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2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붉은 깃발의 조업선

붉은 깃발로 조업을 멈춘 강만석과 서가람이 폐사 구역과 정상 구역을 나눠 어선별 손실 기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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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강만석은 붉은 깃발을 들고 선착장을 걸었다.

바다는 전날의 흰 껍데기를 밀물 아래 숨긴 채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선 여섯 척이 물때를 기다리며 줄에 매여 있었고, 선원들은 시동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로의 눈치만 봤다.

“동끝밭 쪽으로는 한 척도 못 나갑니다.” 만석이 말했다.

젊은 선주 이재문이 배 위에서 소리쳤다.

“동끝밭 안 갑니다. 서쪽 통발만 걷고 올 거예요.”

“물길이 이어져 있는데 네가 어떻게 장담해?”

“안 가면 외상 기름값은 계장님이 내 줍니까?”

만석이 배로 건너가려는 순간 서가람이 두 사람 사이 부두에 섰다. 밤새 군청과 연락하고 돌아온 그의 바지에는 어제 갯벌 진흙이 아직 말라붙어 있었다.

“배를 묶기 전에 통발 위치부터 봅시다.”

“어제 죽은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만석이 쏘아붙였다.

“그래서 선을 그으려는 겁니다. 바다 전체를 막았다고 써 놓으면 나중에 실제 피해 구역도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재문이 배에서 조업일지를 던지듯 건넸다.

“내 통발은 여기요. 좌표도 찍혀 있어요.”

가람은 젖은 장부를 부두 난간에 펼쳤다. 허가구역 지도 위에 재문의 통발 위치를 옮기려 했지만 연필점이 자꾸 흔들렸다. 만석이 한숨을 쉬었다.

“그 매듭부터 풀어요. 지도를 날려 먹겠네.”

가람은 바람에 들린 종이 귀퉁이를 끈으로 묶고 있었다. 매듭은 커졌는데 단단해지지 않았다.

“법률매듭은 내가 모르니 바다매듭은 나한테 맡겨요.”

만석이 끈을 받아 두 번 감고 당겼다. 지도는 난간에 납작하게 붙었다. 가람은 웃을 틈도 없이 배 이름과 통발 위치를 적었다. 동끝밭 폐사선 안쪽에 통발을 둔 배는 세 척, 물길 서쪽 바깥에 둔 배는 두 척, 어제 이미 전부 걷은 배가 한 척이었다.

“바깥이면 무조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람이 말했다. “최 박사 예비 관찰과 검사 결과를 같이 봐야 합니다.”

“그 결과 나올 때까지 굶으라고?” 재문이 물었다.

“안쪽은 잠정 금지하고, 바깥 조업물은 분리해서 검사받는 방법을 확인 중입니다.”

만석이 얼굴을 굳혔다.

“살아 있는 놈 몇 마리 봤다고 그물을 내리게 해? 하나라도 잘못 팔리면 해오름만 이름이 끝장이오.”

그때 냉동차 한 대가 부두로 들어왔다. 수산물 상인 나정미가 차에서 내려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해오름만 조개 집단 폐사’라는 제목 아래 전날 누군가 찍은 양동이 사진이 퍼지고 있었다.

“이미 주문이 다 취소됐어요. 멀쩡한 바깥쪽 낙지도 못 받겠대요. 바다 전체를 막았다는 소문이 돌아요.”

“사람 몸보다 주문이 먼저요?” 만석이 말했다.

“안전하지 않은 걸 팔자는 게 아니에요. 안전한지 확인할 길을 열자는 거지. 전부 위험하다고 해 버리면 검사할 이유도 없어져요.”

만석과 정미가 마주 섰다. 두 사람 모두 어제부터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가람은 어느 쪽을 진정시키려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군청에서 받은 임시 통제 부표를 바닥에 굴렸다.

“선을 같이 확인합시다. 어민이 실제로 나가는 곳, 폐사가 확인된 곳, 아직 모르는 곳을 나눠 표시하죠.”

