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음악 고딕 미스터리 4화

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두 개의 매트릭스 번호

최노을의 핀셋 끝이 라벨 아래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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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노을의 핀셋 끝이 라벨 아래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잠깐.”

이솔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노을이 손을 멈췄다. 끝은 종이에 닿지 않았다. 현미경 화면에는 풀의 누런 가장자리와 손으로 적은 7-B가 커다랗게 떠 있었다. 그 아래, 어제 사진에서 끝까지만 보였던 기계 각인은 아직 어두웠다.

“들어 올린다는 뜻이 아니에요. 들뜬 데가 어느 정도인지 보려고.”

노을이 말했다. 이솔은 그 설명을 알았다. 들뜬 종이 밑의 글자를 한 번 보면 오늘 할 질문 절반은 사라질 수 있었다. 들추는 것과 떼는 것 사이의 거리는 손끝에서는 아주 짧았다.

“지금 각도로 먼저 찍어요.”

노을은 핀셋을 받침에 놓았다. 금속이 작은 소리를 냈다. 태오가 문 앞에서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감정서 복사본은 어제와 같았지만 오른쪽 위에 접수 예정 시간이 추가돼 있었다.

원반은 돌지 않았다. 실내 온도와 습도를 확인한 뒤 지지대에 둔 그대로였다. 재생 횟수는 하나, 캡처는 마흔일곱 초. 이솔은 그 수를 적은 작업지를 화면 옆으로 옮겼다. 어제의 회전이 남긴 것을 읽는 날이지 새로운 소리를 받는 날은 아니었다.

카메라를 낮추자 노을의 머리카락이 조명 앞을 가렸다. 노을은 묶어 올리고 다시 앉았다. 이솔은 손으로 빛을 옮기지 않고 고정대를 풀었다. 원반 표면을 가로지르는 낮은 빛이 손글씨의 가장자리에서 멈췄다가 얕은 홈을 따라 들어갔다.

HBC-6A.

태오가 읽은 뒤 입을 다물었다. 노을은 확대 배율을 바꿨다. 숫자 6의 아래가 닫혀 있었다. 다른 숫자라 우길 만한 번짐이 아니었다. 기계가 일정하게 눌러 넣은 문자와 펜촉이 지나간 굵기가 한 화면 안에서 달랐다.

이솔은 화면을 저장하고 조명을 반대쪽으로 옮겼다. 방금 보인 문자는 빛을 바꿔도 사라지지 않았다. 손글씨 7-B의 끝은 더 얕은 긁힘 위에 있었다. 노을이 의자에서 일어나 눈높이를 맞췄다.

“여섯 번째 곡의 프레스 계열이죠?”

태오가 물었다. 이솔은 번호 체계표를 펼쳤다. 앞서 확보한 묶음의 표기와 HBC의 접두, 면을 나누는 A를 하나씩 짚었다. 손글씨 7-B를 가리지 않은 채 표 옆에 두었다.

“기계 각인은 그 계열이에요. 이 손글씨는 나중에 더했고요.”

“그럼 일곱 번째 유일본이라는 설명은 틀렸군요.”

태오가 감정서의 문장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독립 제작’과 ‘유일’은 붙어 있었다. 이솔은 그 손가락 옆에 새로운 사진을 놓았다.

“그 문장을 지금 그대로 믿을 수 없어요. 어떤 내용이 들어갔는지, 두 번호가 어떻게 묶였는지는 더 봐야 하고.”

태오는 누른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어제는 출처가 없는 큰 금액 때문에 망설였다. 오늘은 그 금액 밑에 적힌 물건의 이름부터 흔들렸다. 그는 보낼 의견서의 제목을 쓰다가 펜을 세웠다. 너무 짧게 쓰면 상자를 다른 것으로 바꿔 놓은 혐의처럼 읽힐 것이고, 길게 쓰면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말처럼 보일 터였다.

노을이 한쪽 조명을 껐다. 라벨의 모서리가 더 잘 보였다. 풀과 종이는 떨어지려는 곳이 있고 단단하게 붙은 곳이 있었다. 오래된 물건은 한쪽만 늙지 않았다.

“여길 떼면 손글씨가 아래 번호를 얼마나 덮는지 분명해져요.”

이솔은 라벨을 보았다. 종이를 떼고 다시 붙일 때는 오늘의 접착제가 들어간다. 들어 올린 부분이 돌아가더라도 눌려 있던 자리가 원래와 같을 수는 없다. 그 작은 차이가 다음 사람에게는 오래전 손길로 보일 수도 있었다.

“오늘은 안 뗄게요.”

“오늘 안 하면 나중엔 더 굳을 수도 있어요.”

노을의 말은 빈 반대가 아니었다. 이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은 망가뜨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는지도 보존의 문제였다.

“그 판단에 쓸 사진을 먼저 만들어요. 이 한 장에 시간을 전부 걸고 싶진 않아요.”

노을은 잠깐 라벨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핀셋 받침을 자기 쪽에서 치웠다. 이솔은 그제야 어깨를 내렸다. 누군가를 이겼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닫으면 그 빈칸을 다른 일로 메워야 했다.

노을은 사광 촬영의 각도를 적었다. 자외선은 접착층의 반응만 볼 수 있게 준비했다. 이솔은 뒷면 지지 상태를 다시 확인했고 태오는 촬영 전후 사진을 한 목록으로 묶었다. 누구도 새로 나온 번호 때문에 오래된 번호를 지우지 않았다.

자외선 아래에서 라벨의 종이와 가장자리 접착층이 다르게 어두워졌다. 손으로 더한 글씨는 기계 각인을 대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반응만으로 어느 해에 누가 붙였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노을은 장비를 끄고 잠깐 눈을 감았다. 빛을 오래 보고 난 눈에 잔상이 남았다.

