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37화

수심 43미터의 종

도장 아래의 개조

검사원의 수첩은 법무팀 직원의 손바닥 아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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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원의 수첩은 법무팀 직원의 손바닥 아래에 있었다.

정우찬이 페이지를 넘겨 달라고 하자 직원이 수첩을 더 가까이 당겼다. 강해솔은 둘 사이에 놓인 종이컵을 보았다. 방금 부은 물인데 아무도 마시지 않아 김만 사라졌다.

“열람 범위부터 합의해야 합니다.”

직원이 말했다.

“청람호 정기검사 때 작성한 부분입니다.”

“다른 선박 사항이 같이 적혀 있어서요.”

“다른 부분은 가리십시오. 지금은 어느 페이지인지도 확인을 못 했습니다.”

벽에 걸린 증서 사본 아래에는 회사 소개 문구가 있었다. 바다를 향한 신뢰. 해솔은 그 문구를 읽지 않으려고 창밖을 보았다. 여기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건물 사이에 끼인 크레인 끝만 천천히 움직였다.

우찬은 오전 일곱 시부터 이 방에 있었다. 해솔은 회수팀의 출항 점검을 지켜보고 뒤늦게 합류했다. 전날 검토한 계획에 따라, 이미 격리해 둔 제어 계통에서 조사용 장치를 회수하는 작업이었다. 잠수와 회수는 지정된 작업팀이 맡았고 그는 참관자가 되었다. 자신이 먼저 발견했다고 모든 밧줄을 직접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화는 아직 조용했다.

문이 열리고 백도현이 들어왔다. 그는 해솔을 보더니 먼저 인사하려다가 우찬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앉을 의자를 고르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검사 때 제어함 내부를 확인했습니까?”

우찬이 물었다.

“못 봤습니다.”

“못 본 겁니까, 안 본 겁니까?”

백도현은 입술을 훑었다.

“접근판이 막혀 있었습니다.”

법무팀 직원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덮고 있던 페이지의 끝을 누른 것이었다. 해솔은 그 사소한 동작을 보았다.

“처음부터 없는 판처럼 돼 있었어요. 새로 용접한 자국은 있었지만, 그 뒤에 제어함이 있다는 설명을 못 들었습니다.”

“도면에는요?”

“제가 본 도면엔 그 함이 없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선급 검사원이 마른기침을 했다. 회색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손이 떨렸다. 해솔은 그가 지금까지 수첩을 빼앗긴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제가 적은 겁니다.”

검사원이 말했다.

법무팀 직원이 그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답변은 확인하고—”

“제 글씨인지도 내가 확인해야 하잖아요.”

그는 수첩을 달라는 대신 손바닥을 내밀었다. 직원은 잠시 그대로 있었다. 결국 수첩이 책상 가운데로 나왔다.

검사원은 자신이 접어 놓은 귀퉁이를 찾았다. 비닐 인덱스가 아니라 종이를 작게 접은 흔적이었다. 너무 오래 눌려 펴도 삼각형 자국이 남았다.

새 용접. 접근 목적 확인 요청.

그 아래, 다른 잉크로 덧붙인 한 줄.

선사 감독관 설명: 비구조 보강.

해솔은 마지막 네 글자를 천천히 읽었다. 바다 아래에서 손전등으로 훑었던 판이 종이 위에서는 그렇게 가벼운 말이 되어 있었다.

우찬은 바로 다음 줄을 가리켰다.

“추가 도면 요청. 이건 받았습니까?”

검사원은 고개를 저었다.

“기존 배관에 영향 없는 보강이라고 회신이 왔습니다. 검사 항목을 닫을 때 그 설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어떤 자료와 대조했죠?”

대답이 늦었다.

방 밖에서 프린터가 돌아갔다. 누군가의 신발 소리가 문 앞에서 멎었다가 멀어졌다. 해솔은 그 소리들을 모두 들었다. 대답이 나오지 않는 동안 사람은 필요 없는 것까지 듣게 됐다.

“사진입니다. 용접부 외관 사진.”

우찬이 펜을 내려놓았다.

