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31화

수심 43미터의 종

살아 있는 케이블

냉장창고가 돌아가는 소리는 바닷가에서 들리지 않았다.

글자 크기

냉장창고가 돌아가는 소리는 바닷가에서 들리지 않았다.

강해솔은 방파제로 걸어가는 동안 두 번이나 뒤를 보았다. 창고 처마 밑의 주황색 등이 켜져 있었다. 어젯밤 임시총회가 끝나고 나서야 다시 켜진 등이었다. 문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모자를 들어 보였다. 해솔도 손을 들었다. 노인이 누구에게 고마워하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바닷속 밸브는 닫혀 있다고 말했다. 어제 자신이 한 말이었다.

잠수 준비대 위에는 두 장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밸브 눈금판, 다른 하나는 그 아래로 길게 나온 축이었다. 눈금판에는 분명히 닫힘 표시가 보였다. 축은 그렇지 않았다. 해솔은 사진 한 귀퉁이에 묻은 물을 손등으로 밀었다.

“말씀하신 게 이겁니까?”

정우찬이 물었다.

“어제는 눈금부터 봤어요.”

“오늘 다시 보면 됩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전에 봤어야죠.”

우찬은 위로하지 않았다. 해솔에게는 그 편이 나았다. 그는 두 사진 사이에 손가락을 놓았다가, 눈금판 사진만 뒤집었다. 보조 잠수사가 무엇부터 촬영할지 물었다. 해솔은 옆면 사진을 건넸다.

“글자 말고 이 높이부터요. 제 말하고 달라도 그대로 올려 주세요.”

보조 잠수사가 사진을 작업 순서에 끼웠다. 해솔은 눈금 사진도 그 옆으로 돌려놓았다. 한쪽을 뒤집어 둔다고 어제 보았던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빛을 낮추자 축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해솔은 밸브 몸체에서 조금 물러났다. 보조 잠수사의 빛이 옆으로 돌아갔다. 가느다란 나사산 사이에 퇴적물이 끼어 있었고, 그 위에 새까만 피복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붉게 부식한 배 안에서 케이블만 유난히 젊었다.

“축이 올라와 있습니다.”

통신기로 보내는 목소리가 제 귀에 낯설게 들렸다.

수면 위에서는 우찬이 같은 형식의 밸브 도면을 펼치고 있었다. 잠시 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끊겼다.

“지금 화면 높이면 열린 쪽입니다. 정확한 개도는 측정 끝나고 비교하겠습니다.”

“표시는 닫힘입니다.”

“보입니다.”

그 말이 듣기 싫었다. 둘 다 보고 있었다. 해솔은 눈금판을 정면에서 찍은 다음 옆으로 돌아갔다. 고정나사 한쪽의 홈이 다른 쪽보다 밝았다. 손이 먼저 나갔다가 멈췄다. 그는 카메라를 가까이 보냈다.

“고정나사 촬영합니다. 접촉 안 했습니다.”

밸브 아래에서 물결이 실처럼 비틀렸다. 흙탕물과 다른 흐름이었다. 해솔은 어제 총회에서 본 지도의 가장 짙은 색을 떠올렸다. 종이에서는 경계선 안에 얌전히 갇혀 있던 색이었다. 여기서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만큼 가늘었다.

“밖으로 나오는 흐름 있습니다.”

뒤쪽의 보조 잠수사가 포집 장비를 가리켰다. 해솔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잡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것을 닫으면 그만일 수도 있었다. 찾아서 닫았습니다. 더는 새지 않습니다. 미례에게 그렇게 말할 때까지의 동작이 너무 짧게 보였다.

그런데 손잡이와 축 사이에 도면에 없는 케이블이 있었다.

“우찬 씨. 닫는 쪽으로 돌려도 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수면 위의 대답은 빨랐다. 해솔의 턱이 굳었다.

“계속 나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른 쪽을 여는 연결일 수도 있어요. 포집부터 합시다.”

해솔은 손잡이 바로 앞에 놓인 자기 손을 봤다. 수면에서 들어 올리던 물건이었다면 벌써 돌려 보았을 것이다. 장갑 안의 손가락이 펴졌다. 그는 몸을 돌려 보조 잠수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포집 장비가 내려오는 동안 갑판에서는 비용을 묻는 전화가 왔다. 우찬은 전화기를 작업대에 놓고 스피커를 껐다. 해솔의 통신과 비용 협의가 한 스피커에서 섞이지 않게 했다.

