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마지막에 실린 봉투부터
열람실 바닥에 그린 선은 앞으로 향하는 배송로가 아니었다. 남해온은 가장 늦게 찍힌 접수표를 오른쪽 끝에 놓고, 그보다 앞선 표를 왼쪽으로 밀었다. 열한 장의 위조송장은 같은 발급번호 아래 있었지만 모두 같은 날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종이틀의 홈 자국도 한 방향으로만 겹치지 않았다.
열람실 바닥에 그린 선은 앞으로 향하는 배송로가 아니었다. 남해온은 가장 늦게 찍힌 접수표를 오른쪽 끝에 놓고, 그보다 앞선 표를 왼쪽으로 밀었다. 열한 장의 위조송장은 같은 발급번호 아래 있었지만 모두 같은 날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종이틀의 홈 자국도 한 방향으로만 겹치지 않았다.
“첫 봉투부터 찾으면 안 됩니까?” 콩쇠가 물었다.
“첫 이름이 제일 오래 묶였다는 뜻이잖아.” 해온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채원이 한 장을 세웠다. 가장 먼저 이름이 바뀐 봉투였다. 그 뒤에 발급된 봉투의 흰 실이 이 봉투의 매듭 위를 가로질러 붙었다. 지금 첫 번째 것을 당기면 나중 것의 주소가 함께 찢길 수 있었다. 종이틀을 살펴본 담당자가 눌린 순서를 보여 줬지만, 그것만으로 어디에 실제 봉투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얹힌 것부터 분리해 보자는 계획은 세울 수 있어.” 채원이 말했다. “그 순서가 이름을 복원하는 방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해온은 노트의 제목을 ‘역순 회수 계획’으로 쓰려다 ‘회수 전 확인 순서’로 고쳤다. 아직 한 봉투도 들고 있지 않았다. 원부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계획이 성과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피해자들에게 곧 이름을 돌려줄 수 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접수표의 주소는 이미 물건이 옮겨진 이동시장 점포였다. 백결이 그곳에서 봉투를 직접 판 증거는 없었다. 구매자는 자신의 소포라고 믿고 돈을 낸 사람일 수 있었다. 채원은 구매자에게 확인을 요청할 때 이름을 빌려 보상받았다는 혐의를 먼저 씌우지 말라고 했다.
“돈을 주고 산 사람에게 돌려달라고 하면 우린 뭘 줄 수 있죠?” 해온이 물었다.
“사유와 절차를 먼저 설명해야지. 아직 대신 줄 물건이나 손실보전 약속은 승인받지 못했어.”
콩쇠가 창밖을 봤다. 시장의 냄비 소리가 낮부터 들려왔다. “설명하는 동안 봉투가 또 팔리면?”
“거래 제한된 열한 표식은 막을 수 있어. 그 밖의 상품 전부를 같은 이유로 멈출 수는 없고.”
해온은 야시장에서 이름표를 내놓으려던 조끼 입은 요괴를 떠올렸다. 그에게 수리비 청구서는 전달됐고 분할 상담일도 잡혔다. 그래도 그가 이 시장에서 봉투를 샀다면, 해온이 그의 빚을 대신 갚을 수는 없었다. 되찾는 일이 누군가의 생활비와 부딪힐 때가 올 것이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김도윤이었다. 사람길 재심에 남은 한 건의 현장자료를 제출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채원은 방 안의 요괴 송장 쪽을 뒤집었다. 도윤이 동의한 것은 자기 사고의 제한된 자료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피해자 열한 명의 이름을 한꺼번에 볼 이유는 없었다.
“제 건 어제 담당자가 전화했어요.” 도윤이 종이봉투를 내려놓았다. “사흘 안에 본다더니, 둘째 날에 추가 질문이 왔습니다. 승인됐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고요.”
해온은 안도와 실망이 동시에 오는 게 싫었다. 네 건이 승인됐는데도 도윤 한 건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도윤이 그 일을 백결을 잡기 위한 이유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도윤은 휴업한 날짜를 증명하는 일 때문에 왔다.
“제가 그날 맡은 야간 건 중 두 건을 반납한 기록이 빠져 있었대요. 그걸 제 실수로 적어 놨더라고요.”
“누가 그렇게 적었는지 확인해야겠네요.”
“했어요. 담당자가 원본 배차표랑 제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따로 보겠대요.”
도윤은 해온이 건네 준 물을 마셨다. 손가락에 붙은 반창고가 새것이었다. 사고의 상처가 서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도윤이 웃으며 말했다.
“나 오늘은 미끼 하러 온 거 아니에요. 그건 알고 있죠?”
“알아요. 지난번에도 안 그랬고.”
“그런데 네 표정이 꼭 나 하나 통과해야 계획이 시작되는 사람 같아서.”
해온은 입술을 다물었다. 도윤의 자료가 사람 플랫폼 경로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자꾸 그의 사건을 자기 싸움의 한 칸으로 놓았다. 도윤에게는 그 한 칸이 치료비와 돌아갈 일자리였다.
“이번 건 결과 나오면 먼저 너한테만 말할게.” 도윤이 말했다. “공동대응에 보탤지는 그다음에 내가 정할게.”
“그래요. 기다릴게요.”
도윤이 떠난 뒤 채원은 열한 장 중 공개 대응을 택한 사람들의 표식만 따로 표시했다. 비공개로 접수한 이들의 물건을 찾더라도, 공지문에 본명을 쓰지 않을 것이다. 해온은 구매자 방문 순서를 배송로처럼 짰다가 다시 지웠다. 가까운 주소 순으로만 움직일 일이 아니었다. 동의 여부, 봉투의 이동 가능성, 그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콩쇠는 지급장부의 숫자를 보다가 한 칸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사람이 다친 날짜보다 ‘발급비’가 먼저 나간 줄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누군가 비용을 받았다면, 그 줄을 사고 보상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채원은 다른 쪽을 펼쳤다. 같은 표식으로 다음에는 이름을 확인한 비용, 그다음에는 중개 점포에 간 돈, 그 뒤에는 봉투 판매액, 맨 마지막에는 부조함에서 빠져나간 지급액이 있었다.
