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선원 과실이라는 이름
문재필의 이름은 화면 아래에 작게 나왔다.
문재필의 이름은 화면 아래에 작게 나왔다.
그 위의 글씨는 훨씬 컸다. 선원 대응 지연 가능성.
대책실 텔레비전은 소리가 꺼져 있었다. 류경문이 입을 움직일 때마다 자막이 바뀌었다. 회사 직원들이 검토한 설명자료, 수정된 항해일지, 밸브 취급 과정의 혼선. 단어들은 서로 잘 맞물렸다. 강해솔은 그 매끄러움 때문에 처음 몇 초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젯밤 장치의 빈 홈을 보고 돌아왔다. 아직 기능을 모른다는 문장을 쓰고, 제조사 답변을 기다리기로 했다. 해솔이 잠든 동안 선사는 벌써 답을 골라 놓았다.
미례가 리모컨을 찾았다. 책상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몸을 굽히는 사이 화면이 바뀌었다. 기자가 질문하는 모습 다음에, 배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표가 떴다.
해솔은 그중 몇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서류에서가 아니라 가족들이 부르는 목소리로.
“이걸 왜 지금.”
미례가 말했다. 누구에게 묻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소리를 켜자 류경문의 목소리가 방을 채웠다.
“어려운 상황에서 승무원들이 고생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록에 나타난 대응 지연과 조작상의 문제를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가 종이 한 장을 들었다. 문재필이 바로잡은 항해일지 일부였다.
해솔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재필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멈췄다. 먼저 보호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화면을 봤는지, 지금 혼자인지.
답은 짧았다. 봤다. 면담실에 있다.
해솔이 문을 나서자 복도 끝에 서 있던 여자가 길을 막았다. 기관실 선원의 아내였다. 손에는 휴대전화가 있었다. 방송 화면을 찍은 사진이 흐릿하게 확대돼 있었다.
“저 사람이 고친 거예요?”
여자가 물었다.
해솔은 사진을 보았다. 재필의 정정 서명 아래로 죽은 동료의 이름이 이어져 있었다.
“어떤 내용을—”
“저 사람 말이 맞으면 우리 애 아빠는 뭘 한 거예요? 살릴 수 있었는데 안 한 사람이에요?”
목소리가 높지 않아 더 멀리 들렸다. 대책실 안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멎었다.
해솔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틀렸다고, 회사가 자기 살 길을 찾는 거라고,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부터 보라고. 하지만 아무 말이나 빨리 하는 건 류경문도 하고 있었다.
“고친 문장을 처음부터 같이 보겠습니다. 방송에 나온 부분 말고요.”
여자가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숨이 새는 소리였다.
“또 종이 보래.”
그녀는 옆으로 비켜섰다. 길을 열어 준 게 아니라, 더 말할 사람이 아니라고 정한 표정이었다. 해솔은 그 옆을 지나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면담실에서 재필은 구겨진 출력물을 펴고 있었다. 펴면 읽게 되고, 읽으면 다시 구겼을 종이였다. 탁자 위에 물이 있었지만 컵 가장자리는 말라 있었다.
“내일은 안 나갑니다.”
해솔이 앉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내일 공개 출석은 잡지 않았어요.”
“그럼 모레도요. 앞으로도.”
재필이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 손톱 밑이 희어졌다.
“내가 뭘 고쳤는지 알죠? 처음 적은 시각이 틀려서 고쳤어요. 살아 나오자마자 쓴 게 정확하지 않아서. 그걸로 저 사람들을 줄 세울 줄은 몰랐습니다.”
해솔은 의자를 당겼다. 재필과 탁자를 마주하는 대신 모서리에 앉았다.
“제가 말을 안 했으면 저 이름도 안 나왔을까요?”
그 질문에 답할 사람은 이 방에 없었다.
“안 했으면 회사는 다른 말을 골랐겠죠.”
“그건 모르는 거잖아요.”
