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미식 로맨틱 코미디 23화

서리 지난 복숭아밭

금이 간 병의 교훈

병이 갈라지는 소리는 작았다. 윤보리는 처음에 주걱을 내려놓는 소리인 줄 알았다. 냉각대의 분홍 과즙이 물 사이로 길게 퍼지고 나서야 손을 멈췄다. 뜨거운 콩포트를 담은 병 하나에 비스듬한 선이 생겼다. 조각이 떨어지며 주방 바닥으로 과즙이 흘렀다. 흐름은 배수구 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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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갈라지는 소리는 작았다. 윤보리는 처음에 주걱을 내려놓는 소리인 줄 알았다. 냉각대의 분홍 과즙이 물 사이로 길게 퍼지고 나서야 손을 멈췄다. 뜨거운 콩포트를 담은 병 하나에 비스듬한 선이 생겼다. 조각이 떨어지며 주방 바닥으로 과즙이 흘렀다. 흐름은 배수구 쪽으로 갔다.

“발 움직이지 마요.”

류미정의 목소리에 보리는 바닥을 봤다. 손으로 병을 받으려던 것이 먼저 부끄러웠다. 미정은 그 손도 멈추게 했다. 보리는 주걱을 별도 받침에 내려놓았다. 뜨거운 솥 옆에서 급히 움직이면 다른 병까지 건드릴 수 있었다. 냉각대에는 이번 시험분 여덟 병이 모여 있었다. 하나가 깨졌고, 남은 병들은 겉으로 멀쩡했다.

최옥순은 손에 든 병뚜껑을 다시 상자에 놓았다. 방금 전까지 뚜껑을 얼마에 샀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병에 들어갈 과육값, 용기값, 손질한 사람의 시간까지 종이에 적어 두었다. 분홍색 물이 바닥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니 그 숫자도 같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저걸 먼저 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미정은 병을 건지지 않고 냉각대 주변을 비웠다. 보리는 깨진 병과 함께 놓인 일곱 병 쪽으로 손을 옮기다가 다시 멈췄다. 손을 움직이고 싶은데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다. 미정은 같은 시험분을 모두 격리하라고 했다. 아직 정리하지 않은 도구도 따로 두게 했다. 보리는 그제야 병 번호가 적힌 기록지를 가져왔다.

찬물에 들어가기 전 병은 따로 예열하지 않았다. 상온의 용기에 뜨거운 콩포트를 담은 뒤 급히 냉각하려고 곧장 찬물 쪽으로 옮겼다. 갈변하는 색을 줄이고 싶어 서두른 순서였다. 미정은 깨진 병을 맨손으로 만지지 않고 놓인 위치부터 확인했다. 보리는 자기 손이 방금 어디까지 갔는지도 말했다.

“처음엔 주걱 소리인 줄 알았어요.”

“깨진 걸 받지 않은 건 잘했어요. 지금은 사진부터 찍고 병 묶음과 온도기록을 가져와요.”

잘했다는 말이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보리는 깨진 병의 로트와 충전 시각이 적힌 쪽을 확인했다. 냉각으로 넘어간 순서도 표시했다. 그 앞에서는 깨지지 않은 병도 같은 시험분이었다. 뚜껑을 열어 눈으로 보고 괜찮은 것만 골라 쓰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미정은 먹는 쪽으로 옮길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옥순이 빈 체를 들고 왔다. “일단 이걸로 거르면 큰 조각은 나올 텐데. 시식용도 안 되는 거야?”

보리는 미정의 얼굴을 보기 전에 체를 봤다. 촘촘했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덩어리를 건질 때라면 쓸 도구였다. 어제 솥을 닦던 해진이 기압보다 완강한 탄화층이라고 하던 말도 떠올랐다. 그때는 도구를 바꿔 힘을 더 주면 됐다. 오늘 바닥을 건져 깨끗해 보이게 만드는 일은 달랐다.

“유리는 체로 거르는 재료가 아닙니다.” 미정이 말했다. “아까워도 이 여덟 병은 전부 폐기해요.”

옥순은 체를 바로 놓지 않았다. “깨진 건 하나잖아.”

“주변 같은 시험분까지 봐야 해요. 지금 멀쩡해 보이는 병을 먹을 것으로 돌릴 수는 없어요.”

“팔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한 입만 보면.”

