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사진 두 장의 자리
배세희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 사무실 불을 켜자 창문에 자기 얼굴이 먼저 나타났다. 책상 위에는 전날 가져온 보수 완료통지 사본이 놓여 있었다. 첨부사진 두 장. 종이 한가운데 있는 그 말보다 발신자 칸의 자기 이름이 더 크게 보였다.
배세희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 사무실 불을 켜자 창문에 자기 얼굴이 먼저 나타났다. 책상 위에는 전날 가져온 보수 완료통지 사본이 놓여 있었다. 첨부사진 두 장. 종이 한가운데 있는 그 말보다 발신자 칸의 자기 이름이 더 크게 보였다.
자신이 보낸 문서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읽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그녀는 당시 발송 내역을 열었다. 회사가 허용한 조회 화면에는 발신 시각과 제목, 첨부파일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본문과 첨부를 열려면 기록 담당자의 확인이 필요했다. 세희는 이미 신청해 둔 열람 시간을 확인했다. 아홉 시였다. 겨우 칠십 분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인가 지워질 것 같아 마우스를 놓을 수 없었다.
뒤에서 커피잔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생산팀 직원이었다. 어제 시험 종료를 기다리던 사람과는 다른 직원이었지만 세희는 같은 질문을 예상했다.
“어제 많이 늦게 끝났다면서요.”
“네.”
“오늘 자료 찾는다고 했죠? 괜히 개인 컴퓨터로 옮기지 마세요. 요즘 밖으로 뭐가 나가는지 예민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날카롭게 들렸다. 세희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승인된 열람 시간과 담당자를 보여 주었다. 직원은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돌아서기 전, 자신도 그때 보수 사진을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떤 사진이었느냐고 묻자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문이 닫힌 뒤 세희는 자기 수첩을 폈다. ‘누군가는 봤다고 기억함’이라고 적었다가 줄을 그었다. 이름도 시점도 없는 문장은 자신을 편하게 해 줄 뿐이었다. 그녀는 그 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 당시 어떤 업무로 사진을 봤는지, 기억나는 범위만 알려 달라고 했다. 답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아홉 시에 기록 담당자가 왔다. 법원에 제출할 자료 범위와 회사 내부 열람 범위를 맞추느라 앞선 회의가 길어졌다고 했다. 회사 대리인도 함께였다. 세희는 변호사가 의자를 당기는 소리에 어깨가 굳었다. 그 사람은 오늘 세희가 말을 잘못하면 바로잡으러 온 것인지, 회사가 자료를 잘못 내보내지 않게 하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원본 상태부터 확인하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사본은 절차대로 요청하시죠.”
세희는 개인적으로 필요하다는 표현을 고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은 화면을 여는 것이 먼저였다.
당시 발송본에는 사진 파일이 두 개 있었다. 세희는 저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두 장 모두 존재했다. 첫 번째 사진에는 붉은 손잡이가, 두 번째 사진에는 정리된 바닥과 작업 표찰이 찍혀 있었다. 어제의 빈 뒷장은 사진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인쇄 묶음에서 빠졌다는 뜻이었다.
기록 담당자가 말했다. “첨부는 제출본에 따로 묶였습니다. 색상 출력이라 본문하고 떨어졌네요.”
세희는 웃지 못했다. 잠깐의 안도 뒤에 다른 빈칸이 보였다. 어느 사진에도 작업 날짜를 확인할 표식이나 밸브 내부, 시험 결과는 없었다. 화면 오른쪽에는 촬영정보 일부가 남아 있었지만, 파일이 다른 시스템을 거치며 바뀐 흔적이 있어 찍힌 시각을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두 사진 속 손잡이는 닫힌 모양이었다. 어제도 그랬다.
“이걸 보고 저는 보수가 끝났다고 보냈네요.”
그녀가 말하자 회사 대리인이 즉시 물었다. “직접 확인했다고 썼습니까?”
