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대로의 붉은 매듭
붉은 흙 위 두 줄
범수의 발이 수레 자국 안에서 사라졌다.
범수의 발이 수레 자국 안에서 사라졌다.
발목까지였다. 그는 몸을 앞으로 꺾어 넘어지지 않으려 했고, 뒤에서 오던 석구가 허리띠를 잡았다. 붉은 물이 무릎 아래로 튀었다. 강복단은 욕부터 했으나 가마니를 내려놓는 손은 빨랐다. 범수가 발을 빼자 깊은 바퀴 홈 안에서 물이 한번 솟았다.
“사람 발 빠진 자국까지 네 그림에 넣겠네.”
복단이 말했다. 범수는 짚신 안으로 들어간 진흙을 털었다. 민연화는 그 자리 위에 발을 놓지 않고 소나무 뿌리 쪽으로 비켰다. 비가 그친 뒤의 길은 납작해 보였지만 밟을 때마다 다른 깊이를 내주었다.
“뿌리로 와요.”
그녀가 복단을 불렀다. 복단은 아직 길 위에 서서 범수가 빠진 곳을 보았다. 보따리를 옮기기에는 그쪽이 가까웠다. 그러나 깊은 홈을 넘다가 가마니가 젖으면 안에 감싼 천도 소용없을 것이었다.
고첨지에게 받은 검붉은 천은 보따리 안에 있었다. 피처럼 보이는 자국과 북쪽으로 갔다 돌아왔다는 수레의 말이 함께 따라왔다. 연화는 그 천을 볼 때마다 바퀴에 탄 사람이 있었는지 생각했다. 지금 발밑에서 열리는 진흙은 그 질문에 먼저 대답하지 않았다.
길에는 같은 방향으로 난 홈이 두 줄이었다. 조금 옆에는 더 얕은 두 줄이 있었다. 범수는 빠졌던 자리에 나뭇가지를 눕혀 표시하고, 석구에게 새끼줄을 달라고 했다. 석구는 수레를 묶을 때 쓰던 줄을 꺼냈다.
“그걸 왜?”
복단이 물었다.
“폭을 보려고.”
“네가 빠진 폭?”
“수레 폭.”
범수는 농담을 더 받지 않았다. 새끼줄을 두 홈 사이에 당겨 놓고 매듭 하나를 지었다. 깊은 홈과 얕은 홈의 간격을 따로 재자 매듭 자리가 같았다. 그는 다시 한 걸음 위로 올라갔다. 소나무 뿌리가 길 밖으로 드러난 자리에서도 두 줄 사이의 폭은 같았다.
석구가 줄의 끝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길에서 얻은 표식을 자기 일처럼 손에 쥐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참 뒤 그가 먼저 줄을 느슨하게 놓았다.
“이 길은 누구 수레든 지나가지요. 좁은 자국이면 내 수레일 수도 있소.”
범수는 허리를 폈다.
“그러니 폭만 재고 끝내지 않겠소.”
연화는 마방에서 받아 둔 그림표를 꺼냈다. 종이 밑에 받칠 것이 없어 무릎을 댔다. 범수가 발을 빼다가 튀긴 흙이 소매에 묻었지만 그녀는 닦지 않았다. 반달 홈과 편자 못의 배열이 종이 안에 있었다. 석구는 자기 손으로 그린 수레 표식 부분을 한번 눌렀다.
“저 반달은 오래 쓰면 줄어드는 것 아니오?”
“바퀴가 닳으면 그렇지.”
범수는 깊은 홈 가장자리의 반달 모양을 가리켰다. 온전하지 않았다. 한쪽 끝이 뭉개져 있었다. 다른 자리를 조금 더 걷자 같은 흠이 또 나왔다. 줄을 바퀴가 남긴 폭에 다시 당겨 보니 마방 그림과 겹쳤다.
복단이 쪼그려 앉았다. 손은 진흙에 대지 않았다.
“네 말대로라면 이만큼 남으려면 어제 다녀가야겠군. 상단이 길 떠난 게 어제는 아니잖소.”
범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 질문은 그림표만 보고 있던 연화에게도 필요했다. 산길을 오래 밟은 발은 흙빛으로 날짜를 읽을 수 있어도, 종이에는 그 빛이 그대로 옮겨지지 않았다.
“여기 위와 밑을 보시오.”
