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이름을 담보로 받는 밤
지하상가에 내려가자 콩쇠가 가격표부터 집으려 했다.
지하상가에 내려가자 콩쇠가 가격표부터 집으려 했다.
그는 물건을 건드리지 말라는 채원의 시선을 보고 손을 멈췄다. 가격표는 원래 뒤집혀 있었다. 앞면에 원이 없었다. 원 대신 이름 두 글자, 이름 석 자, 호칭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물가가 미쳤네.”
콩쇠가 말했다.
“이름 긴 사람한테만 불리하잖아.”
남해온은 웃지 못했다. 낮에 도윤의 휴대전화에 떠오른 주소가 빈 점포의 셔터 아래에서 희게 빛나고 있었다. 서른다섯째 밤. 그는 퇴근 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고 이곳에 왔다. 김이 손가락에 붙어 있었지만 떼는 것도 잊고 있었다.
도윤은 오지 않았다. 자기 사고를 미끼로 쓰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켜졌다. 낮의 재심에서 남은 한 건은 여전히 사람 플랫폼이 현장자료를 요청할 일이었다. 여기서 기묘한 거래를 봤다고 사흘이라는 기한이 앞당겨지지는 않았다.
셔터 아래로 작은 발들이 오갔다. 사람 구두 같은 것도 있었고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것도 있었다. 모두 얼굴을 들기 전에 가슴에 붙인 이름표를 한 번씩 만졌다.
입구의 안내꾼이 해온 앞에 바구니를 내밀었다.
“현금은 안 받습니다.”
“사러 온 거 아닙니다.”
“구경료도 현금은 안 받습니다.”
콩쇠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내 별명부터 받아. 외상쟁이.”
안내꾼이 정색했다.
“고객을 놀리는 이름은 거래되지 않습니다.”
“나를 모욕했어. 내 이름을 내가 부르는데.”
해온은 콩쇠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화가 나서 일부러 시비를 거는 걸 알았다. 콩쇠는 작게 혀를 차고 옆으로 물러났다.
채원이 가방에서 낮에 확인한 현장 통지서를 꺼냈다. 기존 조정결정에 연결된 열한 이름은 새 명목으로 옮겨 거래하지 못한다는 범위가 적혀 있었다. 시장의 모든 이름을 마음대로 가져갈 권한도, 모든 상인을 붙잡을 권한도 없는 종이였다.
안내꾼은 첫 장만 보고 바구니를 내렸다.
“공개매대까지만입니다.”
“오늘 허용된 확인 범위도 거기까지입니다.”
채원이 말했다.
입구를 지나자 냄새가 바뀌었다. 상가의 눅눅한 먼지 사이로 새 종이 냄새가 났다. 매대 위에는 접힌 흰 봉투들이 있었다. 손님들이 봉투를 집어 들 때마다 위에 적힌 이름이 잠깐 비쳤다가 사라졌다. 해온은 자기 이름이 있는지 찾고 싶었지만 먼저 손을 등 뒤로 보냈다.
매대 끝에 택배 조끼를 입은 작은 요괴가 앉아 있었다. 앞치마에 말라붙은 음식 자국을 보니 다른 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조끼 안쪽 이름표의 박음질을 손톱으로 뜯고 있었다.
“새 옷이라 아깝네요.”
해온이 말을 걸었다.
요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옷보다 밀린 수리비가 비싸요.”
옆 매대의 판매원이 바로 끼어들었다.
“수리비뿐이겠습니까. 사고 때문에 앞으로 붙을 책임도 같이 정리해 드립니다. 이름을 맡기는 동안 복잡한 연락을 받지 않으셔도 되고요.”
해온은 판매원 대신 요괴에게 물었다.
“연락을 안 받으면 수리한 가게에는 누가 돈을 줍니까?”
요괴의 손이 멎었다. 이름표 한쪽이 떨어져 손가락 끝에 매달렸다.
판매원이 웃었다.
“고객님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니죠. 책임이 사라지는 상품인데.”
콩쇠가 빈 봉투 하나를 가리켰다. 만지지는 않았다.
“그럼 받은 책임은 어디 두는데?”
“영업 정보입니다.”
“물건 두는 창고는 비밀이라면서 고객 이름 붙일 칸은 참 크네.”
주위 손님 두 명이 자기 앞 봉투를 내려다봤다. 판매원의 웃음이 얇아졌다.
해온은 요괴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이곳에서 이름을 크게 부르는 일이 무슨 이익을 누구에게 줄지 아직 몰랐다. 대신 붙잡고 있던 이름표를 돌려 달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여기 적힌 건 사고를 없앤다는 말이 아니네요.”
그는 봉투 옆에 펼쳐진 설명쪽지의 끝을 읽었다.
“이름으로 오는 청구를 다른 곳에 맡긴다는 말인데요. 나중에 돌려받을 때 뭘 내야 하는지는 왜 빈칸입니까?”
요괴가 몸을 숙였다. 손님 쪽에서는 잘 안 보이던 빈칸이었다. 접힌 받침대가 딱 그 줄을 가리고 있었다.
판매원이 받침을 바로 세웠다.
“상담하면서 정합니다.”
“그럼 먼저 박음질할 이유가 없잖아요.”
해온이 말했다.
그제야 요괴가 이름표를 조끼 안쪽으로 접어 넣었다. 옷을 고치는 사람에게 가져갈 수 있을 정도는 남아 있었다.
“오늘은 상담만 할게요.”
그가 말했다.
판매원은 잡지 못했다. 아직 맡긴 것이 없었다.
공개매대 뒤의 거울에서 누군가 손뼉을 쳤다.
