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음악 고딕 미스터리 2화

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바늘이 지나간 자리

한이솔이 72번 봉투 속 원반을 처음 재생해 음악 대신 정체 모를 47초의 소리를 듣고 원본을 다시 봉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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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원반은 밤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한이솔은 출근하는 내내 그 침묵을 들었다.

화영시 공공음원복원실은 폐쇄 방송국에서 차로 이십 분 떨어진 옛 전화국 건물에 있었다. 창문이 없는 복도 끝, 이중문 안쪽에 저압 재생 작업대와 차폐 청음부스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솔이 도착했을 때 보존가 최노을은 이미 온습도 기록지를 펼쳐 놓고 있었다.

“봉인은 여덟 시 십이 분에 도착했습니다. 충격감지 스티커 변화 없고, 외부 온도에서 적응시킨 지 한 시간 사십 분 됐어요.”

민혜주는 유리창 밖에서 서류가방을 껴안고 있었다. 밤새 늘어난 인수 보고서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오늘 오전에 결론 낼 수 있죠?” 혜주가 물었다. “무음인지, 자료인지. 철거팀이 어제 격리한 선반 칸을 언제 풀 수 있느냐고 계속 전화해요.”

이솔은 대답 대신 봉인번호를 읽었다. 노을이 인수표와 대조한 뒤 촬영을 시작했다. 테이프를 자르고 두 장의 지지판을 벌리자 회색 봉투가 드러났다. 바깥에는 72, 접힌 안쪽에는 푸른 07. 어제와 같은 번호였다.

“어젯밤 사이에 바뀐 것은 없습니다.” 노을이 말했다.

“오늘 바뀌게 될 겁니다.” 이솔은 니트릴 장갑을 새것으로 갈아 꼈다. “바늘이 닿으면요.”

래커 원반은 셸락보다 약했다. 알루미늄 바탕 위에 칠한 검은 표면은 마르면서 갈라지고, 맞지 않는 스타일러스를 쓰면 홈의 가장자리가 눈에 보이지 않게 깎였다. 첫 재생이 정보를 얻는 행위인 동시에 손상을 만드는 행위였다.

노을이 확대 카메라로 홈 세 군데를 비췄다. 바깥쪽은 비교적 매끈했지만 중간 구간에는 과거 바늘이 지나간 희미한 광택이 있었다.

“누군가 재생은 했네요.” 혜주가 말했다.

“한 번인지 백 번인지는 아직 몰라요.” 이솔이 말했다. “마모 방향만 보겠습니다.”

그는 복원실에 있는 서로 다른 끝 모양의 스타일러스를 꺼냈다. 실제 소리를 듣기 전에 런아웃 가장자리의 짧은 비정보 구간에서 접촉 폭을 현미경으로 비교했다. 하나는 홈 바닥의 이물질에 너무 가까웠고 다른 하나는 마모된 위쪽 벽을 탔다. 이 원반을 관찰한 범위에서는 가운데 규격만 기존 상처 사이의 비교적 깨끗한 면에 닿았다.

“세 번이나 닿았잖아요.” 혜주가 조급하게 말했다.

노을이 고개를 저었다. “재생 세 번이 아닙니다. 아주 짧게 닿은 자리마다 위치와 시간을 기록했어요. 본 구간은 아직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솔은 혜주를 탓하지 않았다. 기록관리사에게 바늘은 바늘이고 원반은 원반이었다. 대신 작업대 위 카메라 화면을 돌려 보여 주었다.

“이 원반에서는 맞지 않는 바늘로 곧장 듣는 쪽이 더 큰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닿은 자리와 시간을 먼저 기록한 겁니다.”

“그럼 얼마나 들을 겁니까?”

“목록에 길이가 없으니 우선 사십칠 초. 어제 봉투 접힘에서 나온 07과 납품 묶음의 편집표를 대조했더니 빈 구간 표시가 사십칠 초였습니다.”

혜주의 시선이 원반으로 떨어졌다. “사십칠 초 뒤에 음악이 나오면요?”

“오늘은 멈춥니다. 첫 캡처를 분석하고 다음 결정을 하죠.”

