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범죄 케이퍼 23화

활주로 아래 19번 벨트

서로 다른 품명의 한 부품

감정실 문을 열자 고태식은 검은 가방부터 찾았다. 중앙 받침 위에는 가방이 아니라 네 구매명세가 놓여 있었다. 종이 가장자리는 각각 다른 회사의 색이었다. 센서, 밸브, 공구세트. 태식은 이제 그 이름들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다른 물건이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무게라는 이유로 같은 물건이라고 말했던 것도 아직 목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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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실 문을 열자 고태식은 검은 가방부터 찾았다. 중앙 받침 위에는 가방이 아니라 네 구매명세가 놓여 있었다. 종이 가장자리는 각각 다른 회사의 색이었다. 센서, 밸브, 공구세트. 태식은 이제 그 이름들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다른 물건이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무게라는 이유로 같은 물건이라고 말했던 것도 아직 목에 걸려 있었다.

산업부품감정인 한도윤은 명세서 끝을 접지 않았다. 모델번호 뒤를 가린 비교본을 한 장씩 펼쳤다. 가림면은 원본과 따로 준비한 것이었다. 태식이 들여다볼 수 있는 쪽에는 크기와 순중량, 제조사 범주만 남았다.

“지금 여기 실물 네 개를 놓고 비교하는 게 아닙니다.” 도윤이 말했다. “네 건에서 없어진 것이 어떤 계열인지 문서로 보는 겁니다.”

태식은 손을 무릎에 놓았다. 살아 있는 모터를 눈앞에 두고 전류표부터 보라는 말처럼 답답했다. 나경은 네 회사의 자료 제공 확인을 다시 읽고 비교본에 대응하는 청구번호를 짚었다. 어제 표본을 넘기기까지 담당자들이 몇 번이나 환수를 물었는지 그녀는 기억했다. 자료를 열어 줬다는 이유로 그들의 말을 불리하게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도윤은 네 윤곽을 투명판 위에 겹쳤다. 바깥 포장 크기는 달랐다. 접힌 날개와 완충재 때문에 생긴 차이를 걷어 내자, 안에 들어갔던 본체의 크기가 비슷하게 남았다. 그는 태식에게 판을 돌리지 말고 정면에서 보라고 했다.

“같아 보이죠?”

“이젠 그 말 하면 혼날 것 같네요.”

“눈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눈으로 보이는 차이도 적어 주세요.”

태식은 연결부가 놓이는 홈을 가리켰다. 공항 설비에 쓰는 센서와 닮았지만, 고정면의 배열이 달랐다. 도윤이 대응하는 명세의 치수를 펼쳤다. 태식은 자기가 아는 장비의 이름을 쓰려다가 펜을 멈췄다. 잘 아는 이름 하나가 모르는 네 물건을 가려 버릴 수 있었다.

순중량은 네 건 모두 십육 점 팔 킬로그램이었다. 앞서 여섯 청구에서 포장중량을 뺀 뒤 남긴 네 건이었다. 도윤은 제외된 두 건을 이 판에 다시 올리지 않았다. 네 윤곽의 치수와 그 무게가 맞는 부품 자료를 열었다. 태식은 어느 항공기의 어느 부품일까 생각하며 화면을 기다렸다.

“항공기용이 아닙니다.” 도윤이 말했다.

태식이 고개를 들었다. 공항 안에서 훔친 고가 부품이라면 비행기에 붙는 물건부터 떠올렸던 것이다. 화면에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밸브 모듈이 있었다. 항공화물로 움직이는 물건과 항공기 자체의 물건을 그는 어느새 겹쳐 놓고 있었다.

“센서라고 신고한 건요?”

나경이 보험 상세명세와 운송용 표기를 나란히 뒀다.

“외부 운송표의 포괄 품명입니다. 상세명세에는 이 계열이 적혀 있어요.”

“그럼 이름을 일부러 감춘 겁니까?”

