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29화

수심 43미터의 종

오염의 지분

긴급비용이 끊길 위기에서 우찬은 네 보험자의 조건부 공동계정 합의를 이끈다. 첫 입금은 대기 중이며, 자료 공유 과정에서 재생 금속촉매 특약과 폐액 처리비의 모순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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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창고 문을 닫으면 차미례의 오른손 장갑 끝이 손잡이에 걸렸다.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해 실이 풀린 자리였다. 그녀는 실을 당기지 않고 손잡이에서 빼냈다. 안쪽에서는 팬이 돌아갔다. 문이 닫히자 기계 소리가 작아졌고, 문 옆에 붙은 미납 안내가 보였다.

오늘 손님은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좁은 회의실에 계약서 네 묶음이 놓였다. 선박, 적하, 환경책임, 방제업체. 서로 다른 표지 사이에 창고의 전력비와 회수 운송비, 작업자 검사비 고지서가 끼어 있었다. 정우찬은 계약서를 쌓지 않고 고지서를 가운데 남겨 두었다.

“현재 계정으로 언제까지 갈 수 있습니까?”

그가 묻자 실무자가 이틀을 말했다. 회수 물량이 늘지 않고 추가 검사도 없을 경우였다. 미례는 아침에 들어온 두 건을 탁자 위에 놓았다. 상자를 보관하는 날이 늘어난 영수증과, 검사를 미루지 말아 달라는 작업자의 요청이었다.

실무자가 계산기를 눌렀다. 이틀이라는 말이 탁자 위에서 줄어들었다.

선박보험자 담당자는 오염 원인이 화물이라면 적하 쪽에서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맞은편에서는 미신고 위험물과 허위고지 문제를 들었다. 환경책임 쪽은 과거층의 기여도를 요구했고, 방제업체 보험자는 살포로 늘어난 부분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야기는 한 바퀴 돌아 첫 사람 앞으로 왔다.

미례가 납부 계좌를 가리켰다.

“그 얘기를 한 바퀴 더 하면 이 번호로 돈이 들어옵니까?”

누군가 아직 책임을 인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미례는 그 사람을 보지 않고 우찬을 봤다. 우찬이 와 달라고 한 자리였다. 그녀는 오늘도 의결권이 없었다. 숫자가 어느 계약으로 갈지 대신 정할 수도 없었다.

“최종 비율은 더 다투셔도 됩니다.” 우찬이 말했다. “오늘은 늘어나는 손해부터 막을 방법을 정해야 합니다.”

류경문이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회사는 이미 구조비를 냈다고 했다. 그 비용까지 무시한 채 계속 추가 출자를 요구하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례는 그가 말하는 감당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창고의 장갑을 주머니에서 쥐었다.

“그 돈 어디 썼는지도 같은 표에 놓으세요.”

그녀가 말했다.

“낸 건 빼자는 말 안 했습니다. 아직 안 나간 돈을 들어온 것처럼 세지 말자는 겁니다.”

우찬은 구조비와 오늘의 비용 중 중복된 항목을 확인시켰다. 류경문이 앞으로 필요한 비용의 한도를 묻자 미례는 임시 위원장에게 대답을 넘겼다. 위원장이 보관과 회수, 검사 순서를 읽는 동안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

박은서가 가져온 표에는 하나의 숫자가 없었다. 구간마다 최소값과 최대값이 있었고, 빈칸도 있었다. 네 사람의 펜이 모두 최소값 쪽으로 움직였다.

“낮은 쪽으로 계산하면 되겠네요.”

적하 쪽 담당자가 말하자 은서가 종이를 자기 앞으로 당겼다.

“이것은 각 회사가 낼 비율이 아닙니다.”

“최소한 기여한 부분은 있다는 거 아닙니까.”

“물질이 남긴 피해 범위와 어느 계약이 부담하는지는 다른 문제예요. 각자 낮은 값만 가져가면 설명되지 않는 피해가 중간에 남습니다.”

미례는 표의 빈칸을 보았다. 자기 양식장보다 큰 구역이 숫자 한 개 없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오늘도 밥을 먹어야 했다.

우찬이 새 종이를 가져왔다. 은서의 표를 복사하지 않았다. 보관을 멈추면 버리게 되는 물량, 회수를 늦추면 늘어나는 운송, 검사를 취소했을 때 다시 잡아야 할 일정부터 적었다. 실무자가 실제 지출 자료를 펼쳤다. 보험자 한 사람이 회수차 운임이 왜 두 번 붙었는지 물었다. 미례는 거래처별로 섞인 상자를 구획별로 나누느라 따로 운반한 건을 찾아 보여 줬다.

