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 다섯 센티
세 명뿐인 화요일
노란 스톤은 네 사람 몫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대기석에는 둘뿐이었다. 김단비가 휴대전화를 뒤집었지만 윤혜주의 메시지는 소라온에게도 이미 보였다. 야간 근무자가 갑자기 열이 나서 도서관 폐관까지 대신 남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과는 세 번 붙어 있었다.
노란 스톤은 네 사람 몫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대기석에는 둘뿐이었다. 김단비가 휴대전화를 뒤집었지만 윤혜주의 메시지는 소라온에게도 이미 보였다. 야간 근무자가 갑자기 열이 나서 도서관 폐관까지 대신 남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과는 세 번 붙어 있었다.
“오는 중이라는 건 몇 분까지예요?”
단비가 벽시계를 봤다. 예약이 시작되고 십칠 분이었다. 오미란이 배진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넣었다. 라온은 스틱 결합부를 눌렀다. 유격은 없었다. 다시 눌러도 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준비할 건 아직 있잖아요.”
그가 말하자 단비가 고정 끈을 당겨 보였다. 이미 맞춰 놓은 끈이었다.
“그래서 끝났잖아요.”
전술판 자석 가운데 혜주의 초록색만 단비 손에 남았다. 결승에서 라온이 혼자 마지막 돌을 던진 지 사흘이었다. 대안을 말하고 확정을 기다리겠다고 약속한 다음 훈련에서, 확정을 들을 사람조차 다 모이지 않았다. 라온은 그 빈 자석 자리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미란이 두 사람에게 거리 세트를 주었다. 단비가 코치도 선수 자리에 들어오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미란은 오늘 던질 장비가 없다고 했다. 단비는 더 묻지 않고 혜주 자석을 전술판 가장자리에 붙였다. 빠진 사람을 지워 버리는 대신 밖에 두었다.
라온은 첫 가드를 받았다. “왼쪽 가드, 열넷 후반.” 단비가 확인이라고 했다. 복창은 평소보다 짧고 날카로웠다. 첫돌이 목표 구역에 섰고 둘째도 비슷한 깊이에 남았다. 라온은 뒤의 빈 하우스를 봤다. 원래대로라면 이제 혜주의 드로가 들어와야 했다.
“제가 그 순서까지 할게요.”
단비가 스톤에 손을 뻗었다. 미란이 스톤을 옆으로 옮겼다. “그러면 네 투구까지 연속 네 개야. 지금은 거리 세트.” 단비는 손을 거두면서 대관료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라온도 오늘 두 시간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혜주 대신 자신이 더 던지겠다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철문이 열렸다. 진수의 남색 작업복 소매에 흰 종잇가루가 붙어 있었다. 손등에는 검은 잉크가 번졌다. 그는 아버지를 병원에서 모시고 돌아오는 길이 막혔다며 장비함으로 향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손부터 씻어요.” 단비가 말했다. “잉크 묻었어요.”
진수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세면대의 물소리가 멎기까지 팔 분이 더 흘렀다. 경기용 의자로 옮겨 앉고 끈을 맞추자 예약 시간에서 서른다섯 분이 지나 있었다. 그는 숨을 골랐지만 단비는 시계를 보고 있었다.
미란이 세 사람의 자석을 놓았다. 네 포지션 연속 호출 열두 번이 오늘 계획이었다. 진수는 혜주의 두 돌을 비우고 상대 스톤을 미리 놓으면 모양은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단비가 초록색 자석을 들어 보였다.
“이 사람은 어떤 길로 들어올지 누가 골라요?”
“전술판에서 정하고 실제 돌은 미리 놓죠.” 라온이 말했다. “한 번 해 보고 안 맞으면 개인 세트로 바꾸겠습니다.”
단비의 시선이 돌아왔다. 라온은 자기가 정하겠다고 들릴까 봐 마지막 말을 천천히 했다. 진수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단비도 스틱을 들었다. 미란은 이 세트를 경기기록 칸이 아니라 모의 배치 칸에 적었다.
