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34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관벽의 얇은 달력

관 한 조각을 잘라내기 전날, 설비팀은 채취 구간을 임시 격리하고 잔류물과 압력을 확인했다. 법원의 채취 허가와 별도로 현장 안전책임자의 작업 승인이 나기까지 반나절이 더 걸렸다. 이는 해당 구간의 작업 준비였지 P-17 전체가 과거부터 차단됐다는 확인은 아니었다. 오재호는 작업자가 지지대 상태를 살피는 동안 옆의 가동배관 계기를 지켜봤다. 예상과 다른 징후가 나오면 작업을 중단하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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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한 조각을 잘라내기 전날, 설비팀은 채취 구간을 임시 격리하고 잔류물과 압력을 확인했다. 법원의 채취 허가와 별도로 현장 안전책임자의 작업 승인이 나기까지 반나절이 더 걸렸다. 이는 해당 구간의 작업 준비였지 P-17 전체가 과거부터 차단됐다는 확인은 아니었다. 오재호는 작업자가 지지대 상태를 살피는 동안 옆의 가동배관 계기를 지켜봤다. 예상과 다른 징후가 나오면 작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안주원 재판장이 허용한 관편은 십 센티미터였다. 오늘 가져갈 것은 관의 두께와 침전 상태를 확인할 짧은 구간뿐이었다.

강만석은 작업선을 넘어가지 않았다. 어제 재호가 딸에게 전화하던 모습을 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만석은 자기 배의 바닥판을 뜯을 때도 안쪽에 사람이 있으면 먼저 손을 거두었다. 급할수록 물건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규칙은 바다와 공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편은 두 개의 보관함에 나뉘지 않았다. 하나의 원본을 촬영하고, 양측이 같은 위치를 볼 수 있게 한 뒤 분석용 절편을 나누기로 했다. 현장에서는 채취 자리를 봉합·점검하고 임시 격리를 유지했다. 이후의 유로 시험은 그 상태를 따로 반영해야 했다. 최다온은 시료 앞에서 잠시 말이 없었다. 관의 아래쪽이 위보다 눈에 띄게 얇았다. 안쪽에는 작은 구멍 주변으로 여러 겹의 갈색 막이 붙어 있었다.

“오래된 거죠?” 만석이 물었다.

“오래된 부식입니다.” 다온이 말했다. “하지만 얼마 동안 누출됐는지는 부식 하나로 못 정해요.”

만석이 얼굴을 찌푸렸다. “열두 해 묻혀 있었으면 열두 해 샌 것 아닙니까?”

“관이 묻힌 날과 구멍이 난 날은 달라요. 어떤 성분이 얼마나 자주 흘렀는지도 알아야 해요.”

세희가 관의 가동 이력을 가져왔다. P-17은 원래 니켈 세척 계통의 오래된 우회관이었다. 12년 전 폐쇄 처리 뒤 공식 운전표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야간 세척펌프의 전류기록은 최근 여러 날에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둘을 어떻게 연결할지는 아직 더 필요했다. 가람은 세희가 자료를 펼치는 손을 보았다. 손톱 아래에 관 주변 흙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현장에 있었음을 보여 줬지만, 오래된 구멍의 시기를 대신 말해 주지는 않았다.

분석실에서 회사 측 전문가 상호가 관편을 보았다. 그는 먼저 설계상 원래 두께를 물었다. 다온이 도면에 적힌 수치를 읽자 상호는 실제 출고제품마다 오차가 있었을 거라고 했다. 다온은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자 만석은 더 답답해졌다. 서로 싸우라고 불렀더니 둘이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럼 왜 두 사람을 불렀어요?” 그가 가람에게 속삭였다.

“같은 사실을 확인하면 그 부분은 다투지 않아도 되니까요.”

“다투지 않는 동안 조개는 돌아오지 않는데.”

