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매일 옮겨 다니는 시장
동결 결정문에 도장이 찍힌 순간, 공개결정실 벽에 그려진 시장 지도가 사라졌다.
동결 결정문에 도장이 찍힌 순간, 공개결정실 벽에 그려진 시장 지도가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열한 사고를 잇던 붉은 선은 남아 있었다. 사람 배송원들의 사고시각, 분실방울 번호, 빈 수취함, 백결의 중개주소. 그런데 선들이 모이던 끝점만 누가 물걸레로 훔쳐 간 것처럼 희게 비었다.
민채원이 도장을 든 채 말했다.
“거래소가 움직였습니다.”
콩쇠가 의자에서 펄쩍 뛰었다.
“동결명령 냄새를 맡았군. 이럴 때는 먼저 문을 걷어차야 해.”
“그 말, 조정기록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럼 ‘적법하게’ 걷어차자.”
해온은 결정문 사본을 반으로 접어 운행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조끼 안쪽에는 열여덟째 밤에 직접 꿰맨 세 줄이 손가락에 걸렸다.
본인확인. 문턱허락. 인도 또는 사유기록.
서른 번째 밤까지 지킨 순서였다. 거래소라고 문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주소부터 있습니까?”
채원이 빈 지도를 뒤집었다. 뒷면에 검은 글자가 한 줄 떠올랐다.
오늘의 개장지는 어제의 폐점 뒤에 있다.
콩쇠가 뿔을 긁었다.
“시적인 척하는 주소가 제일 싫어. 배차앱에 입력도 안 돼.”
해온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편의점 교대까지 한 시간 사십 분. 야간직원에게 ‘어제의 폐점’은 시보다 간판 철거와 재고 반품에 가까웠다.
“어제 문 닫은 곳 목록부터 봅시다. 폐업정보 말고 실제 영업종료 시각으로요.”
사람길에서는 며칠 전 폐업한 푸른고개 소극장이 마지막 공연을 끝낸 날이었다. 요괴길 운행판에는 같은 자리에 새벽 한 시부터 이름 없는 소포 열일곱 개가 모여 있었다.
두 기록이 겹쳤다.
서른한째 밤, 세 사람은 간판 글자 절반이 떨어진 폐극장 앞에 섰다.
매표소 유리에는 ‘내부 정리 중’이라는 종이가 비뚤게 붙어 있었다. 사람길에서 보면 셔터가 내려간 낡은 건물뿐이었다. 그러나 해온이 동결 결정문을 유리에 대자, 셔터 그림자 안쪽으로 붉은 등이 한 줄 켜졌다.
관객 없는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콩쇠가 작은 몸으로 셔터 밑을 들여다봤다.
“상인 목소리는 여럿이고, 운반수레는 셋쯤. 돈 세는 소리가 한곳에서 나. 저 흰 휘장은 백결 표식이야.”
“당신 눈에는 안쪽이 보여요?”
“귀로 봐. 돈 셀 때 내는 소리는 장터마다 다르거든.”
안에서 찰칵, 찰칵 소리가 났다. 동전을 세는 소리치고는 너무 가벼웠다. 콩쇠는 이를 갈았다.
“이름표를 넘기고 있어.”
채원은 셔터 옆 벽을 살폈다. 붉은 분필로 문턱선이 그어져 있었다. 선 한가운데에는 손바닥 모양과 함께 ‘오늘의 영업면은 안쪽’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개매대가 선 안에 있습니다. 허락 없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콩쇠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저 안에서 도윤 이름이 팔릴지도 모르는데 문턱 예절을 지켜야 해? 답답해서 뿔이 다 간지럽다.”
그는 정말로 양쪽 뿔을 벽에 비비기 시작했다. 석회가루가 수염 위로 떨어졌다.
해온은 셔터 틈에 귀를 댔다.
안쪽에서 상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손목 사고, 사람길 보장거절 완료. 휴업 일곱 날짜리 이름입니다.”
“너무 비싸. 치료비 재심 열렸잖아.”
“그 전에 넘기면 요괴 부조금은 살아 있어.”
찰칵.
이번에는 분명 이름표를 가면에 끼우는 소리였다.
