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판타지 직업 코미디 33화

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사람 계정이 연 문

폐목욕탕 보일러실의 환풍기가 돌자 천장에서 검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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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목욕탕 보일러실의 환풍기가 돌자 천장에서 검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

남해온은 마스크 위로 눈을 가늘게 떴다. 재는 바닥에 닿기 전에 사라졌지만, 오래된 기름 냄새는 그대로 남았다. 사람길에서 폐업한 지 칠 년 된 목욕탕이었다. 그런데 구석 단말기에는 방금 접속한 흔적이 푸르게 뛰고 있었다.

화면 왼쪽은 사람 플랫폼 관리자 페이지였다. 오른쪽은 백결 거래소 입장명부였다. 가운데에는 두 화면을 잇는 흰 매듭이 한 획씩 조여졌다.

콩쇠가 마스크를 턱까지 내렸다.

“이런 건 입으로 불면 꺼지나?”

“마스크 올리세요.”

“재는 사라졌는데.”

“곰팡이는 사람길 겁니다.”

콩쇠는 즉시 마스크를 코 위까지 끌어올렸다. 요괴도 폐목욕탕 곰팡이는 싫은 모양이었다.

민채원은 허가표식을 단말기 앞 안전선에 붙였다.

“여기부터 기록보전 범위입니다. 화면을 넘기지 말고 현재 접속표식부터 읽겠습니다.”

해온은 휴대전화 시각을 불렀다. 채원은 사람 플랫폼의 마지막 접속시각과 요괴 거래소 문턱이 열린 시각을 같은 종이에 적었다. 둘은 초 단위까지 같았다.

사용자 이름은 ‘관리자_야간외주03’.

접속 위치는 이미 폐점한 편의점 세 곳 가운데 하나였다. 스물세째 밤, 퇴사한 직원 계정으로 사고접수를 읽어 가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해온이 화면 아래를 가리켰다.

“읽기만 한 게 아닙니다.”

사고접수 목록마다 작은 흰 매듭이 달려 있었다. 사람 플랫폼에서 ‘개인 부주의’로 종결된 건은 오른쪽 거래소로 넘어가 요괴 수취송장이 됐다. 치료비가 거절된 사고에는 치료비만큼의 부조금 가격이 붙었고, 수리비가 거절된 사고에는 파손보상 가격이 붙었다.

사람 쪽에서는 책임을 남기고, 요괴 쪽에서는 보상을 가져가는 길이었다.

콩쇠가 주먹을 쥐었다.

“계정 이름도 있고 한 일도 보이잖아. 지금 명부에 박아서 잡자.”

“계정 이름이지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해온이 말했다.

“관리자가 썼겠지.”

“내 이름으로 미리 찍힌 송장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콩쇠의 주먹이 천천히 풀렸다.

채원은 단말기 옆의 목욕탕 벽시계를 봤다. 초침은 두 시 사십일 분에서 멈춰 있었다. 플랫폼 기록에도 이상 접속이 늘 같은 분에 몰렸다. 누군가 실제로 그때마다 계정을 썼는지, 자동화된 문이 시간을 맞춰 열렸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명의자, 실사용자, 권한을 넘긴 사람. 셋을 나눠야 합니다.” 채원이 말했다. “그리고 이 계정으로 거절된 사고는 누가 범인이든 별도로 다시 봐야 하고요.”

단말기 아래에서 종이 한 장이 저절로 출력됐다.

접속 중단까지 00:09:59.

콩쇠가 종이를 낚아챘다.

“십 분 뒤면 문이 닫혀. 명의자 이름부터 공개해서 플랫폼을 움직이게 하자.”

해온도 남은 시간을 봤다. 원본을 보전하려면 빠른 압박이 필요했다. 사람 플랫폼은 요청서를 보내면 접수번호를 만들고, 담당자를 정하고, 영업일 기준이라는 말을 붙였다. 백결의 문은 십 분 뒤 닫혔다.

그래도 이름을 먼저 던질 수는 없었다.

“도윤 씨부터 부릅시다.”

