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기관실 아래의 발자국
문재필은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문재필은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강해솔이 문 앞에 놓인 운동화를 보았을 때, 재필은 이미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양말의 뒤축이 젖어 있었다. 비가 왔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발이 자꾸 미끄러져서요.”
바닥에는 흰 테이프 두 줄이 붙어 있었다. 청람호 선미 통로의 폭이었다. 한쪽 끝에는 접이식 탁자가 놓였고, 장치가 있던 자리는 빈 종이로만 표시했다. 어제 공구상에서 찍은 렌치 사진은 가방 안에 두었다.
재필이 맨발로 서려 하자 정우찬이 의자를 가져왔다.
“먼저 앉으시죠. 오늘 여기서 배가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알아요.”
재필이 너무 빨리 답했다.
우찬은 의자를 밀어 넣지 않았다. 재필이 잡기 좋은 곳에 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창밖에서 트럭이 턱을 넘었다. 창틀이 한 번 떨렸다. 재필의 오른손이 옆으로 뻗었다가 허공에서 멎었다.
해솔은 그 손을 받지 않았다. 어디를 찾는지 물었다.
“난간.”
재필이 말했다.
흰 벽에는 난간이 없었다.
***
어제저녁 먼저 연락한 쪽은 재필이었다.
말하지 않은 일이 있다는 문자가 왔다. 해솔이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긴 설명 대신 한 문장만 했다.
사람하고 부딪혔습니다.
그 뒤로는 파도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필은 방 안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해솔은 그가 아직 좁은 통로에 서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내일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지금 재필은 의자 끝에 앉아 자기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찬은 녹음기를 켜도 되는지 물었다. 재필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작은 불이 들어왔다.
“어디서부터 말씀하시겠습니까?”
“기관실 벨이 울렸어요.”
그의 손가락이 무릎을 세 번 눌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세 번. 두 번째까지는 서 있었고, 세 번째에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우찬은 이유부터 묻지 않았다. 재필이 입을 열었다가 닫는 동안 그도 기다렸다.
“서비스 통로로 갔습니다. 사람을 찾았어요. 누구를 찾았는지는…… 그 앞에서 누가 뭘 외쳤는데, 이름이었는지 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필은 자기 이마를 누르다가 손을 내렸다.
“또 모르겠다는 말이네요.”
“지금은 통로로 간 데까지 들었습니다.”
우찬이 말했다.
재필은 그 대답을 받아들였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테이프를 보았다.
***
통로에는 세 걸음이면 들어섰다.
재필은 신발을 다시 신고 일어났다. 해솔이 그 옆으로 따라붙자 잠깐 손을 들었다.
“옆에 서지 마세요. 그럼 더 좁아져요.”
해솔은 테이프 밖으로 물러났다. 물속에서라면 필요한 거리였지만, 이 방에서는 재필이 정하는 거리였다.
첫 걸음은 빨랐다. 두 번째는 짧았다. 세 번째에서 오른쪽 어깨가 앞으로 나왔다.
“여기요.”
재필이 멈췄다.
“누가 나왔어요. 앞쪽에서.”
그는 테이프 사이 빈 곳을 가리켰다. 손이 허리 높이에서 올라갔다가 가슴 앞에서 멎었다.
“내가 비켜야 했는데. 아니, 그 사람이 먼저…….”
그의 발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실제 바닥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재필은 접이식 탁자를 잡았다. 탁자 다리가 달그락거렸다.
해솔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만할까요?”
재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찬은 바로 녹음기를 껐다. 재필이 의자에 앉고도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누군가 복사기를 닫는 소리만 났다.
물컵을 가져온 해솔에게 재필이 물었다.
“이렇게 하는 사람 많아요?”
“어떤 사람이요.”
“가만있는 방에서 넘어지는 사람.”
해솔은 컵을 탁자에 놓았다. 적당히 괜찮다는 말을 찾다가, 자기가 아는 것만 말했다.
“저는 배에서 내린 날 욕실 벽을 짚은 적 있습니다.”
재필이 그를 보았다.
“벽이 움직였어요?”
“아뇨.”
“그런데요?”
“그날은 내가 벽보다 바다를 더 믿었나 봅니다.”
재필이 숨을 내쉬었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짧았지만, 그전의 숨과는 달랐다.
“벽한테 미안했겠네요.”
“아직 사과 안 했습니다.”
해솔은 의자를 조금 돌려 앉았다. 테이프 두 줄이 재필의 시야에서 비껴났다.