“옥순 씨 입이라고 유리가 더 둥글어지진 않아요.”

보리는 웃을 뻔했다가 미정의 손을 보고 그만뒀다. 그녀도 여덟 병을 버리면 재료비가 늘고 작업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오늘 주방을 닫고 다시 여는 것은 미정이 맡아야 했다. 가공용 과육을 귀하게 다룬 사람이 그것을 담은 채 버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옥순은 체를 식탁 쪽으로 옮겼다. 그 자리에 계산표가 펼쳐져 있었다. 보리는 체가 사진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놓을 곳을 가리키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옥순은 체를 치우고 자기 장부를 가져왔다. 재료를 구하던 사람과 버리는 사람의 손이 다른 쪽에 있으면 손해는 어느 한쪽의 고집으로 보일 수 있었다.

“알겠어.” 옥순이 말했다. “대신 버린 값도 숨기지 말고 원가표에 써야 같은 실수를 안 하겠지.”

보리는 폐기란을 만들어 여덟 병을 적었다. 깨진 것 하나만 쓰고 남은 일곱 병을 재고로 남기지 않았다. 옥순은 그 숫자를 보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미정은 오늘 늦어진 시간도 남기라고 했다. 원가가 늘어난 이유가 과육이 비싸서인지 시험을 다시 했기 때문인지 다르게 보여야 했다. 보리는 새 시험에 들어갈 재료를 이미 성공한 제품처럼 옮겨 적지 않았다.

“저 시간도 저 때문에 늘어난 거죠?”

그녀가 물었다. 미정은 첫 작업순서를 같이 진행했다고 답했다. 누가 냉각대를 쓰게 했는지, 충전과 냉각을 누가 맡았는지 원래 기록에 있었다. 보리 혼자 잘못해서 생긴 일처럼 그 줄들을 지우지는 않았다. 보리는 그 답을 듣고도 한동안 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어제 눌어붙은 솥부터 계속 다시 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아직 시험이라고 쓰는 겁니다. 완성품이라고 쓰고 밖에 내보냈으면 지금 다시 하는 사람은 손님이었겠죠.”

보리는 냉각대 끝의 금 간 선을 다시 봤다. 서울에서 실패한 시제품은 나중에 이름부터 없어졌다. 누가 그날 불을 조절했는지, 왜 그 모양을 만들었는지는 남지 않았다. 이번에는 버리는 숫자와 자기 이름을 같은 종이에 쓰고 있었다. 멋진 결과가 아니어서 더 눈을 돌리고 싶었다.

여덟 병은 사진과 기록을 남긴 뒤 폐기 대상으로 옮겼다. 미정은 깨진 유리와 흐른 식품을 정리할 도구를 따로 가져왔다. 보리가 바닥에 내려앉으려 하자 서서 위치를 먼저 보라고 했다. 보리는 배수구로 흐른 자국을 따라 사진을 찍고, 사람이 미끄러지지 않게 필요한 구역을 비웠다. 옥순은 깨끗한 병 상자를 그 구역에서 멀리 옮겼다. 오늘 빨리 끝내려던 세 사람이 이제 그 바닥을 오래 보고 있었다.

미정이 안전하게 조각을 정리한 뒤 보리는 남은 바닥을 닦았다. 분홍색 얼룩이 행주에 옮겨졌다. 닦을 때는 과즙 냄새가 더 진했다.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달큰한 향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물통을 옆으로 밀고 중얼거렸다.

“제 경력도 저 병 같네요. 겉은 서 있다가 금이 가면 전부 못 쓰는.”

미정이 고개를 돌렸다. “또 물건한테 사과해요.”

“이번엔 과일 아니잖아요.”

“병이랑 상의하고 한 비유도 아니잖아요. 저 병은 회사에서 남의 이름을 빼앗은 적이 없어요.”

옥순이 장부를 접다 웃었다. 보리도 물통을 잡은 채 웃었다. 바닥은 깨끗해졌지만 잃은 여덟 병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정의 농담이 그것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보리가 자기 경력을 그 폐기통에 같이 넣으려고 하는 손은 멈추게 했다.

“그럼 병한테 제가 더 사연 많다고 사과할게요.”

“사과는 나중에. 물통부터 비우고 손 다시 씻어요.”

