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마른 층 사이의 밤
최다온은 관 안쪽 침전물을 얇게 잘라 유리판 위에 놓았다. 진한 띠와 옅은 층이 번갈아 있었다. 갯벌을 일구며 살던 강만석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양이었다. 바다에서 가져온 밧줄은 젖었다 마를 때마다 소금이 남았다. 하지만 다온은 그에게 손을 대 보라고 하지 않았다. 관의 안쪽에 남은 것은 아직 무엇이 어느 날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물질이었다.
최다온은 관 안쪽 침전물을 얇게 잘라 유리판 위에 놓았다. 진한 띠와 옅은 층이 번갈아 있었다. 갯벌을 일구며 살던 강만석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양이었다. 바다에서 가져온 밧줄은 젖었다 마를 때마다 소금이 남았다. 하지만 다온은 그에게 손을 대 보라고 하지 않았다. 관의 안쪽에 남은 것은 아직 무엇이 어느 날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물질이었다.
“줄무늬가 열네 개면 열네 번 흘린 거죠?” 만석이 물었다.
“그렇게 세면 안 됩니다. 한 번 흘러도 여러 층이 생길 수 있고, 두 번 흘러도 하나로 붙을 수 있어요.”
“그럼 뭘 세는 겁니까?”
“먼저 날짜가 남은 운전기록에서 확인할 구간을 고릅니다. 이 층 하나에 그 날짜를 붙일 수는 없어요.”
배세희가 세척일지 상자를 열었다. 12년치가 모두 있지는 않았다. 종이로 남은 몇 해와 전자기록의 일부가 이어졌다. 야간 세척펌프의 전류곡선은 특정 밤에만 길게 솟았다. P-17은 공식 운전표에서 이미 사라진 관이었으므로, 곡선이 그 관을 통과한 물을 곧장 뜻하지는 않았다. 다온은 띠의 성분과 전류, 조석, 앞서 얻은 퇴적 코어의 위치를 겹쳐 볼 수 있는 기간만 골랐다.
만석은 유리판 앞에서 물러나 세희의 상자를 보았다. 세희가 회사 직원으로 입회했다는 이유로 어민 일부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보고 싶은 옛 날짜를 가장 많이 찾아낸 사람도 세희였다. 만석은 믿음과 필요 사이에서 말을 골랐다.
“그때 일지 누가 썼습니까?”
“교대기록은 현장 반장이 썼고 전류는 자동으로 남았습니다.” 세희가 대답했다. “제 이름이 들어간 해는 뒤쪽이에요.”
“당신이 들어오기 전이면 회사가 마음대로 쓴 거 아닙니까?”
“그럴 수 있으니까 전류와 다른 자료도 같이 보자는 거예요.”
만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과하지는 않았다. 세희도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둘의 대화에는 아직 갯벌의 빈 어장과 공장의 출근버스가 같이 들어 있었다.
분석실 밖에서 가람은 긴급지원 접수 상황을 확인했다. 지원창구가 처음 멈췄던 날부터 어민들이 모아 온 조업장부가 있었다. 그러나 잠정 지급은 일부 가구에서 또 늦어졌다. 새 자료가 나오면 행정기관이 전체 책임 판단을 기다리려는 버릇이 있었다. 가람은 담당자에게 오늘의 침전분석이 생계지원의 선결조건이 아니라고 다시 말했다.
“피해가 이어지는 건 이미 확인했잖습니까. 원인기간을 오늘 한 번에 끝내는 건 다른 문제예요.”
전화 너머 담당자는 서류를 더 달라고 했다. 가람은 필요한 항목을 좁혀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 막연한 ‘추가자료’는 사람을 창구 앞에 다시 세울 뿐이었다. 통화를 마친 뒤 그는 만석이 보낸 사진을 봤다. 빈 배 옆의 아이가 죽은 조개껍데기를 줄 세우고 있었다. 아이가 누군지 묻지 않았다. 그 사진을 소송자료로 쓰기 전에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지원을 서두를 이유로만 마음에 남겼다.
