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너무 비싼 침묵
한이솔과 강태오가 47초 음원과 1998년 보험 부속표를 대조해 소리의 진위와 평가액의 근거를 분리해 추적한다.
시청 문화재보험 서류열람실에는 시계가 없었다.
기록을 오래 보게 하려는 배려가 아니라, 오래 있지 말라는 뜻처럼 느껴지는 방이었다. 창문도 없고 책상은 세 개뿐이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낡은 종이의 누런색은 모두 같은 해에 만들어진 것처럼 평평해졌다.
강태오는 열람 신청서에 자기 이름을 쓰고, 한이솔과 민혜주를 참관인으로 적었다. 담당 공무원이 서고에서 가져온 상자는 회색 끈으로 묶여 있었다. 겉면에는 ‘화영방송국 기증음반 동산종합보험, 1998’이라고 찍혀 있었다.
“사진은 페이지 전체만 가능합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낱장 반출, 스캔 급지, 클립 제거는 안 됩니다.”
이솔은 오전에 봉인한 원반 생각을 했다. 종이도 원반과 다르지 않았다. 알아내려고 뜯는 순간 맥락이 먼저 상했다.
태오가 끈을 풀고 첫 번째 평가표를 펼쳤다. 기증 원반 스물네 장이 한 묶음으로 적혀 있었다. 곡명 옆에 제작연도, 재질, 상태, 평가액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묶음 가격이었다.
일곱 번째 줄만 붉은 사각형 안에 따로 갇혀 있었다.
곡명 공란. 연주자 공란. 47초. 유일본 피아노 독주 추정.
평가액은 다른 스물세 장의 합보다 높았다.
혜주가 의자를 끌어당겼다. “이 숫자, 0 하나 더 붙은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태오는 다음 장의 총액을 가리켰다. “합계에도 그대로 반영됐어요.”
이솔은 원본을 건드리지 않고 자를 옆에 놓았다. 붉은 테두리의 잉크는 본문 타자보다 새것처럼 선명했다. “테두리는 언제 그은 겁니까?”
“작성 당시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다만 이 평가액으로 보험이 갱신된 기록이 있다면 나중 낙서만은 아니겠죠.”
혜주는 문 쪽을 돌아보았다. 담당자는 유리 칸막이 밖에서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방송국이 공공 기증품 가치를 부풀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철거와 기증 전체가 멈출 수 있어요.”
“멈춰야 할 이유가 있으면 멈춰야죠.” 이솔이 말했다.
“복원사님은 원반 한 장만 책임지면 됩니다. 저는 일흔두 장이 어디로 가는지, 건물 안 다른 자료까지 누가 받을지 책임져야 해요.”
“그래서 이 줄을 덮자는 겁니까?”
“덮자는 말이 아니라 확인될 때까지 밖에 말하지 말자는 겁니다.”
태오가 두 사람 사이에 손가락을 놓았다. “공개 여부와 조사 여부를 섞지 맙시다. 지금은 가치가 진짜인지, 원반이 그 목적물인지 확인합니다.”
그는 평가표의 근거 번호를 따라 부속 감정서를 찾았다. 얇은 청색 표지 안에는 네 장이 들어 있었다. 첫 장에는 ‘국내 미발표 유일본’이라는 문장이 세 번 반복됐다. 두 번째에는 동시대 피아노 독주 원반의 거래가를 참고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작품명도 거래일도 없었다. 세 번째 장의 장비 칸은 비어 있었다. 네 번째 장 하단에는 윤태문이라는 이름과 둥근 도장이 찍혀 있었다.
“감정인이 윤태문입니까?” 혜주가 물었다.
“프로듀서 윤태문.” 태오가 말했다. “화영방송국 음악감독을 했고, 기증자 대리인이기도 했습니다.”
이솔은 웃지 못했다. “자기 손에 있던 원반을 자기가 유일본이라고 평가한 겁니까?”
“그 문서만 보면 그렇습니다. 외부 확인 서류가 붙었을 수도 있어요.”