“지금 설치하는 건 이중 포집캡입니다. 예정한 망만으로는 안 됩니다.”

상대는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물었다. 승인받은 비용표에는 그런 항목이 없다고 했다. 우찬은 해솔이 보내온 옆면 사진을 전송했다. 사진을 봤다는 답이 오기까지 해솔의 숨이 통신기에서 세 번 들렸다.

“오늘 누출 확인됐습니다. 현장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추가 승인 담당자를 찾겠다는 말이 나왔다. 우찬은 작업 화면을 봤다. 내려가는 장비가 밸브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서 멈춰 있었다.

“담당자 찾는 동안 설치는 계속합니다. 최종 비용은 따로 확인받겠습니다.”

상대는 그 말도 기록하겠다고 했다. 우찬은 그러라고 답했다. 통화를 마치자 차미례가 작업대 옆에 서 있었다. 손에는 접어 쥔 지출표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빈칸을 폈다.

“오늘 것, 따로 적어요.”

“아직 얼마가 될지 모릅니다.”

“그럼 빈칸 옆에 왜 늘었는지부터 써요.”

미례는 종이를 문진 밑에 끼웠다. 손끝에 파란 잉크가 묻어 있었다. 우찬은 잠수 화면을 가리켰다.

“닫혀 있다는 표시와 실제 상태가 다릅니다.”

그녀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눈금판의 글자는 읽을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녀는 축이 어느 것인지 다시 물었다. 우찬이 화면에서 위치를 짚어 주자 미례가 한참 보고 말했다.

“그럼 해솔 씨가 어제 틀린 말을 한 거예요?”

“저도 틀리게 이해했습니다.”

미례는 창고 쪽을 돌아보았다. 오늘 아침 일찍 밸브가 닫혔다는 말을 다시 물었던 주민이 있었다. 그녀는 됐다는 대답 대신 오늘 더 확인한다고 했었다. 이제는 그 사람이 왜 첫말을 믿었는지 설명해야 했다.

“그 얘기도 제가 해야겠네요.”

장비가 자리를 잡을 때 한쪽 가장자리가 들렸다. 해솔은 고정 위치를 보려 몸을 낮췄다가 보조 잠수사의 빛을 잃었다. 조류에 밀린 장비 뒤로 퇴적물이 올라왔다.

“손 떼고 물러납니다.”

그는 위치를 바꾸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둠이 두 사람 사이를 덮었다. 선체는 손전등 빛 밖에서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해솔이 줄을 잡자 옆 사람의 응답이 왔다. 장비의 무게가 갑판 쪽으로 돌아갔다. 둘은 앞이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작업을 재개했을 때 해솔의 장갑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첫 고정 자리를 버리고 다시 잡느라 시간이 더 들었다. 보조 잠수사는 장비 모서리를 짚어 보이지 않고 빛으로 표시했다. 해솔도 같은 자리로 빛을 보냈다. 두 번째 고정이 끝났다.

밖으로 흩어지던 가느다란 흐름이 포집 장치 안으로 모였다. 수면 위에서 계측값을 확인하는 동안 해솔은 손잡이 옆에 머물렀다. 잡히지 않는 흐름이 남았는지, 가장자리가 다시 들리는지 보았다.

“바깥쪽 확산 줄었습니다.”

그제야 우찬이 짧게 숨을 뱉었다.

잠시 뒤 측정 영상을 도면과 대조한 값이 왔다. 밖으로 올라온 축은 이 형식의 밸브를 약 여섯 바퀴 풀었을 때의 높이에 해당했다. 실제로 그만큼 열렸는지는 개조된 연결부를 더 확인해야 했다. 해솔은 눈금판과 축이 한 화면에 들어오게 물러났다.

“두 상태 같이 찍었습니다.”

“확인. 오늘은 거기까지 합시다.”

“케이블 방향만 남기겠습니다. 안 들어갑니다.”

해솔은 검은 선을 따라 빛만 옮겼다. 케이블은 화물창 벽을 타다가 선미 서비스 통로 쪽으로 사라졌다. 방금까지 출구라고 생각했던 곳이 이번에는 누군가 손을 뻗었을 자리로 보였다.

몸 하나쯤 들어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솔이 통로 쪽으로 빛을 조금 더 보냈다. 보조 잠수사가 출수 방향을 가리켰다. 해솔은 그 손을 보고, 통로 입구의 영상을 남긴 뒤 돌아섰다. 케이블이 화면 오른쪽에서 사라졌다. 줄의 당김은 왼쪽에서 왔다.

