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찢긴 주소의 순서
폐극장에서 건진 종이조각은 아침이 되자 편의점 영수증보다도 초라해졌다.
폐극장에서 건진 종이조각은 아침이 되자 편의점 영수증보다도 초라해졌다.
원본은 전날 채원이 증거봉투에 넣어 조정소로 가져갔다. 해온에게 남은 것은 인계 전에 영수증 뒷면에 옮겨 그린 확인용 부본이었다. 숫자 네 자리와 초승달 하나, 오른쪽을 가리키다 찢긴 화살표. 그는 그 부본을 계산대 아래 영수증 압착기에 끼워 두었다.
“그거 복권이에요?”
교대하러 온 오전 직원이 물었다.
“당첨되면 좋겠네요.”
“몇 등인데요?”
“문 잘못 찾으면 영업방해로 역당첨.”
직원은 야간근무를 오래 하면 농담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온은 폐기등록을 마치고 퇴근했지만 잠은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꿈속에서 숫자 네 자리가 편의점 상품 바코드 끝자리로 바뀌었다. 눈을 뜨자 휴대전화에는 콩쇠가 보낸 음성메시지 일곱 개가 쌓여 있었다.
첫 번째는 “후보가 나왔다”였고, 두 번째는 “아니, 다섯 곳이다”였다. 세 번째부터는 채원이 옆에서 말리지 못한 듯했다.
해온은 마지막 메시지만 들었다.
“세 곳으로 줄였다. 아무 데도 안 들어갔어. 칭찬해도 된다.”
답장 대신 알람을 한 시간 더 맞췄다.
서른두째 밤, 분쟁조정소 지도실 바닥에는 주소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우편번호 끝자리가 종이조각의 숫자와 맞는 곳. 지난달 폐업한 달빛사진관, 야간에만 여는 반달빵집, 강변 폐목욕탕. 세 곳 모두 같은 높이에서 초승달이 출입문 위로 걸렸고, 세 곳 모두 최근 일주일 사이 요괴길 문턱이 한 번 열렸다.
콩쇠는 세 주소 위에 각각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다 막으면 하나는 걸린다.”
해온은 출근 전에 사 온 삼각김밥 포장을 뜯었다. 참치마요를 한입 베어 문 채 동그라미를 봤다.
“나머지 둘은요?”
“둘?”
“거래소가 아닌데 문을 막힐 두 곳.”
콩쇠가 펜 뚜껑을 닫았다.
“잠깐 막았다가 아니면 열면 되지.”
“배송 주소 잘못 찍어서 남의 가게 셔터 내린 다음, 죄송합니다 하고 열어 주면 끝납니까?”
“요괴 장터에서는 종종 끝나.”
“사람 편의점에서는 본사 민원, 점주 전화, 시급 삭감 순서로 시작합니다.”
민채원이 종이조각을 흰 판 위에 올렸다. 낮에 복원한 흔적이 옆으로 비쳤다.
“숫자는 우편번호 끝자리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배차방울 번호일 수도 있고, 개장시각을 나눈 값일 수도 있어요. 초승달도 장소가 아니라 시간표식일 수 있고요.”
콩쇠가 항의했다.
“그러면 조각에서 확실한 게 하나도 없잖아.”
“확실하지 않다는 게 확실하죠.” 해온이 말했다.
그 말은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서른한 번째 밤까지 해온이 배운 대부분의 안전은 모르는 칸을 비워 두는 데서 시작했다. 복달의 흰 매듭도, 도윤의 사고기록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으로 이었다면 백결이 원하는 이름이 완성됐을 것이다.
채원이 세 장의 얇은 확인표를 내밀었다.
“공개표식만 봅니다. 출입문 밖 영업시간, 운영자 표시, 배차흐름. 안쪽 수색은 백결 거래소 표식이 둘 이상 맞는 곳에만 따로 신청하겠습니다.”
해온은 삼각김밥의 마지막 모서리를 입에 넣고 일어났다.
“순서는 가까운 곳부터 말고, 제외하기 쉬운 곳부터 갑시다.”
첫 번째 후보는 달빛사진관이었다.
