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완화의료 휴먼극 28화

열세 번째 야간 왕진

원장이 써 준 문장

세현은 사전 고지된 면담에서 원장이 제안했던 기록 정리 문구의 출처를 묻는다. 원장의 인정과 답하지 않은 부분을 구별해 남기며, 개인 판단·인력 부족·경보 자료 보존을 별도 의제로 올리고 품질관리 서버의 가능성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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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현은 맞은편 문이 열리는 소리에 허리를 폈다. 몸은 아직 서정오를 알아봤다. 오래전 병원장실에 들어갈 때처럼 어깨가 먼저 굳고, 무슨 말을 듣든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곳은 병원이 아니라 법률대리인의 사무실이었다.

윤채영이 테이블 위 봉투를 앞으로 밀었다. 세현이 직접 쓴 정정서였다. 그는 봉투 모서리를 한 번 만지고 손을 내려놓았다. 서정오는 앉으며 그의 오른손을 잠깐 봤다.

“요즘은 좀 어떤가.”

세현은 손을 테이블 아래로 감추지 않았다. “업무 범위를 정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잘됐네.”

짧은 인사가 끝났는데도 세현은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 몸에 남은 순서는 서류보다 느리게 바뀌었다. 채영은 두 사람이 앉은 뒤 오늘 확인할 내용을 읽었다. 사고 뒤 대응 회의, 진술 문구 작성 경위, 관련 기록이 보존 대상에서 빠진 이유였다.

사전 고지된 면담이라는 점과 참석자가 확인됐다. 서정오의 대리인은 답할 수 있는 범위를 먼저 말했다. 채영은 범위 밖의 질문을 몰래 끼워 넣지 않았다. 대신 처음부터 포함된 기록 보존 질문을 끝에 작게 숨기지도 않았다.

옛 진술 사본과 회의수첩 사본이 놓였다. 같은 문장이 두 곳에 있었다. ‘제가 경보를 놓쳤습니다.’ 채영은 필압이 비슷하다는 인상으로 작성자를 단정하지 않았다. 오늘 필요한 것은 종이의 모양을 감정하는 말이 아니라 그 문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당사자가 설명하는 일이었다.

“이 표현을 세현 선생님에게 제안하셨습니까?”

서정오는 사본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당시 많이 혼란스러워했어요. 사람도 지쳐 있었고. 말을 정리해 준 겁니다.”

“문장을 제안하셨다는 말씀이군요.”

“혼란을 줄이려는 목적이었죠.”

세현은 그 대답을 듣고도 바로 말하지 못했다. 이렇게 쉽게 인정할 줄 몰랐다. 누구의 손에서 나온 문장인지 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상대에게는 도와주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채영이 다음 질문을 했다. 그 표현에서 ‘놓쳤다’가 듣지 못했다는 뜻인지, 음소거했다는 뜻인지, 판단이 늦었다는 뜻인지 당시 구분했느냐고. 서정오는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세현이 제일 잘 알았으므로 본인이 확인했어야 한다고 답했다.

세현은 종이의 글자를 봤다. 그때도 본인이 제일 잘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모르겠다고 할수록 더 피곤한 사람이 됐고, 한 문장을 선택하면 면담이 끝났다. 그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상대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의도까지 지금 확정할 수는 없었다.

“제가 문장을 받아썼습니다.”

세현이 입을 열었다. “그 책임을 없애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직접 기억한 것과 제안받은 표현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서정오는 등을 기대었다. “이제 와서 책임을 바꾸겠다는 것으로 들리는군.”

말은 조용했지만 세현은 목이 조이는 것 같았다. 과거에 수도 없이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 문장 때문에 정정서를 쓰는 손이 멈췄다. 그는 이번에도 미안하다는 말부터 나가려는 것을 눌렀다.

“활력 변화를 본 뒤 판단이 늦었던 사실은 그대로 인정합니다.”

자기 목소리가 처음보다 낮아졌다. 끝까지 들리도록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조작을 했다고 쓰는 것까지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채영은 옆에서 덧붙이지 않았다. 세현이 만든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그녀가 대신 원장을 반박해 주면 더 편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오늘 말을 다른 사람에게 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서정오의 대리인이 경보 자체와 환자 상태 판단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채영은 맞다고 답했다. 그래서 한 문장으로 묶지 않겠다고 했다. 개인 판단과 인력 배치, 경보 보존 문제를 다른 종이에 놓았다.

서정오는 인력 사정이 어려웠다는 사실만으로 사고와 연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채영은 당시 필요한 인원과 실제 배치, 지원 요청을 각각 확인하고 있다고 답했다. 결론을 오늘 먼저 정해 달라는 질문은 아니었다. 빠진 기록의 이유를 물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삭제 이벤트 자료가 테이블 중앙으로 왔다. 사고 뒤 새벽 다섯 시 사십이 분. 원장실 단말 번호와 전용 승인 계정. 네 번째 위험 보고의 본문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색인과 접근 기록은 남아 있었다. 같은 시각 경보 관련 파일도 보존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세현은 ‘본문 미복원’이라는 표기를 가리키고 싶었다. 어디선가 그 문장이 나오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없었다. 없는 본문에 자기가 듣고 싶은 경고를 넣을 수는 없었다. 채영도 제목 아래 비어 있는 칸을 그대로 보이게 뒀다.

“정기 정리였다는 설명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사고 관련 두 항목이 정상 보존 규칙과 다르게 빠진 경위를 확인해 주십시오.”

