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세 번만 뜬 삽
첫 삽이 흙에 닿기도 전에 작업반장 오재호는 굴착기를 세웠다. 공장 담장 너머에서 수증기가 낮게 흘러와 표시말뚝을 가렸다. 재호는 바람의 방향을 확인한 뒤 작업자 둘을 한 걸음 물렸다. 새벽에 바다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는 지체가 답답했지만, 땅 아래에는 12년 전에 폐쇄됐다는 관 말고도 지금 돌아가는 관이 있었다.
첫 삽이 흙에 닿기도 전에 작업반장 오재호는 굴착기를 세웠다. 공장 담장 너머에서 수증기가 낮게 흘러와 표시말뚝을 가렸다. 재호는 바람의 방향을 확인한 뒤 작업자 둘을 한 걸음 물렸다. 새벽에 바다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는 지체가 답답했지만, 땅 아래에는 12년 전에 폐쇄됐다는 관 말고도 지금 돌아가는 관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오늘 세 군데 다 못 팝니다.” 강만석이 말했다.
“못 파면 못 파는 겁니다.” 재호가 대답했다. “오늘 땅 아래에서 누가 다치면 내일 누출도 못 찾습니다.”
만석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다물었다. 재호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 선착장 축제에서 아이들에게 줄 잡는 법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공장에 들어간 뒤 서로의 얼굴을 볼 일이 줄었다. 오늘은 그의 손이 갯벌 쪽으로 향한 굴착기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안주원 재판장은 현장선 밖에 섰다. 어느 쪽에도 삽을 더 뜨거나 덜 뜨라고 지시할 위치가 아니었다. 법원이 허용한 세 지점, 안전계획의 중단조건, 보전 시각을 기록 담당자가 읽었다. 회사와 주민 양쪽 감정인이 모두 듣고 확인했다. 가람은 만석에게 그 낭독이 느리더라도 끝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제가 기다리는 동안 저쪽에서 뭘 치우면?”
“오늘 구역은 보전됐어요. 누가 건드리면 그 자체가 기록됩니다.”
“기록만으로 물은 안 멎어요.”
가람은 더 설득하지 않았다. 만석이 옳은 말을 할 때도 있었다. 이번 조사의 목적 중 하나는 지금도 물이 새는지 알아야 할 위치를 좁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급한 마음이 세 번째 삽보다 먼저 결론을 파낼 수는 없었다.
굴착기가 첫 지점의 표층만 걷었다. 삽날이 물체에 닿기 전에 재호가 다시 멈췄다. 가동배관 표시와 실제 돌출부의 간격이 예상보다 좁았다. 그는 설비팀 확인을 받느라 장갑을 벗고 통화를 했다. 만석은 시간을 봤다. 이십 분이 흘렀다. 그 시간에 자신의 배는 한때 동끝밭까지 갔다. 지금은 부두에 묶인 채 사람이 타지 않는 배였다.
세희가 공장 쪽 표식들을 가져왔다. 새 표시를 먼저 박으려던 직원에게 그녀가 말했다.
“기존 표시 사진부터요. 나중에 어느 게 원래 있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직원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세희의 말이 그날 작업 전체를 덜 위험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배세희는 현장 환경관리자였지만 가동관의 정확한 위치까지 혼자 책임질 수 없었다. 설비팀의 확인란에 담당 이름이 들어가자 재호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흙 아래에서 부식된 금속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이어진 관의 윗면이었다. 가람은 한 발 나갔다가 현장선에서 멈췄다. 다온이 그 곁에 왔다.
“관 맞네요.”
“금속관입니다. P-17인지는 각인이나 연결을 봐야 해요.”
“지금이라도 단어를 줄여야겠군요.”
“줄어드는 말만큼 질문은 늘어요.”
만석은 관을 보고 이상하게 안도했다. 공식 도면이 빠뜨린 것이 실제 땅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동안 자신의 경험이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어촌계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내려다 휴대전화를 내렸다. 현장 검증 사진은 법원 기록으로 남아야 했다. 개인 사진 한 장이 먼저 돌면 누군가 금속관을 곧장 ‘독을 흘린 관’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 말을 가장 하고 싶은 사람이 만석 자신이었다.
공장 생산책임자가 울타리 안쪽에서 재호를 불렀다. 가동 설비를 한 시간 뒤 정상 속도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 흙을 덮으라고 했다. 재호는 지금 관을 드러낸 상태라 안전확인 없이 장비를 움직일 수 없다고 답했다. 책임자는 회사의 지연비용을 말했고, 재호는 사람 이름을 말했다. 이 구덩이 옆에 서 있는 작업자 둘과 측량기사 한 사람.
“저도 회사 월급 받습니다.” 재호가 말했다. “그래서 안전한 상태로 넘겨야죠.”
만석은 그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들었다. 그는 생산책임자가 모두에게 들리게 요구한 말보다 재호가 낮은 목소리로 거절한 말이 오래 남았다. 공장을 지키는 일과 관을 숨기는 일은 같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재호의 거절 한 번으로 회사의 과거가 씻기는 것도 아니었다.
작업자 둘은 관 위에 임시 보호판을 놓고 주변 흙이 쏟아지지 않게 했다. 재호는 다시 현장선으로 돌아와 만석에게 양해를 구했다. “두 번째 지점으로 가기 전에 이걸 끝내야 합니다.”
“우리가 기다리겠소.” 만석이 답했다.