“피해자를 왜?” 콩쇠가 물었다.

“사고자료를 어디까지 열어도 되는지 본인이 정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플랫폼에 바로 닿을 사람은 조정소보다 사고 당사자일 수 있습니다.”

해온은 김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세 시가 가까웠지만 도윤은 두 번 만에 받았다. 뒤에서는 오토바이 시동 소리가 났다.

“지금 배달 중입니다. 또 제 이름 나왔습니까?”

“이름 자체는 봉인돼 있습니다. 대신 사고거절 목록이 거래소로 넘어간 경로를 찾았습니다. 사고번호와 거절시각을 플랫폼에 다시 제시해도 될까요?”

“치료내용은 빼고요.”

“사고번호, 운행시각, 거절결과만.”

도윤은 잠깐 말이 없었다. 신호대기 안내음이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걸로 원본을 묶을 수 있습니까?”

해온이 수화기를 채원에게 건넸고, 채원이 이어 답했다.

“긴급보전 요청은 가능합니다. 계정명의 공개는 아직 하지 않겠습니다.”

“왜요? 관리자 계정이라면서요.”

“누가 실제 썼는지 확인 전입니다.”

도윤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답답하긴 한데, 제 이름도 확인 없이 범인 칸에 들어갔었죠.”

오토바이 경적이 울렸다. 도윤이 누군가에게 “잠시만요”라고 말한 뒤 다시 전화를 들었다.

“공개는 미뤄도 플랫폼이 기록 지우지 못하게는 해 주세요. 제 사고뿐 아니라 같은 날 거절된 건 전부.”

“그렇게 요청하겠습니다.”

채원은 통화를 스피커로 전환하지 않았다. 도윤이 허락한 문장만 자기 기록지에 옮겼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실 전체에 울리는 것과, 필요한 범위를 확인하는 것은 달랐다.

남은 시간은 칠 분 삼십 초.

채원은 사람 플랫폼 긴급보전 창구에 도윤이 동의한 사고번호 한 건과 접속시각, 계정 식별값을 전송했다. 이름과 치료내역은 넣지 않았다. 콩쇠는 요괴 조정소에 같은 시각의 문턱기록 봉인을 요청했다.

두 요청이 각각 접수됐다.

그런데 플랫폼 화면에는 ‘처리예정: 영업일 기준 3일’이 떴다.

콩쇠가 화면을 보고 코웃음 쳤다.

“삼 일 뒤면 시장은 세 번 옮겨.”

해온은 익숙한 문구를 노려봤다. 편의점 시설고장 신고도 야간에는 같은 답을 받았다. 냉장고가 지금 녹고 있는데 담당부서는 아침 아홉 시에 출근했다.

“긴급코드가 따로 있을 겁니다.”

그는 화면 가장 아래 회색 글씨를 읽었다. ‘생명·대규모 정보유출 위험 시 야간관제 연결’. 평소에는 광고배너에 가려지는 문장이었다.

채원이 고개를 저었다.

“대규모라고 과장하면 안 됩니다. 확인된 건 열한 사고예요.”

“정보유출 규모가 아니라 지금 진행 중인 사고거절 변조로 연결하죠. 새 접수도 읽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화면 오른쪽 상단에 숫자 하나가 깜박였다. ‘미처리 사고 1’.

새 사고였다.

배달기사가 빗길에서 미끄러졌고, 아직 보장판단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흰 매듭이 사고번호 주위를 천천히 감고 있었다.

해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과거 기록 보전만이 아닙니다. 지금 새 사고에 접근 중입니다.”

채원은 야간관제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 뒤에 피곤한 남자 목소리가 나왔다.

“플랫폼 야간보안입니다. 긴급사유 말씀하세요.”

채원은 확인된 사실만 읽었다. 폐점 계정, 현재 접속, 미처리 사고 접근, 동일 시각의 외부 문턱. 요괴 거래소라는 말은 쓰지 않고 ‘승인되지 않은 외부 연계 화면’이라고 표현했다.

