.”
라온이 받았다. 헤드가 멀쩡하다는 말은 빙판으로 돌아갈 핑계가 되기도 했고, 나갈 핑계를 없애기도 했다. 그는 미란을 보며 말했다.
“내 몸을 탓하는 말로 들었습니다.”
단비가 얼굴을 들었다. 라온은 뒷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자신이 그렇게 들었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상대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규칙 얘기라면 스톤부터 치우고 다시 배우죠. 아까 빼신 건 봤습니다.”
미란은 빙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빈 스틱 동작 열 번부터 하자고 했다. 여섯 번 연속 같은 기준을 지킨 뒤에 실제 돌을 주겠다고 덧붙였다. 라온은 세기 조절부터 할 줄 알았다고 했다.
“돌을 끝까지 잘 보내는 것도 하고 싶어요.”
“그 돌이 네 돌로 남으려면 여기부터요.”
그는 더 말하지 않고 따라갔다. 표식 앞에 돌아오자 아까 놓았던 돌은 대기 줄에 들어가 있었다. 그 돌을 다시 자기 앞에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빈 스틱을 받았다. 힘을 쓸 물건이 없어서 동작을 과장하면 더 잘 보였다.
첫 번째는 표식을 넘겨 팔을 뻗었다. 단비가 “놓아”라고 불렀을 때 손이 이미 끝까지 가 있었다. 두 번째에는 말소리를 기다렸다가 움직여 늦었다. 미란은 단비가 재촉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표식부터 보고 시작하라고 했다.
세 번째에는 빨리 놓으려다 어깨를 먼저 들었다. 라온이 스스로 다시 하겠다고 했다. 네 번째에서 헤드 끝이 또 표식 밖으로 갔다. 그는 멈춰 손목을 봤다. 단비가 손으로 잡아 고치지는 않았다. 옆에서 카메라 화면을 돌려 보여 줬다.
“손을 더 보내면 안전할 것 같죠?”
“짧게 보내면 짧은 돌이 나올 것 같아서요.”
“돌이 떨어진 뒤에는 이 헤드가 따라갈 이유 없어요.”
라온은 빈 헤드를 앞에 놓았다. 힘을 덜 주는 것과 늦게 잡지 않는 것이 같은 동작은 아니었다. 다섯 번째에는 표식에서 헤드의 방향을 먼저 풀었다. 단비가 짧게 놓으라고 불렀다. 미란이 첫 준수라고 말했다.
라온은 여섯 번째를 시작하기 전에 장갑을 한 번 벗었다. 손바닥을 닦고 다시 꼈다. 이번에도 표식에서 동작이 끊겼다.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초시계 숫자를 듣지 않는 동안 팔이 오히려 덜 굳었다. 아홉 번째에는 단비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열 번째가 끝났다. 미란은 기록지에 여섯 번 연속이라고 표시했다. 라온은 빈 스틱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열 번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네 번이 지워지지 않고 그 위에 마지막 여섯 번이 붙어 있었다.
실제 스톤을 받기 전에 이동 경로의 고무 표식을 정리했다. 릴리스 위치는 옆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라온은 돌을 받자 다시 손잡이에 오래 붙어 있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힘을 낮추고 떨어지는 순간을 먼저 정했다.
“놓아.”
그가 분리한 헤드와 스톤 사이로 얼음이 보였다. 돌은 호그라인을 지나 하우스 앞쪽에 멎었다. 라온은 정지한 곳보다 영상의 그 빈틈을 먼저 봤다. 단비가 프레임을 멈춰 보여 줬다. 검은 선 전에 돌이 따로 가고 있었다.
“이번 건 남아요.”
단비가 말했다. 성공을 외치는 목소리보다 작았다. 라온은 기록지 첫 칸이 채워지는 것을 봤다. 둘째 돌도 비슷한 앞자리에 섰다. 셋째를 준비할 때는 목표를 조금 옮겨 앞쪽 세 돌의 간격을 남겼다. 힘은 낮았지만 어느 돌도 헤드를 끌고 선을 넘지 않았다.
단비가 마지막 영상을 옆에서 보여 줬다.
“둘째보다 셋째 손목이 덜 올라가요. 떨어진 뒤에도 어깨가 여기 있고요.”
라온은 자기 움직임에서 안 된 부분보다 된 부분을 먼저 짚는 그녀의 손을 봤다. 그냥 잘했다는 말이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영상에서 늦은 첫돌을 찾아낸 손이라 이번 프레임도 믿을 수 있었다.
“돌을 뺀다고 제 자리도 빼는 건 아니었네요.”
그가 말했다. 단비는 다음 스톤을 정리함에 놓고 돌아봤다.
“자리는 내일도 돈 내고 와야 남죠.”
라온이 웃었다. 대관료와 손끝은 다른 문제였다. 오늘 손끝이 나아졌다고 다음 주 비용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늘 기록을 가방에 넣을 수는 있었다.
태규가 장비실 앞에서 기다렸다. 스틱 손잡이를 쥘 때 손목 각도를 재 보고 싶다고 했다. 라온의 손에 맞는 비기계식 덧댐을 임시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었다. 라온은 바로 고무를 더 감으면 되느냐고 물었다.
“치수부터요. 경기 규격하고 먼저 맞춰 보고.”
“그걸 대면 놓기도 쉬워집니까?”
태규는 스틱을 돌려 손잡이 둘레를 봤다.
“덜 불편하게 잡는 건 도울 수 있죠. 선 앞에서 놓을지는 오늘처럼 다시 봐야 하고요.”
라온은 잠깐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새 부품이 생기면 오늘 빼낸 첫돌까지 고쳐 줄 것처럼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장비실 문 너머 정리된 스톤 줄을 봤다. 돌은 거기에 있었고, 다음 투구는 아직 없었다.
태규가 빈 종이를 폈다. 라온은 손목을 내밀다가 아직 장갑이 젖었다는 것을 깨닫고 벗었다. 차가운 공기가 맨손에 닿았다. 오늘 늦었던 손이었다. 그 손을 어디에 놓을지는 다음 연습 전에 다시 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