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30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마을이 함께 요구한 것

표결함은 마을회관 식탁 한가운데 놓였다. 강만석은 뚜껑에 붙은 봉인을 보고 손을 내려놓았다. 손으로 열면 얼마 걸리지 않을 작은 상자인데, 안에 든 종이를 꺼내는 데는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야 했다. 은실은 식탁 위에 물잔을 놓았다가 다시 치웠다. 젖은 종이가 나오면 누가 설명할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세희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개표 기록지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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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결함은 마을회관 식탁 한가운데 놓였다. 강만석은 뚜껑에 붙은 봉인을 보고 손을 내려놓았다. 손으로 열면 얼마 걸리지 않을 작은 상자인데, 안에 든 종이를 꺼내는 데는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야 했다. 은실은 식탁 위에 물잔을 놓았다가 다시 치웠다. 젖은 종이가 나오면 누가 설명할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세희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개표 기록지를 폈다.

서가람은 게시한 공지와 투표 안내를 서류철에서 꺼내 식탁 한쪽에 놓았다. 언제부터 알렸는지, 비밀투표를 어떻게 안내했는지가 적혀 있었다. 그 뒤에 다섯 줄 본문이 있었다. 원인규명, 긴급지원, 위험정지, 임금유지, 주민입회. 표결하는 대상은 그 다섯 줄이지 공장 전면폐쇄에 대한 찬반이 아니었다. 가람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사람을 찾듯 문 쪽을 보고서 안내문을 다시 읽었다.

“개표부터 합시다.” 만석이 말했다. “이미 설명회에서 했소.”

가람은 읽던 손을 멈췄지만 종이는 치우지 않았다. 찬성표가 많으면 안내문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반대가 더 나오면 사람들은 누구에게 어떤 종이를 줬는지부터 물을 터였다. 만석은 가람의 망설임이 자기 쪽을 못 믿어서라고 여기는 눈으로 보았다. 가람은 표결함보다 먼저 준비한 자료가 누구에게나 보이도록 식탁 끝으로 옮겼다.

봉인을 확인한 뒤 종이가 나왔다. 접힌 모양은 달랐지만 바깥에 이름은 없었다. 만석은 첫 찬성표가 펼쳐지자 입술을 움직였다. 수를 세고 있었다. 세희는 표시가 어느 칸에 있는지 읽고 기록했다. 은실은 반대 쪽으로 놓이는 종이 앞에도 같은 빈 공간을 만들었다. 가람은 펼친 표를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놓고 다음 종이를 집었다.

식탁 옆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만석이 순간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반대표를 보고 일어나는 것일까 싶었지만 늦게 들어온 사람이 벽 쪽 의자를 당겼을 뿐이었다. 만석은 다시 표를 보았다. 투표 전날까지도 임금유지 비용이 어민 몫을 줄이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재원을 다른 칸으로 나눠 보여 줬다고 마음속 통장이 모두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표까지 분류한 뒤 다시 숫자를 맞췄다. 찬성 일흔여덟, 반대 열아홉, 무효 셋. 가람이 기록지를 돌리자 만석은 먼저 찬성란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큰 숫자라 안도했으나 다음 줄에서 멈췄다. 열아홉이라는 숫자는 누구의 얼굴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는 회관에 온 사람들을 보다가 다시 종이를 내려다봤다.

“일흔여덟이면 냅시다.”

“세 숫자 함께 적겠습니다.” 가람이 말했다.

만석은 반대의견을 붙일 빈 종이를 가리켰다. “그것까지 길게 붙여야 합니까? 회사에서 마을이 갈렸다고 쓸 거요. 다섯 줄만 같이 하자는 데도 안 한다고.”

은실은 반대쪽 표를 정리하던 손을 멈췄다. 세희는 펜을 내려놓지 않고 만석을 보았다. 어민들이 폐쇄를 요구하듯 자신들은 임금 없이 공장을 멈추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번 표결은 그 차이를 지우자는 것이 아니어서 참여할 수 있었다. 세희는 가람이 어느 문장을 쓰는지 보려고 기록지 가까이 앉았다.

“반대한 사람이 뭘 염려했는지 붙이기로 했잖아요.”

“누가 썼는지 알려 달라는 게 아니오. 저쪽에서 쓸 말부터 만들어 주지 말자는 거지.”

