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푸른 바다의 장부
창고의 전력계에 숫자가 돌아왔다. 차미례는 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문 안쪽에서 팬이 돌기 시작했고, 멎어 있던 기계가 제 자리를 찾느라 두 번 떨었다. 문 앞에 앉아 기다리던 노인이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창고의 전력계에 숫자가 돌아왔다. 차미례는 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문 안쪽에서 팬이 돌기 시작했고, 멎어 있던 기계가 제 자리를 찾느라 두 번 떨었다. 문 앞에 앉아 기다리던 노인이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들여놔도 돼?”
미례는 담당자의 전화를 확인한 뒤 대답했다. 오늘 검사해 출하할 수 있다고 분류한 것부터였다. 노인은 부표 번호가 붙은 상자를 찾으러 갔다. 한꺼번에 문을 열었다가 바람만 빠져나가게 할까 봐, 미례는 손잡이를 잡고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
공동기금의 첫 지급이 들어왔다는 문자가 휴대전화에 떠 있었다. 숫자를 보고 안심하려는데 회의실 쪽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오늘 저녁 임시총회에 올릴 지도를 붙일 자리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미례는 돈이 들어온 이유와 돈을 받았다고 끝나지 않는 일을 함께 설명해야 했다.
해솔이 지도 두 장을 들고 왔다. 큰 지도에는 이번 누출이 만든 짙은 영역이 있었고, 다른 선으로 여덟 해 동안의 얇은 배경 오염이 표시돼 있었다. 작은 지도에는 양식장 구획과 조사 시점이 들어 있었다. 해솔은 두 장을 벽에 나란히 붙였다. 테이프를 누르던 손이 어느 집 구획 위에서 멈췄다.
미례가 그 손을 보았다.
“거긴 오늘 상자 들어갔어요. 검사한 것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닷속에서 본 푸른 층은 벽 위에 올라오자 집과 사람을 뜻했다. 들어갈 수 있는 집도 있고, 아직 들어갈 수 없는 집도 있었다. 한 색으로 칠한 바다였으면 해솔에게는 편했을 터였다. 주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총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지도 앞에 섰다. 어떤 사람은 자기 구획을 손톱으로 짚었다. 손이 겹칠까 봐 먼저 온 사람이 옆으로 비켰다. 아무도 자신이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좌표를 모르는 사람도 부표의 간격과 해안의 모양을 보고 자기 자리를 찾았다.
박은서는 자료를 탁자 위에 다 펼치지 않았다. 세 지점에서 공동으로 받은 시료, 반응시험, 생물 조직검사, 조류 모형, 퇴적층을 연결한 한 장을 먼저 붙였다. 그 뒤에 각각 무엇을 보았고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를 적은 종이가 따라갔다. 미례는 종이 오른쪽 아래에 날짜가 모두 있는지 확인했다.
우찬이 마이크를 들었다. 오래된 스피커에서 얇은 울림이 났다.
“청람호에 실린 촉매 폐액이 이번 양식장 피해의 주된 원인이라는 데까지 자료가 이어졌습니다. 분산제 살포가 해저 확산을 더 키웠습니다.”
앞줄에서 누군가 이제 인정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류경문을 보고 있었다. 류경문은 뒤쪽 출입문 가까이 앉아 있었다.
“자료에 관한 발표입니다.” 우찬이 말했다. “기금 납입과는 따로 봐 주십시오.”
류경문이 그 말을 받아 공동기금에 참여한 것이 책임 전체를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앞줄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옆 사람이 팔을 잡자 다시 앉았다. 미례는 마이크를 손에 쥐지 않았다. 우찬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같은 말이 벽에서 튀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박은서는 짙은 영역 바깥을 가리켰다. 과거의 작은 배출이 남긴 층과 자연 폐사는 이번 누출에 다 붙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 가장 심한 곳을 과거부터 그랬던 곳이라고 밀어낼 수도 없고, 과거의 오염까지 청람호 한 척에 실을 수도 없었다. 한 주민이 뒤의 지도를 보다가 물었다.
“그러면 우리 줄에서 올해 죽은 게 다 이번 배 때문은 아니란 말이죠?”
“구획과 시기에 따라 갈립니다. 그 차이를 표시했습니다.”
“받을 돈도 갈려요?”
