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컬링 스포츠 성장물 38화

빙판 위 다섯 센티

새것이 밀어낸 다섯 센티

김단비는 새 고무 캡을 만지기 전에 가격부터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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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비는 새 고무 캡을 만지기 전에 가격부터 보았다.

여섯 개가 비닐봉지 안에서 서로 부딪쳤다. 택배비까지 적힌 영수증 아래로 임태규의 손가락이 내려갔다. 이번 달 남은 장비비는 거기서 끝이었다. 작업대 위에는 갈아야 할지 살펴볼 캡이 열두 개 놓여 있었다.

“대회용 네 자루부터 하면 두 개 남네요.”

단비가 말했다. 소라온은 대답하지 않고 공용 스틱의 캡을 옆으로 굴렸다. 원형이어야 할 가장자리 한쪽이 평평했다. 일요일에 떨어진 고무 조각을 그 옆에 놓으니 빠진 자리가 맞았다.

“이건 못 씁니다.”

“그건 알아요. 그래서 두 개 남는다고요.”

“이쪽도요.”

라온이 다음 스틱을 밀었다. 단비는 새 봉지를 내려놓았다. 남는 두 개로 공용 장비가 다 해결될 거라는 계산은 스틱 두 자루를 보는 데도 못 버텼다.

윤혜주가 늦지 않게 도착했다. 오늘도 저녁 근무 가기 전에 연습을 마쳐야 했다. 장비실 바닥의 스틱들을 보고 신발 바퀴에 묻은 물부터 닦았다.

“우리 이거 전시회 열어요?”

“자선경매요.” 단비가 말했다. “대회용 사면 공용이 섭섭하고, 공용 사면 제가 섭섭합니다.”

“그럼 가격을 매길 게 아니라 닳은 걸 봐야겠네.”

혜주는 자기 초록 열쇠로 구급상자 칸의 봉인을 확인했다. 그사이 단비는 주황 열쇠로 남은 스틱을 꺼냈다. 진수는 예전처럼 문 앞에서 모두의 장비를 받아 주지 않았다. 기록기를 충전대에서 뽑고 날짜를 맞추고 있었다.

수요일 집중훈련은 일곱 시에 시작이었다. 여섯 시 사십 분, 미란은 빙판에 놓을 스톤 여섯 개만 준비하게 했다. 캡을 바꾸느라 한 시간을 다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라온은 캡의 홈에 낀 먼지를 먼저 치웠다. 닳은 면과 먼지가 뭉쳐 눌린 면은 손끝에서 달랐다. 지난 기록이 있는 두 자루에는 마지막 교체 뒤 사용한 훈련 횟수도 붙였다. 여섯 번 쓴 것보다 네 번 쓴 것이 더 닳아 있었다. 횟수만으로 다음 교체일을 정할 수 없었다. 그는 눌린 깊이와 모양을 재고, 기록이 없는 장비는 추정 횟수를 적는 대신 오늘부터 세기로 했다. 태규는 규격과 공급업체의 점검 안내를 놓고 결합부를 따로 확인했다. 일요일 손잡이가 돌아간 스틱에는 이미 사용중지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고무만 새것으로 갈면 그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자루는 오늘 빙판 안 갑니다.” 태규가 말했다.

단비가 자루를 들어 보려다 멈췄다. “그러면 캡 하나 아꼈네요.”

“아낀 게 아니라 자루 수리가 먼저인 거죠.”

“농담도 점검표에 쓰시겠어요?”

태규가 웃었다. “불량 농담은 격리합니다.”

단비의 입꼬리가 조금 풀렸다. 라온은 장비 번호 뒤에 대회용인지 공용인지 쓰지 않은 채 상태를 적었다. 구분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자꾸 아끼는 스틱의 흠집만 작아 보이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때 문밖에서 낯선 사람이 안을 들여다봤다. 다음 시간 생활체육반의 새 회원이었다. 함께 온 지도자가 오늘은 손에 맞는 스틱을 고르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회원은 벽에 세운 공용 장비 가운데 손잡이가 가장 굵은 것을 가리켰다.

“지난주에 저걸 썼는데요. 오늘도 되죠?”

라온은 그 자루를 봤다. 방금 두 번째로 사용을 멈춘 것이었다.

“오늘은 그대로 못 씁니다. 다른 것을 먼저 맞춰 봐야 합니다.”

회원의 손이 무릎으로 내려갔다. “겨우 기억했는데. 어느 만큼 밀면 가는지.”

단비는 새 봉지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가 놓았다. 자신이 방금 하고 싶었던 말을 그 사람이 했다. 익숙한 장비를 잃는 건 대회 앞둔 선수에게만 큰 일이 아니었다.