“그 뒤의 장치까지 확인한 건 아니군요.”

검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법무팀 직원은 이번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해솔은 백도현의 눈을 보았다. 자기 책임이 검사원 쪽으로 넘어가기를 바라는 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안도한 눈도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보다 먼저 못 본 이유를 말했을 때의 표정이었다.

“저도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비구조 보강. 걸리적거리는 판을 막는 작업이라고요.”

우찬은 두 사람의 말을 한 문장으로 묶지 않았다. 백도현에게 들은 시각과 장소를 따로 적게 했고, 검사원에게는 그날 받은 도면을 보여 주었다. 아직 개조 후에 발견한 장치 그림은 펼치지 않았다.

백도현이 낡은 도면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처음에는 통로를 잘못 짚었다. 지웠다. 다시 짚었다. 해솔은 그 서툰 움직임을 보면서, 물속에서 자신이 표시판만 보고 밸브가 닫혔다고 말했던 날을 떠올렸다.

틀린 사람과 숨긴 사람은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을 구별하는 일이 귀찮다는 이유로 한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됐다.

정오가 지나서야 해솔의 전화가 울렸다. 회수팀장이었다.

“육상 인계 끝났습니다. 봉인 상태는 영상 보내 드릴게요. 여기서는 안 열었습니다.”

그제야 해솔은 아침부터 쥐고 있던 긴장을 조금 풀었다. 작업은 예상보다 늦었다. 안전 확인 때문에 한 차례 대기했고, 시야가 나빠진 구간에서는 서두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인내 덕분에 이제 장치가 물 밖에 있었다.

오후의 공동 개방실은 항만 창고 한쪽에 마련돼 있었다. 젖은 외함은 보존 담당자의 작업대에 놓였다. 회수 시각부터 인계까지 붙은 번호표가 길게 이어져, 작은 상자에 이상할 만큼 많은 꼬리가 달린 것 같았다.

해솔은 상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속에서는 손전등의 둥근 빛 안에 들어왔던 물건이, 지금은 너무 작았다.

이것 때문에 배가 움직였을까.

아직은 물을 수만 있었다.

선사 측 기술자가 증서 사본을 다시 꺼냈다. 오전에 확인한 것과 같은 도장이었다.

“이 계통은 검사 통과 기록이 있습니다. 개조라고 단정하는 건 곤란합니다.”

우찬이 사본 옆에 검사 당시 도면을 놓았다.

“어느 선이 이 함으로 갑니까?”

기술자가 안경을 올렸다. 손끝이 주 배관을 따라 내려갔다가 멈췄다.

우찬은 새로 확인한 배선도를 겹치지 않고 옆에 펼쳤다. 기술자의 손이 갈라진 두 장 사이에 남았다.

“도장에는 없는 선입니다. 누가, 언제 더했는지를 보자는 겁니다.”

뒤에서 보험자 측 참관인이 선급 담당자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구상 검토라는 단어가 들렸다. 선급 담당자의 대답이 날카로워졌다. 서로의 책임을 묻는 두 사람이 작업대 쪽으로 한 발씩 다가왔다.

“빨리 열어서 확인하면 될 것 아닙니까.”

해솔이 그들 사이에 빈 의자를 밀어 넣었다. 바퀴가 바닥에서 짧게 울었다.

“여기 앉으세요.”

두 사람이 해솔을 보았다.

“그렇게 가까이 서 있으면 손이 나가요.”

그 말은 협박도 농담도 아니었다. 숨이 급한 사람은 눈앞의 물건을 만졌다. 해솔은 바다에서 그걸 너무 많이 보았다.

보존 담당자가 잠시 기다려 준 뒤 절차를 이어 갔다. 개방 전의 상태가 촬영되고, 해체 순서와 각 고정부의 상태가 기록됐다. 해솔은 손가락을 겨드랑이 아래 끼웠다. 자기 손도 믿지 않기로 했다.

덮개가 들렸을 때 바닷물이 한 줄 흘렀다. 아래에 미리 둔 채취 용기에 받힌 물에도 외함과 연결된 번호가 붙었다. 개방 전후의 사진과 유체·침전물은 함께 남겼고, 안쪽 기계 장치는 씻거나 분해하지 않았다.