가람은 표를 들고 사람들의 얼굴을 맞춰 보지 않았다. 대신 설명회에서 나온 의견을 정리한 종이를 가져왔다. 위험을 좁게 멈추는 것으로 부족하다는 의견, 비용을 누가 낼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 어떤 표의 주인이 그것을 말했는지 따져 적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익명표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공개된 의견의 요지만 합의서 뒤에 붙이겠다고 했다.

“기록이 길어서 다섯 줄로 줄였지요.” 만석이 말했다. “다시 뒤에 전부 붙이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오?”

은실이 자기 앞의 종이를 펴 보였다. 상인 손실을 제출하는 부속서였다. 다섯 줄 본문에 붙이는 종이지만 다른 집의 금액까지 은실이 마음대로 승인하는 종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첫 장의 이름란을 가리켰다.

“제 가게 날짜도 짧게 하려고 빼지는 않았어요. 앞장이 짧다고 뒷장이 없어지면 저는 서명 못 해요.”

만석은 한숨을 내쉬고 모자를 무릎 위로 옮겼다. 회사가 불리한 숫자를 빼고 정상이라고 설명하던 표가 생각났다. 자기 쪽 열아홉 표를 빼는 일은 그 표와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다. 찬성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희가 펜을 들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가람은 법원에 제출할 서류 앞장을 만들었다. 전화로 제출 일정과 첨부 범위를 확인하는 동안 만석은 식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가람은 개표 결과 세 줄을 읽고, 반대의견 요지와 집단별 부속서를 함께 내겠다고 말했다. 통화기 너머 안주원의 목소리가 들리자 가람은 다른 사람들도 들을 수 있게 양해를 구하고 통화를 스피커로 바꿨다.

“반대 열아홉 표도 지우지 마십시오.” 주원이 말했다. “공지와 비밀투표를 어떻게 했는지, 개별청구가 남는지도 함께 보겠습니다. 찬성표만 제출하면 제가 확인해야 할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가람이 답하는 사이 만석은 식탁 위 찬성표에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곧바로 갖고 가고 싶은 것은 합의서였다. 표는 개표한 그대로 보관해야 했다. 그는 종이 묶음이 흩어지지 않게 옆에 놓인 빈 파일만 밀어 주었다.

통화가 끝나자 만석은 가람에게 물었다. “그럼 열아홉 명이 나중에 우리한테 발목 잡히는 것도 없는 겁니까?”

“표만으로 누가 누군지 찾지 않을 겁니다. 자기 청구는 각자 가지고 있고요. 찬성한 사람도 이 서명으로 자기 금액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희가 다섯 줄 본문 옆에 자신의 부속서를 놓았다. 노동자들이 공정 위험을 확인하고 임금을 유지하며 전환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만석은 그 안에 전면폐쇄 찬성 문장이 없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그가 갖고 온 어민 부속서에는 폐쇄 요구가 남아 있었다. 서로의 종이를 없애면 앞장에 서명할 사람도 없었다.

만석은 자기 펜을 꺼냈다. 펜 끝이 종이 위에 닿기 전에 주변에서 소리가 줄었다. 그는 본문을 먼저 읽고 어민 부속서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가람은 빨리 서명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은실도 주방 쪽에서 걸려 온 전화를 잠시 받았다가 “오늘 늦게 문 엽니다”라고 답하고 돌아왔다.

“폐쇄 요구는 남겨 두되 다섯 줄은 함께 냅니다.” 만석이 말했다. “다른 끝을 보면서도 지금 할 일은 같소.”

그는 서명했다. 종이 위에서는 짧은 일이었다. 세희가 서명하는 동안 만석은 그 손을 보지 않고 자기 부속서를 만졌다. 은실도 첫 장의 대상 항목에서 연결상인이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한 뒤 이름을 적었다. 공동 본문에 들어간 세 이름 아래에는 개별 손해와 소수의 권리를 유지하는 첨부가 이어졌다. 그것을 묶을 때 가람은 스테이플러를 쓰지 않고 서류철을 꺼냈다. 제출할 사본과 마을에 남길 기록을 분리해야 했다.

