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폐기 직전의 업라이트
업라이트피아노는 이번에도 연주되지 않았다.
업라이트피아노는 이번에도 연주되지 않았다.
대신 자산심의실 스피커에서 녹음된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회의실 한쪽 벽은 유리였고, 그 너머 악기창고에 검은 피아노가 보였다. 폐기 스티커와 칠 일 보존표가 겹친 옆구리가 마치 두 번 선고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민혜주는 피아노가 아니라 의자들을 먼저 세었다. 자산팀 두 명, 보존팀 한 명, 조사팀 한 명. 빈자리 하나는 운송업체 몫이었다.
“업체에서는 오늘도 대기료를 청구했습니다.” 자산팀장이 말했다. “앞으로 폐기 악기 여섯 대가 같은 공간을 씁니다. 이 한 대 때문에 동선이 막혀요.”
최노을은 유리창 너머 피아노를 보며 말했다. “벽 쪽으로 삼십 센티미터 더 붙이면 동선 나옵니다.”
“조사팀이 현 위치를 유지하라면서요.”
“이동 전후 바닥 표시하면 됩니다.”
혜주가 노을을 노려봤다. “그 말은 앞서 액션 검사할 때 해 주시지.”
노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는 원래 위치를 남기는 게 먼저였고, 오늘은 검사 뒤 상태가 고정됐으니까요.”
한이솔은 두 사람의 말 사이에 피아노 자산 이력표를 놓았다. 1998년 9월 수리 발송. 일주일 뒤 재입고. 발송지는 화영역 창고. 차량번호 끝 네 자리 4712.
강태오는 기록관에서 제한 출입 신청을 보완하느라 오지 못했다. 그가 보낸 메시지는 한 줄이었다.
`4712 차량의 다른 운송장을 찾아 주세요.`
자산팀장이 이력표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피아노 수리 맡긴 게 원반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아직 상관있다고 결론 낸 게 아닙니다.” 이솔이 말했다. “같은 창고를 거쳤다는 기록이 나왔고, 그 안에서 액션 하나가 바뀐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액션만 보관하세요. 껍데기까지 붙들지 말고.”
유리 건너편에서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검은 피아노 표면에 회의실 사람들의 얼굴이 겹쳤다가 사라졌다.
이솔은 47초 원반을 처음 보았을 때 태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빈 원반 아닙니까. 가치가 없다는 판단은 늘 물건보다 먼저 도착했다. 수인의 이름이 급여칸에서 지워졌을 때도, 연주가 무음으로 바뀌었을 때도 누군가는 남은 것을 쓸모없는 공백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액션과 본체를 나누면 어느 부품이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이솔이 말했다. “지금은 그 관계 자체를 보는 중입니다.”
“언제까지요?”
혜주가 칠 일 보존표를 펼쳤다. “오늘이 닷새째입니다. 이틀 안에 본 보존 전환 사유가 없으면 기존 폐기 절차로 돌아갑니다.”
심의실 문이 열리고, 회색 작업복을 입은 운송업체 기사가 들어왔다. 자리에 앉지 않고 모자를 두 손에 쥐었다.
“차량 4712를 찾으셨다고요?”
“당시 운전하셨습니까?” 혜주가 물었다.
“그때 저는 배차 보조였습니다. 차량은 아버지가 몰았고요. 번호는 기억합니다. 회사 첫 냉방탑차였어요.”
기사는 모자를 무릎에 놓고 챙의 갈라진 실밥을 만졌다. “아버지는 차 소리를 사람 목소리보다 잘 들었습니다. 벨트가 헐거우면 출발하기 전에 알고, 짐이 한쪽으로 쏠리면 백미러만 보고도 세웠어요. 집에서는 말이 없었는데 차고에서는 하루 종일 중얼거렸죠.”
“무슨 말을요?” 이솔이 물었다.
“짐한테요. 오늘은 멀리 간다, 비 온다, 조금만 버텨라.”
자산팀장이 헛기침을 했지만 이솔은 웃지 않았다. 사람은 말없는 물건에 말을 걸면서도 그 대답을 멋대로 받아쓰곤 했다. 기사의 아버지가 남긴 수첩은 화물의 목소리가 아니라 운전자의 하루였다. 그래서 더 조심해서 읽어야 했다.
그가 가져온 것은 운행일지가 아니라 오래된 정비수첩이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폐업한 차고에서 챙겨 둔 것이라고 했다. 표지는 기름으로 검게 물들었고, 차종과 타이어 교체일 사이에 운송지가 짧게 적혀 있었다.
자산팀장이 물었다. “공식 기록입니까?”
“아닙니다. 차가 어디서 말썽 났는지 적은 겁니다.”
이솔은 수첩을 바로 받지 않았다. “오늘 가져오시기 전까지 어디에 있었습니까?”
“제 가게 금고요. 아버지 유품이니까.”
기사의 손이 표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돈이 되는 물건도 아니고, 누군가의 권리를 증명하려 남긴 것도 아니었다. 고장 난 차와 아버지의 하루를 붙잡기 위해 보관한 수첩이었다.
“원본은 가지고 계십시오.” 이솔이 말했다. “해당 쪽을 입회 아래 촬영해도 될까요?”
기사는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1998년 9월 17일, 차량 4712는 화영방송국에서 화영역 창고로 `악기 부품 1상자`를 운송했다. 일주일 뒤 같은 상자를 방송국으로 돌려놓았다. 여기까지는 자산카드와 같았다.
문제는 그 사이 날짜였다.
