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건반 여든여덟의 주소
시립철도기록관 도면실의 탁자는 작은 무대만 했다.
시립철도기록관 도면실의 탁자는 작은 무대만 했다.
김연복은 그 위에 1998년 화영역 화물창고 배치도를 펼치며 네 귀퉁이에 납작한 모래주머니를 얹었다. 종이가 펴질 때 오래 마른 풀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청색 선으로 그린 선로와 붉은 벽돌창고가 주름을 따라 흔들렸다.
“손가락으로 짚지 마세요.” 연복이 말했다. “말로 위치를 부르면 내가 자를 옮기겠습니다.”
강태오는 고개를 끄덕이고도 몸을 앞으로 숙였다. “3동 1통로 4칸이 있습니까?”
“도면은 예, 아니오를 뽑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어제부터 그것만 확인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더 천천히 보라는 겁니다.”
한이솔은 투명 필름에 옮긴 액션 레일 표식을 탁자 옆에 놓았다. 3, 점 하나, 1, 점 둘, 4, 점 셋과 세로선. 그 아래에는 백정호 장부의 창고 표기와 시설기록 88번 도장이 있었다.
연복은 도면 왼쪽 아래의 범례부터 읽었다. 1998년의 창고는 1동부터 5동까지였고, 각 동 안 통로는 로마숫자로 표기돼 있었다. 칸 번호는 출입문에서 안쪽으로 증가했다.
“3동은 있습니다.” 연복이 말했다. “1통로는 당시 표기로 I통로. 4칸도 있고요.”
태오의 손이 휴대전화로 갔다. 이솔이 먼저 물었다. “지금도 같은 자리입니까?”
“그걸 보려면 현 배치도를 겹쳐야죠.”
연복이 새 투명 도면을 올렸다. 현재 지도에서 3동은 철거되어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I통로 4칸이 있던 자리는 노란 주차선 세 개 사이였다.
태오가 허탈하게 웃었다. “빈 곳을 주소로 남긴 겁니까?”
“아니면 우리가 숫자를 잘못 읽었거나요.” 이솔이 말했다.
도면실 창문 아래로 그 주차장이 내려다보였다. 오후 비가 아스팔트를 검게 적셨고, 노란 주차선 사이로 택배차 한 대가 천천히 후진했다. 경고음은 악기창고의 지게차보다 한 음 낮았다. 태오는 창가로 가서 빈 세 칸을 내려다봤다.
“저 아래를 한 번만 보면 압흔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연복이 웃음기 없이 말했다. “철거 잔해 위에 아스팔트를 세 번 깔았습니다. 지금 내려가면 찾는 건 주차위반 스티커뿐이에요.”
태오는 창틀을 짚었다. 밤새 만든 신청서와 보험 조사 사유, 피아노 보존 기한이 모두 저 검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얼굴이었다.
이솔도 잠깐은 내려가고 싶었다. 틀린 주소라도 몸으로 확인하면 앞으로 나아간 듯 느낄 수 있었다. 사건이 오래될수록 현장은 강한 유혹이 됐다. 문서는 자꾸 조건을 붙이지만 벽과 바닥은 침묵으로 무엇이든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차장 배수구로 빗물이 빨려 들어갔다. 만약 저곳이 맞았더라도, 현재의 얼룩을 1998년 원반 상자와 연결할 방법은 없었다.
“안 내려갑니다.” 이솔이 말했다.
태오가 창문에서 돌아섰다. “틀렸다는 확인도 확인입니다.”
“그 확인 때문에 남의 영업장을 조사 현장처럼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연복은 다시 도면으로 가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종이가 틀릴 수 있는 방식부터 찾읍시다.”
그들은 두 도면을 다시 맞췄다. 기둥 번호와 선로 곡선을 기준으로 포개자 오차는 크지 않았다. 3동 1통로 4칸은 분명 현재 주차장 아래였다. 원반 상자가 있었다 해도 벽과 선반은 오래전에 사라졌을 터였다.
태오는 의자를 뒤로 밀었다. “현장 확인 의미가 없군요.”