노을은 기준잡음 캡처를 먼저 시작했다. 턴테이블 전원은 켜되 바늘을 들고, 방의 공조기와 프리앰프가 만드는 소리를 삼십 초 받았다. 이어 턴테이블 모터만 회전시킨 신호를 받았다. 두 파일에 장비 번호와 시각을 붙였다.

“이걸 왜 따로 녹음해요?” 혜주가 물었다.

“원반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나왔을 때 이 방의 모터인지 스물여덟 해 전 방의 모터인지 구별하려고요.”

이솔은 어제 폐쇄 방송국 수장고에서 녹음한 십 초도 별도 폴더에 넣었다. 같은 건물의 현재 소리 역시 과거와 같다고 가정할 수 없었다. 벽, 기계, 전력 주파수, 어느 것도 기억처럼 그대로 있지 않았다.

재생 준비가 끝나자 세 사람은 청음부스로 들어갔다. 원반은 유리창 너머 작업대에 있었고, 노을이 바늘을 내릴 준비를 했다. 이솔은 헤드폰 한쪽을 벗어 둔 채 파형 화면을 보았다. 양쪽 귀를 모두 막으면 방에서 새로 생긴 소리를 놓칠 수 있었다.

“원시 파일 시작.” 노을이 말했다.

바늘이 내려갔다.

처음 들린 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마른 비가 창문에 닿는 듯한 사각거림이었다. 홈의 바닥잡음이 일정하게 흘렀다. 이솔은 재생속도를 바꾸지 않고 입력 레벨에도 손대지 않았다.

십 초.

파형에는 완전한 평선이 아니라 가느다란 털 같은 진폭이 이어졌다.

십칠 초쯤, 왼쪽 채널에 아주 낮은 마찰음이 나타났다. 가죽 표면에 체중이 실릴 때 나는 짧은 삐걱임과 비슷했다. 이솔이 화면에 표식을 찍었다.

이십삼 초에는 멀리서 금속이 떨렸다. 한 번 울리고 끝나는 종이 아니라, 회전하는 기계가 균일하게 바닥을 긁는 소리였다.

삼십일 초.

낮은 진동이 파형 위로 올라왔다. 사람의 숨이라면 길이가 조금씩 달라야 했다. 그러나 진동은 같은 간격으로 세 번 반복됐다. 웅, 끊김, 웅, 끊김.

혜주가 입술로 물었다. “들었어요?”

이솔은 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하라는 신호만 보냈다.

사십이 초에는 누군가 숨을 삼킨 것 같은 짧은 공기 소리가 있었다. 사십칠 초가 되는 순간 노을이 리프트를 올렸다. 바늘이 홈에서 떨어졌고 턴테이블만 계속 돌았다.

방 안에 남은 침묵은 재생 전과 달랐다.

“끝?” 혜주가 물었다.

“약속한 구간은요.” 노을이 대답했다.

혜주는 유리 너머 원반을 보았다. “저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음악이라고 안 했습니다.” 이솔은 헤드폰을 벗었다. “녹음이라고 했죠.”

“아무도 저걸 들으려고 돈을 내지는 않을 텐데요.”

“가치는 강태오 씨가 계산할 일이고, 존재는 우리가 확인할 일입니다.”

혜주는 서류가방에서 인수 목록을 꺼냈다. “목록 분류를 비음악 음원으로 바꾸면 됩니까?”

“아직 바꾸지 마세요. 원시 파일의 해시와 장비잡음을 먼저 봉인합니다.”

노을이 원반을 다시 돌리려 하자 이솔이 손을 들었다. “재생 안 합니다.”

“저도 멈추려던 거예요.” 노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다시 듣자는 말을 먼저 할까 봐 말하는데, 지금 표면에 새로 생긴 광택을 확인해야 합니다.”

두 사람은 작업대 현미경으로 방금 바늘이 지난 시작점과 종료점을 촬영했다. 시작점 바깥에는 얇은 회색 가루가 생겼지만 홈벽의 깨짐은 보이지 않았다. 노을은 가루를 털지 않고 위치만 표시했다.

