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38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내려간 숫자와 빈 그릇

밸브 시험을 마친 뒤 나흘째, 정미가 작은 대야를 들고 부두로 왔다. 안에는 조개가 없었다. 어린 딸이 어장에 다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자기 몫을 담아 달라고 씻어 놓은 대야였다. 정미는 그것을 뒤집어 의자처럼 깔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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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 시험을 마친 뒤 나흘째, 정미가 작은 대야를 들고 부두로 왔다. 안에는 조개가 없었다. 어린 딸이 어장에 다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자기 몫을 담아 달라고 씻어 놓은 대야였다. 정미는 그것을 뒤집어 의자처럼 깔고 앉았다.

“오늘 수치 좋으면 나가도 되는 거예요?”

최다온이 시료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건 오늘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이 아니에요.”

정미는 그렇냐고만 했다. 화를 내면 다온이 답을 바꿔 줄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빈 대야를 가져온 사람으로 남는 것은 싫었다. 그녀는 대야를 다시 들고 부두 물가로 걸어갔다. 만석이 뒤따라가자 왜 자꾸 쫓아오냐고 물었다.

“뒤집어 앉으면 네 딸한테 혼날 것 같아서.”

정미는 처음으로 자기 엉덩이를 털었다. “흙 묻히지 말라고는 했어요.”

현장은 지난 시험 때와 달라져 있었다. 임시 격리는 그대로였지만 감시표가 새로 붙었고, 폐액 회수 차량이 정해진 구역에 들어와 있었다. 불확실한 밸브를 손잡이 표시만 믿고 사용하는 일은 중단된 상태였다. 일부 세척 작업은 대체 절차로 돌렸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과 교대시간 처리를 두고 회사와 노동자 대표가 계속 다투었다. 갯벌에는 아직 그런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다온이 가지고 온 것은 차단 전후의 물 시료 비교 결과였다. 관편을 채취하기 전부터 같은 조위 조건을 맞춰 모아 둔 자료가 있었고, 최근에는 임시 격리와 작업 변경 시각을 함께 적어 채취했다. 날짜만 다르고 모든 것이 같은 실험은 아니었다. 비와 바람, 바닷물의 드나듦이 사람의 일정에 맞춰 멈춰 주지 않았다.

마을회관 화면에서 선 하나가 내려갔다. 만석은 이름보다 모양을 먼저 알아봤다. 앞선 조사 때 높게 솟았던 안쪽 채취 지점의 값이 차단 뒤 낮아졌다. 비교 지점은 같은 크기로 떨어지지 않았다. 다온이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뒷자리에서 누군가 박수를 한 번 쳤다. 혼자 친 박수라서 소리가 더 컸다.

다온은 그 사람을 찾지 않았다. 화면 옆에 채취 조건을 함께 띄웠다.

“좋은 변화입니다. 다만 해산물을 먹거나 조업을 다시 해도 된다는 판정은 아닙니다.”

“좋은데 안 된다.” 재문이 중얼거렸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말이네.”

옆자리 정미가 대야를 무릎에 올렸다. “좋지도 않은 것보다 낫죠.”

그녀의 말에 누군가 작게 웃었다. 긴장이 조금 풀렸지만 만석은 웃지 못했다. 숫자가 내려갔다는 발표가 오늘 오후 회사 보도자료에 어떻게 적힐지 먼저 떠올랐다. 바다가 회복됐다는 제목이 붙으면 빈 대야를 내민 사람들은 또 무엇을 증명해야 할까.

가람은 발표가 끝난 뒤 회사에 보낼 확인 문구를 읽었다. 측정값의 변화, 아직 판단할 수 없는 범위, 다음 채취 일정이 들어 있었다. 어민 대표가 원하면 독자적인 의견도 붙일 수 있었다. 만석은 빈 대야 이야기를 쓰자고 했다가 정미의 얼굴을 보았다. 정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우리 딸이 기다리는 그릇이지 홍보 사진 아니에요.”

“그럼 안 쓰지.”

만석은 더 권하지 않았다. 좋은 취지라는 말이 남의 아이를 대신 허락해 주지는 않았다. 정미는 대야를 내려놓고 발표문 끝을 짚었다. ‘조업 재개와 식용 안전은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문장은 빼지 말라고 했다. 그 문장이 자기 가족을 실망시키더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오후에 가람은 공장 안의 비용 협의에 들어갔다. 회수 차량 하루 비용과 분석비, 작업자 추가 교대비가 한 표에 섞여 있었다. 회사는 주민 측이 요구한 조치이니 주민 부담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태곤은 의자를 당기는 소리를 냈다.

“설비를 우리 마음대로 세웠습니까?”

회사 담당자는 법적 부담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가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누가 마지막에 얼마를 부담할지 다투는 동안 오늘 밤 회수 차량이 빠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이미 나온 위험을 줄이는 조치와 최종 책임 정산을 같은 결론까지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며 배세희가 들어왔다. 오전의 대외 회신 회의가 길어져 늦었다고 했다. 그녀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오늘 밤 배차 확인표를 꺼냈다. 차량 업체는 저녁 여섯 시까지 비용 지급 주체를 확인하지 않으면 다음 날 배차를 확약할 수 없다고 했다.

벽시계는 네 시 사십 분이었다.

태곤이 만석을 보았다. 만석은 오늘 회의에 따라 들어왔지만 서명할 회사 돈은 없었다. 그는 마을회가 먼저 내고 나중에 받으면 안 되느냐고 말할 뻔했다. 아침에 정미가 들고 온 빈 대야가 떠올랐다. 누군가 급한 마음으로 마을 돈을 꺼내는 순간, 아직 밥값을 못 받은 은실에게 설명할 사람이 필요했다.