범수는 홈의 한쪽 벽에 막대기를 눕혔다. 물에 젖은 윗부분은 부드러웠고 그 아래에는 굳은 흙이 층처럼 남아 있었다. 비가 씻어 낸 흙은 소나무 뿌리 밑으로 모여 있었다. 바퀴가 눌렀던 밑층은 이어져 있었으나 위에서 흘러온 물이 일부를 다시 팠다.
“어제 비가 지나갔다고 어제 수레가 지나간 것은 아니오. 비가 드러낸 것도 있지.”
그가 말했다. 복단은 홈을 가로지르는 가는 물길을 봤다. 물길은 바퀴 홈 위로 흘렀다가 한쪽에 고였다. 바퀴가 물길을 눌렀다면 남을 모양과 순서가 달랐다.
“길도 장부처럼 층이 있소. 어제 자국이 지난해 자국 위에 눌려 있으니 순서를 읽을 수 있지.”
범수가 말했다. 연화는 종이의 빈 가장자리에 단면을 그려 달라고 했다. 범수는 붓을 받더니 오래 바라봤다. 자기가 아는 길을 붓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여기는 굳고 여기는 무르다는 말을 다 써야 하오?”
“저도 다음에 혼자 읽으면 알 수 있게요.”
그는 붓을 거꾸로 쥐었다가 고쳤다. 연화가 손을 잡아 고쳐 주지는 않았다. 종이에 낮은 선 두 개를 그리자 석구가 밑층이라고 표시했다. 범수는 홈과 물길이 만나는 곳을 덧붙였다. 그림 옆에 말을 받아 적는 사이 복단은 길 아래를 살폈다.
산적에게 습격당했다면 부서진 물건이나 도망간 말의 자국이 제각각 이어질 수 있었다.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난 자국이었다. 복단은 그 가지런함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들을 도로 나란히 세워 끌고 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서 있다고 자유로운 길은 아닐 테지.”
그녀가 말했다. 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저 수레들이 어떻게 오갔는지요.”
그는 깊은 쪽의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갔다. 같은 폭의 자국이 세 묶음으로 겹쳤다. 하나를 셋으로 세는 것을 피하려고 반달 흠과 홈의 간격을 각기 짚었다. 석구는 앞서 재 둔 줄을 잡고 소나무 한 그루에서 다음 돌까지 걸음을 맞췄다.
연화는 길 위에서 직접 종이를 눌러 뜨지 않았다. 젖은 흙 위에 닿으면 모양을 얻는 대신 종이도 길도 바꿔 버릴 수 있었다. 범수가 범위를 짚는 동안 그녀는 길가의 흰 돌과 갈라진 소나무 줄기를 종이에 먼저 그렸다. 돌에서 어느 방향으로 몇 걸음인지 적자 폭과 홈의 순서가 그 안에 들어왔다.
석구는 그녀가 그린 수레 방향을 바꿨다.
“이 반달이면 돌아오는 쪽이오. 바퀴 앞면에서 찍힌 흠이라서.”
연화는 종이를 돌렸다. 처음 그렸을 때에는 깊은 자국을 귀환으로 놓고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밀고 갔으면 짐이 북쪽에서 한양으로 실렸다는 그림이 될 터였다. 범수는 석구의 말을 듣고 실제 홈으로 가서 다시 방향을 봤다.
“맞소. 깊은 것은 올라가고 얕은 것이 내려왔네.”
석구는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자신이 고친 그림이 동료 마부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화는 잘못된 화살표를 지우지 않고 옆에 바른 방향을 새로 그렸다. 석구가 그린 반달을 함께 넣었다.
복단이 새끼줄을 당겨 회수하려다가 멈췄다. 젖은 줄이 풀리며 끝 매듭 하나가 흙에 박혔다. 범수가 재던 곳에서 길 아래로 늘어진 줄이었다. 자국을 몇 번 살핀 탓에 표본을 모으는 손과 길을 지키는 손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이 줄 내일도 쓰는 것이오?”
복단이 석구에게 물었다.
“수레에 묶어야지요.”
“그러면 매듭부터 빼면 안 되겠네.”
그녀는 흙에 잠긴 끝을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줄을 세게 끌면 반달 홈의 가장자리가 무너질 수 있었다. 복단의 손가락에 흙이 묻었다. 아까는 길에 오래 남은 자국을 믿을 수 없다고 묻던 사람이 지금은 그 자국 앞에서 자기 손을 늦추고 있었다.