보리는 일어나 물통을 가져갔다. 손을 씻고 돌아왔을 때 미정은 새 작업순서에 맞춰 빈 병과 냉각 자리를 나눠 놓고 있었다. 병을 먼저 예열한 뒤 충전하고 냉각을 단계로 옮기는 시험이었다. 보리는 그다음 병을 빨리 옮기려는 자신을 미리 잡으려고 기록지를 작업대 가까이 두었다. 옥순은 타이머가 자꾸 울리면 누가 어느 것인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표찰 앞에 놓죠.” 보리가 말했다. “사람 이름만 크게 쓸 게 아니라 과정 이름도 크게.”

“우리 나이를 탓하는 건가?”

“제 성급함을 탓하는 겁니다.”

옥순은 잠깐 웃다가 큰 글씨로 쓴 표찰을 세웠다. 보리는 각각의 과정을 한 줄씩 읽었다. 미정이 현재 단계를 확인하고 나서 다음 작업으로 갔다. 첫 시험보다 손이 느려졌다. 냄비를 옮겨 놓고 기다리는 동안 보리는 설탕을 더 줄이면 아까운 시간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그 질문을 지금의 냉각 시험과 섞지 않았다. 어제의 배합표는 옆에 그대로 있었다.

두 번째 배치가 냉각대로 갔다. 보리는 병에서 소리가 나나 듣느라 고개를 기울였다. 옥순도 말이 없어졌다. 미정은 두 사람을 보고 갑자기 “유리가 대답하면 그건 또 사고예요”라고 했다. 보리가 웃으면서 숨을 내쉬었다. 첫번처럼 분홍 물이 번지지는 않았다. 새 순서로 냉각을 마친 뒤에도 파손은 없었다.

옥순은 병 하나를 들려다가 기록을 기다렸다. 보리가 앞뒤 순서를 확인하자 그녀는 그제야 병을 정한 자리에 옮겼다. 오늘 시험대 밖으로 사고가 나가지는 않았다. 다시 만든 재료가 남았고, 깨진 유리가 있었던 범위도 정리됐다. 늘어난 비용은 원가표에 남았다. 그것을 나중에 몰래 빼면 오늘 옥순이 체를 내려놓은 이유도 사라질 것이었다.

미정은 마무리 전에 온도기록지를 펼쳤다. 보리는 이번에는 냉각이 성공했다는 줄에 먼저 눈이 갔다. 병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제품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미정은 충전온도 줄에 손가락을 놓고 각 배치 표를 맞췄다.

“이 향 표시, 어느 배치예요?”

보리가 찾았다. 향이 가장 좋았다고 남긴 배치였다. 어제부터 살리고 싶었던 복숭아 향이었고, 불을 더 세게 쓰면 잃을까 걱정했던 향이었다. 그런데 해당 충전온도는 그들이 지켜야 하는 안전기준보다 낮았다. 보리는 향 점수 옆에 완성이라는 말을 쓰려던 펜을 멈췄다.

“다시 올리면 향이 달라질 텐데요.”

“그걸 다음으로 봐야죠. 안 깨졌다는 것만으로 안전하게 보존된다는 답은 안 나왔어요.”

옥순이 냉각대의 병과 기록지를 번갈아 보았다. 보리는 버린 여덟 병을 다시 떠올렸다. 이번엔 병을 살렸지만 지켜야 할 것이 병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향이 좋은 배치 표시를 지우지 않고 그 옆에 충전온도를 다시 확인할 줄을 남겼다. 미정은 냉장 구역을 열어 시험분을 정한 대로 넣었다.

작업대가 비자 바닥의 배수구가 보였다. 보리는 걸레를 빨아 널고 칼도 국자도 아닌 펜을 마지막으로 닦았다. 꽃눈을 자르던 날에는 까만 가운데를 그대로 적는 일이 어려웠다. 오늘은 가장 좋아했던 향 옆에 부족한 온도를 적는 일이 더 어려웠다. 옥순이 원가표를 가져가도 그 기록지는 주방에 남겨 두었다.

미정이 불을 끄기 전에 보리에게 내일도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보리는 결과를 약속하지 않고 시간부터 확인했다. 시험표 맨 아래 자신의 이름을 쓰고 펜을 내려놓았다. 냉장고 안에는 갈라지지 않은 병들이 서 있었다. 그 병들로 무슨 맛을 보여 줄지는 아직 한 줄 더 고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