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36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닫힌 손잡이

노란 표찰에는 닫힘이라고 쓰여 있었다. 강만석은 그 두 글자를 보고 잠깐 헛웃음을 냈다. 배의 연료통에도 같은 말을 적어 놓은 적이 있었다. 아들이 손잡이를 반대로 돌린 날이었다. 글씨가 기름을 막아 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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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표찰에는 닫힘이라고 쓰여 있었다. 강만석은 그 두 글자를 보고 잠깐 헛웃음을 냈다. 배의 연료통에도 같은 말을 적어 놓은 적이 있었다. 아들이 손잡이를 반대로 돌린 날이었다. 글씨가 기름을 막아 주지는 않았다.

“오늘 저걸 여는 겁니까?”

작업반장 오재호가 고개를 저었다. “저것만 믿고 열었던 적이 있는지부터 보려고요.”

배관 주변에는 지난 관편 채취 때 없던 회수용 용기가 놓여 있었다. 잘라낸 자리는 봉합된 채였고, 임시 격리 표식도 그대로였다. 시험책임자가 새 점검표에 서명하기 전에는 아무도 밸브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만석이 서 있는 입회선과 작업자 선 사이에는 빈 공간이 한 줄 더 생겨 있었다. 그는 가람에게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려다, 망원 화면에 자기 장화가 크게 잡힌 것을 보고 발을 거두었다.

“발끝 증거는 제가 제일 많이 냈겠네요.”

서가람이 화면을 돌려 주었다. “오늘은 관 쪽으로 양보하시죠.”

작업 준비는 당초 안내한 시각을 넘겼다. 회사 생산팀 직원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재호를 불렀다. 멈춰 둔 세척 작업 때문에 다음 교대가 밀리고 있다고 했다. 재호는 점검표 끝의 빈칸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여기 확인이 안 됐습니다.”

“어제 확인한 것 아닙니까?”

“어제 채취 구간하고 오늘 시험 경계가 다릅니다.”

직원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민 둘, 변호사, 양측 전문가, 촬영을 맡은 기록원. 사람들 앞에서 일정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재호에게만 말했다. 만석에게 문장은 들리지 않았지만, 재호가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는 모습은 보였다.

“그러면 책임자한테 직접 확인해 주세요. 제 서명부터 달라고 하지 마시고요.”

직원이 돌아선 뒤에도 재호는 펜을 다시 잡지 않았다. 안전팀 확인을 기다리는 동안 자기 장갑의 손등을 문질렀다. 왼쪽 손가락 하나가 오른쪽보다 덜 구부러졌다. 만석은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사람 손에 남은 일까지 오늘 증거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배세희는 양측이 보는 화면에 시험 구간을 띄웠다. 현재 생산 계통과 분리하고, 관편을 채취한 곳의 임시 봉합 상태를 기록한 뒤, 회수 가능한 닫힌 시험 범위 안에서 밸브 기능을 확인한다는 설명이었다. 바다로 물을 흘려 보내는 시연이 아니었다. 만석이 작은 도면을 가리켰다.

“물이 이쪽으로 넘어오면, 조개 죽인 물도 여기로 왔다는 겁니까?”

“오늘 확인할 건 닫혀 있다고 표시된 밸브가 실제로 막느냐는 것입니다.” 최다온이 말했다. “과거에 무엇이 얼마나 왔는지는 다른 자료와 이어야 해요.”

“어제도 잇는다고 했는데.”

다온은 맞다고 했다. 변명처럼 말을 늘이지 않았다. 대신 만석에게 화면을 넘겨 주었다. 어느 부분이 시험 중 달라지는지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만석은 안경을 벗어 닦았다. 같은 화면이라도 들고 있으니 남의 일을 구경하는 기분이 조금 줄었다.

작업 승인이 난 것은 점심을 삼십 분 남긴 때였다. 재호는 작업반을 다시 불러 경계와 중지 신호를 확인했다. 아무도 손잡이를 힘으로 비틀지 않았다. 관편 채취 이후 바뀐 부분은 기록원이 따로 찍었다. 회사 전문가 상호는 촬영 순서를 바꿔 달라고 했다. 닫힘 표시만 확대하지 말고 시험 전 전체 상태부터 남기자는 요구였다.

만석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유리한 사진을 못 찍게 막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전 관의 윗면과 아랫면을 같이 보자고 했던 사람도 상호였다. 만석은 화면을 조금 뒤로 물렸다. 붉은 손잡이와 노란 표찰, 임시 격리 표시가 한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첫 관찰에서는 아무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생산팀 직원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만석은 그 숨소리에 마음이 급해졌다. 저 밸브가 제대로 닫힌 것으로 끝나면 땅속에서 나온 관도, 열네 운전 구간도 전부 헛일처럼 취급할 것 같았다. 그는 다온의 얼굴을 보았다. 다온은 화면 대신 기록 담당자의 시계를 보고 있었다.

잠시 뒤 회수부의 계측값이 움직였다.

재호가 손을 들었다. 누군가 환호하려고 숨을 들이마신 바로 그때 시험이 멈췄다. 설비팀은 유입 경로를 다시 확인했다. 준비 과정에 남았던 물인지, 시험 대상 밸브를 넘어온 것인지 구별하지 않고 계속할 수는 없었다. 회사 직원이 “잔류수겠죠”라고 말했다. 만석은 “새는 거잖아”라고 거의 동시에 말했다.

다온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둘 다 아직 적지 마세요.”

