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3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멈춘 지원창구

지원 중단과 공장 버스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강만석은 자기 배 수리를 미루고, 서가람은 책임 부인 자료의 빈 시간대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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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재난지원 접수실의 번호표 기계는 아침 아홉 시가 되자마자 열두 장을 토해 냈다.

강만석은 맨 앞 번호를 뽑고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한 손에는 조업일지, 다른 손에는 연료 외상장부를 들고 창구가 열리기만 기다렸다. 장부 맨 뒤에는 아내가 새벽에 끼워 둔 쪽지가 있었다.

혈압약 오늘까지. 잊지 말 것.

만석은 쪽지를 장부 안으로 더 밀어 넣었다. 자기 약값보다 어촌계원 열두 집의 냉장고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어느 쪽도 미룰 수 없었다.

서가람은 그 뒤에서 어선등록증 사본과 임시 조업금지 통지, 전날 만든 손실대장을 순서대로 맞췄다.

“책상 뒤집지 않기로 했습니다.”

“접수번호 받기 전에는.”

“받은 뒤에도 안 됩니다.”

“그건 창구 하는 것 봐서.”

담당자 오지현이 블라인드를 올렸다. 만석이 번호표와 장부를 동시에 내밀자 지현은 신청서의 빈칸부터 봤다. 원인물질 ‘분석 중’, 책임자 ‘미확정’.

“이 상태로는 최종 피해지원 신청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만석의 손등에 핏줄이 솟았다. “붉은 깃발 세워 배 묶으라고 한 건 군청이오. 배가 묶였는지까지 분석해야 압니까?”

“조업중단은 확인됩니다. 하지만 환경책임 보험이나 배상 항목은 원인과 책임자가 나와야 연결할 수 있어요.”

가람이 조업금지 통지만 창구 안으로 밀었다. “그 돈과 오늘 생계비를 같은 날 결정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군청 통제로 실제 일을 못 한 사실을 먼저 접수해 주세요.”

지현은 난처한 얼굴로 뒤쪽 책상을 보았다. “별도 서식이 없습니다.”

“민원으로 받으면 됩니다. 무엇이 접수됐고, 다음 판단에 무엇이 부족한지 남겨 주세요.”

만석이 끼어들었다. “번호만 주고 돈은 또 기다리라는 거요?”

가람이 그를 돌아봤다. “오늘 돈이 나온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그럼 여기 왜 데려왔소?”

“문이 닫혔다는 말을 종이로 받으려고요. 그래야 다른 문을 두드립니다.”

만석은 장부를 낚아채고 창구를 떠났다. 유리문이 세게 닫혔다. 어민 두 명이 뒤따라 나갔고, 나머지는 가람과 지현을 번갈아 보았다.

가람은 만석을 붙잡지 않았다. 접수실로 돌아가 조업중단 사실, 등록 어선, 최근 조업기록만 붙인 민원 접수를 마쳤다. 프린터에서 나온 것은 얇은 접수증 한 장이었다. 돈도, 약속도 아닌 종이였다.

군청 밖 계단에서 만석은 연료장부를 무릎에 펴 놓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젊은 선주 이재문이 서 있었다.

“정유소에서 오늘 정오까지 삼백만 원을 갚든지, 배 열쇠 맡기래요.” 재문이 말했다. “어제 검사하러 나간 기름도 외상이었어요.”

“검사용 출항 비용은 공동장부에 올렸어.”

“장부가 기름을 넣어 줍니까?”

만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위험한 줄 알면서 낙지를 팔았어야 했냐?”

“안 팔았잖아요. 그래서 돈이 없다고요.”

재문은 봉인된 검사용 물량 인수표를 만석 발치에 내려놓았다. 살아 있는 낙지를 잡아 왔지만 검사 전에는 한 마리도 팔지 않았다. 옳은 선택의 대가는 당일 장부에 곧장 찍혔다.

나정미의 냉동차도 군청 앞에 멈췄다. 적재함은 비어 있었고 운전석에는 취소 주문서를 뭉친 봉투가 놓여 있었다.

“상인 셋이 오늘부터 다른 항구 물건 받겠대요.” 정미가 말했다. “바깥쪽 물량까지 해오름만 이름이면 싫다네요. 검사 결과가 괜찮게 나와도 계약을 돌릴지 모르겠대요.”

