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39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가장 오래된 빈칸

강만석은 법원에 빈 달력을 가져왔다. 집에서 찾은 몇 해 전 달력이었다. 약속과 생일이 적힌 장은 뜯어 내고 월별 날짜만 남겼다. 며느리가 그걸 어디에 쓰냐고 물었을 때 그는 기억을 날짜에 놓아 보려 한다고 답했다. 막상 펴 보니 같은 숫자가 열두 번 반복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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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석은 법원에 빈 달력을 가져왔다. 집에서 찾은 몇 해 전 달력이었다. 약속과 생일이 적힌 장은 뜯어 내고 월별 날짜만 남겼다. 며느리가 그걸 어디에 쓰냐고 물었을 때 그는 기억을 날짜에 놓아 보려 한다고 답했다. 막상 펴 보니 같은 숫자가 열두 번 반복될 뿐이었다.

어느 날 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달력은 알지 못했다.

서가람은 복도 벤치에서 만석의 달력을 받아 보았다. 모서리에 생선 국물이 튄 자국이 있었다. 만석은 부끄러운 듯 그쪽을 접었다. 가람은 펴도 된다고 했다. 재판부에 그대로 내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기억을 묻기 전에, 사람이 왜 그 종이를 오래 보관했는지 듣고 싶었다.

“조개가 전에 없이 죽었던 봄이 이 해였어요.”

“기록이 남아 있습니까?”

“사진은 없고, 내가 이 달력을 쓸 때였다는 건 알아요.”

가람은 달력 빈칸에 날짜를 대신 적지 않았다. 만석도 펜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날짜를 찍어 두면 나중에 정말 그날이었다고 믿게 될까 봐 일부러 빈 채로 가져왔다고 했다. 가람은 그 이야기를 듣고 달력보다 만석을 보았다. 정확히 모른다는 말을 하려고 아침 버스를 탄 사람이었다.

법정에 들어가니 양측 전문가 앞에 같은 관편 사진이 놓여 있었다. 오늘 다룰 것은 새로 찾은 관이 아니라 그 관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붙일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회사는 최근 토양공사 때 손상됐을 가능성을 다시 제시했다. 가람은 공사 위치와 관의 상태를 대조하는 자료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최다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앞선 분석에서 말한 가장 짧은 부식 추정 범위를 다시 읽었다. 십팔 개월이라는 말이 나오자 만석의 뒤에서 의자가 움직였다. 어민 한 사람이 작은 소리로 그만큼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주원 재판장이 물었다. “그 기간을 누출의 최소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현재 자료로는 그렇게 바꿀 수 없습니다.”

만석은 앞을 보았다. 다온이 몸을 살짝 숙여 사진의 다른 부분을 짚었다. 오래된 부식과 구멍의 형성, 그 뒤 실제 물의 이동은 같은 시계가 아니었다. 회사 전문가 상호도 그 구분에는 동의했다. 두 사람은 부식률 가정의 차이를 설명했고, 어느 가정에서 범위가 좁아지고 넓어지는지 따로 표시했다.

회사 대리인이 그 말을 받아 최근 손해만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람은 곧장 일어났다. 오래된 누출의 시작을 정확히 모르는 것과 최근 한 달만 있었다고 확인한 것은 다르다고 했다. 법정 앞의 화면에는 시간이 하나가 아니라 세 줄로 나타났다. 설비 상태를 추정한 범위, 날짜가 확인되는 운전자료, 피해를 보여 주는 자료였다.

만석의 달력은 그 어느 줄에도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

심리가 잠시 쉬는 동안 뒤에 앉았던 어민이 다온을 붙잡았다. 며칠 전에는 십팔 개월이라더니 왜 이제 와서 빼느냐고 했다. 다온은 숫자를 바꾸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어민은 더 화가 났다. 같은 숫자인데 돈은 줄어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석이 둘 사이에 손을 넣었다. 다온을 뒤로 감추려는 손짓은 아니었다.

“우리가 듣고 싶은 뒤쪽 말을 붙인 거야.”

“형님도 그만큼 샌 줄 알았잖아요.”

“그래. 나도.”

그 말을 하고 만석은 달력을 들었다. 자신도 언제 조개가 죽었는지 정확히 적을 수 없다고 했다.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날짜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어민은 빈칸을 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화를 거둘 자리를 바로 찾지는 못한 듯했다. 다온도 지금 당장 이해해 달라고 더 붙잡지 않았다.

휴게실에서 정미가 만석에게 작은 떡 하나를 건넸다. 딸이 아침에 두 개 싸 주었다고 했다. 만석은 네 몫은 먹었느냐고 물었다. 정미는 그건 이미 버스에서 먹었다고 답했다. 그제야 만석이 떡을 받았다. 종이컵 물을 마시며 씹는데, 단맛이 입 안에 오래 남았다. 식사를 거르고 나왔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가람에게 오래된 위판 기록을 맡은 직원의 전화가 왔다. 해당 봄의 종이 자료 일부가 지역 사무소 창고에 남아 있다는 소식이었다. 가람은 오늘 심리가 끝나면 사본 확인을 하겠다고 했다. 만석이 함께 가겠다고 하자, 가람은 자신이 가는 동안 마을에서 비교할 다른 자료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한 사람 기억만으로 맞춘 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만석은 재문에게 전화했다. “그 봄에 조개 못 팔았던 날, 장부 있나?”

재문은 첫마디부터 왜 이제 찾느냐고 했다. 창고를 세 번 치우면서 버렸을 수도 있다고 했다. 만석은 버렸으면 버렸다고 말해 달라고 했다. 없는 것을 찾느라 다른 일을 모두 놓치지는 말자고 했다. 재문은 그 말이 더 못마땅한지 전화를 짧게 끊었다.