해온의 손이 셔터 손잡이로 갔다. 안쪽에 도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친 사람의 이름이 가격표와 함께 불리는 걸 듣고 서 있기란 어려웠다.
손끝이 금속에 닿기 직전, 채원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손 빼요. 아직 들어갈 허락이 아닙니다.”
“지금도 거래 중입니다.”
“그래서 공개영업면에 명령을 송달해야 합니다. 들어가서 빼앗는 것과, 받은 뒤에도 거래한 사실을 남기는 건 결과가 달라요.”
해온은 셔터 너머의 찰칵 소리를 들었다. 도윤이 오늘도 보호대를 풀지 못한 손으로 접수증을 들고 있다는 생각이 났다. 여기 들어가 이름표 하나만 낚아오면 그 손이 조금 편해질 것 같았다. 채원이 놓아 준 손목에는 손톱자국이 하얗게 남았다. 해온은 그 자국을 문지르며 손잡이에서 물러났다.
그가 손을 뗐다.
채원이 결정문 뒷면의 집행항목을 짚었다.
“이동영업자가 공개매대를 문턱 안으로 숨겨 송달을 피하면, 조정인이 확인한 바깥 문턱선에 고지할 수 있습니다. 운영표식이 문서를 가져가거나 훼손하면 도달로 기록하고요. 위치와 문구는 제가 승인해야 합니다.”
해온이 셔터 앞 빈 바닥을 보았다.
“그럼 승인받을 수 있게 바깥 고지대를 만들죠.”
해온은 극장 맞은편 편의점으로 뛰었다. 야간 아르바이트생에게 테이프 한 개와 투명 우산 두 개를 샀다. 결제 뒤 영수증도 받았다.
“비 안 오는데 우산은 왜 사세요?” 아르바이트생이 물었다.
“임시 매대 만들려고요.”
“새벽 두 시에요?”
“저도 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폐극장으로 돌아온 해온은 투명 우산을 펼쳐 손잡이끼리 묶었다. 셔터 앞 문턱선에 닿지 않게 세운 뒤, 그 위에 동결 결정문을 붙였다. 종이 아래에는 수령란과 이의신청 연락방울을 달았다. 사람길 가게들이 문을 닫았을 때 택배기사가 출입문에 부재표를 남기는 방식이었다.
채원이 문구를 읽었다.
“운영표식 백결이 관리하는 이동 이름거래소에 알립니다. 위조 의심 송장 열한 건의 지급과 이름 양도를 즉시 동결합니다. 수령을 거부할 경우 공개면 도달 시각을 기준으로 송달된 것으로 봅니다.”
콩쇠가 우산을 흔들어 봤다.
“이게 공개매대라고?”
“누구나 볼 수 있고, 영업문턱을 넘지 않았고, 운영자가 가져갈 수 있죠. 편의점 행사매대보다 튼튼합니다.”
“비도 안 오는데 우산값은?”
“제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수사비인데?”
“당신 배차소는 영수증 가져가면 꼭 분류부터 싸우잖아요. 비품인지 운행비인지.”
콩쇠가 진지하게 말했다.
“우산은 비품이고 테이프는 소모품이야.”
“그래서 제 카드로 샀다고요.”
채원이 헛기침으로 웃음을 눌렀다. 그러고는 셔터 앞 바닥에 조정소 봉인선을 하나 더 그었다. 침입을 위한 선이 아니라, 누가 언제 통지를 가져갔는지 남기는 선이었다.
세 사람은 길 건너 폐업한 분식집 차양 밑으로 물러났다.
십 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콩쇠는 김이 빠진 어묵 국물 냄새를 맡으며 발을 굴렀다. 해온은 편의점 교대 시간을 다시 봤다. 쉰여덟 분 남았다. 이대로 기다리면 새벽 진열을 혼자 받는 동료에게 피해가 갔다.
“사십 분까지만 봅니다. 그 뒤에는 인계하고 가야 해요.”
“범죄 현장 앞에서 퇴근 걱정이 나와?” 콩쇠가 물었다.
“퇴근이 아니라 출근입니다. 여기 끝나면 거기 시작이에요.”
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십 분 뒤 제가 남겠습니다. 인계하고 가세요.”
그때 셔터 안쪽에서 바퀴 소리가 멎었다.