목차에는 ‘원소유자 확인서 1부’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청색 표지 안에도, 뒤쪽 첨부 묶음에도 그 문서는 없었다. 빠진 자리에는 녹슨 철심 자국 두 개만 남아 있었다.
혜주가 서류를 세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걸 목차에 적은 걸까요?”
“철심 자국이 겹칩니다.” 이솔이 몸을 기울였다. “무언가는 끼워져 있었어요.”
태오는 자국을 사진으로 남겼다. “없어진 시점은 모르고요.”
이솔의 귀에는 오전에 들은 삼십일 초의 진동이 다시 살아났다. 종이 속 공란도 원반의 무음과 닮아 있었다. 비어 있다는 사실은 같았지만, 누가 언제 비웠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태오는 보험 갱신철을 펼쳤다. 1998년 평가액은 2001년, 2004년에도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상태점검표에는 매번 ‘보관 양호’라는 도장이 찍혔으나 재생 확인 칸은 비어 있었다.
“들어 보지도 않고 유일본 가치를 유지했네요.” 이솔이 말했다.
“보험평가에서 매번 재생하는 건 손해를 키울 수 있습니다.” 태오가 답했다. “그 자체는 이상하지 않아요. 대신 동일 물건 확인을 무엇으로 했는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가 페이지를 넘기다 멈췄다. 2004년 점검표의 목적물 번호는 72였다. 설명 칸에는 7번 트랙. 바깥 봉투와 안쪽 도장이 한 문서 안에서 다시 만났다.
혜주가 낮게 욕을 삼켰다. “누가 오류를 알면서도 두 번호를 같이 쓴 거네요.”
“혹은 둘을 같은 것으로 만들려고.” 이솔이 말했다.
태오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의도는 아직 쓰지 마세요. 확인된 건 두 번호가 같은 평가 목적물에 병기됐다는 것뿐입니다.”
이솔은 그의 신중함이 답답했지만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자신도 원반의 진동에 섣불리 피아노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럼 확인된 사실만 묻죠. 이 가격의 근거는 어디 있습니까?”
태오는 거래 사례 공란과 장비 공란, 빠진 원소유자 확인서를 차례로 가리켰다. “현재 상자 안에는 없습니다.”
“근거가 없는데 가격만 남았네요.”
“가격의 근거 문서가 누락됐습니다. 가격이 거짓이라는 결론과는 달라요.”
혜주가 말했다. “하지만 이게 알려지면 사람들은 거짓이라고 읽을 겁니다.”
“그 때문에 사실을 덜 적을 수는 없습니다.” 태오는 새 사건표를 꺼냈다. “평가액 검증과 음원 진위 검증을 분리합니다. 하나가 거짓이라고 다른 하나까지 자동으로 거짓이 되는 건 아니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첫 줄에 ‘평가액 근거’라고 쓰고, 확인할 항목을 세 칸으로 나눴다. 감정서 작성자, 비교 거래, 원소유권 문서. 두 번째 줄에는 ‘물리 원본 동일성’이라고 쓰고 봉투 72, 내측 07, 런아웃 각인을 적었다.
이솔이 그 표를 보며 물었다. “보험사에는 언제 알립니까?”
“목적물 동일성에 합리적 의문이 생겼다는 사실은 오늘 알립니다. 사기라고 알리는 게 아닙니다.”
혜주의 얼굴이 굳었다. “시청 승인 없이요?”
“저는 시청이 고용한 손실평가사지만 평가액 오류를 발견하고 묵인하라는 계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공식 통지 전에 담당 부서에 같은 문안을 보여 주겠습니다.”
“그러면 언론에서 정보공개 청구가 들어올 수도 있어요.”
“공개 범위는 개인정보와 조사 방해 여부에 따라 판단하겠죠. 문서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혜주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손가락은 일흔두 장 인수 목록 모서리를 누르고 있었다. 이솔은 그 손에 밤샘과 철거 일정과 예산 결재가 함께 걸려 있음을 알았다. 원반 한 장을 지키자는 말이 혜주에게는 수천 장의 종이를 놓칠 수 있다는 협박으로 들렸을 것이다.