“이건 주민이 그냥 해 줄 수 없었습니까?”

그 말에 미례가 고개를 들었다.

“어제도 주민이 했습니다. 차하고 기름까지 그냥 생기지는 않았고요.”

담당자는 운임 옆에 표시했다. 자기 표에서도 그 줄을 지우지 않았다.

논의가 멈출 때마다 우찬은 선박과 화물의 책임을 억지로 합치지 않았다. 각 계약이 심사할 부분은 남겨 두되, 오늘의 비용 중 모두가 지급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는 항목을 골랐다. 그 최소 비용부터 네 보험자가 임시 분담하자는 제안이었다. 같은 출발 기준을 쓰고, 계약별 잠정 몫은 참여자들이 합의해 적도록 했다. 어느 한쪽의 과학 수치를 법률상 확정 비율처럼 들이밀지 않았다.

방제업체 쪽 담당자가 펜을 내려놓았다.

“나중에 담보가 아닌 걸로 나오면요?”

“그 경우의 정산과 구상 조건을 지금 같이 적으셔야 합니다. 제게 강제로 내게 할 권한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안 내서 손해가 늘어났을 때의 자료도 같이 남을 겁니다.”

상대는 협박처럼 들린다고 했다. 우찬은 고지서의 추가 비용 발생 날짜를 짚었다. 담당자는 그것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다른 두 사람도 본사에 전화하겠다며 일어났다.

미례가 종이컵을 모았다. 누구도 물을 끝까지 마시지 않았다.

“이렇게 기다리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찬의 답이 너무 빨랐다. 미례가 그를 노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기 서명했다고 입금됐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녀는 컵을 탁자 위에 다시 뒀다. 거짓말처럼 들리는 희망보다 그 말이 지금은 더 견디기 어려웠다.

***

쉬는 시간에 강해솔이 창고에서 미례를 불렀다. 반품된 상자 한 줄을 옮겨야 했다. 문 가까이 너무 오래 두면 안쪽 물건을 꺼낼 때마다 같이 밀렸다. 미례는 회의실 문을 열어 둔 채 따라갔다.

상자마다 다른 손글씨가 붙어 있었다. 해솔이 먼저 손잡이를 잡았다. 미례가 반대쪽을 들자 풀린 장갑 실이 다시 걸렸다. 그녀가 힘을 주려는 순간 해솔이 내려놓자고 했다. 두 사람은 바닥에 상자를 놓고 손을 뺐다.

“장갑 바꿔요.”

“하나만 더 옮기고.”

해솔은 대답하지 않고 자기 가방에서 여분 작업장갑을 꺼냈다. 미례가 그것을 받아 끼는 동안 복도에서 통화하던 보험자 담당자가 문 앞에 섰다. 그는 창고 안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서류에 적힌 보관 물량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다 회수 대상입니까?”

“아니요. 검사받았어도 안 팔려서 돌아온 것도 있습니다.”

미례가 바깥 줄을 가리켰다. 담당자가 그 줄의 표지를 읽었다. 어제 상인이 두고 간 물량이었다. 새 장갑은 손가락 끝이 조금 남았다. 미례는 천을 당겨 손에 맞추고 다시 상자를 들었다.

담당자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서기 전에 내일 아침까지 돈이 들어오면 운영을 이어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미례는 창고 실무자를 불렀다. 자기 짐작으로 대답하면 또 다른 약속이 될 것이었다. 실무자가 전력 공급 쪽과 확인한 시한을 설명했다. 한 번 중단되면 다시 켜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쪽 승인만 나도 다 되는 건 아닙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알아요.”

미례는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다른 쪽에도 지금 본 걸 말해 주세요. 어민들이 보상금 달라고 앉아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고.”

그가 회의실로 돌아갔다. 미례는 새 장갑을 벗지 않은 채 마지막 상자를 옮겼다.

***

회의가 다시 시작됐을 때 네 담당자 모두 자리에 돌아왔다. 한 사람은 조건을 읽었고, 다른 사람은 표현을 고쳤다. 공동계정에서 지출할 항목과 확인 절차, 실제 영수증의 공개 범위, 같은 손해에 대한 중복 지급 확인이 한 줄씩 들어갔다. 납입이 최종 책임 인정이 아니라는 문구 뒤에는 나중에 그 말만으로 이미 지급한 긴급비용을 피해자에게 일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도록 정산 주체를 명확히 적었다. 계약별로 남는 문제는 따로 남았다.

