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두 갈래 렌치의 값
공구상 주인은 렌치를 보기도 전에 값을 물었다.
공구상 주인은 렌치를 보기도 전에 값을 물었다.
“수리할 거요, 새로 맞출 거요?”
강해솔이 사진을 꺼내자 그의 눈이 먼저 가게 문으로 갔다. 뒤따라 들어온 정우찬의 목에 조사팀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아.”
주인은 작업대 위 영수증을 뒤집었다.
“그 값이 아니구먼.”
상가는 아침부터 쇠를 갈고 있었다. 옆 가게에서 튄 불꽃이 골목 바닥에 짧게 흩어졌다. 해솔은 문턱을 넘다가 멈춰, 튀어나온 전선 위로 발을 다시 들었다. 바닷속에서는 그렇게 주의하던 사람이 육지에서는 신발 밑을 놓쳤다.
우찬은 어제 받은 구매처 확인서를 내밀었다. 주인은 읽지 않고 말했다.
“사진에 나온 배, 나도 압니다.”
그의 등 뒤 벽에는 청람항 선박 달력이 걸려 있었다. 이번 달은 뜯지 않았다. 사고가 난 달의 모서리만 여러 번 접혀 있었다.
“두 갈래 렌치를 납품하셨습니까?”
“여기는 그런 거 만드는 데요.”
“이 주문번호로요.”
주인이 그제야 종이를 받았다.
라디오에서는 점심때 비가 온다고 했다. 그는 다 듣고 나서야 작업대 밑 서랍을 열었다. 오래된 견적장 두 권을 꺼내고, 세 번째 것은 손에 쥔 채 잠깐 망설였다.
해솔은 그 망설임을 보았다. 책을 감추려는 손인지, 꺼낸 뒤를 걱정하는 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거 보면 나도 불려 갑니까?”
“추가 확인이 필요하면 연락드릴 겁니다.”
우찬이 말했다.
주인은 차라리 안심시키는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었다는 얼굴로 책을 내려놓았다.
***
견적장 여백에는 포크 같은 그림이 있었다.
두 갈래의 안쪽 폭, 끝부분 두께, 손잡이 길이. 둥근 숫자 위에 뾰족한 숫자가 겹쳐 있었다. 한 번 주문을 바꾼 흔적이었다.
“처음엔 양쪽이 똑같았어요. 다시 전화가 와서 한쪽을 조금 더 깎아 달라더군.”
주인이 손톱으로 그림 오른쪽을 짚었다.
“뭘 돌리는 거냐 물었더니 검사구 잠금장치래. 기성품 넣을 틈이 안 나온다고.”
해솔은 제어함 볼트 사진을 펼쳤다. 옆에는 크기 비교를 위한 눈금이 찍혀 있었다. 사진 속 홈의 간격과 그림의 수치가 가까웠다. 바다 밑에서 한쪽 빛에만 드러났던 눌린 가장자리가 가게 형광등 아래서는 더 선명했다.
맞는다.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이걸 만든 사람이 누굽니까?”
우찬의 질문이 먼저 나갔다.
“내가 만들었지.”
“규격 바꿔 달라는 통화도 직접 받으셨고요?”
“그렇소. 목소리는 기억 안 나요. 두 달 전 거래처 목소리를 다 기억하면 여기 앉아서 장사하겠어요.”
주인이 책장을 넘기자 해솔은 입을 다물었다. 종이 속 도형이 물속의 행위를 대신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처음이었다. 잠수 기록에서만 보던 흠집에 가격과 주문일이 붙었다.
한 자루의 가격 옆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수정 가공비 별도.
해솔은 그 말을 오래 보았다. 누군가는 배 안에 들어갈 작은 물건 하나를 위해 다시 전화하고, 얼마가 더 드는지 물었을 것이다. 그때 바다는 아직 평범했을 것이다.
***
가게 뒤쪽에서 젊은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비닐에 든 김밥 세 줄을 내려놓다가 우찬의 출입증을 보고 손을 멈췄다.
“아버지, 배 때문에 오신 거야?”
“밥이나 먹어.”
여자는 먹지 않았다. 해솔이 펼친 사진을 보다가 작업대 건너편 의자를 끌어왔다. 앉지는 않고 등받이만 잡았다.
“그 회사 외상 아직 있어요.”
“그 얘기는 왜 해.”
“그러니까 하는 거지.”
주인의 손등 핏줄이 솟았다. 그가 견적장을 덮으려 하자 딸이 먼저 책 끝을 눌렀다. 두 사람의 손이 종이 위에서 마주쳤다.