태오의 전화가 울렸다. 담당자가 오늘 통지할 사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태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려다가 이솔 쪽을 보았다.

“물건을 잘못 받았다고 써도 됩니까?”

“우리가 잘못 받은 건지, 목록이 나중에 붙은 건지부터 달라요.”

태오는 통화하는 사람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돌아와 번호가 나온 사진과 감정서를 나란히 보았다. 그는 첫 문장의 ‘상이한 물품’을 지우고 ‘실물 식별표기와 제출 설명의 불일치’라고 적었다. 다음 줄은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남았는지였다.

“이 정도면 늦었다고 들을 수 있겠네요.”

“지금 알리면서 더 확인한다고 하면 돼요.”

“그러면 양쪽에서 듣죠. 왜 벌써 알렸냐고, 왜 이제야 알리냐고.”

노을이 사진 파일을 넘기며 웃음 없이 말했다.

“한쪽은 저한테 넘겨요. 오늘 떼지 않기로 한 건 제가 동의했으니까.”

태오는 조금 웃었다. 통화를 다시 열고 두 번호가 같은 면에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물건이 어디서 바뀌었는지와 사람의 행위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전화 속 목소리는 원반을 한 번 더 들어 보면 안 되냐고 물었다.

“오늘은 번호를 비교합니다.”

태오가 답했다. 원반 옆에 놓인 마흔일곱 초의 작업지가 그 말의 길이를 정해 줬다. 궁금한 일이 있다고 바늘을 다시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솔은 같은 묶음의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원반을 비교 자료로 요청했다. 혜주가 전화 너머에서 다른 상자의 인계 준비 시간을 확인했다. 목록에는 둘 다 일반 곡으로 되어 있었다. 오늘 문제가 되는 번호를 붙여 달라거나 의심되는 자리를 닦아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기하는 동안 노을은 촬영 장비를 정리하지 않았다. 동일한 각도를 맞출 수 있도록 고정대의 위치를 그대로 두었다. 대신 얇은 종이를 덮어 빛을 가렸다. 태오는 종이 아래 원반을 보고 물었다.

“아직도 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솔은 질문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음악이 안 들렸죠.”

“감정서에는 빈곡이라고 적혀 있으니까요.”

이솔은 어제 캡처한 마찰과 낮은 회전음을 떠올렸다. 그 소리에 누구의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종이에 빈칸이 있고, 물건에는 홈이 있어요. 오늘은 그 둘을 같은 말로 안 부르려고요.”

태오는 감정서의 ‘빈곡’에 선을 긋지 않았다. 제출된 설명 자체도 남아 있어야 했다. 대신 별도 의견에 따옴표를 붙였다. 노을은 그 손을 보다가 자기 핀셋 끝을 닦아 보관통에 넣었다. 쓰지 않은 도구도 오늘 어떻게 쓰지 않았는지 남길 자리가 있었다.

비교 상자가 도착하자 세 사람이 다시 일어났다. 인계표를 대조하는 동안 태오가 덮개를 붙들었다. 이솔과 노을이 받침째 원반을 옮겼다. 여섯 번째 원반의 라벨에는 목록과 같은 숫자가 있었다. 런아웃 각인도 여섯 번째 계열이었다. 이솔은 먼저 멀리서 한 장 찍고 가까운 사진을 받았다.

첫 사진에는 문자보다 덮개 모서리의 반사가 더 환하게 나왔다. 태오가 밝기를 낮춰 보자고 했다. 노을은 원본 화면을 닫지 않고 조명의 위치를 바꿨다. 숫자를 찾겠다는 마음이 사진의 빛까지 편하게 골라 버리면, 나중에 같은 물건을 보는 사람이 그 자리를 다시 찾지 못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게 더 안 보이네요.”

태오가 말했다. 이솔은 그 사진도 저장했다. 노을은 화면을 한 번 더 돌려 놓았다. 빛이 다른 쪽에서 들어가자 태오가 찾지 못했던 홈의 끝이 나타났다. 그는 확대 버튼에서 손을 뗐다. 사람의 눈도 기다리면 같은 물건에서 다른 일을 했다. 이미 본 것을 설명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다시 보이게 만드는 데 시간이 더 들었다. 태오는 인계표 아래 남은 공간에 촬영이 계속된다고 적고, 도착한 상자를 가져온 담당자에게 돌아갈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여기.”

노을이 손가락을 화면 가까이 대었다. 원반에 대지는 않았다. A로 읽히는 표시 곁에 희미한 선이 있었다. 태오는 아까 손글씨 7-B를 너무 오래 보고 있어 자기도 B만 찾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솔은 다섯 번째 원반 사진까지 함께 띄웠다. 반복되는 마모가 어느 방향인지 먼저 봤다. 노을은 빛을 두 번 바꾸고 같은 자리를 촬영했다. 지워진 선은 마모 전체의 방향과 달랐다. B였던 자리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태오는 접힌 감정서를 펴 놓았다. 일곱 번째가 혼자 있었다는 문장 옆에 여섯 번째의 사진이 들어왔다. 아직 연주자도, 작업자도, 두 원반의 내용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질문의 모양은 달라졌다. 왜 빈 곡에 값을 붙였느냐보다 먼저, 언제부터 두 물건을 따로 불렀느냐고 물어야 했다.

노을은 이솔에게 사진을 확대할지 물었다. 이솔은 마지막으로 찍은 상태를 저장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두 원반이 한때 한 쌍이었을 가능성이 화면 가운데 놓였다.

태오가 새 의견의 끝에 비교 대기 중이던 항목을 체크했다. 이솔은 덮개를 내렸다. 다음에 들을 것은 원반의 새로운 한 바퀴가 아니라, 이미 받아 놓은 왼쪽 채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