연복이 안경 너머로 그를 보았다. “어느 현장을 말합니까?”
“3동.”
“당신들은 숫자 3을 동이라고 정하고 왔네요.”
“장부 표기가 동·통로·칸이라고 했습니다.”
“화영역은 창고를 두 번 다시 번호 매겼습니다. 화재보험 갱신 때 한 번, 민간 임대 전환 때 한 번.”
연복은 시설기록 88번 묶음에서 접힌 부속도를 꺼냈다. 표지에는 `구번호-신번호 대조`라고 적혀 있었다. 종이 안쪽에 갇혀 있던 석탄 먼지가 검은 가루로 떨어졌다.
1998년 3동은 그해 봄까지 1동이었다. 반대로 현재 남아 있는 벽돌창고 3동은 1998년 가을 이후 새로 붙은 번호였다.
“어느 날짜를 기준으로 읽어야 합니까?” 이솔이 물었다.
“표식이 적힌 날짜를 알아야죠.”
“정비표는 1997년 11월, 업라이트 액션은 1998년 수리 때 창고에 다녀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두 번호 체계가 사이에 끼어 있군요.”
첫 해석은 주차장에 닿았고, 두 번째 해석은 서로 다른 두 건물을 가리켰다. 도면실 예약 종료까지 마흔 분. 제한 출입 신청을 받는 관리사무소는 다섯 시에 문을 닫았다.
태오가 시계를 보았다. “오늘 신청하려면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골라서 틀리면 민간 창고를 엉뚱한 이유로 조사하게 됩니다.” 이솔이 말했다.
“하루를 잃으면 피아노 보존 기간이 줄어요.”
“잘못 고르면 신뢰를 잃습니다.”
태오가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보험 조사 근거가 약해서 문 앞에서 돌아선 적이 많습니다. 문이 닫히는 동안 물건은 움직여요.”
“그래서 아무 문이나 열 수는 없습니다.”
연복은 두 사람의 말을 듣다가 도면 보관함을 닫았다. 철제 서랍이 들어가며 낮게 쾅 울렸다.
“비유 말고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적은 순서를 봅시다.” 연복이 말했다.
그는 부속도 뒤에 철한 얇은 작업표 한 장을 꺼냈다. 제목은 `단기임차 위치 기입례`. 빈칸 머리에는 차례대로 `준공순번`, `통로`, `임대칸`이 인쇄돼 있었고, 예시란에는 `2 · II · 6`이 적혀 있었다. 아래 주의문은 동 이름이 바뀌는 기간에는 현판 번호 대신 준공순번을 쓰라고 했다. 같은 묶음의 반출표 세 장도 첫 칸에 동 번호가 아니라 준공순번을 썼다. 두 장은 숫자와 로마자를 칸에 맞춰 적었고, 칸이 없는 한 장은 항목 사이를 넓고 좁게 띄운 뒤 점으로 갈랐다.
부속도 아래에는 각 건물의 준공순번이 따로 적혀 있었다. 그 기입례에 따라 읽으면 액션 레일의 첫 숫자 3은 세 번째로 지어진 창고를 가리켰다. 이어지는 1과 4가 첫 번째 내부 통로와 네 번째 임대 칸인지도 작업표의 항목 순서와 맞았다. 세 번째 준공창고는 현재도 남아 있는 벽돌창고였다.
하지만 서식이 같다는 것만으로 표식의 출처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화영역 주변에는 같은 작업표를 쓴 창고가 두 곳 더 있었다.
이솔은 백정호 장부에서 촬영한 숫자 간격을 투명 필름 위에 다시 표시했다. 3과 1 사이의 넓은 공백은 작업표의 준공순번과 통로 사이, 1과 4 사이의 좁은 공백은 통로와 임대칸 사이의 인쇄 간격과 맞았다. 점 개수도 음역 경계보다는 항목의 차례와 나란했다. 이제 3을 준공순번으로 읽을 근거는 연복의 비유가 아니라 1998년 시설 범례와 실제 반출표에 있었다.
“어제 백 선생님이 말한 두 가지 표식 중 창고용이네요.” 태오가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또 가능성입니까?”