가람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법정에서 좁혀진 사실 하나가 어민의 빈 수입을 곧장 채우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섯 줄 요구에 긴급지원과 위험공정 정지를 함께 넣었다. 책임판정이 늦다고 오늘의 밥까지 늦어서는 안 됐다. 그 요구가 아직 집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람에게도 부담이었다.

상호와 다온은 관 둘레를 여러 위치에서 쟀다. 아래쪽이 가장 얇았지만 한 군데만으로 전체 관의 상태를 대신할 수 없었다. 핀홀이라 불리는 작은 구멍 주변의 막은 오래 젖고 마른 층처럼 보였다. 상호는 최근 토양공사 중 외부에서 관을 건드렸을 가능성을 남겼다. 다온은 관 안쪽 부식과 바깥쪽의 압흔을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구멍이 최근 생겼더라도 안쪽 막은 오래됐을 수 있습니다.” 상호가 말했다.

“반대로 막이 오래됐어도 물이 밖으로 나온 시점은 늦을 수 있고요.” 다온이 받았다.

두 사람의 동의는 결론을 흐린 게 아니라 질문을 정확히 만들었다. 관이 언제부터 상했는가. 구멍이 언제 뚫렸는가. 그 뒤 물이 어느 때부터 밖으로 움직였는가. 만석은 세 질문이 서로 다르다는 말을 듣고도 선뜻 기뻐하지 못했다.

상호는 잘린 관의 윗면을 가리켰다. 아래와 달리 두께가 많이 남아 있었다. “이쪽만 보면 회사 주장에 유리하게 보일 겁니다. 아래만 보면 주민 쪽에 유리하고요.”

다온은 관편을 돌려 양쪽 끝의 사진을 같은 비율로 찍자고 했다. 분석실 직원이 받침을 옮기는 동안 작은 녹 조각이 떨어졌다. 모두가 동시에 멈췄다. 다온은 조각을 주워 다시 붙이지 않았다. 떨어진 위치를 찍고 별도 용기에 담았다. 사람 하나의 손끝 때문에 두께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시료가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을 숨기면 나중에 큰 차이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다음 측정은 누가 합니까?” 상호가 물었다.

“직원이 하고, 우리는 수치를 각자 적죠.”

둘은 서로의 노트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섰다. 만석은 그 모습을 보며 잠깐 우스워졌다. 어부들은 같은 바다를 보고도 내일 바람을 다르게 말한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바다를 둘로 가르는 것은 아니다. 수치 두 장이 나중에 얼마나 다를지, 그는 조개를 고를 때보다 더 긴장해서 기다렸다.

값은 거의 같았다. 다온이 먼저 웃지 않았다. 상호도 승리한 사람처럼 굴지 않았다. 아래쪽이 얇고 위쪽이 두껍다는 평범한 사실이 두 사람의 종이에 같이 남았다. 그 사실에서 오래된 부식을 읽을 수는 있지만, 핀홀이 뚫린 날짜를 달력처럼 찾아낼 수는 없었다. 만석은 실망하며 동시에 안도했다. 적어도 한쪽이 사진을 골라 보여 줬다는 싸움은 줄었다.

가람은 떨어진 녹 조각의 별도 번호까지 확인한 뒤 분석실을 나왔다. 한 줌도 안 되는 금속가루에 이렇게 많은 사람의 시간이 들었다. 그 시간을 들인 사람이 모두 월급을 받는 동안, 만석의 배에는 오늘도 수입이 없었다. 가람은 담당기관에 다시 연락할 때 바로 그 시간 차이를 말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간 만석에게 아들이 전화를 했다. 도시의 임시 일자리가 한 달 연장됐다고 했다. 만석은 축하한다는 말 대신 “언제 내려올 거냐”고 물었다. 아들은 “바다 열리면”이라고 답했다. 지난주와 같은 대답이었다.

“네가 어릴 때도 저 공장 관은 있었어.” 만석이 말했다.

“그래서요?”

“그때부터 샜는지 알아보는 중이야.”

“그때부터 새면 아버지 배가 더 빨리 돌아와요?”