상대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해당 계정은 위탁심사 업체 소속입니다. 명의자 본인에게 확인하겠습니다.”

“플랫폼의 접속·권한로그는 즉시 보전해 주세요.” 채원이 말했다. “세션을 끊으면 요괴 쪽 실시간 문턱은 닫히겠지만, 새 피해를 막는 일이 먼저입니다. 신규 사고 열람권부터 정지하세요.”

“계정 전체 차단이 원칙입니다.”

“차단 전에 현재 세션과 권한부여 경로를 보전하고, 읽기권한을 회수해 주세요.”

남은 시간 사 분.

해온은 오른쪽 거래소 화면을 봤다. 흰 매듭이 새 사고번호의 절반을 감았다. 지금 당장 계정을 끊으면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대신 백결에게 사고목록이 넘어간 경로는 ‘외주계정 일탈’이라는 말 아래 묻힐 수 있었다.

“신규정보만 막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보안담당자가 답했다.

“읽기권한 회수, 기존 세션 격리. 이 분이면 됩니다.”

“하세요.”

해온이 먼저 말했고 채원이 곧 승인했다.

화면 왼쪽의 새 사고목록이 회색으로 변했다. 흰 매듭은 번호 절반에서 멈췄다. 오른쪽 거래소 문은 닫히지 않았다. 대신 이미 오간 명령만 읽을 수 있는 격리표식이 생겼다.

그 대가로 백결에게 닿는 실시간 길도 끊겼다. 화면 끝에서 흰 그림자 하나가 돌아보더니 매듭 너머로 사라졌다.

콩쇠가 이를 갈았다.

“놓쳤다.”

“새 사고 하나는 안 넘어갔습니다.” 해온이 말했다.

잡지 못한 것과 막은 것을 같은 실패로 세지 않는 법은 동쪽 구역에서 이미 배웠다.

남은 시간 일 분 십이 초.

위탁사는 사고대응 계약상 계정관리자 비상연락망을 야간보안에 등록해 둔 상태였다. 담당자가 그 번호로 계정명의자와 연결했다. 화면에는 얼굴 대신 음성확인 파형만 떴다. 여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석 달 전에 그 업무에서 빠졌어요. 계정 반납도 했습니다.”

“누구에게 반납했습니까?” 채원이 물었다.

“외주팀장에게요. 그런데 야간 처리량이 모자라면 공용으로 돌려 쓰기도 했어요. 퇴사자 계정도 새 직원에게 넘겼고요.”

“비밀번호를 돈 받고 팔았습니까?” 콩쇠가 끼어들었다.

“아뇨. 저는 안 팔았어요.” 여자는 숨을 고르다 덧붙였다. “팀장이 야간 계정을 중개업체에 다시 맡겼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사고를 빨리 종결할수록 수수료가 붙는 계약이라서요.”

접속 중단까지 이십 초.

채원은 계정명의자의 진술을 봉인하고 이름은 공개기록에서 가렸다. 해온은 단말기 아래 출력구를 확인했다. 종이가 걸린 듯 모서리 하나가 보였다.

“안에 문서가 있습니다.”

허가범위는 단말기 앞 안전선까지였다. 기계를 뜯을 수는 없었다. 야간보안 담당자가 대기출력물도 현재 세션의 보전대상이라고 확인하자 채원이 원격승인 표식을 댔다. 단말기가 이미 걸려 있던 문서를 자동으로 밀어 냈다.

0초.

보일러실의 요괴 화면이 꺼졌다. 사람 플랫폼 화면은 격리상태로 남았다.

채원이 기록보전 봉인을 붙이고 나서야 세 사람은 출력물을 펼쳤다. 외주계약서 사본이었다. 위탁범위, 계정관리, 야간처리 단가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성과수수료 조항이 있었다.

사고 한 건을 보장대상에서 제외할 때마다 추가 수수료 지급.

그 아래에는 사람 업체의 전자서명과 함께, 아주 작은 흰 매듭이 찍혀 있었다.

백결은 사고를 훔치기 전에, 거절 한 건의 가격부터 정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