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판타지 직업 코미디 34화

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거절 한 건의 수수료

사람 플랫폼 본사 조정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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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플랫폼 본사 조정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밤새 폐목욕탕 보일러실에 있던 남해온은 오전 아홉 시에 다시 지하 방으로 들어왔다. 다른 점이라면 검은 재 대신 복사기 열기가 날렸고, 요괴 단말기 대신 대기번호 표시판이 사람을 재촉한다는 것뿐이었다.

민채원은 외주계약서 사본을 책상 위에 놓았다. 그 아래에는 플랫폼이 보관하던 계약 원본이 펼쳐져 있었다. 새벽에 확보한 사본의 문서번호로 원본을 찾아낸 것이었다.

보일러실을 나온 뒤 채원은 기존 공동대응 연락망으로 나머지 네 피해자에게 자료 재사용 범위를 다시 물었다. 오전 회의 전까지 네 사람 모두 답했고, 이름 공개를 거부한 사람의 자료는 봉인한 채 사고번호와 동의한 항목만 가져왔다. 동의가 확인되지 않은 치료자료는 파일에서 뺐다.

두 문서의 마지막 장에는 같은 문장이 있었다.

사고 한 건을 보장대상에서 제외할 때마다 추가 수수료 지급.

플랫폼 법무담당 권태식은 그 줄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옆에는 사고보장 재심책임자 정선우가 원본 열람대와 승인도장을 놓고 앉아 있었다. 오늘 다섯 건을 다시 판단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부적절한 성과조항인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계정 재판매는 외주업체 직원의 개인 일탈입니다. 기존 사고 심사와는 별개입니다.”

김도윤이 손목보호대를 책상에 탁 내려놓았다.

“거절할 때마다 돈을 줬는데 거절 결과는 별개라고요?”

“각 사고의 보장 여부는 약관과 자료로 판단됐습니다.”

“그 자료를 덜 보게 만들수록 수수료를 받은 사람들이 판단했고요.”

권태식이 준비한 답변을 찾듯 서류를 넘겼다. 종이 모서리가 반듯했다. 도윤의 보호대 끝은 닳아서 실밥이 일어나 있었다.

콩쇠는 해온의 배차가방 옆주머니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본사 출입구에서 방문증을 받으려다 주민등록번호 칸 때문에 포기한 뒤였다.

“사람 회사는 문턱이 참 많다.” 그가 해온 귀에 속삭였다. “허락말도 매번 달라.”

“지금은 조용히 있어요.”

“방문목적에 ‘도깨비 배차’라고 썼다가 네가 지웠잖아.”

“그래서 들어온 겁니다.”

채원이 외주계약서 위에 얇은 가림판을 놓았다. 흰 매듭이 찍힌 사본은 참고봉투로 밀어 넣고, 사람 플랫폼에서 나온 원본과 사고기록만 책상 가운데 남겼다.

“요괴장부를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권태식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채원은 다섯 개의 얇은 파일을 펼쳤다. 이름은 당사자가 허락한 범위만 보였고, 치료내용은 심사에 필요한 쪽만 남아 있었다.

“사람세계 기록만으로 다시 봅시다. 운행시각, 배차지시, 현장사진, 휴식기록. 외부 연계자료는 빠진 사고를 찾는 데만 썼고 결론의 근거로 내지 않겠습니다.”

도윤이 채원을 돌아봤다.

“왜 우리가 또 증명해야 합니까? 조작된 계정이 확인됐으면 다섯 건 다 승인해야죠.”

“거절을 자동으로 찍던 자리에 승인을 자동으로 찍으면, 이번에는 사고 당사자의 실제 손해가 빠집니다.” 채원이 말했다. “치료비인지 수리비인지, 쉬어서 잃은 수입인지 알아야 받을 돈도 움직여요.”

“그동안 못 받은 시간은 누가 돌려줍니까?”