만석이 계단 난간을 주먹으로 쳤다. “우리가 바다를 죽였나? 왜 우리 이름이 먼저 벌을 받아?”

“어제 계장님이 선착장에서 바다 전체를 막는 것처럼 소리쳤잖아요.” 정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영상이 돌아요.”

“죽은 조개 앞에서 조용히 안전구역만 광고할까?”

“안전하다고 하라는 게 아니라, 모른다고 말했어야죠. 변호사님은 백 번 하던 말을 계장님은 한 번도 안 했잖아요.”

두 사람 사이에서 재문이 인수표를 걷어찼다. 바람이 종이를 차도 쪽으로 밀었다. 가람이 뛰어가 주웠다.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종이 지키러 왔으면 됐네요.” 재문이 비웃었다.

가람은 구겨진 인수표를 펴서 그에게 돌려줬다. “이 종이에 어제 당신이 안전선 밖에서 검사 물량만 올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없어지면 위험을 감수한 것만 남고, 왜 감수했는지는 사라집니다.”

“이유가 남으면 정유소가 기다려 줍니까?”

가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군청에서 받은 접수증을 내밀었다.

“이것도 오늘 돈은 아닙니다. 이틀 안에 단기 생계지원 가능 여부와 필요한 자료를 답하라고 접수했습니다.”

재문이 종이를 보지도 않았다. “이틀이면 배 열쇠는 남의 손에 있어요.”

만석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만석호 시동모터’라고 쓴 수리 견적과 현금 팔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지난달부터 시동이 두 번씩 걸려야 돌아가 새 부품을 주문하려 모은 돈이었다.

“이걸 정유소에 먼저 줘.”

재문이 받지 않았다. “계장님 배도 고장 나잖아요.”

“조업 다시 열려도 내 배 한 척은 사흘 늦게 나가면 돼.”

“왜 계장님이 내 기름값을 냅니까?”

“네가 어제 공동 확인선으로 나갔으니까.”

“그 결정 같이 했잖아요. 그러면 어촌계 돈이어야지 계장님 돈이 아니고.”

말을 들은 다른 어민들이 주머니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공동기금은 다음 달 방파제 로프를 바꾸려고 모은 돈이었다. 지금 꺼내 쓰면 태풍철 안전비가 비었다. 쓰지 않으면 검사에 협조한 배부터 열쇠를 빼앗길 판이었다.

가람은 선택을 대신하지 않았다. “공동기금을 빌려 쓰면 금액과 갚는 순서, 못 갚을 때 로프 비용을 어디서 마련할지까지 회의로 정해야 합니다.”

만석이 버럭했다. “회의하다 정오 지나면?”

“그래서 지금 여기서 하죠.”

어민들은 군청 화단 턱에 둘러앉았다. 휴대전화 계산기를 돌리고 외상장부를 펼쳤다. 방파제 로프 전체 비용 가운데 계약금만 남기고, 공동 확인선의 실제 연료비를 우선 빌려 주기로 했다. 만석 개인 봉투는 쓰지 않았다. 대신 그가 조업중단이 길어질 경우 자기 배 수리를 마지막 순번으로 미루겠다고 회의록에 적었다.

재문은 마침내 접수증을 받았다. “이틀 안에 답 없으면요?”

“다시 번호표 뽑는 게 아니라 담당 부서 답변을 요구합니다.” 가람이 말했다. “그리고 오늘 정한 공동기금도 지원금이 나오면 제일 먼저 돌려놓고요.”

정미가 손을 들었다. “상인 취소 손실은 여기 기금에 섞지 마요. 나까지 받으면 로프 계약금도 없어져.”

“알아.” 만석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네 건 네 장부로 끝까지 적어.”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공장 교대버스 한 대가 군청 앞 신호에 멈췄다. 해림합금이라는 파란 글씨가 버스 옆면에 크게 붙어 있었다. 창문 안에는 야간조 노동자들이 잠든 얼굴로 기대 있었다.

재문이 붉은 깃발을 들고 차도로 내려갔다.

“저 공장 때문에 배가 묶였는데 저 사람들은 월급 받으러 가잖아요.”

만석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차도에서 나와.”

“계장님은 안 화납니까?”

“화나도 사람 실은 버스를 세우면 안 돼.”

재문이 팔을 뿌리쳤다. 다른 어민 둘이 깃발을 펴 들었다. 버스가 출발하지 못하자 뒤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기사가 문을 열고 내려왔다.