위원장은 생계 손실 전부가 들어간 것이 아니냐고 두 번 물었다. 우찬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합의한 것은 먼저 멈추면 안 되는 비용이었다. 미례는 의자 아래에서 발을 한 번 옮겼다. 주민에게 가져갈 말이 자꾸 짧아졌다.

은서는 자신의 분석표가 부속 자료로 들어가는지 확인했다. 들어갔다. 다만 임시 분담표와는 별개였고, 과학적 범위를 확정 책임비율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붙었다. 그녀가 표를 돌려줬다. 그제야 네 사람이 잠정 분담란을 채웠다.

마지막 조건은 자료 공유였다. 자기 계약의 특약은 비밀이라며 요약본만 내던 사람들이 서로의 요약을 믿지 못했다. 공동계정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관련 계약 문구와 변경 이력을 지정된 검토자에게 제출하기로 했다. 영업정보가 주민 게시판에 그대로 나갈 일은 아니었지만, 비용을 달리 분류할 근거까지 감춘 채 정산할 수도 없었다.

류경문이 적하 쪽 서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회사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찬은 어떤 부분인지 표시해 달라고 했다. 류경문은 바로 펜을 들지 않았다. 적하 담당자가 관련 조항을 짚어 설명했다. 미례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내밀지 않고 기다렸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끝내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답이 나왔다.

계정 담당자는 첫 납입 예정 시각을 확인했다. 한 곳의 내부 승인이 남아 최종 확인 전화를 하기로 했다. 위원장이 서명했고, 미례는 지출 자료를 제공할 실무 담당자로만 이름을 썼다. 보상에 관한 주민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문구는 들어가지 않았다.

해솔이 회의실에 들어왔을 때 미례는 주민 공지를 쓰고 있었다.

“됐습니까?”

“합의는요.”

“입금은 확인하고 말하려고요.”

해솔은 박수를 칠 듯 들었던 손으로 빈 의자를 옮겼다. 앞줄에는 내일 창고에 넣을 수 있는 물량을 확인하러 주민이 와 있었다. 좋은 소식이라는 말부터 꺼냈다가는 그들이 지금 상자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

사람들이 나간 뒤 우찬은 제출된 적하 특약을 펼쳤다. 해솔은 그 옆에서 회수 자료를 날짜순으로 놓고 있었다. 미례는 창고 쪽과 통화하며 접수 시간을 맞췄다. 각자 다른 종이를 보고 있었는데, 우찬이 읽은 단어에 두 사람이 함께 고개를 들었다.

“재생 금속촉매.”

해솔이 가까이 왔다. 밖으로는 수지라던 화물이었고, 시료에서는 촉매 폐액이 나왔다. 이번에는 계약 안에 물건의 다른 이름이 있었다. 우찬은 그 문구 아래 붙은 가액 산정 자료를 넘겼다. 판매해 받을 돈처럼 계산된 방향과, 폐액을 처리하기 위해 낼 돈의 방향이 반대였다.

미례가 전화를 마치고 다가왔다. 우찬은 이미 확보한 중량 자료의 13.8톤을 가리켰다. 그 무게가 단지 배를 기울인 값에만 머물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받아야 할 화물값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지불해야 할 처리비였다.

“같은 물건을 팔았다고도 하고, 버렸다고도 한 겁니까?”

해솔이 물었다.

우찬은 특약과 비용 자료의 계약 당사자를 따로 적었다. 지금 이 두 종이만으로 같은 거래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떤 장부와 상대 계약을 받아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돈이 오가는 방향을 뒤집으면 이익을 얻는 사람이 달라졌다.

창고의 팬 소리가 문틈으로 들어왔다. 미례의 휴대전화에는 아직 입금 알림이 없었다. 그녀는 화면을 뒤집어 놓고 내일 총회에 붙일 지도를 챙겼다.

해솔은 물속 사진을 서류 맨 뒤에서 꺼냈다. 화물이 왜 실렸는지 묻는 장부 옆에, 그 화물이 어떻게 바다로 나왔는지 물어야 할 선체가 놓였다. 그는 사진 속 밸브 아래의 검은 선을 보다가 다음 작업 준비 목록을 당겨 왔다.

총회가 끝나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야 했다. 해솔은 장부 옆에 작업 준비 목록을 놓았다.

우찬은 ‘재생 금속촉매’가 적힌 장을 덮지 않았다. 네 회사가 서로에게 떠넘기던 돈이 마침내 같은 탁자에 놓였을 때, 청람호에 실렸던 물건은 또 하나의 이름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