서정오는 자료를 오래 읽었다. 다섯 시 삼십 분 사고대응 회의와 ‘로그 정리’라는 문구가 적힌 수첩 사본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둘 사이 시간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삭제 지시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시간에 무엇을 논의했는지 묻는 질문은 구체적이었다.

“세부 자료는 담당자를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답하실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채영은 답변을 남겼다. 침묵을 자백으로 바꾸지 않았다. 서정오가 편안해지는 것 같아 세현은 답답했지만, 그가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전에는 없던 기록이었다. 조정 자료에서 왜 빠졌는지 질문한 날짜와 답이 남았다.

잠깐 휴식하자는 말이 나왔다. 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다 오른손으로 의자를 짚었다. 손에 힘이 오래 남지 않아 왼손으로 옮겼다. 서정오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세현은 고맙다고 답하지도, 그 말에 숨은 뜻을 따지지도 않았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속도로 문밖으로 나왔다.

채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어머니라고 떴다. 그녀는 한 걸음 떨어져 받았다. 세현은 대화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큰 소리 하나는 들렸다.

“그 컵은 거기 있는 게 맞아. 엄마가 옮겨 놓은 거야.”

채영은 잠깐 웃었다. 집에 있는 컵 하나의 위치를 두고 모녀가 나누는 평범한 말이었다. 세현은 그 웃음이 이 방의 서류와 전혀 다른 시간에 속한 것처럼 느꼈다. 방금 전까지 날카로운 질문을 하던 사람이 이제는 컵이 깨지지 않았는지 묻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채영은 자세한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았다. 세현도 묻지 않았다. 영숙의 집안일이 이 면담을 견디는 비유가 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오늘 그 집에 컵 하나가 다른 자리에 놓였고, 딸이 전화를 받았다.

“돌아가서 확인할 게 많으시겠습니다.”

세현의 말에 채영이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정한 자리면 제가 확인해서 되돌릴 필요는 없죠.”

그녀는 휴대전화를 넣었다. 세현은 자신이 무심코 쓴 ‘확인’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걱정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선택을 계속 검사할 때가 있었다. 오늘 자신의 말도 확인받아야 했지만, 누군가 대신 정해 주는 문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시 방에 들어가자 회의록 초안이 준비돼 있었다. 개인 판단, 인력 부족, 경보 보존. 세 의제가 다른 제목으로 나뉘었다. 서정오가 그중 첫 부분을 오래 봤다. 세현의 판단 지연 인정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정정 진술 부분을 가리켰다.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현재 진술이지.”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채영이 답했다.

세현은 문장을 직접 읽었다. 그날 음소거를 하지 않았다고 확정한 문장도 아니었고, 원장이 시켰다고 대신 책임을 적은 문장도 아니었다. 자신이 확신한다고 쓴 부분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정정이었다. 지연을 인정한 문장은 그 뒤에 남아 있었다.

서정오는 제안했던 표현이 의학적 사실 전체를 대신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채영은 그 추가 답변도 넣었다. 그러면 당시 왜 전체 설명처럼 쓰였는지 질문은 계속 남았다. 세현은 그 칸을 보며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문장만으로 가족에게 설명했습니다.”

서정오가 그를 봤다.

“제가 그 설명을 했습니다. 이제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것과 병원이 답해야 할 것을 나눠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가족들이 그걸 원할지는 모르지 않나.”

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원하시는지 먼저 여쭤야 합니다. 제가 설명하고 싶다고 다시 앉으셔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말을 끝낸 뒤 그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끝까지 봤다. 그 시선을 견디는 데 손이 멀쩡할 필요는 없었다.

회의록의 답변과 유보 항목을 각각 읽은 뒤 참석자가 확인했다. 서정오의 답변에는 서명이 남았다. 삭제 의도는 확정되지 않았고 기록이 빠진 이유의 답도 아직 없었다. 그 대신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적힌 문장 바깥으로 질문 세 갈래가 열렸다.

채영이 서류를 정리할 때 서정오 쪽 대리인이 별도 확인한 내용을 전했다. 경보 자료 일부가 원본 서버 외에 품질관리 서버에도 남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서정오도 그 말을 듣고 담당자와 다시 확인했다. 지금 존재한다고 보장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열람을 요청할 구체적인 보관 위치가 생겼다.

세현은 의자에 다시 앉을 뻔했다. 바로 가서 열어 보고 싶었다. 채영은 적법한 열람과 입회,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개인 휴대전화로 파일을 보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세현도 재촉하는 말을 삼켰다.

밖으로 나오자 저녁빛이 유리문 아래 길게 누웠다. 세현은 가방의 무게를 바꾸어 들었다. 손이 아픈 것은 아픈 대로였고, 과거 사고가 풀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원장이 써 준 문장을 자기 입으로 반복하지 않고 방을 나왔다.

채영은 다음 열람에서 확인할 항목을 짧게 말했다. 세현은 왕진팀 일정과 겹치지 않는 시간을 먼저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가는 버스 방향을 봤다.

그는 인사를 하고 반대편으로 걸었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가방 앞칸을 열자 큰 글씨로 다시 쓴 방문 기록지가 있었다. 이름을 부르고 기다릴 자리, 환자가 자기 말로 답할 자리. 그는 그 빈칸을 보고 종이를 접었다. 내일은 먼저 제시된 문장을 읽어 달라고 하기보다, 아직 듣지 못한 답을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