그 말을 하자 아까 자신이 시계를 보며 재촉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조업 중단으로 생계가 흔들리는 사람에게 기다림은 값비싼 일이었다. 그러나 그 값이 작업자의 몸으로 결제되어서는 안 된다. 만석은 어촌계 단체 대화방에 ‘관 확인. 아직 누출 확인 아님. 안전조치 후 두 번째 지점’이라고 보냈다. 몇 사람이 물음표를 보냈다. 그는 길게 해명하지 않고, 두 번째 지점 결과까지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두 번째 지점에서는 관이 나타나지 않았다. 자갈과 젖은 모래만 나왔다. 공장 측 감정인은 바로 말했다.
“보세요. 연결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다온은 젖은 모래를 보며 답했다. “이 지점의 깊이가 처음 지점보다 다릅니다. 안 나온 사실도 기록하고, 경로가 꺾였을 가능성도 남겨야 합니다.”
가람은 감정인에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빈 두 번째 구덩이는 자신에게도 불리한 사실이었다. 불리한 사실을 그대로 남겨야 나중에 세 번째 지점이 의미를 가진다.
이때 재호의 무전기가 울렸다. 가동 설비의 압력이 평소보다 높다는 보고였다. 그는 마지막 굴착을 멈추고 압력이 원래 범위로 돌아오는지 확인했다. 만석은 공장 측이 시간을 끈다고 생각했다. 가람에게 그 말을 하려는 순간, 울타리 밖에서 재호의 딸이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학교 체육복을 입은 아이였다. 아이는 굴착기를 보고 웃지 않았다. 아버지가 걱정될 때 지을 법한 얼굴이었다.
“우리 쪽도 가족이 있어요.” 만석이 낮게 말했다.
“압니다.” 가람이 답했다.
“안다는 말이 더 싫을 때가 있네요.”
그는 자기 아들이 서울에서 일하다 지난주 전화로 ‘바다가 다시 열리면 내려올게’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그 아들에게 언제라고 답하지 못했다. 재호의 딸은 도시락을 놓고 돌아갔다. 만석은 그 아이가 자신과 다른 쪽에 서 있는 것처럼 생각하던 마음을 조금 부끄러워했다.
세 번째 지점에 허가된 마지막 굴착이 들어갔다. 깊이는 처음 지점보다 얕았다. 오래된 콘크리트 받침 아래에서 금속관의 옆면이 나타났다. 재호는 굴착기를 뒤로 물리고 손 작업으로 주변의 흙만 걷게 했다. 표면에는 회색 결정이 점처럼 붙어 있었다. 다온은 그 결정을 보고도 성분을 말하지 않았다.
“처음 구덩이의 관과 같은 겁니까?” 주원이 물었다.
“재질과 방향은 맞습니다.” 다온이 말했다. “연속성은 두 지점 사이가 열리지 않아서 아직 추정입니다.”
회사 감정인 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날만큼은 상대의 빈틈보다 공통으로 본 것을 먼저 적었다. 관의 깊이, 외경, 지표 반사선과의 위치. 만석에게는 답답한 숫자들이었지만, 그 숫자가 없으면 공장 측이 내일 다른 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세 번째 구덩이 옆에서 만석이 작업자를 불렀다. “저 회색 가루, 지금 봉인하는 거죠?”
“표면을 먼저 촬영하고, 시료 담당이 채취합니다.” 재호가 답했다.
“그럼 해질 때까지 기다려도 됩니다.”
재호는 만석을 봤다. 조금 전까지 분마다 시계를 보던 사람이었다.
“내가 기다린다는 말, 이상하죠?” 만석이 말했다.
“필요할 때 기다리는 건 괜찮습니다. 우리도 오늘 많이 기다렸어요.”
봉인 작업이 시작됐을 때 가람은 법원 기록 담당자에게 세 지점의 다른 결과를 모두 확인해 달라고 했다. 첫 지점과 세 번째 지점에서 관이 나왔고, 두 번째 지점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회사는 공백을, 주민은 연결을 주장할 수 있었다. 물질과 기간은 별도의 분석을 기다려야 했다. 주원은 다음 심리에서 추가 구간의 필요와 위험을 다시 듣겠다고 했다.
철수하는 길에 세희는 재호에게 관의 각인이 언제 보이는지 물었다. 재호는 세척하지 않고 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억지로 닦으면 번호보다 먼저 표면이 지워집니다.” 세희는 그 말을 메모했다. 폐쇄 목록의 P-17과 땅속의 관을 잇는 작은 글자가 녹 아래 있을지도 몰랐다.
만석은 빈 두 번째 구덩이 앞에 잠시 남았다. 자신의 배가 빈 채 묶인 것과 닮아 있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곳도 오늘의 일부였다. 그는 그 자리를 사진으로 찍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에게 나중에 말할 수 있도록 위치를 외웠다. “세 번 팠고, 두 군데에서 관을 봤다. 가운데는 비었다.” 그만큼만 말하기로 했다.
해가 기울자 시료 담당자가 세 번째 지점의 회색 결정을 봉인했다. 색이 조금 어두워지는 변화가 보였다. 다온은 빛과 표면 상태가 달라졌을 가능성을 함께 적고 비교 사진을 남겼다. 그것을 성분 판정으로 쓰지는 않았다. 병에는 위치와 시각, 관 외벽의 표면이라는 채취 지점이 적혔다.
재호는 마지막으로 세 구덩이의 임시 덮개를 돌아봤다. 만석도 반대쪽 끝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 두 사람은 가운데 빈 구덩이 앞에서 만났다. “이것도 다시 볼 겁니까?” 만석이 물었다. 재호는 “허가가 나면요”라고 했다. 만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서로의 속도를 맞춘 일이 내일도 쉬우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빈 곳을 빈 곳으로 남긴 채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