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주문하지 않은 복주머니
복달이 등불을 낮추자 포장지의 붉은 도장이 길어졌다. 남해온은 상자를 돌상 위에 놓으려다 멈췄다. 돌상은 마당 쪽에 더 많이 들어가 있었다. 조금 전 허락받은 자리는 문턱에 걸친 부분뿐이었다.
복달이 등불을 낮추자 포장지의 붉은 도장이 길어졌다. 남해온은 상자를 돌상 위에 놓으려다 멈췄다. 돌상은 마당 쪽에 더 많이 들어가 있었다. 조금 전 허락받은 자리는 문턱에 걸친 부분뿐이었다.
“여기까지입니까?”
복달이 빗자루 끝으로 돌상의 바깥 모서리를 짚었다. “저 선을 넘겨 놓지 마시오.”
콩쇠는 등에 맨 끈을 천천히 풀었다. 상자가 내려오며 그의 작은 몸이 휘청했다. 해온은 상자 밑을 받쳤지만 자기 쪽으로 끌어안지는 않았다. 배달될 물건이라고 불렀다가 돌려보낼 물건이라고 부르는 사이에도 열기는 더 세졌다.
뚜껑은 뜯지 않았다. 세 사람은 등불만 옮겼다. 복달의 흰 수염이 빛을 가리자 콩쇠가 수염을 좀 치워 달라고 했다. 복달은 빗자루로 콩쇠의 뿔을 툭 쳤다.
“내 수염은 내 마당에서 서른 해 먼저 자랐어.”
“제가 먼저 잘랐어야 했군요.”
“뭘?”
“시간을요. 시간을 줄였어야 했다고요.”
해온은 두 사람 사이로 휴대전화 손전등을 낮게 밀었다. 빛이 도장 아래에 닿자 흰 매듭의 남은 선이 잠깐 떠올랐다. 정면에서 보이지 않던 굽은 획이었다. 종이를 움직이지 않고도 옆빛에서는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영수증 뒷면에 도장 모양을 옮겼다. 조금 전 비워 둔 부분과 실제 보인 부분을 따로 그었다. 그때 상자가 덜컹 움직였다. 돌상 위에서 아주 조금 흔들렸을 뿐인데, 마당 밖 먼 골목에서 사람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콩쇠가 고개를 돌렸다. “누가 짐 놓쳤나.”
다시 덜컹.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는 소리, 이를 악물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해온은 상자를 눌러 움직임을 멈췄다. 따뜻하던 포장이 이제 팔을 데웠다.
복달은 소리가 난 골목보다 상자를 보았다.
“복 방울이 아니라고 했소.”
“상자 때문에 누가 넘어진 겁니까?” 해온이 물었다.
“지금 어디의 누구인지는 모르지. 하지만 넘어질 때 귀 안에서 울리는 걸 이 물건이 담고 있소.”
콩쇠가 손을 빼자 상자는 돌상의 안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해온이 바로 바깥 모서리로 돌려 놓았다. 복달의 빗자루가 문턱을 두드렸다. 장식처럼 보였던 재의 해 표식이 바람도 없는데 흐트러졌다.
“나는 이걸 받지 않겠소.”
그 말이 나오자 송장 한쪽이 붉어졌다. 콩쇠는 자기 운행표를 붙잡았다. 해온은 문턱을 내려다보다가 복달의 얼굴을 봤다.
“복을 주문한 적 없습니다.” 복달이 말했다. “남의 넘어짐이 든 주머니라면 제 문 안으로 들이지 마시오.”
콩쇠가 재빨리 상자를 잡았다. “잠깐만요, 어른. 안 들이고 여기서 확인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름과 문은 맞으니 수취 도장부터—”
“받지 않겠다잖아요.”
해온은 콩쇠의 손을 도장에서 떼었다. 작은 손이 생각보다 뜨거웠다. 콩쇠는 그를 보고도 손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
“거부로 돌리면 길이 길어져. 편의점에 돌아가야 한다며.”
“그럼 복달 어른한테 위험한 물건을 주고 저는 돌아가요?”
“여기 돌상에만 두자고. 마당 안쪽까지는 안 갔잖아.”