9월 19일, 4712는 같은 창고에서 `음반 상자 12`를 싣고 윤태문 제작실 별관으로 갔다. 수첩에는 `습기, 덮개 두 겹`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회의실 안에서 누구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스피커의 오래된 전류음만 낮게 흘렀다.
“열두 상자입니까, 원반 열두 장입니까?” 자산팀장이 물었다.
“상자 열둘이라고만 돼 있습니다.” 이솔이 대답했다. “원반 수량은 여기서 알 수 없어요.”
기사가 수첩을 들여다봤다. “아버지는 장을 `장`이라고 썼습니다. 상자는 늘 숫자만.”
“당시 화물을 보셨습니까?”
“천막 덮인 사각 상자는 봤는데 안은 못 봤습니다. 냉방탑차라고 해도 그 차는 냉기가 약해서 아버지가 습기 많은 화물 싫어했어요.”
노을이 물었다. “덮개 두 겹은 비닐이었습니까, 천이었습니까?”
기사는 눈을 감았다. “모르겠습니다. 냄새는 기억나요. 젖은 종이하고… 오래된 니스 냄새.”
이솔은 그 기억을 운송품 특정에 쓰지 않았다. 다만 기사가 실제 운송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는 보조 정황으로만 남겼다.
자산팀장은 여전히 피아노를 보았다. “같은 차량이 우연히 두 물건을 실었을 수 있죠.”
“맞습니다.” 이솔이 말했다.
“그런데도 폐기를 멈추자고요?”
“우연인지 확인할 수 있는 부품이 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심의실에서 나와 창고로 갔다. 노을이 피아노 앞판을 열었다. 해머 열은 처음 열어 검사한 날의 촬영본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이솔은 수인의 카덴차 사본을 꺼내지 않았다. 오늘 필요한 것은 연주자의 손이 아니라 목재의 시간이었다.
백정호가 미리 표시해 둔 저음부 액션 하나는 옆 부품보다 밝았다. 황갈색 목재 사이에서 그것만 꿀빛이 났다. 나사 머리에는 납작 드라이버가 미끄러진 은색 선이 있었고, 받침 펠트 색도 달랐다.
“새 부품이면 그냥 수리한 것 아닙니까?” 팀장이 말했다.
노을이 손전등을 끄고 자연광에서 다시 보았다. “새것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다른 환경에 있던 목재일 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원반을 증명합니까?”
“아니요.” 이솔이 말했다. “이 액션이 창고에 다녀왔다는 수리전표가 있는지부터 찾습니다.”
그는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이 악기가 수인의 손을 기억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모는 여러 사람의 것이고, 47초의 의자 소리도 이 방의 피아노와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피아노 부품을 창고로 보냈고, 같은 차량이 이틀 뒤 음반 상자를 옮겼다. 그 평범한 움직임은 감상보다 끈질겼다.
운송업체 기사가 건반 덮개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피아노 싣는 걸 싫어했습니다. 아무리 묶어도 안에서 소리가 난다고.”
“무슨 소리요?” 자산팀장이 물었다.
“길이 울퉁불퉁하면 현이 울어요. 차 뒤에서 누가 계속 한 음을 누르는 것처럼.”
그 말에 이솔은 앞서 지게차 진동을 받아 울던 가느다란 현을 떠올렸다. 이동하는 피아노는 스스로 연주하지 않는다. 도로가 때린 만큼 울 뿐이다. 그 소리를 누군가의 메시지로 부르지 않아도, 물건이 어떤 길을 지났는지는 남는다.
혜주가 심의표의 폐기 칸을 두 줄로 지웠다. 대신 `사건 관련 조건부 보존`에 표시했다.
“칠 일 끝나도 보존합니까?” 자산팀장이 물었다.
“관련성 심사가 끝날 때까지요. 연주 사용은 중지하고, 이동할 때 조사팀과 보존팀이 같이 입회합니다.”
“창고 자리 비용은?”
“제가 예산 사유를 쓰겠습니다.” 혜주는 유리창에 비친 피아노를 보았다. “이름 없는 원반 한 장 때문에 보고서 세 장 늘어난다고 불평한 적이 있어요. 그 세 장 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자산팀장은 끝내 동의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폐기 스티커를 떼어 혜주에게 건넸다. 접착제가 떨어지는 소리가 마른 테이프를 되감는 것처럼 길게 났다.
스티커가 사라진 자리만 검은 도장이 더 짙었다. 이솔은 그 빈 사각형을 보았다. 지운 이름의 자리도, 떼어 낸 가격표의 자리도 주변보다 오래 남았다.
노을은 밝은 액션 하나를 확대 촬영했다. 목재 옆면의 산화색이 달랐고, 나사 홈 아래에는 검은 가루가 끼어 있었다. 창고 먼지인지, 오래된 흑연인지 아직 구분할 수 없었다.
백정호가 사진을 전송받고 전화를 걸어 왔다.
“그 부품, 통째로 뽑기 전에 왼쪽 면부터 보시오. 교체한 조율사는 안 보이는 데 수리번호를 쓰는 버릇이 있었어.”
“누구 버릇입니까?” 이솔이 물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내일 가서 말하겠소.”
통화가 끊겼다. 확대 화면 속 밝은 목재에는 아무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사 하나만 풀면 드러날 왼쪽 면이 검은 틈 안에 숨어 있었다.
피아노는 폐기목록에서 빠졌다.
대신 여든여덟 개 중 하나가 처음으로 조사목록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