오후의 공동 분석에서 회사 전문가 상호는 침전띠를 다시 세었다. 그는 몇 층이 서로 붙었는지, 일부가 나중에 씻겨 나갔는지 묻고, 니켈 함량이 높은 부분만 따로 표시했다. 다온은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둘이 확인한 것은 층의 정확한 개수가 아니라 한 번의 사고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반복된 젖음과 마름이었다.
“보존된 일지와 전류기록에서 서로 맞는 운전 시간창이 열네 군데 있습니다.” 다온이 말했다.
상호가 물었다. “열네 번 방류됐다는 뜻입니까?”
“아니요. 두 운전자료가 맞는 구간입니다. 관의 반복층은 오래 반복된 사용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각 층을 그 열네 밤에 배정할 연대 표지는 없습니다. 그 밤에 물이 이 관으로 왔는지부터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만석이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열네 번 유출’이라고 쓰지 않았다. ‘최소 열네 구간 대조’라고 적었다. 자신의 말을 줄이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일 누가 그 말을 공격하더라도 남을 부분을 쓰고 싶었다.
저녁 마을회관에서는 어민과 공장 노동자가 다시 모였다. 전날 관편의 기간이 18개월에서 5년이라는 보도가 돌았다. 누군가 ‘12년 은폐 확정’이라는 제목을 붙여 공유했고, 다른 누군가는 ‘최근 한 달 사고’라고 반박했다. 둘 다 오늘 자료와 달랐다. 만석은 회의 시작 전에 휴대전화를 들었다.
“내가 둘 다 지워 달라고 했습니다.”
재문이 물었다. “그럼 뭐가 남아요?”
“땅속에 P-17이 있고, 관이 오래 상했고, 반복해서 젖고 말랐다는 것. 정확히 언제부터 샜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면 회사가 빠져나가잖아.”
“못 빠져나가게 하려고 정확히 말하는 거야.”
재문은 입을 다물었다. 지난번 표결에서 반대한 사람으로 지목됐지만 오늘은 회관에 와 있었다. 마을이 합의한 다섯 줄 요구에는 자신도 속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석은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공장 노동자 대표 태곤은 손을 들었다. “지금도 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공정이 계속 돌아가면 저희도 안에 있어요.”
만석은 처음에 ‘당신들은 안에라도 들어간다’고 말할 뻔했다. 대신 말했다. “맞아요. 위험공정 정지와 임금유지를 같이 요구했죠. 오늘 자료가 그 조치를 더 급하게 하는지 가람 변호사한테 묻겠습니다.”
가람은 현재 누출 여부를 확인하는 안전조치와 과거 손해기간을 정하는 심리가 분리돼 있다고 설명했다. 좁은 공정의 정지와 대체작업, 선지급 방식은 재판부가 아직 판단 중이었다. 오늘 침전띠만으로 명령이 바로 나오지는 않지만, 반복 위험을 보여 주는 자료로 제출할 수 있었다. 태곤은 ‘판단 중’이라는 말을 싫어했으나, 적어도 공장 전체를 단번에 닫자는 주장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회관을 나설 때 세희는 출근버스를 기다리는 노동자 몇 명과 마주쳤다. 한 사람이 물었다. “우리 공정 내일부터 서는 거예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확인되면 작업반에 먼저 알릴게요.”
“또 뉴스가 먼저 알면요?”
세희는 대답을 서둘렀다가 멈췄다. 지난번 야간 세척 기록이 환경팀보다 생산본부에서 먼저 돌았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이 알지 못한 것은 알지 못했다고 해야 했다.
“그런 일이 없게 공정별 안전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내가 확인한 건 그때 직접 말하겠습니다.”