“마을 돈으로 메우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만석이 말했다. “돈이 없어서만은 아니에요. 낼 수 있는 사람만 더 내고 기다리라는 게 되니까.”

가람은 회사가 당장의 안전조치 비용을 집행하되 최종 부담에 대한 주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형태의 제안을 내놓았다. 오늘 회의에서 보험 담보까지 결정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 담당자는 자기 권한을 넘는다며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태곤이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세희가 전화기를 밀었다. “전화로 확인하고, 누구 답인지 적어 주세요. 어제도 보수 끝났다는 문장만 돌아다녔습니다.”

담당자의 표정이 굳었다. 세희는 말을 거두지 않았다. 다만 어제 자신이 자료를 확인했다는 범위 이상을 덧붙이지 않았다. 여섯 시를 앞두고 필요한 것은 상대가 당황한 얼굴이 아니라 배차를 지킬 결재였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회수 차량이 설 자리를 비우려고 옮긴 자재가 작업반 휴게실 출입구 앞에 쌓여 있었다. 야간조 직원이 비를 피하려다 문이 안 열려서 태곤에게 연락했다. 생산팀은 잠깐만 두는 거라고 답했지만, 잠깐이 이미 세 시간을 넘겼다.

태곤이 회의실을 나가려 하자 회사 담당자가 결재 기다리는 동안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고 했다. 태곤은 휴게실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람이 기다릴 자리도 없는데 돈 기다리러만 여기 있어야 합니까?”

만석이 일어났다. 자재를 직접 치우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작업 책임자를 찾아 막힌 출입구를 확인시키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공장 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배웠으므로 세희에게 안내자를 부탁했다. 태곤은 잠깐 망설이다 자리에 남았다. 오늘 자기 서명이 필요한 근무시간 항목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휴게실 앞의 직원들은 만석을 알아봤다. 시위 때 확성기를 들었던 어민 대표였다. 그중 한 명이 “여기까지 사진 찍으러 왔어요?”라고 물었다. 만석은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았다.

“문 열러 왔는데, 내가 옮기면 사고 나니까 담당자 기다립니다.”

직원은 대꾸하지 않았다. 만석은 비가 들이치는 처마 아래에서 함께 기다렸다. 팔짱을 낀 직원의 작업복 소매가 젖었다. 바다에서 쓰는 자기 비옷은 배에 있었다. 만석은 쓸모없는 준비를 해 온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재 이동 담당자가 도착해 통로를 확보하자 휴게실 문이 열렸다. 직원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만석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젖은 동료의 자리를 잡아 주는 일이었다. 만석은 그 순서를 기다렸다. 잠시 뒤 안에서 종이컵 하나가 나왔다. 커피였다.

“찍지는 마세요.” 직원이 말했다.

“나도 따뜻해서 마시지, 화해했다고 마시는 거 아닙니다.”

직원이 피식 웃었다. 만석은 뜨거운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입장은 그대로 달랐지만, 함께 비를 맞았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섯 시 사십칠 분, 회사의 당일 집행 승인이 왔다. 우선 확정된 것은 회수 차량과 필요한 분석비였다. 추가 교대비 일부는 근무표 대조 뒤 별도 처리하기로 남았다. 태곤은 남은 항목에 해결됐다는 표시를 하지 못하게 했다. 회사 담당자는 피곤한 얼굴로 빈칸을 다시 열었다. 비용 두 줄이 살아났다고 다른 한 줄이 사라져서는 안 됐다.

세희가 차량 업체에 승인 문서를 보내고 회신을 받았다. 내일 배차를 유지한다는 짧은 답이었다. 가람은 그 문장을 확인한 뒤에야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오늘 얻은 것은 바다의 안전 선언도, 누구의 최종 승소도 아니었다. 밤사이 조치를 끊지 않을 차 한 대였다.

부두로 돌아오니 정미가 대야를 씻고 있었다. 만석이 회수 차량이 계속 온다고 말하자 그녀는 잘됐다고 했다. 그는 아침보다 수치가 좋아졌다는 소식을 다시 전하지 않았다. 이미 정미가 들은 이야기였다. 같은 좋은 소식을 두 번 말한다고 대야가 채워지지는 않았다.

정미의 딸이 어둑해진 골목에서 달려왔다. 대야를 보자 아이의 발이 느려졌다. 정미는 아직 빈 그릇이라고 먼저 말했다. 아이는 알겠다고 하고 손잡이를 함께 잡았다. 둘이 들기에는 너무 가벼운 것이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렸다.

만석은 배로 돌아가 엔진 덮개를 만져 보았다. 하루도 켜지 않은 금속은 벌써 차가웠다. 휴대전화에는 다온이 보낸 다음 채취 일정이 와 있었다. 비가 이어지면 조건을 다시 맞춰야 한다는 말이 붙었다. 그는 화면을 덮고 계류줄을 살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해야 하는 일은 남았다.

그때 가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가 과거 손해 산정에서 최근 자료만 인정하자고 의견을 냈다는 소식이었다. 차단 뒤 낮아진 수치가 과거 피해까지 짧았다는 주장의 근거로 붙어 있었다. 만석은 손에 쥔 줄을 놓지 않은 채 들었다.

“오늘 막은 게 어제 안 샜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음 심리에서 시간표를 다시 봅니다.”

만석은 부두 끝의 두 모녀를 바라봤다. 대야가 아이 쪽으로 기울자 정미가 손높이를 낮췄다. 만석은 가람에게 자기도 가겠다고 했다. 내려간 숫자를 반가워한 마음과, 사라지지 않은 빈 그릇을 같은 자리에 가져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