우찬은 생계를 지탱하기 위해 먼저 지급하는 돈과 확인된 피해를 정산하는 돈을 나눠 설명했다. 주민은 자신이 먼저 받은 비용이 나중에 전부 빚이 되느냐고 물었다. 우찬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구획을 정해졌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실제로 쓴 비용과 검사 결과를 어디에 남기는지, 같은 손해가 두 번 계산되지 않게 어떤 칸에서 대조하는지 그 사람의 서류를 놓고 보여 줬다.
옆에 앉은 주민이 자기 것도 가져왔다. 우찬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총회가 흐트러지는 듯 보였지만 미례는 재촉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손에 들고 온 것들은 발표가 끝난 다음 다시 생길 질문이었다.
“바다 치우는 돈은요?”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났다. 양식장을 멈춰 둔 사람도 있고, 작업선을 빌려 방제에 나간 사람도 있었다. 해솔이 지도의 짙은 부분을 봤다. 수면 아래에서는 그곳을 하루 만에 말끔히 지울 방법이 없었다.
우찬은 회의실 칠판에 네 줄을 적었다. 피해를 입은 바다와 생물, 사고 뒤 방제에 든 비용, 일을 못 해 남은 손실, 앞으로 바닥을 되살리는 비용. 어려운 항목 이름 아래에 주민이 가져온 영수증 하나씩을 놓았다. 아직 영수증이 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박은서는 마지막 줄 곁에 긴 시간표를 붙였다.
“다음 주면 다시 기를 수 있는 거죠?”
박은서가 그 구획을 찾아 검사 날짜를 짚었다. 답은 날짜 한 개가 아니었다. 주민은 입술을 오므렸다. 미례는 그 사람에게서 눈을 피하지 못했다. 전력계가 켜졌다는 소식을 총회 첫머리에 말하면 이 표도 조금 밝아 보이리라 기대했었다. 기계 한 대의 소리는 그 사람의 다음 주를 채우지 못했다.
류경문이 오래된 오염 자료를 가리켰다. 그 이전의 준설과 통항 계약도 충분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례는 계약 사본을 자기 앞에서 꺼냈다. 여덟 해 전의 서명이 보였다. 이미 공개한 종이인데도 다시 손에 들면 남에게 뺏긴 물건 같았다.
“그 얘기부터 합시다.”
앞줄의 남자가 말했다. 그의 손에는 배경 오염 지도의 복사본이 구겨져 있었다.
“이런 걸 모르고 우리가 계속 조합장을 믿으라는 겁니까. 지원금을 받았으면 그 길로 뭐가 오가는지 봤어야죠.”
미례는 준설 지원과 야간 통항을 묶어 약속했다고 말했다. 폐기물이 들어온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주민은 그 말을 듣고 더 화를 냈다. 듣지 못했다고 하면 서명이 없어지느냐는 것이었다.
그녀가 마이크를 들었다. 스피커가 울리자 사람들의 말이 잠깐 멎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목 안이 말랐다. 물컵이 가까이 있었지만 그녀는 손을 뻗지 않았다.
“그래서 계약과 들어온 돈을 다 내놨습니다. 보상에 관해 제가 표를 행사하는 것도 이미 내려놨어요. 그걸로 괜찮아졌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왜 아직 앞에 서 있어요?”
미례는 대답을 찾으려다 창고 쪽을 봤다. 벽이라서 창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오늘 누가 어느 구획 상자를 넣었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꼭 그녀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무까지 그만둘지는 오늘 정해 주십시오. 다른 분이 맡으면 제가 가진 것은 전부 넘기겠습니다.”
뒤쪽에서 웅성거림이 났다. 해솔은 미례가 자신을 보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돕는 말 한마디면 그녀가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바다에 들어갔다 왔다는 이유로 그 집들 사이에서 그가 신임을 나눠 줄 수는 없었다. 그는 벽에서 들뜬 지도의 모서리를 눌렀다.
임시 위원회가 투표를 준비하는 동안 우찬은 자료를 공개할 시각을 물었다. 보험자에게 먼저 보낸 뒤 주민에게 설명하던 방식 때문에 같은 지도를 두고 서로 다른 소문이 돌았었다. 미례는 정해 둔 시각에 양쪽에 같은 자료를 내겠다고 말했다. 불리한 결과도 포함하느냐는 질문이 즉시 나왔다.
“오늘 붙인 이것도 빼지 않았습니다. 내일 것도 안 뺍니다.”
