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33화

수심 43미터의 종

정비일지의 빈 금요일

금요일 하나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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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하나가 비어 있었다.

앞뒤 주에는 초록색 완료 표시가 있었다. 사고 두 달 전의 그 주만 흰색이었다. 정우찬은 출력물을 창가에 들어 보았다. 인쇄가 흐린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칸이었다.

류경문은 그 칸을 보고 웃었다.

“전산 바꿀 때 빠진 겁니다. 그런 거 한두 개 아닐 텐데.”

우찬이 수기 정비철을 펼쳤다. 종이 가운데에는 손때가 남아 있었고, 묶은 실만 유난히 희었다. 빠진 쪽을 누가 언제 다시 묶었는지는 아직 몰랐다.

경문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이것도 새로 묶으면 안 됩니까?”

“됩니다.”

우찬이 대답했다.

그 짧은 말에 경문의 시선이 멎었다.

“그래서 이것만 가지고 지웠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우찬은 정비철을 덮고 다른 종이를 꺼냈다. 빈 금요일에 청람호가 항만에 머문 비용을 청구한 서류였다. 작업 사유 칸에 글씨가 있었다.

화물창 배수 효율 개선.

“누가 했습니까?”

경문은 이제 출력물 대신 우찬을 보았다.

***

강해솔은 그날 잠수하지 않았다.

몸이 피곤한 것보다 손이 남는 게 낯설었다. 포집 장비의 유지 상태는 교대팀이 확인하고 있었다.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장비를 열어 볼 뻔했다가, 고정줄에 손을 올리고 멈췄다.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늘 같지는 않았다.

문재필이 부두에 나왔다.

그는 우찬에게서 받은 달력 사본을 네 번 접어 손에 쥐고 있었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가장자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날 기억납니까?”

해솔이 물었다.

“날짜는 기억 안 납니다.”

재필은 방파제 쪽을 보았다.

“하루 더 묶였던 건 기억나요. 나간다고 했다가 안 나갔어요. 사람들 약속이 다 틀어졌거든.”

“무슨 작업인지 들었어요?”

“육상에서 한다고.”

그 말이 끝이었다. 재필은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이면 됐습니다.”

부두의 작업차가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후진 경고음이 멀어지자 재필이 종이를 폈다. 그는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지 않았다. 기억나는 하루가 종이에 찍힌 그 금요일인지도 아직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물어봤어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그거죠.”

해솔은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지금은 물어보고 싶어요. 두 달 전 나한테.”

재필이 달력을 접었다. 해솔은 그 종이를 대신 받아 들지 않았다. 대신 작업차가 가로막았던 길에서 옆으로 비켜 섰다. 재필이 먼저 걸었다.

***

일용 인력은 네 명이었다.

명단의 이름은 제대로 적혀 있었지만 소속 칸에는 업체 약칭만 있었다. 우찬이 정기검사업체에 확인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그날의 정규 검사 명단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 네 명이 배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출입 담당자는 출입증 발급 내역을 내밀었다. 네 장 모두 임시증이었다. 서류를 건네는 손이 유난히 빨랐다.

“번호는 맞습니다. 들어간 것까지는 저희가 확인합니다. 배 안에서 뭘 했는지는…….”

“그쪽에서 본 것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담당자가 말을 멈췄다. 이미 준비해 둔 방어 문장이 갈 곳을 잃은 표정이었다.

우찬은 발급 시각과 반납 기록을 확인했다. 네 명은 같은 시각에 들어오지 않았고, 임시증도 한꺼번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 사람을 한 덩어리로 그려 놓았던 머릿속 그림을 지웠다.

그때 해솔에게 전화가 왔다.

식사 인원표를 보관한 쪽에서 자료가 준비됐다고 했다. 해솔은 사무실을 나오면서 재필에게 함께 가자고 할 뻔했다. 우찬이 미리 당부한 말이 떠올랐다. 기억하는 사람들을 한 방에 모아 답을 맞추게 만들지 말 것.

해솔은 혼자 갔다.