“모르는 곳에 배를 보내겠다는 거요?”

“모르는 곳은 검사 전 유통하지 않는 조건을 붙이자는 겁니다. 오늘 배를 띄우는 결정은 제가 할 수 없습니다. 계장님과 선주가 안전정보를 보고 정해야 합니다.”

최다온이 시료 상자를 들고 부두로 내려왔다. 밤사이 나온 것은 현장 신속 관찰뿐이었고, 원인물질도 책임자도 확정할 수 없었다. 다만 폐사선 바깥의 비교지점에서는 살아 있는 저서생물이 확인됐고, 물의 상태도 달랐다.

“정상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정미가 물었다.

“아닙니다.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바깥에서 잡은 것도 출하 전 별도 검사가 필요합니다.”

“검사에 며칠 걸려요?” 재문이 물었다.

“검사항목에 따라 다릅니다. 오늘 채취한 결과를 제가 미리 약속할 수는 없어요.”

만석은 붉은 깃발 끝으로 배들을 가리켰다.

“그럼 결국 못 나간다는 말하고 뭐가 달라.”

다온은 대답 대신 지도 위 물길을 짚었다.

“어제 폐사가 확인된 선 안쪽은 접근과 조업을 멈추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서쪽 물길까지 같은 상태라고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그곳을 따로 채수하고, 제한적으로 올린 조업물도 구분 보관하면 다음 판단이 빨라집니다.”

“검사용으로 바다에 나가라고?”

“조업을 권하는 게 아닙니다. 나가겠다는 배가 있다면 통제선 밖에서 최소량만 올리고 다른 물량과 섞지 않는 조건을 제안하는 겁니다.”

재문이 곧장 손을 들었다.

“내가 갑니다.”

만석이 그의 장화를 걷어찰 듯 다가섰다.

“네 아버지였으면 배 밧줄부터 끊었다.”

“아버지 병원비도 제가 냅니다. 통장에 사흘치밖에 없어요.”

말이 떨어지자 만석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재문의 아버지와 삼십 년을 같은 배에서 일했다. 걱정이 명령의 모양으로 튀어나왔다는 걸 가람도 알아챘다.

“검사용 물량을 올리는 일과 생계손실을 계산하는 일은 나눕시다.” 가람이 말했다. “나가는 배만 손실이 적다고 처리해서도 안 되고, 안전 때문에 묶인 배가 조업을 안 했다고 피해가 없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는 어선별 손실대장을 새로 펼쳤다. 허가구역, 평소 통발 수, 최근 평균 어획, 오늘 걷지 못한 통발, 대체 조업 가능 여부. 예정 수입은 실제로 확정된 손실과 다른 칸에 놓았다.

재문이 물었다.

“이거 쓰면 돈 나옵니까?”

“그렇게 약속할 수 없습니다.”

만석이 혀를 찼지만 가람은 말을 이었다.

“다만 누가 어느 선 때문에 멈췄는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긴급 생계지원에도 이 자료를 붙이겠습니다.”

“원인도 안 나왔는데 군청이 받겠소?”

“받게 해야죠. 책임배상과 오늘 생활비는 같은 속도로 갈 수 없으니까.”

부표를 싣는 일은 결국 만석이 맡았다. 재문의 배는 조업선이 아니라 공동 확인선으로 등록하고, 다온과 어촌계원 한 명이 함께 탔다. 다른 배들은 선착장에 남았다. 가람도 타겠다고 했지만 만석은 장화를 가리키며 잘라 말했다.

“변호사님은 육지에서 배가 어디 갔는지 적어요. 어제 한 번 안 빠졌다고 바다사람 된 거 아니니까.”

배가 선착장을 떠나자 붉은 부표들이 갑판에서 굴렀다. 폐사선 안쪽에는 깃발이 촘촘히 세워졌고, 살아 있는 구역으로 확인된 서쪽 경계에는 노란 표식이 함께 달렸다. 멀리서 보면 작은 색 점뿐이었지만 어민들에게는 오늘 배가 돌아갈 수 있는 한계였다.