라온이 두 가드를 다른 깊이에 세웠다. 혜주의 차례에서는 전술판의 탭을 고르고 그 결과라고 가정한 돌을 손으로 놓았다. 상대 득점 돌도 미리 들어왔다. 진수는 오른쪽 얇은 접촉을 불렀다. 단비가 스틱을 걸다가 멈췄다.
“혜주 언니가 탭했으면 노출 면이 달라져요. 이 선은 제가 연습한 선이 아니에요.”
“지금 놓인 모양으로 봅시다.”
“그 모양이 가짜잖아요.”
생각시간을 흉내 낸 숫자가 전광판에서 줄었다. 진수가 다시 선을 그렸다. 단비는 목표를 봤다가 가정한 혜주의 돌을 봤다. 라온은 두 돌 사이의 빈 곳을 메우면 해결될 듯해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제가 하나 더 놓고—”
“또요?”
단비가 돌아봤다. 한마디가 라온의 손등을 따갑게 했다. 그는 스틱에서 손을 뗐다.
“제 순서를 늘리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배치만 맞추려고요.”
“한 개씩 대신하다 보면 없어도 되는 사람만 생기겠죠.”
진수가 단비에게 지금 화낼 대상은 라온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가 초록색 자석을 전술판에 세게 붙였다.
“그럼 누구예요? 시간표한테 국가대표 하고 싶냐고 물어요?”
단비의 돌은 길었다. 상대 돌을 스치지 못하고 하우스 뒤로 빠졌다. 그녀는 멈춘 돌도 끝까지 보지 않고 다음 스톤을 당겼다. 미란이 멈추라고 했다. 손이 손잡이 위에서 굳었다.
“개인 거리 세트로 바꾼다. 각자 여섯 개씩 두 번.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까지 사십 분.”
“한 시간 넘게 남았어요.”
“지금 이 모양으로 두 시간을 채우진 않아.”
단비가 스톤을 놓았다. 미란은 모의 배치들을 치웠다. 라온도 자기 가드를 밖으로 옮겼다. 두 장의 가드는 목표에 잘 들어갔지만 오늘 전술 세트의 성공 두 번으로 옮겨 적을 수는 없었다. 그는 거리를 적고 전술 칸을 비워 두었다.
진수가 작업복 소매를 걷었다. 팔목에서 병원 주차 영수증이 나왔다. 종이가 땀에 젖어 있었다. 라온은 그제야 그의 숨이 아직 가쁘다는 것을 봤다. 진수는 영수증을 접어 넣고 첫 드로를 받았다. 두 번이 연달아 짧았다.
단비는 첫 세 돌을 길게 보냈다. 라온의 첫 가드는 목표 구역 가장자리에 걸렸다. 둘째를 준비할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파사 주인의 메시지였다. 내일 오전까지 믹서기 두 대를 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손님이 찾으러 올 시간도 적혀 있었다.
라온은 화면을 껐다가 켰다. 지난주에는 수리품 인계로 십 분 늦었다. 그 전주에는 부품상 전화 때문에 준비 호출을 놓쳤다. 출석표의 사유는 둘 다 교통이었다. 정식 직원도 아닌 자신의 수리 일을 도서관 근무나 인쇄 마감과 같은 칸에 적어도 되는지 망설였다. 단비라면 그 일부터 줄이라고 할 것 같았다.
“누구 연락이에요?” 미란이 물었다.
“광고입니다.”
화면을 뒤집자 믹서기 두 대가 얼음 위에도 있는 것 같았다. 분해한 부품을 어느 쪽부터 맞춰야 할지 생각하다가 스틱을 밀었다. 돌은 짧게 멎었다. 단비가 집중하라고 했다. 라온은 그녀도 전화 한 통을 못 받는 일 해 봤냐고 말할 뻔했다.