항만 식당 뒤편에는 빈 쌀자루가 접혀 있었다. 주인은 서류철을 무릎에 놓고 장갑을 벗었다. 대책실의 투명 파일과 달리 기름이 밴 작은 공책이었다.

“우린 배에다 청구했지, 사람한테 한 건 아니에요.”

주인이 먼저 말했다.

“돈 얘기하러 온 게 아닙니다.”

“다 그렇게 말하고 돈 얘기하던데.”

해솔은 그 말에 웃을 수 없었다. 그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날 네 명이 무엇을 했는지였지만, 주인이 걱정하는 것은 이미 받은 돈을 돌려줘야 하는지였다. 사건의 크기가 달라도 자기 앞의 비용은 작아지지 않았다.

“식사 기록을 확인하려고요. 작업에 대해 모르시는 건 안 말씀하셔도 됩니다.”

주인이 안경을 썼다.

공책에는 선원 식수와 별도로 추가 인원이 적혀 있었다. 해솔은 숫자를 먼저 읽고 주인에게 되물었다. 인원수인지, 식사 수인지.

“끼니 수죠. 네 사람이 한 끼 먹을 수도 있고 둘이 두 끼 먹을 수도 있어요.”

해솔은 공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네 명이라는 말을 확인하고 싶어서 네 끼를 사람 네 명으로 읽을 뻔했다.

그는 정정한 내용을 적었다. 공책 주인은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짚어 주고 나서야 어깨를 폈다. 적힌 숫자를 크게 만들어 가지고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듯했다.

***

류경문은 배수 호스 하나 바꾼 일을 선박 개조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오후 회의에는 전보다 사람이 적었다. 조사팀이 가져온 자료를 보는 선사 직원의 손이 계속 전화기 쪽으로 갔다. 경문은 그 손을 한 번 내려다본 뒤 의자를 뒤로 뺐다.

“배라는 게 날마다 고치면서 쓰는 겁니다. 그때마다 누구 허락을 받습니까?”

우찬은 대답 대신 은색 레버 사진을 꺼냈다.

“배수 호스라고 하셨죠. 이 장치는 무엇입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실무자한테 물어야지.”

“그러면 호스만 바꿨다는 건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경문의 손이 멈췄다.

선사 직원이 탁자 밑에서 전화기를 뒤집었다. 화면의 빛이 꺼졌다. 해솔은 그 손을 봤다가 다시 경문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서류에 그렇게 돼 있으니까 한 말이죠.”

경문이 답했다.

우찬은 정박료 청구서의 작업 사유를 보여 주었다. 호스라는 단어는 없었다. 경문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그게 그 말 아닙니까.”

“같은 작업인지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답은 기록된 사실이 아니라 대표님 해석으로 남기겠습니다.”

보험자 쪽 참석자가 계약 자료를 펼쳤다. 어떤 작업이 통지 대상이었는지 확인할 조항에 종이쪽지를 끼웠다. 경문이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 보상 안 할 구실 찾는 겁니까?”

“무엇을 달았는지도 모르는데 지급부터 정하진 않겠습니다.”

우찬이 레버 사진을 탁자 가운데로 옮겼다. 경문의 시선이 계약서에서 사진으로 돌아왔다.

경문이 일어났다.

“작업자들 불러서 한 번에 물으면 끝날 일을 참 길게 하시네.”

우찬은 그제야 그를 똑바로 보았다.

“한 번에 부르지는 않을 겁니다.”

***

재필은 도면 앞에서 오래 망설였다.

빈 금요일 무렵 배에 있었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떠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그때 무엇을 봤느냐고 묻는 것은 달랐다. 죽은 이들의 이름 사이에 살아 있는 번호가 섞여 있었다. 휴가였거나 다른 근무였던 사람들. 그는 누구에게 먼저 걸어야 덜 잔인한지 정하려다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우찬은 재필이 기억하는 근무 관계와 연락 가능한 사람만 따로 받았다. 내용 확인은 조사팀이 개별로 맡았다. 재필에게 자신이 대신 사고를 설명할 의무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나한테 맞춰서 말할까 봐 그렇습니까?”

재필이 물었다.