지도자는 대체 장비를 찾아보겠다며 회원을 데리고 나갔다. 단비는 손잡이가 굵은 자루를 작업대 중앙에 놓았다.

“이건 오늘 쓰는 거네요.”

“매주 씁니다.” 라온이 답했다.

“알아요. 방금 알아들었어요.”

상태를 다 보고 나니 우선 교체할 여섯 개는 공용 셋, 대회용 셋이었다. 라온의 대회용 캡은 그 안에 없었다. 아직 변형과 결합 이상이 없었고 사용량도 다른 세 개보다 적었다.

단비가 물었다. “라온 씨 건 양보한 거예요?”

“내 걸 먼저 보면 그렇게 보이니까 번호로 봤죠.”

“좋은 사람인 척하다 경기 망치면 저 진짜 화냅니다.”

“나도 경기 망치기 싫습니다.”

라온은 자기 자루를 들어 결합부를 확인해 보였다. 나머지 장비는 다음 달이라는 말로 한데 밀지 않았다. 계속 쓸 수 있는 것에는 다음 검사 날짜를, 상태가 애매한 것에는 사용중지 표지를 붙였다. 단비가 맡은 칸의 사용 가능 자루는 어제보다 줄었다. 대신 어느 것을 꺼내면 안 되는지 처음으로 바로 보였다.

일곱 시, 여섯 개 스톤이 빙판에 놓였다.

단비는 새 캡을 단 자기 스틱으로 첫 드로를 보냈다. 돌이 가드를 지나 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원하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뒤로 더 가다가 진수가 가리킨 점을 크게 벗어났다.

혜주가 노란 점을 찍었다.

“뒤로 삼십.”

단비는 스틱 끝을 봤다. “힘 똑같이 줬는데.”

“같이 느꼈다는 뜻이죠.” 라온이 말했다.

“그 둘을 나눌 때가 제일 짜증 나요.”

단비는 다음 돌을 놓았다. 이번에는 짧았다. 미란은 세 번째 돌을 바로 주지 않았다. 앞의 둘을 같은 목표에 보낸 것인지 먼저 물었다. 단비는 그렇다고 답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첫 번째가 길어서 두 번째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길을 보고 있었다.

“새 장비 적응을 실력 시험으로 만들지 마.” 미란이 말했다. “세 번의 목표는 하나야.”

단비는 첫 호출을 다시 들었다. 혜주의 기록기를 보지 않고 하우스를 봤다. 새 캡이 고장 난 것이 아니어도 자기 손이 알고 있던 끝이 아니었다.

세 번째 돌은 목표 뒤로 조금 갔다. 혜주는 동그라미 옆에 짧은 화살표를 붙였다. 단비는 이번엔 기록이 싫지 않았다. 앞의 실패 둘과 같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작은 화살표가 보여 주었다.

라온도 자기 장비로 같은 거리를 던졌다. 첫 돌은 짧았고 두 번째는 길었다. 단비가 그를 쳐다봤다.

“안 바꾼 사람도 그러네요.”

“얼음은 내 편만 들지 않죠.”

“다행이다.”

진수가 웃음을 참다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네 사람은 장비를 탓하거나 선수 탓으로 몰기 전에 오늘의 얼음과 몸도 같이 보고 있었다. 짧은 거리 세트가 끝났을 때 새 캡 덕분에 정확도가 좋아졌다는 결론은 없었다. 대신 단비가 다시 익혀야 할 릴리스 감각이 어디인지 조금 좁아졌다.

남은 시간 미란은 스톤들을 치우지 않았다. 기존 돌을 그대로 써서 마지막 두 투구의 상황을 만들었다. 가드 뒤에 상대 역할 스톤 하나, 하우스 앞선에 팀 스톤 하나. 진수는 얇은 히트로 상대 돌을 빼고 싶어 했다.

“성공하면 두 점 그림입니다.”

단비는 스틱을 세웠다. 일요일 장비함 앞에서 빼앗긴 시간을 찾듯 공격을 원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오늘은 새 캡을 달았으니 공격을 더 잘해야 할 것 같았다. 방금 세 번 가운데 가장 멀리 간 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 그 두께 자신 없습니다.”

진수가 그를 봤다. “그럼 드로?”

“앞 돌 옆에 붙이겠습니다. 길게 빠져도 뒤로 곧장 열리지 않는 쪽으로.”

혜주는 남은 스톤을 내려다봤다. “방금 그 거리 두 번만 던졌어요. 확실한 것도 아닙니다.”

“알아요. 그래도 놓친 돌이 어디로 갈지 더 보입니다.”