간판은 떼어 갔지만 쇼윈도 안에는 증명사진 견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밤 열두 시가 되자 사진 속 사람들의 눈이 한꺼번에 감겼다. 콩쇠가 질색하며 해온 뒤에 숨었다.
“난 사진관이 싫어. 사진은 이름보다 얼굴을 오래 들고 있잖아.”
“아까는 벽도 부수자던 분이.”
“벽은 나를 안 봐.”
출입문 바깥에는 백결의 흰 매듭 대신 검은 머리카락 세 올이 묶여 있었다. 문턱가루도 푸른색이 아니라 보랏빛이었다. 채원이 폐업 공고에 적힌 운영자 표식을 확인했다.
“그림자수선점 임시창고입니다. 정상 등록됐어요.”
안쪽에서 누군가 말했다.
“영업 끝났습니다. 그림자는 내일 찾으러 오세요.”
콩쇠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림자를 맡기고 가는 데도 증명사진이 필요할까?”
해온은 확인표에 ‘제외’라고 적었다.
“궁금해도 오늘 고객은 아닙니다.”
두 번째 후보 반달빵집은 사람길에서는 영업 중이었다. 새벽 한 시인데도 배달기사 셋이 가게 앞에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 모양 소금빵 냄새가 골목 전체를 채웠다.
가게주인은 밀가루 묻은 팔로 문을 막았다.
“요괴든 사람이든 줄 서세요. 배달앱 주문부터 나갑니다.”
콩쇠가 뿔을 세웠다.
“우리는 조정소 확인업무다.”
“공무면 빵이 빨리 익습니까?”
해온은 웃음이 날 뻔했다. 야간노동자를 상대하는 데는 이 가게주인이 훨씬 능숙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유리문에 붙은 사업자표식과 픽업 선반만 봤다. 배달봉투에는 사람 플랫폼 주문번호와 요괴 장터 주문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었지만, 흰 매듭도 이름담보 표찰도 없었다. 요괴길 배차는 빵이 식지 않도록 새벽 한 시 십 분마다 열렸다.
종이조각의 숫자 네 자리와 시간은 맞지 않았다.
“여기도 아닙니다.” 해온이 말했다.
콩쇠는 가게 안 소금빵을 보고 한 발 늦게 따라왔다.
“확인업무 중 식대는?”
“우산도 정산 못 했습니다.”
“그럼 네가 하나만 사 주면—”
가게주인이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어제 것 두 개 남았어요. 새벽 배달하는 분들은 가져가요.”
콩쇠는 감동한 얼굴로 봉투를 받았다. 해온은 그냥 받을 수 없어 계산하려 했지만 주인은 손을 저었다.
“대신 가게 앞에서는 뛰지 마세요. 기사님들 넘어져요.”
작은 보상에는 작은 조건이 붙었다. 해온은 그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후보는 강변 폐목욕탕이었다.
간판의 ‘강변탕’ 가운데 ‘변’ 자가 떨어져 있었다. 셔터에는 철거예정 스티커가 세 겹 붙었고, 건물 옆 보일러 배관에서는 가동하지 않은 지 오래된 녹 냄새가 났다.
초승달은 아직 낮았다. 종이조각의 그림처럼 굴뚝 끝에 걸리려면 스무 분쯤 남아 있었다.
세 사람은 길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렸다.
콩쇠는 소금빵 하나를 해온에게 반으로 떼어 줬다. 반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쪽이 해온 몫이었다.
“도깨비 반은 육 대 사입니까?”
“뿔 유지비가 들어.”
채원은 빵을 사양하고 세 후보지의 배차흐름을 다시 펼쳤다. 사진관은 한 달에 두 번, 빵집은 매일 같은 시각, 목욕탕은 지난 사흘 동안 개장지가 움직인 직후에만 문턱이 열렸다.
“이 흐름만 보면 목욕탕이 맞습니다.” 채원이 말했다.
“그런데 조각의 화살표는 오른쪽을 가리킵니다.” 해온은 채원이 든 증거봉투를 가로등 쪽으로 기울여 봤다. “목욕탕 입구는 왼쪽이고요.”
콩쇠가 남은 빵을 삼켰다.