김연복이 대신 대답했다. “도면쟁이가 확정이라는 말을 할 때는 현장 기둥 번호까지 봤을 때입니다.”
그들은 임대대장을 펼쳤다. 1998년 가을, 세 번째 준공창고 I통로 4칸의 임차인은 `화영음반 유한회사`였다. 기간은 석 달. 사용 목적은 `음반 및 방송장비 단기 보관`.
대장에는 세 번의 월세가 각각 다른 펜으로 적혀 있었다. 첫 달은 검정, 둘째 달은 푸른 잉크, 셋째 달은 연필이었다. 넷째 달 칸은 비어 있었고, 보증금 반환란에는 `포장물 잔류 확인 후`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잔류 포장물이 뭡니까?” 태오가 물었다.
연복은 같은 달 관리일지를 찾았다. `습기 먹은 종이 칸막이 및 빈 목상자, 임차인 회수 예정.` 품목 수량은 없었다.
“원반이 남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솔이 말했다.
“하지만 상자가 있었다는 뜻은 되죠.”
“빈 상자와 칸막이가 있었다는 데까지요.”
태오는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 대신 도장 아래 관리인 서명을 확인했다. 임차인과 무관한 철도공사 직원의 서명이었다. 화영음반의 자체 기록이 아닌 제삼자 기록이 처음으로 같은 칸을 가리켰다.
연복은 임대대장의 책등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철도 기록은 화물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느 칸을 얼마나 빌려줬는지만 사랑하지. 그래서 가끔 사람보다 정확해요.”
창밖에서 화물열차가 곡선을 돌았다. 바퀴와 레일이 긁히며 높은 비명을 냈고, 도면 위 모래주머니가 아주 조금 떨렸다. 이솔은 47초 원반에 남은 전차 종과 지금의 쇳소리를 구분했다. 닮은 소리가 같은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시의 금속은 사라진 길을 오래 기억했다.
윤태문의 이름은 없었다. 수인의 이름도 없었다. 평범한 회사명과 도장만 있었다.
태오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제 신청할 수 있겠군요.”
“현재 소유자는 민간 물류회사입니다.” 연복이 말했다. “보험 조사라는 이유만으로 문을 열어 주지는 않을 겁니다.”
“기존 원반 손상 우려와 이동경로 확인을 근거로 제한 출입을 요청하겠습니다.”
“수색이라는 단어는 빼세요.” 이솔이 말했다. “우리가 확인할 건 기둥번호와 옛 칸 위치, 남은 환경 흔적까지입니다.”
태오가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기록관 폐관 안내방송이 나왔다. 오래된 스피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자음마다 갈라졌다. 마치 낡은 원반처럼 문장 끝에 얇은 잡음이 달렸다.
신청서를 보냈을 때 다섯 시는 이미 삼 분 지나 있었다. 접수는 다음 날로 넘어갔다. 태오는 화면의 `대기` 표시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하루를 잃었습니다.”
“주차장을 뒤지는 하루는 막았죠.” 연복이 도면을 접었다.
이솔은 모래주머니가 치워진 자리에 남은 네모난 눌림을 보았다. 물건은 사라져도 자리가 먼저 말할 때가 있었다. 다만 그 말을 듣겠다고 남의 문을 부수면, 그 순간부터 진실은 조사자의 발자국과 섞였다.
기록관을 나서려는데 민혜주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보존 보류 중인 업라이트피아노 자산카드의 뒷면이었다. 앞면만 복사되던 카드라 지금까지 보지 못한 면이었다.
`1998. 9. 액션 1점 수리 발송 — 화영역 창고.`
아래에는 차량번호가 절반만 남아 있었다. 검은 먹지가 번졌지만 마지막 네 자리는 읽혔다.
4712.
태오는 제한 출입 신청서에 보완자료를 붙였다. 이솔은 사진을 확대하다가 발송 품목이 피아노 전체가 아니라 `액션 1점`이라는 데서 손을 멈췄다.
여든여덟 개 가운데 하나.
주소를 남긴 것은 피아노가 아니라, 창고에 다녀온 단 하나의 부품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