만석은 말문이 막혔다. 아들이 옳았다. 오래된 잘못을 밝히는 일이 현재의 빈 배를 하루 만에 채우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지울 수도 없었다. 오염이 여러 철에 걸쳤다면 피해 어민과 상인, 공장 노동자가 받아야 할 설명도 달라진다.

다음 심리에서 가람은 관편 분석의 한계를 먼저 말했다. 관의 원래 두께, 부식률의 가능한 범위, 토양의 젖음과 세척수 성분이 모두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공장 측은 최근 한 달 전 토양공사에서 손상됐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람은 그 공사의 위치와 날짜가 관의 핀홀과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만석은 방청석에서 자신이 원하는 ‘12년 전부터’라는 말을 가람이 하지 않은 것을 들었다.

주원은 다온과 상호에게 각각 범위를 물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가정을 사용했지만 공통으로 최근 한 달에만 생긴 부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확한 시작일을 말할 수는 없었다. 제시된 기간은 가장 짧게는 18개월, 길게는 5년 정도였다. 이것은 법원의 최종 인정기간이 아니라 현재 분석의 가능 범위였다.

“그 사이에 보험 가입도 있죠.” 공장 측 변호사가 말했다.

“있습니다.” 가람이 답했다. “그 전후를 따질 자료도 필요합니다. 오늘 이 관편만으로 담보를 결론내릴 수는 없습니다.”

회사 쪽은 고개를 들었다. 가람이 보험 책임을 서두르지 않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만석은 그 표정을 보고 화가 났다. 자신들이 신중할수록 회사가 시간을 버는 듯했다. 심리가 끝난 뒤 그는 가람에게 말했다.

“왜 저쪽 말까지 해 줍니까?”

“판사가 물을 부분이라서요.”

“그럼 저쪽 변호사는 뭐합니까?”

“우리가 나중에 말할 부분을 줄입니다.”

가람은 만석의 분노를 쉽게 달래지 않았다. 다온의 범위가 넓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더 오래된 세척일지와 배관 보수기록을 확보해야 했다. 만석은 들은 뒤에도 얼굴을 펴지 않았다. 가람은 그 상태로 같이 법원을 나왔다.

해 질 무렵 세희가 보관고에서 세척일지 묶음을 찾아왔다. 화요일마다 적힌 펌프 가동시각 옆에는 ‘P-17 차단 유지’라는 표시가 있었다. 전류가 흐른 날과 표시가 같은 날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차단판이 새었다는 결론은 못 낸다. 그러나 관 안쪽 침전막이 젖고 말랐다면, 그 리듬과 일지가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다온은 관편의 절단면을 다시 살폈다. 핀홀 안쪽의 막에는 진한 층과 옅은 층이 반복됐다. 같은 물이 늘 가득 차 있었다면 만들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상호도 그것을 보고 확대사진을 요청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기 전에 같은 사진을 보자는 것이었다.

만석은 다음 날 아침 배 밧줄을 만지다가 손에 남은 마른 소금 자국을 봤다. 물이 차고 빠질 때마다 밧줄에 생기는 선이었다. 관의 막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전문가 앞에서 그 비유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세척일지에 적힌 날짜가 자신이 조업을 멈춘 날과 어떻게 겹치는지 묻기로 했다. 그 질문은 바다에서 배운 것이지만, 답은 숫자로 찾아야 했다.

선착장 끝에서 재문이 빈 통발을 씻고 있었다. 만석은 물을 아끼라 말하려다가 통발에 붙은 죽은 조개껍데기를 보았다. 재문은 조용히 그것을 떼어 냈다. 만석이 물었다. “오늘도 나갈 건가?” 재문은 “나가 봐야 못 잡겠지만, 배 밑이 상하는 건 봐야지”라고 했다. 만석은 그 말을 마음에 넣었다. 관을 보는 일도 같았다. 결과가 곧장 수입을 주지 않아도 더 큰 손실을 막으려면 봐야 할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