가느다란 팔 하나가 셔터 밑으로 나왔다. 손가락이 우산 위 결정문을 더듬었다. 종이를 떼지는 않고, 수령란만 검은 먹으로 뭉개려 했다.
채원이 낮게 말했다.
“입회시각 두 시 십칠 분. 수령란 훼손 시도.”
해온은 휴대전화를 들지 않았다. 요괴길 흔적은 화면에 남지 않았고, 피해자 이름이 비치는 장면을 불필요하게 찍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준비해 온 사람길 택배 영수증 뒷면에 시각과 동작을 적었다. 콩쇠는 방울을 한 번만 울려 입회표식을 남겼다.
팔이 결정문을 안쪽으로 낚아챘다.
곧 셔터 안에서 종이 찢는 소리가 났다.
“수령 확인.” 채원이 말했다.
세 사람은 다시 기다렸다.
안쪽 거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상인의 외침이 커졌다.
“동결 전 계약! 지금 이름을 넘기면 지급은 오늘 날짜로 소급!”
“백결 거래소는 내일 다른 주소에서 정상 개장합니다!”
찰칵, 찰칵, 찰칵.
콩쇠의 뿔 끝에 푸른 불이 일었다.
“받고도 계속하네.”
“그래서 기다린 겁니다.” 채원이 새 기록봉투를 열었다. “몰랐다는 말을 못 하게 됐어요.”
해온은 찢기는 소리 뒤에 다시 시작된 이름표 소리를 들었다. 카드로 산 우산 위에는 테이프만 남았다. 안쪽 이름은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채원은 운영표식의 수령과 그 뒤 양도 지시를 적었지만, 해온은 그 기록봉투를 보고도 웃지 못했다.
그 대가로 그들은 거래소 안에 들어갈 기회를 놓쳤다.
무대 뒤에서 갑자기 호각이 울렸다.
“철수! 다음 개장지로 이동!”
셔터 너머로 수레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붉은 등들이 하나씩 꺼졌다. 콩쇠가 셔터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해온이 어깨를 잡았다.
“지금 들어가면 빈 극장뿐이에요.”
“운반장 하나라도 잡아야지.”
“밖으로 나오는 자를 봅시다.”
뒤편 비상구가 열리며 검은 우비를 입은 운반장들이 쏟아졌다. 얼굴 대신 택배송장을 붙인 자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입에 긴 종이를 물고 있었다. 개장지 목록이었다.
채원이 정지명령을 읽자 운반장은 달아나는 대신 종이를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종이가 주식인가?” 콩쇠가 기막혀 했다.
해온은 운반장을 쫓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조각을 먼저 봤다. 종이는 침에 젖어 신발 밑으로 붙었다. 콩쇠가 달려들면 밟힐 거리였다.
“콩쇠, 왼쪽 발!”
콩쇠가 공중에서 몸을 틀었다. 뿔이 벽에 박혔지만 발은 조각을 피했다. 해온은 투명 우산 하나를 접어 종이 위에 덮었다. 운반장은 남은 목록을 삼킨 뒤 골목 끝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콩쇠가 벽에서 뿔을 빼며 신음했다.
“잡을 수 있었는데.”
“잡았어도 뱃속부터 수색해야 했습니다.”
“그건 하기 싫군.”
채원이 핀셋으로 조각을 들어 봉투에 넣었다. 종이에는 주소 대신 숫자 네 자리와 초승달 모양, 그리고 찢긴 화살표 하나가 남아 있었다.
해온의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편의점 교대 삼십 분 전이었다.
그는 증거봉투 겉면에 발견 장소와 시각을 적고 펜을 채원에게 넘겼다.
“저는 출근합니다. 저 조각을 확정주소처럼 쓰면 안 됩니다.”
콩쇠가 구겨진 뿔을 문지르며 말했다.
“알아. 후보를 좁히는 표식이지, 남의 문을 부술 주소는 아니야.”
폐극장 셔터가 완전히 올라갔다. 안에는 찢어진 표찰과 식은 등잔만 남아 있었다. 이름을 팔던 시장은 사라졌지만, 빈 무대 한가운데 동결통지의 찢긴 절반이 떨어져 있었다.
백결은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밤에도 장사를 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