흰 장갑이 먼저 나타났다. 얼굴보다 손을 크게 비추는 거울이었다. 백결이라는 이름을 쓰는 자의 목소리가 그 안에서 흘렀다. 지금 거울 뒤 방에 있는지, 다른 개장지에서 말을 보내는지 해온은 알 수 없었다.
“남의 계약서 끝까지 읽어 주는 배송원이라. 새 직업이군.”
콩쇠가 거울 쪽으로 움직였다. 채원이 손바닥을 폈다. 경계선을 넘지 말라는 신호였다. 거울이 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깨뜨리면, 그 조각 사이에서 사라질 이름이 누구 것인지 몰랐다.
해온은 공개매대 앞에 섰다.
“돈길이 막히니까 담보를 바꿨네요.”
“돈이 없어서 책임을 못 끝내는 사람에게 길을 하나 더 준 거지.”
거울 속 장갑이 움직였다. 손가락 사이에 작은 명찰이 끼었다. 이름은 가려져 있었지만 구멍 두 개와 끊어진 끈이 보였다.
“사람들은 약관도 안 읽고 누르잖아. 나는 뭘 받는지 먼저 써 둬. 누가 더 솔직하지?”
해온은 답을 생각하다 자기 조끼에 손을 댔다. 처음 대신 서명했던 날에도 그는 빨리 끝내고 싶었다. 남의 일이 자기를 기다리게 한다는 이유로, 자기 손으로 쓰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백결이 웃었다.
“왜 말이 없나. 너는 남의 이름을 쓴 적이 없었나?”
매대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해온에게 모였다. 콩쇠가 입을 열려 했지만 해온이 고개를 저었다.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자기 입으로 그 말을 하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곳의 모든 계약이 틀렸다는 사람이, 한 번도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눈앞에서 보여 줘야 했다.
“그래서 지금 제 책임을 끝내는 중입니다. 남의 이름도 같이 가져가도 된다는 뜻으로 쓰지는 않고요.”
“너도 대가를 바라고 서명했지.”
“빨리 끝내려고 했습니다.”
“나는 더 빨리 끝내 주는 것뿐이야.”
“끝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숨겼잖아요.”
해온은 거울이 아니라 매대의 손님들을 보았다.
“저도 그걸 안 봤습니다. 대신 서명하면 내 배송만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그 뒤에 누가 기다리는지는 안 봤고요.”
조끼 안쪽을 접어 넣은 요괴가 빈 봉투를 돌려놓았다. 봉투는 주인 없이 매대 위에서 펄럭였다. 해온은 그 소리가 그렇게 클 줄 몰랐다.
채원이 통지서를 펼쳤다. 개인정보가 적힌 첨부는 덮고, 기존 분쟁에 묶인 발급표식과 거래 범위만 보여 주었다. 몇 봉투의 표식이 그 범위와 겹쳤다. 당사자 이름을 크게 읽지 않고 매대 번호를 각각 적었다.
“이 묶음은 기존 결정의 대상입니다. 담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놓아도 거래 제한은 유지됩니다.”
판매원이 거울을 보았다.
백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채원은 확인된 매대의 취급을 멈추게 하고, 결정 범위 밖 새 거래에 대해서는 추가 심사를 접수했다. 그 밖의 손님들에게는 계약 전에 빈칸을 확인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안내했다. 두 칸 건너에서는 여전히 흥정이 이어졌다. 해온은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당장 이름표를 떼려는 손부터 붙잡았다.
그런데도 손님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하나가 이름표 바느질을 멈췄다.
판매원은 빈 봉투를 너무 세게 접다가 모서리를 찢었다. 콩쇠는 그 작은 찢어짐을 보고도 웃지 않았다. 찢긴 것이 이번에는 누구의 이름도 아니라는 게 다행이었다.
조끼를 입은 요괴가 해온을 불렀다.
“수리비는 그대로인데요.”
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서 나간다고 없어지진 않습니다.”
“그걸 알면서 나가라고 한 겁니까?”
“연락할 이름까지 없어지면 고칠 길도 더 어려워지니까요.”
요괴가 조끼를 여몄다. 고맙다는 말 대신 상담 장소가 내일도 열리는지 물었다. 채원이 접수 가능한 시간을 적어 주었다. 콩쇠는 어디서 구했는지 안전핀 하나를 내밀었다.
“이름표 임시로 붙여. 바늘값은 안 받아.”
요괴가 핀을 받자 콩쇠가 덧붙였다.
“반납하면 더 좋고.”
해온은 그제야 짧게 웃었다.
거울 속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남의 이름은 잘 챙기는군.”
백결의 손에 낡은 계약서가 들렸다. 해온의 웃음이 멎었다. 접힌 선과 서명이 익숙했다. 자신의 백일계약과 같은 모습이었다.
콩쇠가 말했다.
“사본일 수도 있어.”
해온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도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장은 읽어 봤나?”
거울 속 장갑이 아래쪽을 가렸다. 해온은 저도 모르게 한 발 움직였다가 경계선 앞에서 멎었다.
백 번째 소포.
뒤의 문장은 손에 가려 읽을 수 없었다. 오늘 이름을 내놓던 손님들이 보지 못했던 빈칸처럼, 해온에게도 보이지 않는 끝이 있었다.
“끝내면 네가 얻을 몫도 적혀 있지.”
백결이 속삭였다.
해온은 손을 뻗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칙을 알아서만이 아니었다. 그 몫을 읽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이 무서워서였다.
그는 채원에게 말했다.
“내가 가진 계약부터 다시 보겠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채원은 못 들은 척하지 않았고, 콩쇠는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거울의 흰 장갑이 천천히 마지막 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