범수가 줄을 받아 다른 나무에 묶었다. 연화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그림을 다시 읽었다. 같은 수레 세 대가 북쪽으로 올라갈 때는 무거웠고 돌아올 때는 가벼웠다. 그림표의 폭과 반달 홈, 말의 편자 못이 이를 이어 줬다.
그렇지만 어디서 무엇을 내렸는지는 그림 밖이었다.
복단이 종이를 보며 말했다.
“사람이 내렸다고 쓰면 매화가 밤새 여기로 달려올 거요.”
“그 순서를 적되, 우리가 모르는 짐의 이름은 비워 둡시다.”
연화가 말했다. 그녀는 북쪽으로 올라간 줄 끝에 짐과 사람을 함께 그리지 않았다. 내려간 자국도 빈 수레라고 단정하지 않고 무게가 줄었다는 말만 붙였다. 석구는 그 칸을 오래 봤다. 고첨지가 못 봤다는 말을 쓰기 어려워하던 때와 닮은 얼굴이었다.
범수는 발목의 흙을 한번 더 털었다. 짚신은 이미 무거워졌고 신총은 눌려 있었다. 지금 돌아서면 한양까지 걷는 발이 불편해질 것이었다. 복단이 여벌 끈을 건넸다.
“내가 쓰던 거라 곱지는 않소.”
범수는 감사하다는 말보다 먼저 신을 벗었다. 맨발이 찬 돌에 닿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연화는 종이를 묶고 빈 물그릇을 그 옆에 놓았다. 범수는 발을 씻을 물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웃었다.
“다 마셨군.”
“그릇에 떨어진 흙이라도 받으려고요. 신총 고치다가 또 길에 뿌리실까 봐.”
복단이 웃음을 터뜨렸다. 범수도 웃었다. 걸어온 길을 두고 서로 다투던 목소리가 잠깐 느슨해졌다. 그가 새 끈을 묶는 동안 석구는 고개 너머를 먼저 보러 갔다. 혼자 멀리 가지는 않았다. 소나무 셋을 지나서부터 풀이 길을 덮었고 바퀴 자국 하나가 그 안으로 갈라졌다.
“이쪽은 넓소.”
석구가 불렀다.
범수가 젖은 신을 다시 신었다. 연화와 복단도 가마니를 들고 따라갔다. 세 묶음과 다른 넓은 간격이었다. 길의 가장자리를 깊게 눌러 놓은 네 번째 수레 자국이 풀숲 사이로 이어졌다. 반대편 홈은 풀 아래 가려져 있었으나, 석구가 가지를 들어 올리자 간격을 잴 수 있었다.
범수는 같은 새끼줄로 그 폭을 봤다. 앞서 묶은 매듭 밖으로 줄이 더 필요했다. 석구가 줄을 새로 당기면서 눈을 들었다. 풀이 낮아진 곳 너머에 기와 끝이 보였다. 반쯤 내려앉은 지붕이었다.
복단이 가마니를 내려놓았다.
“사당인가?”
“사람 사는 집은 아닌 듯하오.”
범수는 아직 자국을 놓지 않았다. 깊은 홈이 길에서 갈라져 저 지붕 쪽으로 들어간 순서를 눈으로 따라갔다. 연화는 앞서 그린 흰 돌과 소나무 아래에 작은 가지길을 더했다. 새로운 수레는 세 수레의 왕복 줄과 따로 놓였다.
석구가 지붕 쪽을 보며 말했다.
“수레 하나 숨길 만한 마당은 있겠네요.”
그 말을 듣자 보따리 속 검붉은 천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복단은 그것을 꺼내지 않고 끈을 다시 묶었다. 빛이 기울고 있었다. 돌아갈 때와 앞으로 갈 때 남은 길을 범수에게 물었다.
범수는 사당까지 가서 바깥을 볼 수는 있다고 했다. 연화는 젖은 종이를 품의 마른 자리로 옮겼다. 이제 그 종이에 그려진 길은 자신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그림을 내놓는 손과 길을 가리키는 손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네 사람은 넓은 바퀴 홈을 밟지 않고 그 옆 풀 가장자리로 들어갔다. 범수가 먼저 발을 놓았고, 이번에는 흙이 발목을 삼키지 않았다. 폐사당의 기와 끝이 가지 사이로 조금씩 더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