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판타지 직업 코미디 37화

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마지막 장을 붙인 손

종이함의 가운데 점은 아침이 되자 더 검어지지 않았다. 편의점 형광등 아래에서는 잉크 얼룩처럼 보였고, 냉장고 셋째 문을 열면 마른 씨앗처럼 솟았다. 남해온은 주문표를 받는 틈마다 그 점을 만지고 싶었다. 채원이 막은 것은 검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의 표식을 모른 채 문지르면 계약이 읽혔다는 사실까지 지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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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함의 가운데 점은 아침이 되자 더 검어지지 않았다. 편의점 형광등 아래에서는 잉크 얼룩처럼 보였고, 냉장고 셋째 문을 열면 마른 씨앗처럼 솟았다. 남해온은 주문표를 받는 틈마다 그 점을 만지고 싶었다. 채원이 막은 것은 검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의 표식을 모른 채 문지르면 계약이 읽혔다는 사실까지 지울 수 있었다.

“원규칙 보관처 셋 중 어디부터 가요?”

“반출기록실.” 채원이 말했다. “서쪽 배차소는 아직 봉인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고, 시장에서 팔린 소포는 주인이 누군지 몰라. 먼저 누가 어떤 종이를 언제 꺼냈는지 보자.”

해온은 점주에게 낮 근무를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사유를 다 말할 수 없어 ‘오래된 계약 확인’이라고만 했다. 점주는 한숨을 쉬며 오후 진열은 직접 하겠다고 했지만, 다음 주 교대 하루는 해온이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밤에 자던 시간을 빼내서 얻은 낮이었다. 해온은 알겠다고 했다.

조정소 반출기록실에는 나무 서랍이 줄지어 있었다. 종이 냄새가 야시장과 달랐다. 거기서는 새 봉투가 사람을 기다렸고, 이곳에서는 낡은 서류가 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담당자가 해온의 함을 보고도 곧바로 원본을 내주지는 않았다. 자기 계약의 열람권과 타인 명부를 볼 권리는 달랐다.

“제 이름으로 발급된 계약의 원규칙만 보여 주세요. 열한 피해자의 이름은 가려도 됩니다.”

해온의 말에 담당자가 표지를 접었다. 오래된 창립규칙은 원본 반출이 금지돼, 열람대 앞에서만 펼 수 있었다. 채원은 기록 담당자 앞에서 현재 계약의 바깥 등과 안쪽 등 사진 대신 얇은 종이 위에 눌린 자국을 옮겼다. 일반 카메라로는 요괴 표식이 흐리게 번졌다. 해온은 날짜와 서랍 번호를 자기 노트에 썼다.

원규칙 첫 장에는 배송 완료의 뜻이 있었다. 수취인이 물건을 받아야만 완료가 아니었다. 본인확인을 거쳐 거부를 기록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까지 배송원의 일이라고 했다. 해온은 자신이 만든 줄 알았던 보류 절차가 훨씬 전부터 여기 있었음을 알았다. 배운 것을 실천했다는 기쁨과, 자신보다 오래 일한 사람들의 실패가 이 규칙에 들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같이 왔다.

마지막 선택은 더 놀라웠다. 원규칙에는 백 번을 마친 배송원에게 ‘이동권’을 준다는 말이 없었다. 잘못 전달된 이름의 권리를 원부로 돌리는 임무를 맡을지, 자기 계약의 책임을 끝내고 떠날지 물을 뿐이었다. 떠나기를 택해도 그동안 확인한 피해기록을 없앨 수 없고, 복원을 택해도 혼자 모든 이름을 되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그 보수는 누가 넣었죠?”

담당자가 속장을 확인했다. 인쇄된 면의 구멍 간격은 맞았지만 반출도장의 모서리가 잘려 있었다. 원규칙의 발급인 자리에는 세 점이 일렬로 찍혀 있었다. 해온의 함 안쪽과 같은 모양이었다. 가운데 점만 다른 먹이었다.

“이 장이 언제부터 붙어 있었습니까?” 채원이 물었다.

담당자는 일지를 펼쳤다. 원규칙 원본은 지난 두 달 동안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대신 발급 양식의 빈 등 수십 장이 재고 점검 전에 서쪽 배차소로 옮겨졌다. 이동을 승인한 사람과 인수한 사람의 서명이 있었지만, 인수인의 이름 일부가 닳아 있었다. 담당자는 닳았다는 이유로 서명을 추측해 읽지 않았다.

해온은 두 번째 등을 구겨 버리고 싶었다. 그의 눈이 아침부터 그 종이에 붙어 있었던 이유가 그 안에 있었다. 누군가 자기에게 주겠다는 값을 끼워 넣어, 이름을 복원할 때도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익이 가짜라면 마음이 곧 깨끗해지는가. 방금까지 그 값을 계산한 자신은 그대로 남았다.

콩쇠는 열람대 건너편에서 종이의 모서리만 보았다. 원본을 해온에게 넘기지 않은 것이 불만스러워 입술을 내밀었다. 하지만 담당자가 다른 배송원의 이름을 가리자 먼저 뒤로 물러났다.

“그럼 이것도 위조라고 못 박아요?”

“출처를 확인해야 해.” 채원이 말했다. “원규칙과 다른 내용이라는 것과 누가 끼웠는지는 별개야.”

담당자가 해온의 함에 붙은 장을 떼어 비교하려고 하자 해온이 손을 올렸다. 전날 자신에게 뜯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떼기 전 상태를 기록해 주세요. 제가 가져갈 계약도 필요합니다.”

세 사람은 열람대에서 접힌 선, 실의 방향, 먹이 번진 위치를 나란히 그렸다. 담당자는 봉인봉투에 계약 전체를 넣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 모습의 복제 압착본과 열람기록을 보관했다. 원본은 해온에게 돌아왔다. 들고 나올 때 그는 그것이 더 무거워졌다고 느꼈다.