정미는 냉동차 적재함을 비우고 검사용 상자 하나를 따로 놓았다. 차량번호와 상자 봉인번호를 손실대장에 적었다. 가람은 상인들의 취소 주문도 어선 피해와 섞지 않고 별도 장부로 만들었다.

“변호사님.” 정미가 말했다. “검사에서 괜찮다고 나와도 손님이 안 사면 그건 누구 손해예요?”

“원인과 통지 방식, 실제 취소 내역을 봐야 합니다. 지금부터 다 배상된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 말 참 질리네요.”

“저도 질립니다.”

“그래도 거짓말보단 낫네.”

두 시간 뒤 확인선이 돌아왔다. 재문은 평소 조업량의 몇 분의 일도 되지 않는 상자 하나를 들고 내렸다. 서쪽 통발의 낙지는 살아 움직였고, 폐사선 가까이서 건진 해조류에는 금속처럼 번들거리는 회색 침전이 붙어 있었다.

다온이 손을 뻗는 재문을 막았다.

“맨손으로 만지지 마세요. 위치가 어디였습니까?”

재문은 항적기록을 보여 줬다. 해조류는 금지선 서쪽 바깥에서 떠밀려 왔다. 그곳이 오염됐다는 뜻인지, 안쪽에서 흘러나온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만석은 붉은 깃발을 하나 더 집었다.

“서쪽도 막아야 해.”

정미가 바로 맞섰다.

“떠밀려온 풀 한 장 때문에 또 전부요?”

“그 한 장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잖아.”

가람은 둘 사이에서 해조류 상자를 바라봤다. 어제는 살아 있는 칠게 한 마리가 비교 지점을 열었다. 오늘은 회색 침전이 붙은 해조류 한 장이 그 선을 다시 흔들었다. 증거는 답을 주기보다 다음 결정을 더 비싸게 만들고 있었다.

“부표를 움직이기 전에 이 지점만 임시 경고로 표시합시다.” 다온이 말했다. “같은 물길을 따라 추가 채수하고, 검사용 물량은 결과 전까지 봉인합니다.”

재문이 물었다.

“그럼 오늘 번 돈은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살아 있는 낙지가 상자 안에서 물을 튀겼다. 잡았지만 팔 수 없는 물량이었다.

가람은 손실대장에 새 칸을 만들었다. ‘검사 대기 물량.’ 그리고 재문의 배 이름 옆에 출항시간, 통제선, 최소 채취량을 적었다.

“오늘은 수입으로 계산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폐사량에도 넣지 않겠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태를 그대로 남기죠.”

만석은 한참 후 붉은 깃발을 내려놓았다.

“내일 군청부터 갑시다. 배 묶은 사람한테 기다리라는 말만 하면 창구를 뒤집어엎을 테니까.”

“뒤집기 전에 접수번호부터 받죠.” 가람이 말했다.

“법률매듭은 단단합니까?”

“오늘 바다매듭보다는 자신 있습니다.”

만석이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나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회색 침전이 붙은 해조류가 투명한 시료봉투 안에서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날 선착장에는 세 종류의 배가 남았다. 금지선 안쪽이라 묶인 배, 바깥쪽이지만 검사를 기다리는 배, 그리고 어디에 통발이 있는지 기록조차 불분명해 출항을 정하지 못한 배. 가람은 어느 것도 같은 손해라고 뭉뚱그리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 군청에서 전화가 왔다. 긴급 생계지원 신청서에는 원인물질과 책임자를 적는 칸이 비어 있으면 접수하기 어렵다는 답이었다.

가람이 그 말을 전하자 만석은 젖은 조업일지를 겨드랑이에 끼었다.

“좋소. 내일은 빈칸이 왜 우리 밥값보다 중요한지 물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