“아버지가 뭘 했다는 게 아니잖아.”
“그걸 누가 알아주는데.”
골목의 쇳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대화가 멎으니 가게가 온통 그 소리로 찼다.
주인은 딸의 손 아래서 천천히 자기 손을 뺐다.
“우리는 물건을 팔았어요. 저 배에 사람이 몇 명 탔는지도 몰랐고.”
해솔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없었다. 안다고 하는 것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도 자신이 줄 수 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대신 작업대에 걸쳐 놓았던 팔을 거뒀다. 주인이 김밥을 놓을 자리가 났다.
“아침 안 드셨으면 먼저 드세요.”
주인은 헛웃음을 냈다.
“이 판에 넘어가겠소?”
딸이 한 줄을 집어 아버지 앞에 놓았다.
“안 넘어가도 먹어. 혈당 떨어지면 더 화내니까.”
주인은 무어라 하려다가 김밥 끝을 집었다. 해솔은 그 짧은 틈에 사진을 접었다. 오늘 안에 답을 전부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사람의 아침까지 빼앗고 있었다.
***
렌치는 가게 안에 있었다.
주인이 안쪽 수리 대기함에서 긴 종이봉투를 꺼냈다. 반납된 뒤 손잡이 덧대는 일을 기다리다가 거래처가 찾아가지 않은 물건이라고 했다. 봉투에 붙은 접수표의 주문번호가 견적장과 같았다.
해솔은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
주인이 그것을 보았다.
“기름 묻어도 괜찮아요. 원래 공구요.”
“알고 있습니다.”
해솔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에는 정말 웃음이 조금 났다.
“그래서 버릇이 나와서요.”
확인을 맡기로 한 기술 담당자가 도착할 때까지 공구는 봉투 옆에 두었다. 선사 측 입회자는 골목 끝에서 전화를 끝내고 들어왔다. 그는 렌치보다 먼저 견적장 촬영 범위를 물었다. 딸이 다른 거래처 페이지 위에 빈 종이를 올렸다.
기술 담당자는 렌치의 두 갈래를 재고 수치를 불렀다. 해솔은 받아 적힌 값을 자기 수중 사진과 나란히 놓았다. 홈을 물릴 수 있는 폭이었다. 한쪽 끝을 더 깎은 형상도 맞았다.
“확정입니까?”
선사 직원이 물었다.
해솔이 고개를 들었다.
“이 규격으로 그 장치를 돌릴 수 있습니다.”
“그 사진, 물속에서 찍었죠? 비스듬히 찍으면 다르게 나오는 건 아시잖아요.”
“그래서 규격을 확인하는 겁니다.”
그가 말을 잇기 전에 해솔이 손잡이 끝을 가리켰다.
“실제로 쓴 물건이 이 한 자루인지 알아보는 건 다른 검사고요. 반납한 날부터 어디 있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직원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결국 모른다는 말씀이네요.”
딸이 잡고 있던 의자가 바닥에서 삐걱거렸다.
“우리 아버지가 만들었다잖아요.”
“아버님 말씀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저 사람이 모르는 부분을 말하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해요?”
아무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해솔은 딸 쪽을 보았다. 입회자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우찬은 가게 밖에서 들고 온 의자를 그에게 밀어 주었다.
“앉으시죠. 케이블도 확인해야 합니다.”
***
견적은 렌치에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주문번호 아래에 케이블과 제어 레버가 있었다. 렌치는 이 가게에서 만들었고, 나머지는 거래하는 부품점에 발주해 함께 보냈다. 납품처는 정기검사업체 자재실이었다.
그런데 결제 대조표의 품명은 달랐다.
선원 체육용품.
주인의 딸이 그 줄을 보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언제 운동기구도 팔았어?”
“웃을 일 아니다.”
“안 웃었어.”
그녀의 얼굴은 정말 굳어 있었다.
가게가 발행한 거래명세에는 공구와 부품 이름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체육용품이라는 글씨는 그쪽 지급 통지에 붙어 돌아온 것이었다. 주인은 돈이 맞게 들어왔으니 그때는 이름을 따지지 않았다고 했다.
선사 직원은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우찬이 지급 통지의 원본 위치부터 함께 확인하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구매원장 사본이 왔다. 주문번호와 납품처가 맞았고, 선사 복지행사 비용에서 지출된 금액이 가게 입금액과 맞았다. 다른 부서가 번호를 옮기는 과정에서 품목만 틀린 것인지, 처음부터 다르게 써서 올린 것인지는 승인 문서가 더 필요했다.