“운송보안용 표기였어요. 지금 문서끼리 맞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태식은 센서라는 글자를 오래 봤다. 잘못 적힌 이름처럼 보이던 것이, 적게 보여 주기 위해 정해진 이름이었다. 검은 가방 태그의 숨은 번호와는 다른 종류의 숨김이었다. 겉에 모두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피해 회사가 거짓말했다고 몰아갈 수는 없었다.

도윤은 정품 확인 방법을 설명했다. 외형, 순중량, 연결부를 거친 뒤 실제 제조 일련번호가 필요했다. 같은 계열의 대체품은 시장에 있었지만 외형이 닮았다는 이유로 정품이 되지 않았다. 그는 대체품 가격 자료를 옆으로 치우고 일련번호를 확인할 담당용 목록을 따로 남겼다.

태식은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나경이 비교판을 덮는 것을 봤다.

“현장에 보내려던 겁니다. 용철도 이게 뭔지 궁금해해요.”

“설비 쪽에 필요한 범주표를 따로 드릴게요. 전체 번호는 수사팀이 봅니다.”

그는 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밤을 함께 보낸 동료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자신들이 붙들었던 가방이 막연한 이상 수하물을 넘어 여러 회사의 생산을 멈춘 물건과 닿아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용철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번호를 가진 부품을 어느 회사가 잃었느냐가 아니라 벨트를 언제 어떻게 돌렸느냐였다.

도윤은 태식 앞에 빈 의자를 당겼다. 서서 기다리는 동안 태식의 허리가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

“여기 앉으세요. 물건은 달아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달아나죠.” 태식이 답했다.

나경이 그를 봤다. 전에 그녀가 저울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태식은 의자에 앉았지만 눈은 문으로 갔다. 검은 가방이 다른 방에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멀게 느껴졌다. 네 명세가 모듈과 맞는다면 그 안을 보는 데 얼마나 더 걸릴까.

하지후가 감정실에 들어왔다. 그는 보존된 자료의 범위를 읽은 뒤 도윤에게 어떤 대조가 가능한지 물었다. 도윤은 현재 네 구매명세가 같은 산업부품 계열을 가리킨다고 답했다. 검은 가방 안의 실물은 아직 보지 않았다. 태식은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일어났다.

“크기와 무게가 맞으면 가방 안에 그 부품이 있는지 보면 끝 아닙니까?”

지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봉인은 외부 확인까지만 허용합니다. 청구 네 건을 붙여 개봉 영장부터 받겠습니다.”

“아직도 외부입니까? 가방을 보관한 지가 언젠데.”

“그동안 새로 붙인 자료가 오늘 개봉 근거가 됩니다.”

태식은 의자 등받이를 잡았다. 가방을 처음 벨트에 얹지 않은 덕에 기다릴 물건이 남았다는 것은 알았다. 이제 그 기다림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자신이 세운 격리줄을 넘어가고 싶었다. 모터 커버 같으면 볼트 네 개만 풀면 됐다. 여기는 누구 손으로 풀어도 되는 볼트가 아니었다.

나경이 태식의 손을 보았다.

“지금 가방에서 다른 게 나오면요?”

“그때 다른 걸 찾죠.”

“그동안 같은 물건이라고 말한 청구 네 건은요?”

태식은 네 명세를 돌아봤다. 그가 빨리 답을 얻고 싶은 동안, 회사들은 부품 없는 생산라인을 복구하고 있을 것이다. 가방을 열어서 찾은 것과 못 찾은 것은 모두 그들의 손실 앞에 놓일 자료였다. 누가 어떤 상태를 보았는지 흐리면 태식의 답만 흐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열겠다는 건 아닙니다.”

“알아요. 다만 오늘 아직 내용물을 확인했다고 쓰지 않을 겁니다.”

도윤은 투명판을 걷고 회사별 원본 대응표를 보관했다. 정품 번호 목록은 열람 가능한 사람에게 넘길 봉투로 옮겼다. 태식은 봉투 위 긴 빈칸을 봤다.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네 물건의 이름이 있었다. 자기 카드 번호가 자신을 대신했던 밤을 생각하자 전체 번호를 아무에게나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줄었다.