그 질문에는 채원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해온은 도윤이 왜 화를 내는지 알았다. 사람은 다쳤고 치료비는 이미 나갔다. 플랫폼은 이제야 다시 보겠다면서도 서류를 순서대로 놓으라고 했다. 옳은 절차가 늦게 도착하면, 피해자에게는 또 하나의 업무가 됐다.

그는 첫 번째 파일을 도윤 앞으로 밀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리하죠. 당사자들이 같은 말을 다섯 번 하지 않게.”

도윤의 사고기록에는 계단 낙상 직전 ‘지정경로 이탈’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플랫폼은 그 한 줄로 개인 부주의를 판단했다.

해온이 배차화면 인쇄본을 옆에 놓았다.

“지정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앱이 비상계단으로 재탐색했습니다. 이탈이 아니라 시스템이 바꾼 길입니다.”

정선우는 화면 아래 작은 시각을 확인했다. 재탐색은 사고 삼 분 전, 시설고장 접수는 십일 분 전이었다.

“시설팀 자료를 더 보겠습니다.”

“이미 뒤에 있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해온이 도윤의 기존 공동대응 폴더에 들어 있던 시설고장 접수표를 꺼냈다. 콩쇠가 가방 안에서 작게 감탄했다.

“사람길 원부는 복사기에서 나오네.”

두 번째 파일은 빗길 충돌이었다. 심사표에는 ‘임의 운행중단 후 재출발’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휴식기록을 펼치자 중단 사유는 플랫폼이 보낸 폭우 대기명령이었다. 세 번째 파일의 전기자전거 파손은 배송 전 사진에는 없던 균열이 사고 직후 인수사진에 선명했다.

권태식의 반듯한 서류더미가 하나씩 비뚤어졌다.

정선우가 사진 수신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이 사진은 최초 심사 때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됐습니다.”

도윤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기사 앱에는 제출완료라고 떠 있습니다.”

해온은 사진 전송시각과 서버 수신번호를 짚었다. 전송은 됐고, 외주 심사화면에서만 ‘첨부 없음’으로 분류돼 있었다. 거절 한 건의 수수료 조항이 종이 위에 가만히 있었지만,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그 문장을 다시 읽은 표정이었다.

네 번째 파일을 열자 정선우가 물었다.

“당사자는 왜 참석하지 않았습니까?”

“공동대응에 이름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채원이 답했다. “참석 여부와 보장권리는 별개입니다. 비공개 진술과 원본 열람 동의는 받아 왔습니다.”

파일 안에는 얼굴이 가려진 현장사진과 병원 도착시각, 마지막 배송완료 기록이 있었다. 사고 뒤에도 앱이 다음 배차를 두 번 밀어 넣은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정선우는 원본을 한 장씩 대조한 뒤 검토표 네 곳에 파란 도장을 찍었다.

재심 승인.

도윤의 휴대전화가 먼저 울렸다. 미지급 치료비와 휴업일을 다시 산정한다는 알림이었다. 잠시 뒤 다른 파일의 당사자들에게도 같은 알림이 갔다. 방에 오지 않은 배송원에게서는 채원 앞으로 짧은 문자가 왔다.

병원 예약 다시 잡았습니다. 이름은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채원은 답장을 보여 주지 않고 수신 여부만 확인표에 적었다.

해온은 도윤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가는 걸 봤다. 돈이 아직 입금된 것도 아니고 손목이 낫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병원 예약을 취소했던 사람이 다시 날짜를 잡았다. 기록이 생활로 돌아오는 첫 장면이었다.

도윤은 조정실 한쪽으로 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길어질수록 엄지로 보호대 찍찍이를 문질렀다. 예약실 직원이 오후 진료 한 자리가 남았다고 하자 그는 습관처럼 배차앱부터 켰다. 점심 두 건, 오후 세 건이 이미 잡혀 있었다.

해온이 화면 위에 손을 얹었다.

“오늘 승인받은 건 치료비만이 아닙니다. 쉬는 날도 다시 심사하는 거잖아요.”

도윤은 다섯 개 호출을 한참 보다가 모두 반납했다. 화면의 예상수입 숫자가 줄었다. 대신 병원 예약 문자가 그 자리에 올라왔다.