세희는 발송 본문을 읽었다. 설비팀 완료통지를 첨부하며, 지적사항에 대한 조치를 마쳤다는 문장이 있었다. 직접 현장을 보았다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고 확인하지 않았다고 적지도 않았다.
“설비팀 통지를 받아 회신했다고 사실대로 설명하면 됩니다.”
“그 말만 하면 제가 확인한 것처럼 읽히는 건 없어집니까?”
대리인은 대답 대신 원래 통지를 더 찾아보자고 했다. 세희는 그 말에 동의했다. 자신의 책임을 크게 말한다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 선명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이 끝에 붙은 문장을 남이 쓴 문장으로만 밀어낼 수는 없었다.
같은 시각 만석은 마을회관에서 은실과 납품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람이 오후에 보자고 했지만, 은실은 오늘 점심 장사를 비울 수 없었다. 공장 식당 납품이 줄면서 자기가 만든 도시락을 다른 현장에 가져다 팔아야 했다. 만석은 그녀가 펼친 장부에서 ‘외상’ 글자가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고 손을 멈췄다.
“이 사람 아직 안 줬어?”
“줬으면 선을 그었죠.”
“바다 사람들 밥값인데 내가 말해 볼까?”
은실이 장부를 닫았다. “그래서 보여 주기 싫었어요. 내 피해 적으라고 했지, 동네 사람 빚 받아 달라고 한 것 아니에요.”
만석은 입을 다물었다. 자기 배의 손실을 들여다보는 것과 남의 장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달랐다. 그는 장부를 은실 쪽으로 밀었다. 그녀가 직접 필요한 페이지를 고르도록 했다. 은실은 한참 뒤 다시 폈다. 외상 이름을 가릴 종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만석은 회관 서랍에서 오래된 행사 안내장을 찾아 뒷면을 잘랐다.
가람에게 보낼 표에는 매출 감소와 아직 못 받은 돈이 나뉘어 들어갔다. 둘을 합치면 손실이 커 보이지만, 줄어든 납품과 기존 외상은 같은 돈이 아니었다. 은실은 금액을 줄이고 나서도 얼굴을 펴지 않았다. 적게 적었다고 덜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제 도시락값은 받아야겠네.” 만석이 말했다.
“어제 건 회사 주문이에요. 입회자한테 걷을 돈 아니고.”
만석은 또 펜을 내려놓았다. 은실이 처음으로 웃었다. “나 돕기 전에 주문서부터 읽어요.”
점심 직전 세희에게 사진을 봤다던 직원의 답이 왔다. 그는 당시 안전회의 자료에 붉은 손잡이 사진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보수 검수에 참여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세희는 그 답을 별도로 남겼다. 기억이 같다는 이유로 사진의 시점이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재호가 자료실 문 앞에 도착한 것은 오후 한 시였다. 그가 가져온 작업일보에는 주변 정리와 표찰 교체가 적혀 있었다. 밸브 내부 수리나 기능 시험은 없었다. 재호는 그날 자신이 맡은 작업 구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우리가 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다른 업체가 안쪽을 고쳤을 수도 있습니까?”
“그날 같이 들어온 팀은 없었어요. 다른 날 작업했는지는 출입 기록을 봐야 합니다.”
세희는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빠르게 적었다. 재호가 그녀의 손을 보고 덧붙였다. “우리 쪽 일보가 없다고 다른 날 일까지 없던 걸로 쓰지는 마세요.”
세희가 펜을 멈췄다. “알아요.”
“알아도 종이로 넘어가면 달라지더라고요.”
그는 어제 다 펴지지 않던 왼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세희는 그 손을 보지 않는 척했다. 자신이 보낸 통지가 현장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까지 끝냈다고 말한 셈일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이메일 한 줄이었고, 재호에게는 하지 않은 작업의 책임이었다.