“서로 기억이 섞이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내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고요.”

“제 질문이 잘못될 수도 있죠.”

재필이 우찬을 보았다. 우찬은 그를 설득하려고 웃지 않았다. 새 도면을 한 장 꺼내 다른 표시가 없는 면을 펼쳤다.

재필은 자신이 본 구역을 그렸다. 가 보지 않은 곳은 비워 뒀다. 그때 육상 작업자에게 길을 내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들이 무슨 물건을 옮겼는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기억 속에는 상자 모양이 있었지만, 어제 본 제어함 사진 때문에 그 상자가 지금 더 또렷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상자를 그리려던 펜을 멈췄다.

“물건 모양은 빼겠습니다.”

우찬이 끄덕였다.

펜은 선미 쪽 통로에서 화물창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

그다음 날 오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작성된 도면이 모였다.

셋이 가리킨 길이 겹쳤다. 똑같지는 않았다. 한 사람은 계단부터 그렸고 다른 사람은 작업자들이 기다리던 문 앞에서 멈췄다. 재필은 그 안쪽까지 선을 그었다. 우찬은 다른 부분을 지워서 맞추지 않았다. 겹치는 부분만 얇게 표시했다.

해솔은 나란히 놓인 도면을 보다가 선미 통로 사진을 가운데 놓았다.

“여길 지나갔네요.”

“그날의 작업 동선은 여기로 모입니다.”

“장치를 단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범위를 좁힐 수는 있습니다. 그 말까지 하려면 부품과 공구가 더 필요합니다.”

그 공구 기록이 오후에 왔다.

반출표의 품목은 두 갈래 특수렌치였다. 해솔은 전날 확보한 두 사진을 꺼냈다. 잠금핀의 흔적과 제어함 볼트의 흔적. 그 사이에 종이 한 장이 들어갔다. 아직 공구 실물을 본 것은 아니었다. 세 장을 놓는 손이 잠깐 떨렸지만 그는 치수를 같다고 적지 않았다.

이제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는 알았다.

우찬이 구매처 정보를 요청하는 동안 재필은 자기 도면을 보고 있었다.

“배 안에서 모르는 공사가 있었네요.”

그가 말했다.

“누가 책임지는지 정해진 공사인 줄 알았습니다. 육상에서 한다니까. 내가 묻지 않아도 누군가는 물었을 줄 알았어요.”

해솔은 답을 쉽게 줄 수 없었다. 자신도 다른 사람의 확인 표시를 믿고 바다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걸 전부 의심하면 일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우찬은 재필의 말을 기록한 뒤 별도의 종이에 작업 승인과 완료 확인을 맡은 부서를 적었다. 질문하지 않은 선원 이름만 쓰고 끝내지 않았다.

“선원들이 못 본 건 선원들에게 묻겠습니다. 누가 봐야 했는지는 회사에 묻고요.”

재필이 도면을 접었다. 이번에는 오래 문질러 접지 않았다.

***

책상을 정리하려는데 추가 자료가 도착했다.

우찬은 숙박비 정산서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열었다. 일용 인력 네 명 가운데 한 명의 이름이 있었다. 현장 업체가 일괄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급처가 달랐다.

그는 해솔에게 종이를 돌렸다.

선사 비서실 법인카드.

해솔은 조금 전 류경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실무자한테 물어야지. 대표가 어떻게 다 아느냐고 하던 말이었다. 이 결제 한 건이 그 말을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비서실이 처리한 비용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 밑 레버와 대표실 사이에 아무 길도 없다는 말은 이제 할 수 없었다.

“이 사람부터 부릅니까?”

해솔이 물었다.

우찬은 숙박비 정산서 옆에 공구 반출표를 놓았다.

“먼저 물건을 보죠.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비교할 수 있게.”

해솔은 항만 공구상가의 주소를 확인했다. 내일 갈 곳은 바다보다 얕고, 아마 더 밝을 것이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빈 금요일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니었다.

일한 사람도, 먹은 끼니도, 가져간 공구도 있었다. 남지 않은 것은 그 일을 무엇이라 불렀는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