복달이 둘을 바라봤다. 등불 아래 그의 눈이 작아졌다. 해온은 상자와 그 눈 사이에 서 있었다. 주문한 빈 항아리를 기다리던 사람에게, 엉뚱한 남의 넘어짐을 맡기면 자기 이름의 계약만 덜 무서워질까. 포스기 영수증에 서명했을 때도 그는 물건을 잠시 보관한다고 생각했다.
“놓고 떠나는 게 받는다는 뜻이 될 수 있어요.”
콩쇠는 남은 시간을 내밀었다. 붉은 선이 또 짧아졌다.
“난 오늘 배차를 끝내야 해.”
“저도 제 근무를 끝내야 합니다.”
둘의 말을 듣던 복달이 빗자루를 내려놓았다. “그럼 둘 다 끝내러 가시오. 이것만 다시 가지고.”
해온은 쓴웃음을 삼켰다. 콩쇠와 자기 사이에는 끝낼 일에 대한 다툼이 있었지만, 복달에게는 시작한 적 없는 일이었다. 해온은 송장을 펼쳐 바깥쪽 빈칸을 찾았다. 완료 서명란 옆에는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쓰는 가느다란 줄이 있었다. 처음 보관 서명을 할 때는 그 줄이 보이지 않았다.
“수취거부를 여기 쓰면 됩니까?”
콩쇠는 입을 다문 채 줄을 봤다. 복달이 등불을 옮겼다. 빈칸 밑에 조그만 글씨가 드러났다. 진짜 수취인의 이름과 거부 의사. 해온이 대신 쓰라는 말은 없었다.
“콩쇠, 거부는 미배송으로 잡혀요?”
“그냥 놓고 가면.”
“그냥 안 놓고 가면요?”
콩쇠는 운행표를 뒤집어 반송 항목을 찾았다. 그가 아는 글씨인데도 오래 읽었다. 반송은 배차원에게 끝난 일이 아니었다. 돌아갈 길을 다시 찾아야 했다. 그래도 수취인에게 불운을 붙여 완료할 필요는 없었다.
“본인 이름하고 거부 기록이 있으면 발송인에게 돌릴 수 있어.”
“그럼 그걸 합니다.”
해온은 복달에게 송장을 내밀었다. “거부도 정식 배송결과입니다. 이름과 뜻을 남기면 불운이 당신에게 붙지 않게 반송하겠습니다.”
복달은 선뜻 붓을 들지 않았다. 자기 이름이 이미 소포 위에 있었다. 또 적으면 이름을 한 번 더 주는 것 아닌지 물었다. 해온은 거부 칸과 수취 완료 칸을 손가락으로 나눠 보였다. 이미 끝내 버린 자신의 서명을 생각하면 복달에게 빨리 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완료 칸은 안 씁니다. 어떤 물건을 거부하는지 옆에 같이 남겨요. 이 소포 말고 다음 주문까지 거절하는 뜻도 아니고요.”
복달은 마당으로 돌아가 자기 붓과 장부를 가져왔다. 빈 옹기를 주문한 스무 날 전의 거래가 펴져 있었다. 그는 이번 송장 옆에 놓고 품목을 다시 읽었다. 묵은 복 한 주머니. 빈 옹기와 글자 하나 겹치지 않았다.
“손주 시험 복은 내가 따로 마련할 거요.”
복달이 처음 주문한 까닭을 말하자 해온은 잠깐 아버지 목소리를 들었던 거울문을 떠올렸다. 이 골목의 가짜들은 사람이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전 소리든 죽은 사람 목소리든, 손주의 좋은 운이든.
복달이 붓을 찍었다. 송장에는 그의 본명과 거부 의사가 직접 남았다. 해온은 붓끝을 따라 쓰지 않았다. 콩쇠도 대신 도장을 찍지 않았다. 마지막 획이 마르자 상자에서 낮고 긴 신음이 흘렀다. 마당 처마의 호리병이 흔들리다 멎었다.
콩쇠가 자기 가방에서 반송봉투를 꺼냈다. 처음에는 상자보다 작아 보였는데, 입구를 벌리자 안쪽 그림자가 넓어졌다. 해온이 신기해하며 손을 넣으려 하자 콩쇠가 손등을 쳤다.