해솔은 입을 다물었다. 재필의 말이 맞았다. 위로할 때조차 자신이 모르는 다음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맞아요. 모릅니다.”
재필이 처음으로 그를 보았다.
“제가 말하면 동료들이 무능해지고, 입을 닫으면 제가 숨기는 사람이 됩니다. 어디 서 있어야 해요?”
해솔은 종이를 빼앗지 않았다. 재필이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의자 아래 그의 발끝이 바닥을 긁었다. 바다에서 건져 올렸을 때는 몸이 멎어 있었는데, 이제는 살아 있는 몸이 쉴 곳을 찾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 앉아 있어도 돼요.”
“그다음은요?”
“그다음까지 지금 정하지 맙시다.”
문밖에서 우찬이 노크했다. 해솔이 재필을 보았다. 재필은 턱을 한 번 움직였다.
우찬은 노트북을 펴지 않았다. 선사의 설명자료를 받아 왔지만 가방 안에 둔 채, 재필이 무슨 뜻으로 말을 철회하고 싶은지부터 물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을 고치고 싶은 건지, 공개석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건지.
“말한 걸 없던 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재필이 말했다.
우찬의 표정이 잠깐 무너졌다. 곧 단정한 얼굴로 돌아왔지만 해솔은 보았다.
“이미 남긴 진술은 없었던 일처럼 지우지 않겠습니다. 잘못 기억한 부분은 그 경위까지 다시 남기겠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은 별개예요.”
재필은 한참 뒤에 물었다.
“내 얼굴 없이도 말할 수 있어요?”
우찬이 가방을 열었다. 해솔은 손을 들었다. 재필의 앞에 증거를 전부 쏟아 놓으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우찬이 꺼낸 것은 장치 사진이 아니었다. 선원들에게 제공됐던 도면의 복사본이었다.
“이 종이에는 없는 장치가 발견됐습니다. 그 차이부터 설명할 겁니다.”
재필의 시선이 종이를 따라갔다. 그는 배 안에서 몇 번이나 지났을 통로를 손톱으로 짚었다. 어제와 달리 레버의 모양이나 빈 홈은 보여 주지 않았다. 우찬은 도면 위에 무엇을 더 그려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오후에 열린 짧은 설명 자리에는 재필의 의자가 없었다.
해솔이 빼 달라고 했다. 빈 의자를 놓아두면 사람들은 끝내 오지 않은 사람의 사진부터 찍을 것 같았다. 대신 작업노트 사본과 개조 전후의 접근 경로가 벽에 붙었다. 이름과 연락처는 가려졌다. 아직 기능을 모르는 장치 내부 영상도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가 손을 들었다.
“선원 과실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까?”
우찬이 마이크를 잡았다.
“개별 대응은 계속 확인합니다. 그 확인과, 선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구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별도로 봐야 합니다.”
“그러면 과실 여부가 미정인데 회사 발표를 반박하는 이유는요?”
해솔은 벽의 두 도면 사이로 나갔다. 질문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을 가리키기 위해서였다.
“그날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림은 왼쪽입니다.”
그의 손가락이 통로에서 멎었다.
“우리가 물속에서 찾은 연결은 오른쪽에 있고요. 지금 방송에선 오른쪽 장치를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왼쪽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줄의 기자가 펜을 멈췄다. 해솔은 그가 동의한 것인지, 쓸 만한 문장을 찾은 것인지 몰랐다. 그래도 처음으로 방 안에서 두 도면을 번갈아 보는 사람이 늘었다.
선사에서 온 직원이 말했다.
“현장 감독관이 작업 지시를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을 검토 중입니다.”
“어떤 지시였습니까?”
우찬의 질문에 직원은 준비한 종이를 내려다봤다.
“그 부분은 확인 후에.”
“그럼 지금은 가능성이지, 확인된 경위는 아니군요.”
직원은 마이크를 넘겼다. 류경문은 그 자리에 오지 않았다.