노동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버스에 올랐다. 세희는 휴대전화를 열어 오래된 일정표를 찾았다. 일지와 전류기록이 함께 남은 열네 구간 중 가장 이른 야간 세척일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날짜를 보고 그녀의 손이 멈췄다. 회사가 환경책임 보험을 새로 들기 위해 외부 위험평가를 받던 기간이었다. 침전층에서 읽어 낸 날짜는 아니었지만 당시 보낸 설비 설명을 찾아볼 이유는 생겼다.
한편 만석은 부두에 돌아와 재문의 배 밧줄을 갈아 주었다. 배가 매일 나가지 않아도 밧줄은 소금과 햇볕에 닳았다. 오래 묶인 배는 뜻밖에도 더 손이 갔다. 재문은 새 밧줄값을 자기 장부에 적다가 펜을 멈췄다.
“이것도 피해액에 넣나?”
“평소에도 갈았을 거면 다 넣을 순 없지.” 만석이 답했다.
“그럼 어느 만큼이 이번 일 때문인데?”
만석은 오래된 밧줄과 새 밧줄을 나란히 놓았다. 배를 묶어 둔 시간이 늘어 마모가 생긴 건 분명했지만, 일 년 전 언제 갈았는지는 둘 다 기억이 흐렸다. 그는 재문에게 날짜를 지어 내지 말자고 했다. 재문이 헛웃음을 쳤다. “변호사 다 됐네.”
“아니. 자네가 나중에 돈 달라고 할 때 내 말 때문에 틀렸다 소리 들을까 봐.”
재문은 말없이 밧줄 끝을 잡아 줬다. 둘이 팽팽하게 당기자 낡은 섬유가 뚝 끊어졌다. 오래 버틴 것과 지금 끊어진 것은 다른 일이었다. 만석은 오늘 본 관의 핀홀을 떠올렸다. 누출의 시작을 모른다고 해서 관이 멀쩡했다는 뜻은 아니었고, 관이 오래됐다고 해서 바다에 언제부터 물질이 왔는지 곧장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밧줄을 묶은 뒤 재문이 물었다. “첫 세척일이 보험하고 겹친다며?”
“그렇대. 그런데 그때 회사가 뭘 알았는지는 아직 못 봤어.”
“이번엔 먼저 화내지 않는군.”
“화를 안 낸 건 아니야.” 만석은 풀리지 않는 매듭을 한 번 더 당겼다. “이 줄을 누가 언제 갈았는지 모른다고 내 배가 묶여 있는 걸 없던 일로 만들 순 없잖아. 그래서 정확히 말하려는 거야.”
다음 날 법정에서 가람은 운전자료에서 찾은 14개의 대조구간을 제출했다. 다온은 각 띠가 그 구간이나 한 차례 배출과 대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상호는 회사의 최근 토양공사 손상 가설을 유지하되, 관 안의 반복층이 더 오래됐다는 분석에는 반박자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원은 어느 쪽 기간을 아직 인정하지 않았다. 반복 사용의 흔적과 날짜가 있는 운전자료, 실제 손해기간은 아직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심리가 끝나자 만석은 세희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첫 날짜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때 회사가 보험사에 우리 설비 위험을 설명했어요.”
“설명했어요?”
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무엇을 보냈는지는 아직 문서를 봐야 합니다. 경고가 있었는지, 누가 읽었는지도요.”
만석은 그 대답을 기다렸다. 예전 같으면 ‘또 모른다’고 화냈을 것이다. 지금은 세희가 문서를 꺼내기도 전에 누군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갯벌로 돌아가면 흰 껍데기는 여전히 발밑에 남아 있다. 조심스러운 말이 그 위를 건너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세희는 일정표의 첫 날짜 옆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위험평가가 진행되던 첫 주였다. 누출이 그때 이미 있었는지, 회사가 무엇을 알았는지는 다음 자료가 말해 줄 것이다. 지금 확실한 것은 바다의 죽음이 하루 밤의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