지후는 추가 압수수색 신청에 붙일 대조를 정리했다. 가방 외부의 중량, 겹친 태그, 정비시간의 재투입 흔적이 네 청구와 만나는 지점이었다. 나경은 자료를 순서대로 제공했다. 연결은 있었고 아직 내용물 확인은 없었다. 그 차이를 빈 문장으로 때우지 않고, 각각의 원본이 어디까지 말하는지 기록에 붙였다.

태식이 물었다. “오늘 오후에도 안 나면요?”

“받은 상태로 보관합니다.” 지후가 말했다.

“밤에도?”

“밤에도요.”

태식은 웃지 못했다. 검은 가방은 야근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야근하게 했다. 그는 후배에게 현재 정비 인계를 먼저 마치라고 연락했다. 답으로 자기 공구함의 빈자리가 찍힌 사진이 왔다. 후배는 대여 공구를 사용 중이었다. 태식은 조사를 빨리 끝내고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자꾸 봉인보다 시간을 먼저 보고 있었다.

나경은 회사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네 부품 계열이 좁혀졌다는 말 뒤에 현재 가방을 개봉하지 않았다는 말을 붙였다. 전화 저편에서 보험금은 그대로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녀는 현재의 손실청구와 새 수사 자료를 담당 절차대로 설명했다. 약속하지 않은 반환 날짜를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통화가 끝나자 태식이 말했다. “돈 얘기부터 하네요.”

“멈춘 공정 대신 누가 돈을 내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부품부터 돌려받고 싶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둘 다 하고 있어요. 지금 저한테 묻는 건 돈이고요.”

태식은 반박하려다가 그만뒀다. 자기 카드가 바뀌었을 때 그도 결백보다 다음 교대에 문을 열 수 있느냐부터 물었다. 남에게 가장 중요한 대답을 자신이 골라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용철에게 보낼 메시지를 다시 열었다. ‘부품 찾았다’고 미리 쓴 다섯 글자를 지웠다. 아직 찾은 것은 계열이었다. 용철은 그 메시지를 기다리며 자기 뒤 교대에게 설명할 터였다. 태식은 기다림을 줄이려고 동료에게 틀린 답을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현장에 공유할 표를 받으면 보내겠다고만 적었다.

오후가 길어졌다. 도윤은 대조에 쓰지 않은 자료를 정리했고 태식은 현장 공유용 범주표를 받았다. 제조사 범주와 크기, 순중량은 남았고 전체 일련번호는 빠져 있었다. 그는 그 표를 주머니에 넣지 않고 지정된 인계처에 넘겼다. 공구를 반납하는 일보다 낯선 동작이었다.

지후의 전화가 울렸다. 법원 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었다. 태식은 의자에서 바로 몸을 세웠다. 도윤은 닫은 봉투를 다시 열지 않고 개봉 대조에 필요한 담당과 준비물을 말했다. 공동 개봉은 다음 날이었다.

“오늘 아니군요.” 태식이 말했다.

“촬영과 제조번호 대조를 함께 준비합니다.”

태식은 도윤이 정한 순서를 들었다. 봉인번호를 먼저 읽고 개봉 전 상태를 촬영하는 사람, 내용물을 다루는 사람, 실제 제조번호를 대조할 사람이 나뉘었다. 자기에게는 가방을 열 권한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설명할 일이 생겼다.

그는 감정실을 나서며 투명판의 네 윤곽을 다시 봤다. 밸브 모듈은 아직 그림과 명세 안에 있었다. 내일 가방이 열리면 그 윤곽 안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알게 될 터였다. 태식은 그 안에 실제 부품이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 이 밤을 견딘 사람들에게 보여 줄 물건 하나가 생길 것 같았다. 그 바람을 사실이라고 적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