“물건 봉투야. 사람 손 시험하지 마.”
“교육은 갑자기 좋아졌네요.”
“시간 없어.”
“그 말은 안 좋아졌고.”
콩쇠는 봉투를 돌상 아래에 펼쳤다. 해온이 상자 밑을 잡아 바깥쪽으로 당기고, 콩쇠가 반대쪽을 들어 올렸다. 복달은 안쪽에서 상자를 받지 않았다. 다만 등불을 밝게 해 둘이 손을 놓을 자리를 보게 했다. 입구의 검은 그림자가 상자 모서리를 삼킬 때 먼 신음이 다시 났다. 해온은 서두르다가 손을 뺄 뻔했지만, 상자가 떨어지기 전에 더 단단히 받쳤다.
포장지는 그대로였다. 그 위를 반송봉투가 덮었다. 콩쇠가 봉투의 첫 봉인선을 맞추고 해온이 겉의 두 번째 띠를 돌렸다. 송장의 거부 칸이 가려지지 않게 붙였다. 열기는 손끝에서 차츰 멀어졌다. 안에서 울리던 방울도 봉투 바깥에서는 작아졌다.
“이제 어른 문 안으로는 안 갑니다.”
해온이 말하자 복달은 문턱의 재를 손으로 다시 모았다. 해 표식이 둥글어졌다. 콩쇠는 자기 운행표에 거부와 반송 예정이 나란히 뜨는 것을 봤다. 완료 표시를 기대한 자리는 다른 글씨로 차 있었다.
“당신 오늘 수당은요?” 해온이 물었다.
“반송까지 가 봐야 알지.”
“저한테 복합직이라고 했잖아요. 반송도 포함된 겁니까?”
“수당에 포함됐는지는 모르겠고 업무에는 포함됐어.”
복달이 낮게 웃었다. “어디나 귀신보다 장부가 독하구먼.”
장부를 펴서 거부한 소포의 도장 흔적을 남길 때, 등불 아래에서 번진 글자의 끝이 더 보였다. 백결. 복달은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짚었다. 해온은 첫 송장에서 들어온 발송인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글자만 보고 그 자의 진짜 이름까지 얻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복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내 거래에는 이 흔적을 남겨 두겠소.”
그는 빈 옹기 주문 아래 새 줄을 만들었다. 백결의 흔적이 있는 주문하지 않은 소포, 본인 거부, 반송. 해온은 같은 내용을 사람길 영수증 뒤에도 옮겼다. 누군가 복달의 장부까지 가져갈 수는 있어도 자기 주머니의 종이와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않도록 접었다.
콩쇠는 반송주소를 펼쳐 보다가 갑자기 봉투를 들어 올렸다. 글자 끝이 희어지고 있었다. 해가 멀리서 떠오르는지 마당 바깥 등이 조금씩 옅어졌다. 주소는 밝아질수록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워지는 것이었다.
“한 시간.” 콩쇠가 말했다. “지금 출발해야 해.”
해온은 자동으로 상자를 콩쇠 등에 얹으려다가 높이를 봤다. 봉투까지 씌운 짐은 더 넓어졌다. 그는 아래를 받쳐 끈이 콩쇠의 목 쪽으로 올라가지 않게 했다. 콩쇠가 당겨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이번에는 그의 손을 막지 않았다.
복달은 문을 완전히 닫기 전 둘의 그림자가 바깥으로 빠졌는지 살폈다. 해온의 그림자 끝이 문턱에 남자 등불을 옆으로 기울여 밀어냈다.
“다음에는 빈 항아리나 가져오시오.”
“다음에 올 때는 주문부터 확인합니다.”
“또 따지는 배달원이 오겠구먼.”
“받기 싫으면 안 받으셔도 됩니다.”
복달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혔다. 세 거울문이 있었던 마당은 이제 검은 기와 담 하나뿐이었다. 해온은 반송주소의 마지막 밝은 획을 봤다. 편의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콩쇠가 먼저 골목으로 걸었다. 해온은 짐의 옆을 받치고 보폭을 맞췄다. 출발할 때는 완료율을 재촉하던 도깨비가, 지금은 봉인띠가 벽에 스치지 않게 한 걸음씩 틀어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