오후 심리에서 회사는 여러 지역에서 폐사가 있었던 해의 자료를 냈다. 수온과 병원체, 다른 유입원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만석은 그 자료를 처음에는 공격처럼 들었다. 다온은 비교 지점을 보더니 일부 자료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지역에서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동끝밭의 피해도 같은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주원은 어느 쪽의 긴 시간표도 그대로 채택하지 않았다. 날짜가 있는 개별 자료를 대조하고, 인과관계가 다투어지는 범위를 따로 정리해 달라고 했다. 생계의 임시 지원에 쓰는 최근 손실자료까지 오래된 최초 누출일의 확정에 묶지는 말라고도 덧붙였다. 오늘 끝나지 않은 것을 모두 같은 기다림으로 묶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가람은 준비해 온 조업 중단 뒤의 생활비 표를 꺼냈다. 회사 대리인이 과거 손해기간 심리와 다른 자료라고 하자, 가람은 맞다고 답했다. 그래서 따로 봐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만석은 그 짧은 대답이 아침에 받은 어떤 긴 설명보다 마음에 남았다.

심리가 끝난 뒤 가람은 지역 사무소로, 만석과 정미는 마을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만석은 달력을 무릎에 올렸다. 정미가 그해 자기 딸이 아직 태어나기 전이라고 했다. 만석은 갑자기 바다에서 돌아와 회관 앞에서 떡을 나눠 먹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이 누구의 생일이었는지 물었다. 정미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둘은 조금 웃었다. 오늘 하루 종일 모른다는 말이 오갔다. 그래도 모른다고 말할 사람이 옆에 있으니 혼자 달력을 노려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재문은 부두 창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든 것은 장부가 아니라 오래된 고무장갑 상자였다. 안에는 영수증과 정비 명세서, 낚싯바늘 봉지가 섞여 있었다. 그는 상자를 내려놓으며 “네가 찾지 말라니까 더 궁금하더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깨끗한 비닐을 깔고 종이를 펼쳤다. 정미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보이는 면을 바람 반대쪽으로 눕혔다. 재문의 가족에게 온 병원 영수증은 그가 바로 빼냈다. 만석은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바다의 시간을 찾으러 왔다고 재문의 다른 시간까지 열어 볼 권리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얼음 구매 영수증 사이에 반품 확인서가 나왔다. 날짜가 있었다. 조개 일부를 받지 못했다는 거래처 서명이 있었고, 이유 칸에는 패각 상태 불량이라고 적혀 있었다. 만석의 얼굴이 밝아졌다가 곧 멈췄다. 상태가 나빴다는 종이가 원인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재문이 먼저 말했다. “그때 저 관 때문이었다고 바로는 못 쓰겠지.”

“그래도 그날 못 판 건 남았네.”

“못 팔았다는 걸 이렇게 반가워할 줄은 몰랐다.”

재문은 종이를 잡은 손에 힘을 뺐다. 종이 끝이 오래 말라 휘어 있었다. 세 사람은 펴려고 세게 누르지 않고, 상태가 보이게 사진을 찍은 뒤 보관 방법을 가람에게 물었다. 영수증 한 장을 발견한 기쁨은 돈을 받은 기쁨과 달랐다. 그래도 기억 하나가 달력의 빈칸 밖으로 나왔다는 안도는 있었다.

가람에게서는 늦게 연락이 왔다. 위판 기록에 만석이 기억한 봄의 출하 감소가 보였다고 했다. 주변 어장의 비슷한 변화도 함께 있어 원인 검토에는 비교가 더 필요했다. 만석은 알겠다고 했다. 재문의 반품 확인서를 전송할 범위와 원본을 가져갈 일정을 먼저 정했다.

그날 밤 만석은 집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전 언제 내려올 거냐고 몰아붙인 뒤 처음이었다. 아들은 야간 일을 나가기 전이라 길게 못 받는다고 했다. 만석은 오늘 오래된 영수증을 찾았다는 이야기 대신 일자리가 한 달 더 이어진 것은 괜찮으냐고 물었다.

“몸은 좀 피곤한데, 돈은 들어와요.”

“그럼 네 일정부터 지켜라.”

아들이 잠깐 말이 없었다. 만석이 곧 바다가 열린다고 약속하려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들이 기다리는 말을 억지로 만들어 내지 않았다. 대신 배는 자기가 봐 두겠다고 했다. 아들은 그제야 이번 달 말에는 하루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만석은 날짜가 정해지면 알려 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달력 옆에 반품 확인서의 날짜를 작은 쪽지로 붙였다. 직접 날짜 칸을 채우지는 않았다.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자료가 어떤 것인지 함께 적었다. 조개를 받지 않은 거래. 원인 미확인. 두 줄은 싸우지 않고 한 장에 들어갔다.

늦은 시각 세희에게서 가람을 거쳐 연락이 왔다. 위험평가 자료의 별도 보관함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문서 목록에는 밸브 점검 권고와 토양 확인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작성 시기는 보험 계약보다 앞서 있었다. 회사가 그 문서를 언제 받아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는 아직 확인 중이었다.

만석은 새 쪽지를 뜯었다가 멈췄다. 자기 달력에 또 다른 사람의 날짜까지 먼저 적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가람에게 문서를 보게 되면 알려 달라고 답했다. 서랍을 닫기 전 달력을 한 번 더 보았다. 낮까지는 텅 비어 있던 종이에 확인된 거래 한 건이 붙어 있었다.

하나를 찾았다고 바다가 전부 설명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음 날 누가 그 봄의 일을 물으면, 만석은 손가락으로 날짜를 지어 가리키지 않아도 됐다. 그는 불을 끄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쪽지를 눌렀다. 창문 틈바람에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