진수는 잠깐 계산한 뒤 단비의 선택을 확정했다. 라온은 말을 보태지 않았다. 자신이라면 더 짧게 가드를 세웠을지 몰랐다. 하지만 단비가 오늘 배운 감각은 단비의 손에 있었다.

의자가 멈췄다. 단비는 손잡이를 쥐었다 놓고 다시 쥐었다. 고무 끝이 스톤 손잡이에 닿는 느낌을 확인한 뒤 호출을 복창했다. 밀어낸 돌은 앞 가드와 종이 한 장처럼 얇은 빛을 사이에 두고 지나갔다.

“조금 길다.” 혜주가 말했다.

누구도 그 말을 손으로 고칠 수는 없었다. 네 사람은 돌이 멈추는 것을 봤다. 아슬아슬하게 팀 스톤 옆에 섰지만, 처음 원했던 자리보다 다섯 센티 뒤였다.

진수가 다음 투구 위치를 보았다. 상대 돌은 여전히 안쪽에 있었다. 단비의 돌이 너무 뒤로 간 덕에 다른 쪽 길은 좁아졌다. 그렇다고 좋은 실수가 되었다고 부를 수는 없었다. 자기 돌을 건드릴 위험도 같이 생겼다.

“한 점 지키는 쪽으로 갑니다.” 진수가 말했다.

단비는 반박하지 않았다. 두 점을 꿈꾸던 마지막 투구가 한 점을 남기는 시도로 바뀌었다. 진수의 돌이 앞선에서 멈췄다. 미란은 정식 경기 점수처럼 승패를 붙이지 않고, 처음 계획한 자리와 실제 자리를 나란히 짚게 했다.

“다섯 센티를 실패라고만 적으면 다음엔 뭘 바꾸지?”

단비가 대답했다. “첫 밀기 때 힘을 줄이는 것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놓는 순간도 같이 볼게요.”

“오늘 확정한 원인인가?”

“다음에 확인할 거요.”

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비는 스틱을 무릎에 가로로 놓았다. 새것을 달았으니 바로 좋아져야 한다던 기대가 가벼워졌다. 좋아질 수 있는 조건을 얻은 것이지, 성공한 돌을 산 게 아니었다.

여덟 시에 타이머가 울렸다. 오늘도 더 던지면 알 것 같은 돌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혜주는 기록기를 껐고 진수는 스톤을 정리했다. 단비는 주황 열쇠로 장비 칸을 열었다. 라온은 교체와 결합 점검을 마친 공용 스틱을 생활체육 지도자에게 넘겼다. 실제 첫 투구 때의 사용감은 다음 시간에 함께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회원이 굵은 손잡이를 쥐었다.

“제 차례예요?”

“네. 새 캡이라 처음 몇 번은 느낌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단비가 먼저 대답했다. “저도 오늘 뒤로 삼십 보냈어요.”

회원이 웃었다. “그럼 제가 이길 수 있겠네요.”

“오늘만요.”

단비가 떠나는 휠체어를 봤다. 자기 대회용만 새것이 된 날보다 조금 덜 억울했다. 조금이었다. 나머지 캡을 다음 달에 기다려야 하는 마음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태규는 작업대에 남은 상태표를 가리켰다. “이거, 본인이 처음 만들었습니까?”

라온은 고무 가루를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어디가 닳았는지 적은 겁니다.”

“번호 붙이고, 사용 이력 보고, 다시 던진 결과도 연결했네요. 보조기기센터 기초 강좌 상담 때 가져와 보세요. 해 본 일을 설명하기 좋겠습니다.”

라온은 바로 좋다고 하지 못했다. 수리 사례가 된다는 말보다 상담에 갈 시간을 어디서 빼야 할지가 먼저 떠올랐다. 그 시간에 받지 못할 수리 접수도 있었다.

태규는 빈 종이 한 장을 놓았다. “지원서를 오늘 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무엇을 할 줄 알고, 무엇은 더 배워야 하는지 한 장만 써 보세요.”

라온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그 위에 첫 줄을 쓰려다 멈췄다. 사고 전 공장에서 하던 일을 적으면 될까. 오늘 단비의 돌이 다섯 센티 뒤로 간 일부터 적어야 할까.

빙판 쪽에서 새 회원의 웃음소리가 났다. 돌이 너무 멀리 갔다는 소리였다. 단비가 어깨 너머로 말했다.

“오늘 한 일부터 써요. 적어도 제가 증인 해 줄 수 있으니까.”

라온은 맨 위에 날짜를 썼다. 직업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빈칸이 많았다. 그래도 오늘 고친 물건을 누구에게 돌려줬는지는 적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