“이거 반납하면 등급 떨어지는데.”

“그래도 손목은 안 떨어집니다.”

배차가방 안에서 콩쇠가 중얼거렸다.

“사람 앱은 다친 날에도 참 부지런하네. 다음 짐부터 먼저 보내고.”

도윤은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가방을 힐끗 봤다. 묻지는 않았다. 보호대를 고쳐 찬 손으로 병원 문자에 ‘확인’을 눌렀다.

책상에는 다섯 번째 파일이 남았다.

새벽 물류창고에서 후진하던 차량과 부딪힌 사고였다. 플랫폼 기록에는 충돌시각 전후의 위치가 비어 있었고, 당사자가 낸 사진은 사고 다음 날 찍은 것이었다. 치료받은 사실은 분명했지만 그 부상이 배차 중 생겼다는 연결고리가 모자랐다.

도윤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같은 외주팀이 거절했습니다. 이것도 승인해야죠.”

정선우는 이번에는 즉시 도장을 들지 않았다. 채원도 승인을 재촉하지 않았다.

해온이 파일 속 배차표를 보다가 빈 시간 옆의 작은 글씨를 발견했다.

‘서문 인계대 수동접수.’

“위치기록이 끊긴 게 아니라 수동접수 구간입니다. 창고 서문 출입대장을 보면 배차 중이었는지는 확인됩니다.”

“출입대장은 외부 물류업체 자료입니다.” 정선우가 말했다.

“그럼 요청기한을 적어 주세요.” 도윤이 끼어들었다. “자료 부족이라는 말만 남기지 말고, 무슨 자료를 누가 언제까지 가져올지요.”

조정실이 조용해졌다.

처음 들어올 때 도윤은 전부 자동승인하라고 했다. 이제 그는 남은 한 건을 지우지 않을 문장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선우는 다섯 번째 칸에 ‘보류’ 대신 ‘현장자료 추가심사’라고 적었다. 서문 출입대장과 차량운행표는 플랫폼이 사흘 안에 직접 요청하고, 받지 못하면 그 사유와 대체자료를 당사자에게 서면 통지하기로 했다. 재심 중 치료비 긴급선지급도 별도 검토칸에 올렸다.

“사흘 뒤에 또 영업일 얘기하면요?” 도윤이 물었다.

“이 번호로 제게 직접 연락하십시오.”

정선우가 명함을 내밀었다. 콩쇠가 가방 안에서 속삭였다.

“드디어 진짜 이름 있는 책임자가 나왔네.”

해온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조정실을 나왔을 때는 점심 배달이 몰리는 시간이었다. 현관 앞에는 오토바이가 줄지어 섰고, 기사들은 한 손으로 햄버거를 먹으며 다른 손으로 다음 호출을 넘겼다.

도윤은 보호대를 다시 찼다.

“네 건 승인됐다고 끝났다고 하진 맙시다.”

“안 합니다.” 채원이 말했다.

“남은 한 건도 날짜까지 받았고요.” 해온이 덧붙였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기 휴대전화를 다시 봤다. 승인 알림 아래에 새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발신번호는 없고, 흰 글씨가 화면 위에 떠 있었다.

보장받지 못한 책임을 없애 드립니다.

돈 대신 이름을 맡기십시오.

콩쇠가 배차가방에서 뛰어나왔다. 이번에는 경비원이 봐도 상관없는 얼굴이었다.

“동결된 부조금 대신 장사할 걸 바꿨어.”

도윤의 승인 알림은 그대로였다. 해온은 동결 뒤 돈길이 막히자 아직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름 자체를 담보로 바꾸려는 새 거래일 가능성을 떠올렸다. 백결의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어도, 메시지가 노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해온은 메시지를 누르지 못하게 도윤의 손을 막았다.

화면 아래에 주소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서른다섯째 밤, 지하상가 빈 점포.

이번 거래소는 보상금을 팔지 않았다.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살아갈 다음 날을 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