진수의 소매에서 영수증 끝이 다시 보였다. 라온은 휴대전화를 무릎에 놓았다.
“광고 아니었습니다. 수리 접수예요.”
미란이 펜을 멈췄다. 라온은 출석표 이야기도 했다. 지난달 두 번 늦은 이유를 교통으로 적었지만 납품 마감이었다고, 부품상 전화도 있었다고 말했다. 단비가 왜 지금 말하느냐고 물었다.
“그 일이 별것 아닌 걸로 보일까 봐요.”
단비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웃음이 잠깐 나왔지만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별것 아닌지 왜 혼자 정해요? 저는 길에서 기다렸는데, 교통이면 다음에는 빨리 나오면 되는 줄 알잖아요.”
라온은 답장을 아직 못 한 화면을 봤다. 진수는 차 열쇠를 꺼내 탁자 위에 뒀다. 아버지의 병원 귀가가 매주 같은 화요일은 아니고 인쇄 마감도 주마다 달라진다고 했다. 오늘처럼 겹치면 늦는다는 말을 다 하고 나서야 그는 열쇠를 다시 쥐었다.
“누군가는 생활을 바꿔야죠.” 단비가 말했다. “셋씩 오면 국가대표 얘기는 말뿐이에요.”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부터 말합시다. 병원 귀가하고 마감을 의지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진수의 목소리가 굳었다. 단비는 학교 이동지원이 끝난 뒤 여기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자신도 놀다가 남는 시간에 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발판에 얹은 가방은 아직 학교에서 들고 온 그대로였다.
라온은 그 가방을 보고 믹서기 두 대를 떠올렸다. 오늘 누가 더 큰 것을 포기했는지 세기 시작하면 자기가 가지고 온 일이 작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만 말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는 접수 메시지의 답장 창을 열었다가 지금 확답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훈련이 끝난 뒤 작업 중인 두 대의 상태부터 확인하겠다는 답이었다.
사십 분 타이머가 울렸다. 단비가 예약은 남았다고 했다. 미란은 연장하지 않고 네 장의 주간표를 꺼냈다. 혜주는 초록색, 진수는 파란색, 단비는 주황색, 라온은 노란색이었다. 종이는 이름 외에는 비어 있었다.
다음 일요일 낮에 지난 여섯 주의 실제 시간을 가져오라고 했다. 근무와 돌봄, 이동과 쉬어야 하는 시간까지. 공개할 수 있는 범위만 적되 아마 된다는 칸을 먼저 만들지는 말라고 했다. 단비는 누구 것을 가장 많이 빼야 하는지 정할 거냐고 물었다. 미란이 네 사람의 표를 포개 보였다.
“먼저 겹치는 곳을 찾자.”
라온은 노란 칸에서 부품상 마감부터 보았다. 수리 접수와 장애인콜택시 대기 시간은 매일 같지 않았다. 빈 종이가 넓어서 오히려 빨리 채울 수 없었다. 진수는 표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에 넣었다. 종이 모서리가 소매의 주차 영수증을 스쳤다.
혜주에게 전할 초록색 표는 미란이 챙겼다. 단비는 자석을 떼어 그 표 위에 놓았다가 다시 전술판으로 가져갔다. 다음 일요일에 혜주가 직접 자기 자석을 옮기는 모습까지 봐야 오늘의 빈자리가 닫힐 것 같았다. 라온은 지우지 않은 자신의 교통 지연 두 칸 옆에 실제 사유를 적었다.
단비가 장비함 문을 닫으며 말했다. “저 아직 화 안 풀렸어요.”
“압니다.”
“일요일에는 변명 말고 시간을 가져와요.”
“당신 것도요.”
단비는 대답 대신 주황색 표를 들어 보였다. 세 사람이 남은 노란 돌을 정리함으로 밀었다. 하우스는 비었고 대관 종료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라온은 그 시간을 보다가 불을 껐다. 오늘 더 던질 돌 대신 무릎 위 노란 종이를 집으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