해솔은 김밥 포장지가 쌓인 작업대에 자료를 펼쳤다. 아침에는 바다 밑의 자국을 설명하려고 사진을 가져왔는데, 이제 부품보다 많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이거 다 우리 가게 일로 나가는 겁니까?”
주인이 물었다.
“자료 출처는 남습니다. 지금 공개 기사에 가게 이름을 싣는 작업은 아닙니다.”
우찬이 말했다.
“신문에는 안 나와도 저 회사는 알잖소.”
우찬은 대답을 늦췄다.
“그건 그렇습니다.”
주인은 한참 그를 보더니, 딸에게 도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
류경문은 영상 연결을 거절하고 전화만 받았다.
“복지계정이라고 해서 대표가 하나하나 도장 찍는 줄 압니까? 회계팀에서 분류를 잘못한 모양이네요.”
우찬은 스피커 소리를 낮췄다. 가게 밖까지 들릴 이유는 없었다.
“세 품목이 한 주문으로 묶였고, 검사 자재실에서 받았습니다. 대표님은 그 작업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결재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보고받은 적이 있는지 여쭸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기억 안 납니다. 공문으로 보내세요.”
통화가 끝났다. 해솔은 아직 켜져 있는 화면을 보았다. 목소리는 사라졌는데 가게 안 사람들은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딸이 영수증 묶음을 아버지 쪽으로 밀었다.
“진술서에는 만든 것만 써. 배에서 썼다는 말까지 쓰지 말고.”
“나도 알아.”
“알면 그렇게 써.”
주인은 볼펜을 잡았다. 첫 줄을 쓰고 한참 멈췄다가, 끝에 ‘주문받은 규격대로’라는 말을 덧붙였다.
해솔은 그 말을 지워 달라고 하지 않았다.
***
수령 확인은 늦은 오후에 맞춰졌다.
자재실 접수표에는 검사 업체 직원의 서명이 있었다. 그 아래 별도의 인계 칸에는 선사 운영본부 대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찬은 그 이름을 읽고 자료 가방을 열었다.
해솔도 알아보았다.
B-7 방제선 사전 주문을 승인한 사람.
우찬은 방제 주문서 사본을 꺼냈다. 이름뿐 아니라 운영번호도 같았다. 공구를 보낸 일과 사고 전에 방제선을 준비한 일이, 같은 번호를 따라 한 사람의 책상에서 만났다.
해솔은 종이 두 장을 붙이려다가 손을 멈췄다. 지금 당장 그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싶었다. 누출될 걸 알고 레버부터 달았느냐고.
하지만 질문을 그렇게 하면 답은 하나뿐일 것이었다.
우찬은 먼저 각 문서의 승인 담당자에게 따로 자료 요청을 보냈다. 해솔은 그 옆에서 날짜를 확인했다. 그가 기다리는 동안에도 바다에서는 포집 장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멈출 수 없는 비용과 늦출 수밖에 없는 판단이 하루 안에 함께 있었다.
주인이 견적장을 치우다가 손을 멈췄다.
“그런데 당신들, 이거 하나만 찾는 거요?”
해솔이 돌아보았다.
주인은 여백의 그림을 넘겼다. 얇은 종이 뒷면에 연필 글씨가 남아 있었다. 정면에서는 주문금액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메모였다.
동일 규격 두 점. 한 점 먼저, 나머지 다음 날.
“수정해서 두 개 만든 거요. 이건 돌아온 거고.”
작업대 위 렌치가 갑자기 작아 보였다.
기술 담당자가 확인해 둔 접수표에는 한 점만 있었다. 다음 날 납품한 다른 한 점의 반납 기록은 없었다.
해솔은 공구를 보다가 그 너머 골목을 보았다. 가게마다 쇠붙이가 매달려 있었다. 바다 밑 좁은 제어함에만 있을 줄 알았던 물건이 이 골목 어딘가에도, 누군가의 차 안에도 있을 수 있었다.
주인이 물었다.
“돌아오지 않은 것도 찾아야 합니까?”
해솔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은색 레버 앞,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너비의 통로가 떠올랐다.
“네.”
그는 사진을 뒤집어 인쇄면이 보이지 않게 놓았다. 내일 재필에게 먼저 보여 줄 사진을 고르려던 생각도 함께 접었다. 누가 무엇을 들었는지 묻기 전에, 그가 그 좁은 길에서 무엇을 봤는지부터 들어야 했다.
돌아온 렌치는 작업대에 남았다.
남은 한 자루는 아직 누구의 손에도 놓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