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 다섯 센티
네 사람의 생활표
일요일 낮, 컬링장 회의실 벽에 네 장의 주간표가 붙었다.
일요일 낮, 컬링장 회의실 벽에 네 장의 주간표가 붙었다.
노란색은 소라온, 파란색은 배진수, 주황색은 김단비, 초록색은 윤혜주였다. 함께 비는 시간을 찾아보자던 오미란의 말과 달리 어느 표에도 제대로 빈 곳이 없었다.
라온의 노란 표에는 수리품 접수와 인계 시간이 연필로 빽빽했다. 정해진 출근이 없는 대신 손님 연락 하나로 하루가 둘로 쪼개졌다. 진수의 파란 표에는 인쇄소 납품 시간과 아버지 통원일이 겹쳤고, 단비의 주황 표에는 학교 이동지원 근무 뒤 버스 두 번을 갈아타는 시간이 붙었다. 혜주의 초록 표는 도서관 주간·야간 교대가 격주로 뒤집혔다.
가운데 책상에는 스톤 모양 자석 하나가 놓여 있었다.
“먼저 끝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 아니죠?” 혜주가 물었다.
단비가 종이컵 뚜껑을 열며 말했다. “이 표를 보고도 이긴 사람이 있으면 국가대표 말고 시간여행을 해야죠.”
진수는 웃지 못했다. 야간 인쇄를 끝내고 두 시간밖에 못 잔 얼굴이었다. 그가 파란 표의 화요일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버지 통원은 격주입니다. 병원에서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 데 교통까지 포함해 세 시간. 인쇄소 납품은 제가 바꿀 수 있지만 당일 마감은 못 바꿉니다.”
단비가 물었다. “다른 사람이 납품하면요?”
“두 번까지는 됩니다. 그 이상은 제 몫을 동료한테 넘기는 거고요.”
“대신 야간을 더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다음 날 훈련에서 스틱을 놓치겠죠.”
미란은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고 벽 아래 놓인 작은 상자를 열었다. 지난 여섯 주 출석표와 훈련 시작·종료 시각이 적힌 종이들이었다.
“가능성 말고 실제로 한 걸 보자.”
혜주가 출석표를 가져갔다. 기록에 익숙한 손이 날짜별로 종이를 나눴다.
“화요일 두 시간은 여섯 번 중 네 번이 삼십 분 이상 늦게 시작했어요. 두 번은 제가 야간 근무로 빠졌고, 한 번은 진수 오빠 병원, 한 번은 라온 씨 수리 인계.”
라온은 자기 표 모서리를 눌렀다. ‘수리 인계’라는 글자가 팀 기록에 처음으로 제대로 적혔다.
“목요일은요?” 단비가 물었다.
“대관이 안 되는 주가 두 번. 되는 주에도 내 막차 때문에 빙판에서 여덟 시 사십 분에는 나와야 해.”
“택시 타면 조금 더—”
단비는 말끝을 삼켰다. 혜주가 대기석 아래서 꺼낸 영수증 두 장을 책상에 놓았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정리 늦어서 택시 두 번 탔어. 한 번에 만팔천 원, 만구천오백 원.”
단비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왜 말 안 했어요?”
“그날은 결승 전이었고, 다들 조금씩 더 하자고 했으니까.”
“그래도 말했어야죠.”
“그러니까 오늘 말하는 거야.”
혜주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단비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미란이 스톤 자석을 들었다.
“이걸 ‘훈련 가능’한 칸에 놓는다. 근무 끝나는 시각과 훈련 시작 사이에는 최소 삼십 분을 비워. 이동과 옷 갈아입는 시간, 숨 돌릴 시간이다.”
“삼십 분씩 빼면 더 없어요.” 단비가 말했다.
“없는 시간을 있다고 쓰지는 않는다.”
“우리 지금도 다른 팀보다 적게 해요. 여기서 또 줄이면 경기력이 줄어요.”
“결석한 두 시간은 훈련시간이 아니야.” 혜주가 출석표를 접으며 말했다. “종이에만 있던 시간이었지.”
단비의 시선이 벽으로 갔다. 지난주 화요일 두 시간 칸이 굵은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날은 혜주가 끝내 오지 못해 네 사람이 빙판에 한 번도 함께 서지 못했다.
라온은 자기 표의 수요일 오전을 가리켰다.
“저는 여기를 옮길 수 있습니다. 수리 접수를 오후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진수가 물었다.
“매주 가능합니까?”
라온의 손가락이 멎었다.
“손님한테 미리 말하면요.”
“긴급 수리는요?”
“긴급이라고 해도 믹서기나 라디오입니다. 하루 미뤄도—”
“수입이 줄지는 않고요?”