안쪽에는 생각보다 아무것도 없었다. 빽빽한 회로나 영화에서 보던 붉은 숫자는 없었다. 닳은 배선, 작은 기계식 장치, 라벨을 떼어 낸 직사각형 자리. 그 단순함이 오히려 해솔을 화나게 했다.

보존 담당자가 확대 화면을 띄웠다. 장치 고정부 몇 곳은 주변과 부식 상태가 달랐다. 우찬은 ‘최근 교체’라고 적으려던 펜을 멈췄다. 재질 차이일 수도 있었다. 그 말은 뒤에 붙일 일이었다.

백도현이 모니터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벽 쪽으로 걸어가 두 손을 허리에 얹었다. 해솔이 따라갔다.

“아는 물건입니까?”

“모릅니다.”

“그럼 왜 그래요?”

백도현은 벽의 나사 구멍을 보고 있었다.

“모른다는 말만 몇 번째인지 세고 있었습니다.”

해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웃으려다가 실패했다.

“서류에 서명할 때는 다 아는 사람처럼 했는데.”

그 말을 우찬에게도 하라고 해솔은 말하지 않았다. 백도현은 이미 마이크가 있는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간다는 작은 행동까지 대신 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장치에는 전원을 연결하지 않았다. 잠겨 있는 동작을 재현하겠다며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개방팀은 외형을 확인한 뒤 내부를 보존한 채 영상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정된 검사실로 옮겨질 때까지 참관인들은 번호와 인계 시각을 다시 확인했다.

저녁을 먹을 틈은 없었지만 기다릴 틈은 많았다.

해솔과 우찬은 검사실 복도에서 자판기 빵을 나눠 먹었다. 빵 안의 팥이 한쪽으로 몰려 있었다. 우찬이 반으로 가르다가 거의 빈 쪽을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어제도 이랬죠?”

해솔이 물었다.

“뭐가요?”

“먹을 때도 결과표 보는 거.”

우찬은 무릎 위의 종이를 접었다. 해솔은 팥이 든 쪽을 다시 절반 떼어 주었다. 복도 끝에서 검사원과 법무팀 직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오전에는 수첩을 사이에 두고 싸웠던 두 사람이 지금은 같은 화면에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누구나 오늘보다 오래 살아온 자기 삶을 지키려 했다. 그중 어떤 선택은 사람을 살렸고 어떤 선택은 판 뒤를 보지 않게 했다. 해솔은 자신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빵을 천천히 삼켰다.

검사실 문이 열렸다.

영상 담당자가 모니터 앞으로 사람들을 불렀다. 장치 속 원형 부품이 회색 음영으로 떠 있었다. 가장자리를 따라 높이가 달라지는 부분들이 일정하게 이어졌다.

하나, 둘, 셋.

해솔은 속으로 세다가 여섯에서 멈췄다.

끝난 줄 알았던 자리 뒤에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채워진 부분과 다른, 비어 보이는 홈이었다. 우찬이 몸을 숙였다.

“일곱 번째 위치가 있는 겁니까?”

영상 담당자는 각도를 바꾼 다른 사진을 띄웠다. 같은 자리에 그늘이 남았다.

“이렇게 보입니다. 무엇을 하던 자리인지는 이 영상만으로 못 말합니다.”

여섯 계단까지는 전날의 종이에 있었다. 일곱 번째는 없었다.

해솔은 입 안에 남아 있던 단팥 맛을 느꼈다. 너무 달아서, 문득 속이 울렁거렸다. 여섯 번 움직이고 끝나는 장치라면 그 뒤의 빈자리는 왜 필요했을까.

우찬은 제조사 확인 요청 목록에 라벨 자국의 치수와 외형 특징을 더했다. 영상은 내부 열람 범위에 묶였다. 아직 공개 설명에 붙일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해솔은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았다. 놀란 얼굴, 안도한 얼굴, 무슨 뜻인지 몰라 옆사람을 보는 얼굴. 그중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장치 안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하나 있었고, 방 안에는 그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