당시 자재 출고 목록에는 표찰과 바닥 정리 자재가 있었다. 교체용 밸브 부품은 검색된 목록에서 나오지 않았다. 기록 담당자는 별도 창고나 외주업체 직접 구매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 대리인은 그 부분을 반드시 함께 적어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세희가 먼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빈 목록을 완성된 고발문으로 만들면 내일 더 많은 시간을 잃을 것이다.
그 대신 그녀는 묻기를 멈추지 않았다. 설비팀 완료통지가 어떤 작업 지시를 근거로 만들어졌는지, 기능 시험을 누가 확인했는지, 추가 구매가 있었다면 어느 번호에 붙는지. 질문을 따로 적으니 자료실 탁자가 점점 좁아졌다. 재호는 의자를 뒤로 빼고 자기 일보만 앞으로 밀었다. 모두가 한 서류를 붙잡고 있으면 각자의 일이 섞일 것 같았다.
오후 네 시, 세희는 가람과 양측 자료 확인 자리에 앉았다. 법원에 낼 자료에 이해관계 없는 직원 연락처가 섞이지 않도록 가린 사본이었다. 만석도 입회했다. 전날 빈 사진 두 장을 보았던 그는 실제 사진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물었다.
“그럼 어제 우리가 잘못 본 거네요?”
“인쇄본에서 빠진 건 맞습니다.” 세희가 말했다. “사진이 없다는 의심은 거둬야 해요. 다만 사진 두 장이 어떤 작업을 확인해 주는지는 별개입니다.”
만석은 붉은 손잡이 사진을 오래 보았다. 손잡이를 찍은 사람은 고장을 알고 찍었을까. 모르고 찍었을까. 대답할 수 없는 얼굴이 화면 밖에 있었다. 그는 사진을 자기 휴대전화로 찍으려다가 허락된 자료인지 먼저 물었다. 가람은 오늘 확인 범위의 사본을 정식으로 받게 하겠다고 했다.
자료 확인이 끝날 무렵 위험평가 회신 요청이 화면에 올라왔다. 제출 마감은 완료통지가 발송된 다음 날이었다. 마감 하루 전 보수 완료라는 답이 나갔다. 만석은 날짜 두 개를 보고 세희를 보았다. 세희는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빨리 보내라고 독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끝났다고 보냈어요?”
“설비팀 통지를 믿었습니다. 독촉이 있었다는 말이 제가 쓴 문장을 없애 주지는 않아요.”
가람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날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독촉한 사람과 문구를 바꾼 사람, 실제 작업을 승인한 사람이 같다는 증거는 아직 없었다. 세희가 자기 잘못을 말하는 사이 그 빈칸에 남의 이름을 넣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 세희는 자판기 앞에서 재호와 마주쳤다. 그는 퇴근길이었다. 어제 데리러 가지 못한 딸이 오늘은 꼭 오라고 했다고 했다. 세희는 자기 차로 태워 주겠다고 했다가, 그에게 갚아야 할 빚처럼 들릴까 말을 줄였다.
“정류장까지는 같은 방향이에요.”
재호는 잠깐 생각하고 함께 걸었다. 둘은 사진이나 밸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릴 때 재호가 말했다. “오늘 제 일보에 없는 일을 없다고 적어 줘서 고맙습니다.” 세희는 고맙다는 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다가, 대답할 때를 놓쳤다. 신호가 먼저 바뀌었다.
저녁에는 생산본부에서 새 회의 요청이 왔다. 제목은 대외 자료 회신 경로 일원화였다. 세희의 다음 날 일정에는 현장 점검이 있었지만 회의 시간이 겹쳤다. 그녀는 어느 것을 지워야 할지 한동안 화면을 보았다. 그러고는 현장 점검을 지우지 않고 참석 시간 조정을 요청했다.
발신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가 내려갔다. 오늘 하루 종일 들여다본 것도 자신이 예전에 누른 같은 버튼이었다. 이번에는 보내기 전에, 자기가 확인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한 문장을 더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