장비를 벗고 나오자 미례가 먼저 물었다.

“닫았어요?”

갑판 끝의 작업자가 고개를 들었다. 해솔은 젖은 손을 수건 안에서 한 번 접었다.

“아니요.”

“왜요?”

“표시와 안쪽 상태가 달랐습니다. 모르는 연결을 움직이면 더 샐 수 있어서, 밖에서 받아 내는 장치를 붙였습니다.”

그녀는 잠수 화면을 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해솔이 어디까지 설명하는지 기다렸다.

“어제 닫혔다고 한 건 제가 잘못 본 겁니다.”

잠수복 목 부분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해솔은 그 소리까지 들었다.

“그럼 오늘 맞게 본 건 뭐예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축이 올라와 있는 것. 새는 흐름을 장치로 받고 있는 것. 케이블이 선미 통로로 이어지는 것까지입니다.”

미례는 빈 지출표 뒷면에 그것을 적었다. 어려운 부품 이름은 다시 물었다. 마지막 줄을 쓰고 나서 종이를 해솔에게 보여 주었다.

‘밸브는 그대로. 누출은 외부 포집. 경과 감시 중.’

“이렇게 붙여도 되죠?”

해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도 그대로면 내일도 그대로라고 말해요.”

미례는 종이를 접지 않고 가져갔다. 창고 앞의 노인이 그녀에게 걸어왔다. 두 사람은 말을 나누다가 함께 공지판으로 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모자를 들어 보이지 않았다. 해솔은 공지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해솔과 우찬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 문재필은 컵을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우찬이 도면을 내밀자 컵을 내려놓았다. 그는 밸브가 있어야 할 자리를 손톱으로 짚었다.

“여기서 손으로 돌렸습니다. 줄 잡아당기는 거 아니었어요.”

“언제까지 그랬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계속.”

재필은 곧 그 말을 고쳤다.

“아니, 제가 직접 열고 닫았던 때까지는요.”

우찬은 고쳐 말한 쪽을 적었다. 재필은 그 펜 끝을 보다가 자기 손을 종이에서 조금 뗐다. 손톱 끝이 희게 눌려 있었다.

“그 뒤에 바뀐 걸 제가 못 봤으면, 모른다고 해야겠네요.”

“지금 말씀하신 기간으로 남겼습니다.”

해솔은 옆에 앉아 젖은 수건을 접었다. 반듯하게 접히지 않아 다시 펼쳤다. 재필이 그것을 보고 컵을 옆으로 밀었다.

“거기 놓으세요. 자꾸 잡고 있지 말고.”

그 작은 말 때문에 해솔은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자기 손은 갑판에서부터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수건을 내려놓자 재필이 잠수는 어땠느냐고 물었다. 해솔은 오늘은 밸브를 못 돌렸다고 했다. 재필은 왜 못 돌렸는지 끝까지 들었다.

보존 요청 뒤 전달된 승인도면 사본에도 원격 연결은 표시돼 있지 않았다. 우찬은 도면 날짜를 확인하고 보험자에게 받은 변경 통지 목록을 나란히 놓았다. 제출된 자료 어디에도 이 케이블 이야기는 없었다. 그는 추가 자료 요청란에 위치를 적었다.

“언제부터 달려 있었는지부터 찾죠.”

해솔은 촬영한 피복 번호를 확대했다. 앞의 몇 글자는 꺾인 부분에 가려졌지만 뒤쪽 제조 표시는 선명했다. 우찬이 부품 자료와 대조한 뒤 입을 다물었다.

“언제 겁니까?”

재필이 먼저 물었다.

“사고 두 달 전 생산분입니다.”

재필은 도면에서 손을 뗐다. 그가 알고 있던 수동 밸브 옆에 해솔이 케이블 사진을 놓았다. 오래 배를 탔던 사람의 종이 위로 두 달 전의 검은 선이 들어왔다. 재필은 그 선을 따라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서비스 통로 앞에서 멈췄다.

해솔도 마지막 화면으로 돌아갔다. 통로 안으로 진입한 영상은 없었다. 검은 입구까지만 있었다. 우찬이 화면 아래에 ‘조작부 미확인’이라고 적자 재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솔은 두 사진을 챙겼다. 닫힘 표시를 버리지 않았고 올라온 축을 가리지 않았다. 내일은 검은 선의 끝을 봐야 했다. 병실 문을 닫기 전 재필이 컵을 다시 잡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한 손이었다. 다른 손은 케이블이 놓인 자리를 아직 찾는 듯 침대 위에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