***
다시 걸을 필요는 없었다.
재필은 앉은 자리에서 이어 말하고 싶다고 했다. 우찬은 중단 전의 동작을 다시 시키지 않았다. 녹음기가 켜진 뒤 재필이 두 손을 맞댔다.
“젖어 있었어요. 내 옷 말고 그 사람 옷이.”
그가 손바닥을 문질렀다.
“미끄러운 소매가 어깨에 닿았고, 왼쪽으로 밀렸습니다. 그때 뭔가 반짝였어요. 여기.”
그는 자기 팔뚝을 가리켰다. 해솔은 어떤 색이냐고 물으려다가 멈췄다. 재필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사띠요. 두 줄처럼 보였는데, 접혀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어요. 얼굴은 안 보였습니다. 가까웠는데도.”
“시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손.”
재필의 대답이 빨라졌다.
“그 사람이 뭘 넣었어요. 주머니에. 짧고 번쩍이는 걸. 렌치 같은…….”
그가 입을 다물었다.
어제 해솔에게 전화할 때는 사람에게 부딪혔다는 말만 했다. 손에 든 물건은 처음 나왔다. 해솔은 가방의 지퍼를 만지던 손을 무릎으로 내렸다.
“끝 모양도 보셨습니까?”
우찬이 물었다.
“아뇨. 손에 가려서. 손잡이 같은 게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그다음은요?”
재필은 빈 탁자를 보았다.
“은색이 옆에 있었어요. 그 레버. 나중에 사진으로 본 것처럼 또렷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땐 그냥 은색 물건이었어요.”
“손을 댔습니까?”
재필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그는 두 손을 한 번 폈다.
“내가 넘어지면서 잡았을 수도 있잖아요.”
우찬은 질문을 바꾸지 않았다. 재필의 시선이 해솔에게 왔다. 자신이 아니었다고 대신 말해 줄 사람을 찾는 눈처럼 보였다.
해솔은 그 부탁을 받지 못했다.
“잡은 게 기억납니까?”
우찬이 조용히 물었다.
재필은 오래 생각했다.
“아니요. 탁자처럼, 뭔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게 기억납니다. 실제 뭘 잡았는지는 없어요.”
그 말을 하고 그는 등을 의자에 붙였다. 무죄라는 말도 유죄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잡았다는 기억이 처음으로 다른 자리에 놓였다.
진술이 끝난 뒤 우찬은 청람호와 정기검사업체에 당시 작업복 지급 사양서와 사진을 요청했다. 재필에게 옷을 고르게 하는 대신, 그가 말한 소매를 자료 쪽에서 찾기로 했다.
***
그날 오후, 해솔은 선미 통로 입구까지 내려갔다.
안으로 들어가는 작업은 아니었다. 기존 촬영에서 바닥에 선처럼 보이던 구역을 더 살필 차례였다. 포집 장비를 확인한 교대팀이 물러난 뒤, 해솔은 입구에 머물러 조명을 낮게 비췄다.
수면의 비 소리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빛이 바닥을 비스듬히 훑었다. 그레이팅 사이에 고인 고운 침전물 위로 넓은 눌림이 있었다. 그 옆으로는 더 좁은 자국이 길게 비껴갔다. 발바닥 무늬는 이어지지 않았다. 끝이 허물어진 곳도 있었다.
해솔은 재필이 미끄러지던 발을 떠올렸다.
바로 그 생각 때문에 조명을 뒤로 뺐다.
자국이 사람 모양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보고 싶은 쪽만 비출 수 있었다. 그는 처음 위치로 돌아가 아직 움직이지 않은 퇴적물까지 같은 화면에 넣었다. 바닥을 건드린 적 있는 잠수팀의 동선 기록도 돌아가서 대조해야 했다.
맞은편에서 보조 잠수사의 불빛이 두 번 움직였다. 해솔은 바닥을 가리키고 손바닥을 세웠다. 보조 잠수사는 발을 넣으려던 자세를 풀었다.
두 사람은 기존 진입 지지대에 보호판을 걸었다. 판이 바닥을 누르지 않도록 간격을 두었다. 다음 작업자가 지나갈 길과 건드리지 않을 면을 나눈 뒤 다시 한 번 촬영했다.
해솔은 마지막으로 통로 끝을 보았다.
레버는 보이지 않았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 있었다. 그는 그 안에서 마주쳤다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재필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
육지로 돌아왔을 때 재필은 아직 대책실에 있었다.