진수는 다그치려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라온의 등은 곧게 굳었다. 불안정한 수리 수입은 숫자로 내놓는 순간 더 보잘것없어질 것 같았다. 그는 노란 표 한쪽에 작게 적어 둔 ‘접수 탄력’을 보았다. 진수가 인쇄소 한 차례 납품에서 받는 돈과 자기 라디오 세 대 수리비를 견주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제 일이 정규직이 아니라고 먼저 뺄 수 있는 시간은 아닙니다.”
회의실 공기가 순간 멈췄다.
진수가 손을 표에서 뗐다.
“그런 뜻으로 묻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들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옮길 수 있냐고 물으면 결국 제 쪽이 제일 싸 보이니까요.”
단비가 팔짱을 풀었다. 지난 화요일이라면 ‘대표팀을 원하면 바꿔야 한다’고 먼저 말했을 얼굴이었다. 단비는 이번에는 라온 표의 금요일 칸을 읽었다.
“한 건에 얼마나 걸려요?”
“고장 찾는 데 한 시간일 수도 있고, 부품 기다리면 사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매일 조금씩 받는 게 더 힘든 거 아니에요?”
라온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단비가 처음으로 일을 줄이라고 하지 않고 구조를 물었다.
“연락 오는 대로 받으니까 하루가 계속 끊깁니다.”
“접수하는 날을 묶으면요?” 혜주가 물었다.
“급한 손님은 놓칠 겁니다.”
“전부 잡으려다가 훈련도 놓쳤잖아요.” 단비가 말했다.
그 말은 아팠지만 틀리지 않았다. 라온은 노란 표에서 ‘접수 탄력’이라는 글자를 지웠다. 지우개 가루가 무릎 위로 떨어졌다.
“월·목·토에 접수하고, 화·금은 작업만 하겠습니다. 수요일 오후에는 인계하지 않고요.”
진수가 말했다. “매출이 줄 수 있습니다.”
“압니다. 대신 약속한 시간에 수리할 수 있으니 마감 어기는 건 줄겠죠.” 라온은 지운 자리에 ‘수요일 저녁 보호’라고 적었다. “시험은 한 달만 해 보겠습니다. 손해가 너무 크면 다시 말하고요.”
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경 조건까지 적어. 참다가 사라지는 표는 필요 없어.”
네 사람은 지난 여섯 주 기록을 날짜별로 벽에 겹쳤다. 자석은 자꾸 밀려났다. 월요일에는 혜주가 야간 근무 뒤 잠을 자야 했다. 화요일에는 진수의 돌봄과 인쇄 마감이 겹쳤다. 목요일 저녁은 라온에게 가능했지만 혜주의 막차가 너무 빨랐다. 토요일은 단비가 격주로 학교 행사 지원을 맡았다.
처음으로 네 표가 동시에 비는 곳은 수요일 저녁이었다.
“여섯 시 오십 분부터 여덟 시까지.” 혜주가 말했다. “칠십 분.”
단비가 자석을 그 위에 놓았다.
“두 시간도 아니고 칠십 분.”
“이동 여유를 더 줄이면 팔십 분 돼요.” 라온이 말했다가 혜주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혜주가 자신의 초록 표를 가리켰다.
“내 근무가 여섯 시에 끝나요. 버스가 바로 오면 삼십오 분, 승강기에서 밀리면 오십 분. 비어 보이는 시간에도 이동과 휴식이 있습니다. 전부 훈련으로 칠하면 다음 주에 또 누군가 빠져요.”
라온은 고개를 숙였다. 경사로를 오르고 의자를 옮겨 타고 장비를 맞추는 시간은 자신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남의 삼십 분은 쉽게 당겨 썼다.
“여섯 시 오십 분까지 도착하고, 타이머는 일곱 시에 누르죠.” 그가 말했다. “장비 갈아타고 물 마시는 십 분까지 훈련이라고 세지 말고.”
수요일 칸에 ‘공통 세션 60분’이 적혔다.
두 번째로 겹치는 곳은 일요일 낮 열두 시 반부터 두 시까지였다. 아흔 분이었다. 단비는 다시 두 시간으로 늘려 보려고 앞뒤 칸을 훑었다.
“저는 열두 시부터 돼요.”
“난 오전에 아버지 장을 봐 드리고 와야 합니다.” 진수가 말했다. “빨라도 열두 시 이십 분.”
“그럼 열두 시 반 시작, 두 시 종료.”
혜주가 계산했다. “정리하고 나가는 시간 십 분 빼면 팔십 분.”
“또 줄어요?”
단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요일 육십, 일요일 팔십. 일주일에 두 시간 이십 분이에요. 이걸로 전국 선발전 준비가 돼요?”
미란이 대답 대신 단비의 표를 떼어 책상에 놓았다.
“네가 더 할 수 있는 시간은?”
“월요일 밤, 금요일 밤, 토요일 격주요.”