“밤새 일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길을 막아요?”

버스 뒤쪽 문도 열렸다. 작업복 차림의 중년 여자가 내리더니 어민들 사이에서 자기 오빠를 찾아 팔을 잡았다.

“오빠, 애 아빠 저 안에 있어. 공장 문 닫으면 우리도 이번 달 대출 못 내.”

어민이 대꾸했다. “내 통발은 다 썩고 있어. 네 식구 월급만 돈이냐?”

“내가 조개 죽였어?”

“그 공장에서 월급 받잖아!”

여자의 손이 떨어졌다. 버스 안 노동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찍었고, 누군가는 창을 열고 욕을 했다. 어민들 뒤에서는 정미가 냉동차 문을 세게 닫았다.

만석은 붉은 깃발을 빼앗듯 받아 들었다. 공장 정문 앞에 가져가 흔들면 기사 한 줄은 날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를 막아 세운 채 받아 낸 약속은 다음 날 노동자들이 입을 닫는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그는 깃발을 접었다.

“버스 보내.”

재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봤다. “그냥요?”

“공장하고 싸우자고 같은 마을 사람을 차에 가둬 둘 수는 없어.”

“우리 배는 바다에 가둬 뒀잖아요.”

그 말은 만석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 그는 그래도 차도에서 물러나지 않는 재문의 앞을 몸으로 막았다.

“그러니까 내일 공장 정문에서 만나. 노동자들 내려서 같이 듣는 데서 묻자. 어느 공정을 멈춰야 하는지, 멈추면 월급을 어떻게 할 건지. 오늘은 사람부터 보내.”

기사가 문을 닫았다. 버스는 천천히 출발했다. 창가의 여자와 오빠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재문은 접힌 깃발을 만석 발밑에 던지고 선착장 쪽으로 걸어갔다.

만석은 쫓아가지 못했다. 공동기금으로 연료 열쇠는 지켰지만, 자기 말 한마디로 젊은 선주 하나가 등을 돌렸다. 그 비용은 회의록 어느 칸에도 쓰기 어려웠다.

오후에 가람과 만석은 어촌계 사무실로 돌아왔다. 팩스에는 군청의 생계지원 검토 접수 확인이 먼저 와 있었다. 승인된 금액은 없었다. 그 아래에는 해림합금 법무팀이 같은 시각에 보낸 책임 부인 통지가 붙어 있었다.

‘해오름만 폐사와 자사 공정 사이의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최근 자체 수질검사는 전 항목 기준 이내임.’

반듯한 검사표의 모든 칸에 ‘적합’이 찍혀 있었다.

만석이 종이를 움켜쥐었다. “그럼 우리 조개가 단체로 꾀병을 부렸다는 거요?”

가람은 검사표의 채수시각을 봤다. 아침 열 시, 오후 한 시, 오후 네 시. 세 번 모두 주간이었다. 갯벌에서 회색 침전이 처음 드러난 새벽 교대 시간은 비어 있었다.

“회사가 잰 시간에는 기준 안이었다는 자료입니다. 폐사가 회사와 무관하다는 증명은 아닙니다.”

“내일 저 표 들고 공장 갑시다.”

“회사에도 같은 원자료를 요구하겠습니다. 어민만 앞세우지 않고 노동자 대표도 같은 자리에서 보게 해야 합니다.”

만석은 오전에 접었다가 바닥에 떨어진 붉은 깃발을 책상 위에 폈다. 물때가 말라 가장자리가 뻣뻣했다.

“재문이도 부르겠소.”

“오늘 일 때문에 안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불러야지. 화난 사람이 빠진 회의는 합의가 아니라 빈자리요.”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두 사람은 해림합금 정문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빈 어선의 젖은 깃발이 바다 쪽에서 보였고, 공장 출근버스가 모퉁이를 돌아왔다.

가람은 자체 검사표를 들었고, 만석은 붉은 깃발을 접어 팔 아래 끼웠다. 전날과 같은 파란 작업복들이 창문 너머에 보였다. 만석은 깃발 끝이 바람에 펴지지 않도록 팔에 힘을 주었다.

“오늘은 길을 막으러 온 게 아니오.”

버스가 정류장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 맞은편 선착장에는 출항하지 못한 어선들이 비어 있었고, 공장 안에서는 교대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