투표 용지는 주민의 손을 돌았다. 미례는 책상에서 떨어져 창문 옆에 섰다. 종이를 접는 소리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바다를 보려 했지만 창문에 회의실 사람들만 비쳤다. 그녀의 얼굴도 그 속에 있었다.
결과는 실무 책임을 계속 맡기는 쪽이었다. 미례가 한숨을 쉬기도 전에 위원장이 보상 의결권을 되돌리는 투표는 아니었다고 확인했다. 사퇴를 요구했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성한 사람만 기다리는 거 아닙니다. 내일 장부 봅니다.”
미례는 알겠다고 했다. 그 말 뒤에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해솔은 박수가 없는 편이 그녀에게 더 무거운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허락을 받았으니 오늘부터 다시 잘하면 된다는 얼굴을 할 수 없었다.
우찬이 소결산의 남은 항목을 설명했다. 오염원과 확산을 키운 흐름은 자료가 연결됐고, 오래 걸릴 복구는 시작됐다. 긴급비용이 들어오고 검사에 따라 일부를 회수하는 체계도 움직였다. 누군가 해솔에게 이제 배만 건져 올리면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해솔은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지도보다 작게 붙은 청람호 사진이 보였다. 문이 열렸고, 화물이 달랐고, 벨의 위치도 달랐다. 그 조각들이 같은 사람의 손을 뜻하는지는 아직 몰랐다.
“누출 쪽을 더 봐야 합니다. 바닷속 밸브는 닫혀 있는데 케이블 끝은 살아 있습니다. 누가 어디서 움직였는지 찾겠습니다.”
그가 말한 닫힘은 촬영 화면의 눈금이었다. 총회의 사람들은 그 단어에 먼저 고개를 들었다. 더는 안 샌다는 뜻이냐는 질문에는 아직 누출 경로와 연결을 확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답을 하면서도 닫힘이라는 짧은 말이 뒤의 긴 설명보다 더 쉽게 남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우찬은 후속 조사를 하더라도 복구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솔은 원격 연결의 조작 여부를 확인할 잠수 준비를 설명했다. 지금 배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바깥에서 받는 장비도 제대로 놓을 수 있었다. 조사와 복구가 같은 배를 번갈아 쓰는 시간을 현장 팀장과 맞추기로 했다.
총회가 끝났을 때 의자는 비어도 탁자는 비지 않았다. 주민들이 두고 간 영수증과 추가 질문이 남았다. 미례는 질문을 받았다는 표시를 하며 한 장씩 모았다. 해솔이 컵을 치우자 그녀가 낮게 말했다.
“신뢰는 사과 한 번으로 돌아오지 않아요.”
그녀는 구겨진 지도 복사본을 폈다. 사퇴를 요구한 주민이 두고 간 것이었다.
“내일 같은 시간에 또 열어야겠죠. 오늘 설명한 장부도, 안 좋은 결과도.”
창고 앞의 주황색 등이 켜졌다. 해솔은 그 등 아래로 걸어가는 노인을 보았다. 상자를 넣고 돌아온 노인이 모자를 들어 보였다. 해솔이 손을 들자 미례는 다음 날 공지할 종이를 챙기러 다시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녀에게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잠수 준비대에서 해솔은 밸브 촬영본을 다시 띄웠다. 손잡이 아래를 지나는 검은 선은 화면 모서리에서 꺾였다. 피복이 부러져 떠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그는 영상을 앞뒤로 돌리고 다른 각도의 빛을 대조했다. 끝이 끊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은 벽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우찬이 총회 자료를 들고 지나가다 멈췄다.
“이 부분입니까?”
“예. 여기서 잘린 게 아니었어요.”
해솔은 눈금판을 정면에서 찍은 사진과 손잡이 아래 축을 옆에서 찍은 사진을 따로 뽑았다. 닫힘 글자는 첫 사진에 분명했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나사산 그림자가 길었다. 그는 그 길이를 비교할 도면을 내일 작업 준비에 넣었다.
총회에서 한 말을 확인하는 일도 다음 입수에 포함해야 했다. 해솔은 눈금 사진 뒤에 옆면 사진을 포개려다, 둘을 나란히 놓았다. 바다에서는 같은 물건이었다. 종이 위에서는 아직 같은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창고 등이 꺼지지 않은 밤, 그는 장갑이 마른 것을 확인하고 내일의 첫 확인 자리에 두 장의 사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