만석은 자신이 들고 있던 수첩을 내려다봤다. 이미 첫 글자를 써 버렸다. 그는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찾다가 펜이라는 걸 깨달았다. 옆에 있던 재문이 말없이 자기 연필을 건넸다. 만석은 필요 없다고 손을 흔들고, 써 놓은 글자에 한 줄을 그었다. 지운 자리까지 남겨 두기로 했다.

점심은 한 시간 늦어졌다. 은실이 공장 밖에서 도시락 상자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한 열네 개 가운데 두 개는 생선 반찬을 빼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름 대신 뚜껑 모서리에 빨간 점을 찍었다. 만석이 그 두 개를 먼저 들자 은실이 손등을 가볍게 쳤다.

“입회자 우선 아니에요.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줄 알았나.”

“몰랐으니까 집었겠죠.”

재호가 웃다가 자기 도시락을 두고 전화기를 꺼냈다. 어린 딸이 학교를 마쳤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오늘 데리러 못 간다고 쓰고 한참 전송하지 않았다. 생산팀 직원도 도시락을 들고 옆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까 내려놓은 펜이 아직 있는 것 같았다.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딸이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재호는 삼 학년이라고만 답했다.

만석은 자기 생선 한 토막을 재문 도시락으로 옮겼다. 재문이 왜 그러냐고 하자 그는 뼈가 귀찮다고 했다. 어제 밧줄값을 대신 내겠다는 말을 거절당한 뒤 찾은 작은 구실이었다. 재문은 알아채고도 생선을 돌려주지 않았다.

오후 시험에서는 준비 단계의 잔류 영향을 따로 확인했다. 만석은 빈 화면을 다시 지켜봤다. 촬영 담당자는 기다리는 동안 장비를 끄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일이 없다는 이유로 앞부분을 잘라 내면, 나중에 갑자기 숫자가 생긴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재호가 신호를 주자 정해진 관찰이 시작됐다.

밸브 뒤쪽에서 다시 변화가 잡혔다. 이번에는 준비 때 남은 양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재호는 결과를 소리 내 읽지 않고 두 기록 담당자가 각자 적기를 기다렸다. 상호가 먼저 현장을 확인하겠다고 했고, 다온도 뒤따랐다. 입회선을 지키던 만석은 모니터에서 두 사람의 등을 보았다. 관을 보는 얼굴보다 결론을 들을 자기 얼굴이 더 굳어 있을 것 같았다.

“시험 조건에서 밀폐가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상호가 말했다.

생산팀 직원이 물었다. “밸브만 고치면 되는 거죠?”

“오늘 확인한 부분은 그겁니다. 나머지 구간까지 안전하다는 말은 못 합니다.”

상호의 말을 듣고 만석은 비로소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기 편 전문가가 아니라 회사가 부른 사람이 말한 결론이었다. 그는 재문을 보았다. 재문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큰 소리를 내면 오랫동안 기다린 사실이 도망갈 것처럼 둘 다 조용했다.

작업자는 손잡이에 새 표찰을 달았다. 기존 닫힘 표찰은 버리지 않고 기록 후 별도 보관했다. 새로운 표찰에는 기능 확인에서 이상이 있었다는 내용과 사용 제한이 적혔다. 만석은 표찰을 보고도 “이제 안 새는 거냐”고 묻지 않았다. 시험이 끝난 뒤 격리가 유지되는지, 누가 교대조에 알리는지 물었다. 재호는 전달받을 사람의 이름이 있는 칸을 보여 주었다.

“그 사람 퇴근하면요?”

재호가 다음 칸을 가리켰다. 교대 인계 서명이 비어 있었다. 그는 그 칸이 채워지기 전에는 작업반을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생산팀 직원은 이번에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대신 전화기를 꺼내 야간 책임자를 불렀다.

현장 밖으로 나오는 길에 태곤이 만석을 붙잡았다. 오늘 시험 협조로 늦어진 다음 교대 시간을 회사가 각자 연차로 처리하겠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만석은 자기도 하루를 비웠다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같은 손해라는 말로 서로의 손해를 지워 버릴 수 있었다.

가람이 둘 사이에 섰다. “아직 결정된 통지가 있습니까?”

태곤은 없다고 했다. 작업반 단체방에 올라온 말뿐이었다. 가람은 서면으로 확인할 항목을 적었다. 실제 근무시간, 대체업무 지시, 임금 처리 주체. 만석이 말했다. “마을 요구서에도 임금 유지 들어 있습니다. 그 줄은 빼지 마세요.” 태곤은 그제야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자신들을 부두 밖 사람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는 표시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해가 지기 전, 세희가 보수 완료통지 사본을 가져왔다. 오늘 문제가 드러난 밸브의 번호가 거기 있었다. 완료 칸에는 도장이 찍혀 있었고, 첨부사진 두 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이 복사에서 빠졌을 수도 있어요.” 세희가 먼저 말했다.

만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급하게 거짓말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두 번의 시험을 기다린 뒤였다. 빈 뒷장을 보고 곧장 답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앞장의 날짜를 짚었다.

“그날 이걸 확인한 사람은 있습니까?”

세희가 도장 옆의 발신자 이름을 봤다. 자기 이름이었다. 손가락이 종이 모서리에 멈췄다.

“제가 보냈습니다.”

만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같이 시험을 지켜보던 사람이 빈 사진 두 장의 바깥에 서 있었다. 세희는 종이를 뒤집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 뒤집었다. 바람에 들린 뒷면이 잠깐 만석의 무릎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