“그러면 또 아니야?”
해온은 건물 전체를 보았다. 왼쪽에는 사람용 정문이 있었고, 오른쪽 골목에는 연탄을 들이던 지하 보일러실 경사로가 있었다. 문은 장소 하나에 하나뿐이 아니었다.
그들이 오른쪽 골목으로 이동하자 초승달이 굴뚝 끝에 걸렸다.
녹슨 보일러실 문 아래로 흰 실 한 올이 밀려 나왔다.
콩쇠가 숨을 들이켰다.
“백결 매듭.”
해온은 곧장 문으로 가지 않았다. 바닥을 먼저 봤다. 수레바퀴 자국이 경사로를 내려갔지만 올라온 자국은 없었다. 문 옆에는 사람길 전기안전 점검표가 붙어 있었고, 그 위에 요괴길 임시영업표식이 겹쳐 있었다. 운영자 칸은 비어 있었지만 표식 가장자리의 다섯 매듭은 폐극장에서 본 백결의 흰 휘장과 같았다.
공개표식 둘이 맞았다.
채원은 확인표에 시각을 적었다.
“제한수색을 신청할 근거는 됐습니다. 아직 문은 열지 않습니다.”
콩쇠가 문틈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나. 벌써 옮긴 걸까?”
“확인 전에는 모릅니다.”
해온은 문손잡이에서 한 뼘 떨어진 곳에 동결결정 번호를 붙였다. 그 순간 녹슨 문이 혼자 안으로 반 치쯤 열렸다.
검은 어둠 사이로 오래된 단말기 하나가 켜져 있었다. 화면은 사람 플랫폼의 로그인창과 요괴 거래소 입장창을 반씩 겹쳐 놓은 모양이었다.
콩쇠가 속삭였다.
“문이 먼저 열렸어. 허락인가?”
“아닙니다.” 해온이 문턱 밖에서 말했다. “안쪽 당사자가 허락한 게 아니라, 단말기가 자동으로 연 겁니다.”
누군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함정일 수도 있었다. 세 사람은 열린 틈을 넓히지 않았다. 채원은 조정소 연락방울로 수색 허가를 요청했고, 해온은 문밖에서 보이는 화면만 기록지에 옮겼다.
로그인창 아래에 마지막 접속계정이 떠 있었다.
요괴 이름이 아니었다.
사람 플랫폼 관리자 계정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접속시각이었다. 폐목욕탕이 문을 연 시각이 아니라, 해온이 처음 위조송장을 발견했던 폐점 편의점의 새벽 접속시각과 정확히 같았다.
콩쇠가 문틈을 보며 낮게 말했다.
“백결이 사람 이름을 훔친 것뿐 아니라 사람 문도 빌린 거네.”
채원의 연락방울에 허가표식이 켜졌다.
허가범위는 보일러실 출입문부터 단말기 앞 안전선까지였다. 배관실과 연료창고는 봉인 상태로 두라는 조건도 붙었다. 콩쇠는 당장 화면부터 보자고 했지만 해온은 경사로 벽에 걸린 방진마스크 세 장을 먼저 꺼냈다. 고무끈은 삭아 있었고 사용기한은 사람 숫자로 칠 년 전이었다.
“이건 쓰면 먼지보다 끈이 먼저 터집니다.”
해온은 편의점 작업가방에서 새 마스크를 꺼내 채원과 콩쇠에게 건넸다. 냉장고 뒤 먼지 청소용으로 사비로 넣어 둔 것이었다. 콩쇠는 자기 얼굴보다 큰 마스크를 두 번 접어 수염 위에 묶었다.
“수색비로 청구해.”
“우산부터 받고요.”
조정소 현장담당이 먼저 들어가 썩은 배관과 바닥, 공기상태를 확인하고 단말기 앞까지 안전표식을 붙였다. 그 확인을 기다리는 사이 화면의 접속표식 하나가 사라졌다. 빠른 추적 하나를 포기한 대가로 세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 길로 같은 화면 앞에 설 수 있었다.
보일러실 안쪽에서, 지금까지 멈춰 있던 환풍기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오래된 계정 하나가 두 세계의 문을 동시에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