“나머지 원반 반출은 계속할 수 있어요.” 이솔이 말했다. “7번만 격리하고, 같은 묶음의 5번과 6번은 비교 촬영 뒤 다시 인수하면 됩니다. 전체를 멈추자는 게 아니에요.”
혜주가 그를 보았다. “비교 원반도 복원실로 가져갑니까?”
“봉인 이력 유지해서요. 재생은 안 합니다. 런아웃 각인만 봅니다.”
“철거팀에는 제가 설명해야 하고요.”
“필요하면 제가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혜주는 마침내 손을 뗐다. “좋아요. 대신 오늘 확인한 문서 목록은 제가 직접 작성할게요. 나중에 시청이 못 봤다고 하지 못하게.”
세 사람은 상자 바닥까지 확인했다. 원소유자 확인서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평가표 뒤표지 안쪽에서 접힌 얇은 쪽지 하나가 발견됐다. 문서가 아니라 당시 서류 편철 순서를 적은 메모였다.
‘6A / 7B 라벨 재부착 후 사진.’
담당 공무원이 다가와 메모를 별도 자료로 등록했다. 이솔은 손대지 않고 앞뒷면을 촬영했다.
“7B면 7번 트랙이죠?” 혜주가 물었다.
“표기일 뿐입니다.” 태오가 말했다. “원반에는 어떤 각인이 있었습니까?”
“아직 런아웃을 정밀 촬영하지 않았어요.” 이솔이 답했다. “겉에서는 라벨만 봤고요.”
태오의 연필이 멈췄다. “라벨을 재부착했다면 그 아래 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떼어 보자는 말은 하지 마세요.”
“안 합니다. 사광 촬영과 자외선이면 접착층 차이를 볼 수 있겠죠.”
이솔은 태오를 처음으로 손실액을 세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물건을 망가뜨리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으로 보았다.
열람 시간이 끝나 담당자가 상자를 다시 묶었다. 태오는 공식 통지 초안을 읽었다. ‘화영방송국 기증 원반 중 평가표 7번과 현장 봉투 72번의 동일성이 미확정이며, 단독 고액 평가의 비교 근거와 원소유자 확인서가 현 보관철에서 확인되지 않음.’ 사기, 위조, 도난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혜주는 그 문장을 두 번 읽고 담당 부서에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기관 명예를 지키겠다는 게 거짓을 지키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확인되지 않은 말이 먼저 달리지 않게 해 주세요.”
“그건 저도 원합니다.” 태오가 말했다.
열람실을 나왔을 때 복도 창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솔의 휴대전화에는 노을이 보낸 확대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오전 재생 뒤 촬영한 원반 라벨 가장자리였다. 사광에서 손글씨 7-B 아래로 아주 얕은 기계 각인의 앞부분이 비쳤다.
HBC-6… 마지막 글자는 라벨 그림자에 잠겨 있었다.
이솔은 걸음을 멈췄다.
“왜요?” 태오가 물었다.
그는 화면을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평가표는 7번, 봉투는 72번. 그런데 원반 자체는 6번 계열일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혜주의 얼굴에서 피로가 잠깐 사라졌다. 그 자리를 순수한 두려움이 채웠다. “그럼 우리가 들은 사십칠 초는 누구 물건이에요?”
“내일 현미경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태오는 붉은 테두리가 찍힌 평가표 사진과 휴대전화의 불완전한 각인을 나란히 보았다. 너무 비싼 침묵은 이제 가격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름과 번호와 물건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킬 가능성이 생겼다.
이솔은 다음 날 오전 현미경대 예약을 잡았다. 확인해야 할 것은 라벨 아래의 번호였지만, 떼어 내지는 않을 것이었다. 진실이 표면 밑에 있다고 해서 표면을 찢을 권리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