“다섯 번 움직였네요.” 해온이 말했다.
“돈이 다섯 번 움직였다는 거지, 사람이 다섯 명이라는 뜻은 아니야.”
채원은 표식마다 다른 색 종이를 대었다. 발급 준비와 이름 복사, 중개, 판매, 허위지급으로 보이는 칸이 이어졌다. 중간의 한 건은 입금과 지급 시각이 맞지 않았다. 콩쇠는 그 틈을 보고 백결이 직접 빼돌린 돈이라고 말했다가, 장부의 시계가 시장 개장시간으로 적힌 것을 깨달았다. 사람길 플랫폼 시각과 그대로 대조할 수 없었다.
“그러면 잡을 수 있는 건 뭡니까?” 콩쇠가 물었다.
“확정된 거래 제한을 위반한 부분.” 채원이 말했다. “나머지는 누가 그 표식을 썼고 어디로 돈이 갔는지 확인해야 해.”
해온은 종이에 화살표를 그렸다. 맨 앞은 사람이 실제로 다친 사고였다. 그 사고는 돈을 벌기 위한 재료가 아니었다. 뒤쪽 화살표가 다섯 갈래로 번지는 동안 다친 사람에게 갈 돈은 늘지 않았다. 이 도식이 또 피해자를 숫자로만 만들까 봐, 그는 도윤이 방금 내려놓은 물병을 화살표 옆에 두었다. 치료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여기 앉아 있었다는 자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채원은 종이를 사진 찍어 공유하지 않았다. 피해자 표식과 시장 상인 거래가 한 장에 섞여 있었다. 열람실 보관용으로 접어 넣고, 구매자에게 보여 줄 것은 자기 봉투의 거래 제한 사실뿐이라고 했다. 해온은 현장에서 모은 조각으로 큰 그림이 조금 보일수록, 각 사람에게 말할 때 더 적은 것만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려웠다.
첫 방문처는 국수집이었다. 가장 나중에 발급된 봉투의 점포표식이 그곳으로 이어졌다. 주인은 해온을 보자 그가 배달원이라는 사실부터 경계했다. 해온은 결정을 읽어 주되, 봉투를 당장 달라고 하지 않았다. 국수집 주인은 사흘 전 시장에서 산 종이봉투가 가게의 낡은 간판 이름을 하루만 빌려 준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날 가게 앞에서 자꾸 길을 잃던 손님이 멈췄다는 것이다.
“효과가 있었네요.” 해온이 말했다.
“그러니까 돌려달라면 영업에 문제가 생기잖아.”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봉투 겉표식이 다른 사람 이름의 거래 제한 범위에 들어 있어요. 안쪽은 아직 못 봤습니다.”
주인은 계약 종이를 찾아왔다. 종이에는 간판에 쓰는 별칭만 적혀 있었다. 해온은 그 문장을 보고 더 조심스러워졌다. 주인은 열한 피해자의 이름을 샀다는 줄 몰랐을 수 있었다. 주인의 오늘 매출과 피해자의 이름을 저울에 올릴 권리도 해온에게 없었다.
채원은 거래 제한 사실을 알린 뒤 현 상태 보관을 요청했다. 주인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내일 가게가 쉬는 동안 확인할 수 있다면 봉투를 열람대까지 가져오겠다고 했다. 해온은 가져오는 비용과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을 적었다. 보전이 가능한지 확인 전에는 ‘드리겠다’고 쓰지 않았다.
국수집 주인은 빈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이 가게 간판 이름은 내 아버지가 쓰던 겁니다. 누가 빼앗아도 남의 목숨 값으로 만든 적은 없어요. 그런데 봉투 하나 샀다고 그런 사람이 됩니까?”
해온은 곧장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사지 말았어야 할 걸 샀다는 사실까지 없애는 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알고 샀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돌아갈 이름도 있어요. 두 일은 따로 적을게요.”
“둘 다 적으면 장부가 두꺼워지겠지.”
“네. 오늘 당장 얇게 만들 수 없습니다.”
주인은 화를 내다 말고 손님용 수저통 뚜껑을 닫았다. 내일 봉투를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다시 했다. 해온은 그가 자기 말에 설득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봉투가 오늘 밤 다시 시장에 팔리지는 않을 것이다.
가게를 나서는데 국수 냄새가 났다. 점심을 건너뛴 콩쇠의 배에서 크게 소리가 났다. 주인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작은 그릇 두 개를 내왔다.
“이름 이야기할 때는 싫었는데, 굶은 얼굴을 보는 것도 싫어서.”
콩쇠는 받아도 되냐고 해온을 봤다. 해온은 주인에게 값을 냈다. 주인은 영수증 뒷면에 내일 방문 가능한 시간을 써 줬다. 서로를 적으로 확정하지 않은 보상은 따뜻한 국물과 약속시간뿐이었다.
밤이 되자 채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국수집 봉투의 거래가 멈춘 뒤에도 같은 표식이 다른 점포에서 한 번 더 찍혔다. 현재 봉투가 유일한 원본인지조차 아직 몰랐다. 해온은 노트 맨 오른쪽 칸에 새 물음표를 썼다. 마지막에 실린 봉투부터 살펴보려면, 무엇이 진짜 마지막인지부터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