계단 앞에서 콩쇠가 물었다. “넌 떠날래, 남을래?”

“아직 백 번째 배송도 안 왔는데요.”

“그래서 지금 물어보는 거야. 그날 급하면 백결이 파 놓은 빈칸에 답을 쓸 테니까.”

해온은 멀리 편의점 방향을 봤다. 점주가 오후 진열을 대신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떠나면 다시 평범한 야간 근무만 남을까. 이미 알게 된 이름과 피해자들의 얼굴이 평범함 속에서도 보일 텐데. 남으면 그들이 살아갈 돈과 자기 잠을 누가 마련할까. 두 답 모두 결심 한마디로 가벼워지지 않았다.

돌아가려던 담당자가 다시 해온을 불렀다. 열람대 아래쪽에 얇은 덮개 하나가 더 있었다. 빈 등 양식을 잘못 인쇄했을 때 남기는 폐기 견본이었다. 쓰다 만 종이라서 내용은 한 줄뿐이었지만, 세 점을 찍는 순서는 보였다. 바깥 종이에 점을 찍고 마르기 전에 안쪽 등을 눌러야 가운데가 조금 번졌다. 해온의 계약함 바깥면에는 그 번짐이 없었다. 안쪽 면에만 검은 점이 살아났다.

“나중에 덧붙인 장이라고 단정해도 됩니까?” 해온이 물었다.

“이 방법대로 찍었다면.” 담당자가 답했다. “다른 도구를 썼을 수도 있으니 종이와 반출 시각을 함께 봐야죠.”

채원은 그 차이를 기록에 추가했다. 백결이 눈앞에서 조항을 만든 마법 같은 설명보다, 누군가 양식을 손에 넣고 실을 다시 꿰었을 가능성이 더 무서웠다. 그 손은 서랍을 열 수 있었고 반출목록을 쓸 수 있었다. 해온은 창립원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먼 옛날의 무거운 책을 떠올렸지만, 실제 사건은 창고 재고표 옆에서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담당자는 견본을 넣으며 물었다. “당신은 이 계약 때문에 계속 일해야 합니까?”

“지금까지는 그랬어요.”

“그러면 오늘 열람한 내용으로 바로 중지 신청을 할 수도 있어요. 심사 중 보류될 수는 있지만, 신청을 넣는 권리는 있습니다.”

해온은 뜻밖의 말을 듣고 계약함을 내려다봤다. 처음으로 백 번째 해 뜰 무렵이 아닌 내일을 생각했다. 내일 배달을 쉬면 편의점 교대만 하면 된다. 몸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열한 이름의 동결과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배달경로는 누가 이어받을까. 콩쇠가 대신 짊어져야 할지도 몰랐다. 쉬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남에게 무심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해온은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말해야 했다.

“접수서류 주세요. 오늘 제출하겠다는 건 아니고, 조건을 읽어 볼게요.”

담당자는 한 장을 건넸다. 신청하면 그날부터 배달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대체 배송원 지정과 미배송 사유기록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해온이 첫날 알았더라면 무작정 종이를 찢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읽어 볼 시간이 있었다. 그는 계약함과 서류를 따로 가방에 넣었다. 선택을 미루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에게 불운이 옮지 않게 하는 절차가 있다는 사실이 작게나마 숨통을 틔웠다.

“그날에 내가 어느 쪽을 택하든,” 해온이 말했다. “남의 이름을 보수처럼 받아서는 안 되겠네요.”

콩쇠는 잠시 웃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할 수 있는 선택이네.”

채원은 반출기록의 사본을 가지고 서쪽 배차소 보관담당에게 확인 요청을 보냈다. 서명을 콩쇠 것으로 몰아갈 수 있는 닳은 획이 있었다. 콩쇠는 사본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분실방울 신고를 늦춘 사실과, 양식 뭉치를 받은 사람이 자신인지 아닌지를 분리해서 확인하겠다고 했다.

“또 내 이름을 누가 쓰면 이번엔 먼저 불러.”

“부르기 전에 확인부터 하자.” 해온이 말했다.

“그 말이 좀 얄밉긴 한데 맞아.”

콩쇠는 사본을 반으로 접었다가 다시 폈다. 접힌 자리가 서명 위를 지나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밀었다. 해온은 그의 손이 아직 조금 떨리는 것을 보았다. 지난번에는 신고가 늦었다는 말부터 꺼내느라 겁먹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혼자 가기 싫으면 같이 가요. 대신 기록에는 본인이 본 것만 적어요.”

콩쇠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에 돌아가니 조끼 입은 요괴가 문 앞에서 기다렸다. 수선가게와 분할 일정 첫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그는 해온에게 안전핀을 돌려주려다 손이 멎었다. 이름표는 아직 새로 꿰매지 못했다. 콩쇠가 대여장부를 펴더니 반납일을 세 밤 뒤로 옮겼다.

“외상 붙습니다.”

요괴가 놀라자 콩쇠가 웃었다. “농담값은 내가 낼게.”

작은 웃음이 끝난 뒤 해온은 반출기록 사본 아래에 붙은 한 줄을 보았다. 빈 등 양식이 옮겨진 날, 서쪽 배차소에서 열한 개가 다시 나왔다. 수량은 맞았지만 반환물의 분류가 ‘계약지’가 아니라 ‘중간 소포 안감’이었다. 그날 문지기 계정은 새벽까지 살아 있었다. 해온이 채원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냉장고 안쪽에서 발급방울 소리가 한 번 울렸다. 주문표가 달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여전히 빈 등 한 장을 접고 있는 소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