그는 끝내지 못한 진술 때문이 아니라, 비 때문에 기다린다고 했다. 문 옆 운동화는 아침부터 젖어 있던 그대로였다. 신문지를 구해 넣으려다 멈춘 듯, 구긴 종이가 의자 아래 떨어져 있었다.
“또 물어볼 게 있습니까?”
해솔을 보자 그가 먼저 물었다.
“오늘은 없습니다.”
“발자국 나왔다고 들었어요.”
해솔은 젖은 수건을 내려놓았다.
“어디서요?”
“복도에서 작업자들이요. 통로 바닥 보존한다고.”
해솔은 문을 닫았다. 재필의 표정이 바뀌었다.
“내가 들으면 안 되는 겁니까?”
“지금 모양만으로 누구 발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 발인지 아닌지도?”
“네. 자국이 언제 생겼는지도 더 봐야 합니다.”
재필은 잠깐 웃었다.
“내 기억은 사람도 공구도 흐리고, 물속 자국은 발 주인도 모르고. 이걸 다 모으면 뭐가 나옵니까.”
해솔은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보았다. 대답하기 전에 문밖에서 우찬이 들어왔다. 손에는 재필이 오전에 그린 동선 사본이 있었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분부터 나옵니다.”
우찬이 말했다.
“그러고도 남는 게 있으면, 그걸 따라가고요.”
그는 아직 수중 사진을 펼치지 않았다. 오전 진술에서 나온 통로 방향과 뒤로 밀렸다는 위치는 바닥의 사선 자국과 모순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자국의 주인을 정하거나, 재필이 본 물건을 어제 렌치로 확정할 수는 없었다.
재필이 사본에 손을 올렸다.
“그 사람은 내 뒤로 나갔어요. 내가 옆으로 밀리고, 그 사람은 문 쪽으로.”
“그 말은 오전에도 하셨습니다.”
“그랬죠.”
그는 손을 뗐다. 적어도 한 부분은 자기가 두 번 다르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얼굴이었다.
***
저녁에 작업복 자료가 왔다.
재필이 설명한 팔 부분 반사띠 배치를 실제 지급품 목록과 비교한 결과였다. 청람호 선원에게 지급된 방수복은 소매에 같은 배치가 없었다. 정기검사업체의 작업복 목록에는 팔뚝을 가로지르는 띠와 봉제선이 있었다. 옷이 접히면 한 줄이 두 줄처럼 보일 수 있는 위치였다.
우찬은 그 장의 귀퉁이를 접지 않았다. 재필이 옷을 보고 자기 기억을 바꾸지 않도록, 물건 확인과 진술은 계속 나눠야 했다.
그러나 찾아갈 곳은 또 하나 생겼다.
작업복 대여대장.
해솔은 공구상가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돌아오지 않은 것도 찾아야 합니까. 물건 하나의 빈자리가 이제 옷 한 벌의 빈자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재필이 현관으로 나왔다. 잠깐 그친 비 사이로 항구의 불빛이 반짝였다. 우찬이 오늘 진술 사본을 건네자 그는 봉투를 두 손으로 받았다.
“얼굴만 봤어도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겠죠.”
해솔은 대답 대신 현관에 놓인 우산을 폈다. 한쪽 살이 뒤집혀 있었다. 그걸 바로잡는 동안 재필이 다시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그 문까지 갔다 왔습니다.”
해솔이 고개를 들었다.
“예.”
“거기서 멈추긴 했지만.”
“돌아오셨잖아요.”
재필은 봉투를 품에 넣었다. 우산 손잡이를 받는 손이 아침보다 덜 굳어 있었다.
그가 떠난 뒤 해솔은 대책실로 돌아왔다. 우찬은 진술의 첫 부분을 다시 듣고 있었다. 소리가 아닌, 무릎을 누르던 손가락 세 번이 떠올랐다.
기관실 벨.
그 뒤에 움직인 사람, 그 뒤에 주머니로 들어간 물건, 기울어진 통로.
책상 건너편에는 아직 순서를 맞추지 못한 압력 기록 여섯 구간이 놓여 있었다.
우찬이 이어폰을 뺐다.
“옷은 대여 기록을 따라가겠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이 시간부터 맞춰 보죠.”
그가 표시한 곳은 세 번째 벨 직후였다.
해솔은 의자를 당겼다. 이번에는 사람에게 같은 기억을 다시 요구하는 대신, 말이 없는 기계에게 순서를 물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