“그 시간에 모두가 와야 해?”
“팀 경기잖아요.”
“그러니까 모두가 필요한 훈련과 혼자 할 수 있는 훈련을 나누자는 거야.”
단비는 창밖의 빈 빙판을 보았다. 유리 너머 하우스에는 오전 동호회가 남긴 스톤 두 개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혼자 던진 영상 올리면, 안 올린 사람은요?”
“벌점 없음.” 미란이 잘라 말했다. “개인 연습은 공유 자료지 출석 대체가 아니야. 많이 올린 사람이 주전을 사는 구조도 안 만들고.”
“그러면 안 하는 사람이 생겨요.”
“그건 공개 평가 때 결과로 보겠지. 생활을 벌주는 방식으로 미리 점수를 깎지는 않아.”
진수가 손가락으로 수요일과 일요일을 이었다.
“수요일은 거리와 호출만. 준비 십, 거리 이십, 전술 이십, 복기 십. 일요일은 모의엔드 팔십 분. 개인 기술은 각자 가능한 날에 하고 같은 양식으로만 남깁시다.”
라온이 물었다. “장비 점검은 준비 십 분 안에 다 됩니까?”
“담당을 나누면 됩니다.”
“누가 마지막 확인해요?”
진수는 즉시 ‘제가’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결승에서 라온이 팀 선택을 건너뛴 일과, 진수가 모든 선택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는 버릇은 반대 방향에서 같은 병목을 만들곤 했다.
“첫 달은 각자 점검하고 서로 한 번만 교차 확인하죠.” 그가 말했다. “제가 다시 전부 보지는 않겠습니다.”
단비가 눈썹을 올렸다. “그 말 녹음해도 돼요?”
“출력해서 인쇄소 벽에도 붙여 드릴까요?”
혜주가 처음으로 웃었다. 라온도 웃음이 새었다. 회의실에 들어온 뒤 두 시간 만이었다.
단비는 주황색 펜을 들었다. 아직 완전히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다.
“한 달입니다. 경기력이 떨어지면 시간부터 다시 봐요.”
“좋아.” 미란이 말했다. “대신 출석이 무너지면 더 늘리자는 말부터 하지 않는다. 어디서 막혔는지 먼저 본다.”
단비는 ‘수요일 60’ 옆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혜주의 초록 표를 향해 물었다.
“다음 야간 대체는 언제예요?”
“아직 없어. 생기면 전날 저녁까지 말할 수 있어.”
“그럼 왜 안 왔냐고 묻지 않을게요. 어느 시간을 지킬 수 있는지만 물을게요.”
혜주는 대답 대신 자기 펜으로 동그라미를 한 번 더 덧그렸다.
라온은 노란 표 아래에 수리 접수 요일 세 개를 크게 썼다. 월세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놓칠 손님도 분명 있었다. 그래도 팀이 자기 일을 취미 칸에 밀어 넣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가슴을 풀어 주었다.
“제 수리 일도 취미가 아니라 월세입니다.” 그가 말했다. “지킬 시간을 정해 주면 그 밖의 접수를 제가 묶겠습니다.”
진수는 파란 표에서 수요일 납품 한 칸을 화요일 오전과 목요일 오후로 나눴다. 혜주는 일요일 퇴실 뒤 버스 시각을 적었다. 단비도 토요일 개인 연습 옆에 ‘학교 행사 시 취소, 벌점 없음’이라고 썼다.
회의가 끝나자 벽의 네 표는 처음보다 더 복잡해졌다. 대신 가운데에는 스톤 자석 두 개가 정확히 붙어 있었다.
수요일 육십 분.
일요일 팔십 분.
미란은 다음 수요일 칸 아래에 작은 타이머 그림을 그렸다.
“첫 육십 분은 시험이다. 준비부터 복기까지 전부 잰다. 넘치면 사람을 탓하지 말고 버릴 동작을 찾는다.”
진수가 의자, 스틱, 기록기, 구급상자 이름을 적었다. “준비 십 분이면 제가 먼저 와서—”
“각자 담당.” 단비가 바로 끊었다. “방금 인쇄소 벽에도 붙인다면서요.”
“벌써 효과가 있네요.”
라온은 벽에서 떨어진 지우개 가루를 손바닥으로 모았다. 화요일의 빈칸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억지로 메우지 않았다.
그가 스톤 자석을 한 칸 오른쪽으로 바로잡았다.
“수요일 도착은 여섯 시 오십 분. 타이머는 일곱 시.”
단비가 말했다.
“육십 분 동안 한 번도 기다려 주지 않을 거예요.”
라온은 노란 표를 바라본 채 웃었다.
“좋아요. 대신 시작 전 삼십 분은 아무도 훔치지 맙시다.”
네 사람은 처음으로 같은 시간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