은실은 자기 가게로 먼저 내려가야 했다. 문을 늦게 열겠다고 전화한 것이 오늘 아예 안 연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녀는 원본과 사본을 맞추는 동안 곁에서 종이를 넘겼다. 점심 손님을 잃은 시간을 만석에게 계산해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회의에 온 날의 매출 칸을 비워 놓을 생각도 없었다. 가람이 사본을 건네자 그녀는 앞장만 보지 않고 마지막 장까지 넘겼다.

만석은 은실이 나간 뒤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희가 노동자 부속서를 가방에 넣으려 하자 그가 첫 장을 한 번 읽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세희는 잠시 망설였다. 만석의 어민 부속서는 전면폐쇄라는 말부터 눈에 들어올 터였다. 그녀는 자기 종이를 펼쳐 놓고 대신 어민 쪽 첫 장을 달라고 했다.

둘은 악수하지 않았다. 서류를 바꿔 놓자 만석의 식탁 앞에는 임금유지가 놓였고, 세희 앞에는 조업손실과 폐쇄 요구가 놓였다. 만석은 자신이 싫어했던 문장 사이에서 자료를 내고 공정을 확인하는 노동자의 역할을 읽었다. 세희는 묶인 배가 선주의 재산만 아니라 선원의 오늘 수입이라는 항목을 읽었다. 끝까지 같은 생각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읽은 종이를 돌려줄 때 말끝만 조금 느려졌다.

“이 임금은 회사가 먼저 내야 한다는 거지요?”

“예. 배상금 통장 하나에서 꺼내 쓰자는 게 아니에요.”

“그럼 이 어민 손실도 좁은 정지 구역만큼만 잡는 건 아니고.”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람은 둘 사이에 서서 답을 대신하지 않았다. 이미 설명회에서 재원의 경계를 확인했고 지금은 상대의 요구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 확인이 돌아가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약속까지 되지는 않았다. 만석은 다시 선착장에 가면 왜 폐쇄가 본문에 없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을 알았다.

가람은 오후에 법원으로 갔다. 마을에 남길 사본은 회관에 두고 제출용 철을 가방 안쪽에 넣었다. 접수대에서 첨부 목록을 대조할 때 열아홉 표라는 숫자가 앞장에 그대로 보였다. 만석이 그것을 끝내 빼자고 하지 않았다는 일이 가람에게는 서명 수보다 오래 남았다. 누군가 자기 편을 약하게 보이게 하는 숫자를 남겨 놓았다.

법원에 낸 것은 전면폐쇄 찬반의 결론이 아니었다. 함께 접근해 원인을 확인하고, 급한 생계를 지원하며, 위험을 멈추고, 임금을 유지하고, 주민이 입회하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 가람은 접수 확인을 받고 별도 손해부속서가 함께 들어갔는지 다시 물었다. 돌아오는 길에 만석과 세희에게 각각 같은 제출 사실을 알렸다. 두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내용은 같았지만 답은 달랐다. 만석은 현장에 언제 갈 수 있느냐고 물었고 세희는 회사가 준비할 자료부터 물었다.

현장접근명령에 따라 조사 일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람은 지표투과레이더가 들어갈 경로 자료를 확인했다. 종이 위 P-17은 회사가 오래전에 폐쇄했다고 한 배관이었다. 목록에 있는 이름과 땅속에 남아 있는 것이 같은지는 아직 보지 못했다. 마을이 일흔여덟 표를 던졌다고 관의 현재 위치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장에 탐사 장비가 들어왔을 때 만석은 작업자보다 먼저 담장 아래를 보았다. 멀리서 보면 그저 평평한 땅이었다. 세희는 현장접근 범위를 확인하고 공장 쪽 통로에서 사람들을 안내했다. 가람은 둘에게 오늘 들어가는 장비가 지표를 따라 조사하는 것이라고 알렸다. 땅을 파거나 배관을 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기술자가 장비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바퀴에 붙은 흙이 띠로 떨어졌다. 만석은 저 흙 아래로 바다를 죽인 물이 갔을 것이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가람은 회관에서 받아 온 다섯 줄 사본을 가방 안에서 꺼내지 않았다. 이제 종이에 함께 서명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쪽에서 같은 화면을 보기 시작했다. 화면에 무엇이 나올지, 누가 먼저 그것을 자기 말로 부를지는 다음 움직임을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