다른 기자는 보상에 관해 물었다. 이번 자료가 나오면 지급이 확정되느냐고. 우찬은 확정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계약과 책임 판단이 남아 있었고, 이 자리에서 줄 수 있는 약속은 없었다. 뒷줄에서 누군가 작게 욕했다. 해솔은 그 소리가 자신에게도 향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설명회가 끝난 뒤에도 오전의 여자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벽에 붙은 도면 앞에 서 있었다. 미례가 옆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해솔은 물 한 병을 가져다주었다.
여자가 받지 않아 옆 의자에 놓았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요?”
해솔은 대답을 고르느라 잠깐 늦었다.
“오늘은 만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때릴까 봐?”
“아니요. 두 분 다 나중에 안 했으면 할 말을 하실 것 같아서요.”
여자는 그를 오래 보았다. 해솔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여자가 물병을 집었다. 뚜껑을 열지는 않았다.
“고맙다고는 못 해요.”
“안 하셔도 됩니다.”
여자는 미례에게 내일 몇 시에 문을 여느냐고 물었다. 사과도 화해도 아니었다. 다만 오늘로 끝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저녁에 해솔은 재필에게 그 여자가 왔었다는 사실만 전했다. 여자가 하지 않은 용서를 대신 전하지 않았다. 재필도 묻지 않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고 종이컵에 물을 따랐다. 처음에는 넘쳤다. 서둘러 닦으려다 해솔과 손이 부딪쳤다. 둘 다 잠깐 멈췄다가 각자 휴지를 한 장씩 가져왔다.
“방송 봤습니다.”
재필이 말했다.
“내 이름 안 나오더군요.”
“오늘은 도면 차이를 설명했어요.”
재필은 젖은 휴지를 접었다. 이번에는 구기지 않았다.
“그 사람들, 저걸 몰랐어요. 적어도 내가 같이 일할 때는. 내가 알고 있던 배랑 다르니까.”
해솔은 그 말에 별표를 붙이지 않았다. 나중에 정확히 범위를 확인할 진술이 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재필은 조사를 끝내 주는 증인이 아니라, 자신이 알던 동료들의 자리를 조금 되찾은 사람이었다.
대책실로 돌아왔을 때 우찬은 선사 자료를 바닥에 펼쳐 놓고 있었다. 책상이 모자랐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둔 것은 아니었다. 페이지 번호 순서대로 두 줄이 맞춰져 있었다.
“발표 때는 본문만 보여 줬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건 기자들에게 나눠 준 파일입니다. 뒤에 도면 부록이 붙어 있어요.”
해솔은 허리를 굽혔다. 선박 계통 설명이라고 적힌 그림이었다. 해상도가 낮아 처음에는 배관 기호처럼 보였다. 우찬이 같은 페이지의 원본 파일을 확대했다.
작은 원 안에 나뉜 위치들.
여섯 뒤에 하나.
해솔의 손이 화면 앞에서 멎었다.
“이 그림, 우리가 준 겁니까?”
“아닙니다.”
“어제 참관한 사람이 전달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 경로도 확인해야 합니다.”
우찬은 단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에서 피로가 사라져 있었다. 누가 자료를 만들었는지, 어떤 파일을 받았는지, 전날 내부 영상이 촬영되기 전부터 이 그림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할 질문들이 한꺼번에 구체적인 주소를 얻었다.
해솔은 어젯밤 영상을 떠올렸다. 빈 것처럼 보였던 일곱 번째 자리. 부록에는 그 위치가 외함의 고정점과 맞물리는 방향까지 표시돼 있었다. 일반적인 밸브 도식이라고 넘기기에는 닮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모른다고 했던 회사가, 모른다고 했던 장치를 설명하는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해솔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재필에게 걸려던 아침과는 달랐다. 이번에 전화를 받을 사람은 자료를 배포한 선사의 연락 담당자였다.
연결음이 두 번 울렸다.
“부록 열일곱 쪽이요.”
해솔이 말했다.
“그 그림을 그린 분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