“한 번 더 돌리면 같은 만큼 나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가 말했다. “다음 청음은 이 파일로 하세요.”

혜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파형을 키우고 잡음을 지우면 말소리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이솔은 복원 프로그램을 열었다. 화면 오른쪽에는 노이즈 제거 손잡이가 있었다. 평소라면 기준잡음을 표본으로 잡아 반복 성분을 깎았을 것이다. 그러나 삼십일 초의 진동이 바로 그 반복 성분이었다. 성급히 지우면 오래전 방의 기계까지 현재 장비 소음으로 오인해 없애 버릴 수 있었다.

“지금은 안 지웁니다.”

“복원실인데요?”

“복원은 듣기 좋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무엇을 지웠는지 되돌릴 수 있게 만드는 일이에요.”

이솔은 원시 캡처, 현재 장비 기준잡음, 폐쇄 방송국 현재 환경음 세 파일을 각각 읽기 전용 저장소에 복사했다. 파일명에는 날짜와 재생 횟수 01을 넣었다. 편집용 사본은 따로 만들되 아무 필터도 걸지 않았다.

노을은 기존 봉투 안쪽 푸른 07이 눌리지 않게 지지지를 덧대고 원반을 다시 넣었다. 새 봉인번호가 붙었다. 이솔과 노을이 각각 서명했고, 혜주는 인수 연장 사유 칸에 ‘사십칠 초 실재 녹음 확인, 추가 재생 보류’라고 썼다.

그 문장을 다 쓰고도 혜주는 펜을 놓지 못했다.

“제가 어제 기타 미상으로 넣었으면 이 소리도 없어지는 거였네요.”

“소리는 있었겠죠.” 이솔이 말했다. “우리가 없다고 적었을 뿐.”

정오 가까이 강태오가 복원실로 왔다. 그는 헤드폰을 쓰기 전에 손실평가표부터 꺼냈다.

“결론은 무음입니까?”

“완전한 무음이 아닙니다. 사십칠 초 동안 방의 소리가 녹음돼 있습니다.”

“연주는요?”

“현재 캡처에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태오는 안도한 듯도, 실망한 듯도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가치가 없다는 쪽에 가깝군요.”

이솔은 사십칠 초 파형을 띄웠다. “삼십일 초를 보세요.”

규칙적인 낮은 진동이 세 번 솟아 있었다. 현재 복원실 모터 파형과 주기가 달랐다. 폐쇄 방송국 수장고의 현재 진동과도 달랐다.

“과거 녹음실 안에 돌아가던 기계입니다. 어느 방인지 찾으면 녹음 장소를 좁힐 수 있어요.”

태오는 파형보다 서류의 숫자를 오래 보았다. “장소가 달라지면 평가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슨 평가서요?”

“기증 당시 부속표입니다. 7번 트랙만 별도 금액이 붙어 있습니다.”

혜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제는 감정 부속표를 더 봐야 한다고만 하셨잖아요.”

태오는 서류를 덮지 않았다. “그때는 실물이 7번인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볼 이유가 생겼죠.”

이솔은 봉인된 원반을 한 번 보았다. 바늘은 이미 한 번 지나갔고 다시 지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다음에 열어야 할 홈은 검은 래커가 아니라 누군가 붉은 선을 그어 둔 문서였다.

“오늘 오후에 부속표를 봅시다.”

태오가 먼저 문 쪽으로 걸었다. 혜주는 철거팀에 선반 격리를 하루 더 유지하겠다는 전화를 걸었다. 노을은 재생대 덮개를 씌우며 중얼거렸다.

“삼십일 초 소리, 공조기 같지는 않아요.”

“나도요.”

“그럼 뭡니까?”

이솔은 편집용 사본에서 그 구간을 확대했다. 일정한 진동 밑에 아주 가는 금속성 떨림이 붙어 있었다. 오래된 피아노 페달의 스프링일 수도, 테이프 기계의 캡스턴일 수도 있었다.

“지금 이름 붙이면 그 소리만 찾게 됩니다.”

그는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화면 위의 사십칠 초는 멈춰 있었지만, 삼십일 초의 낮은 진동은 눈으로도 계속 울리는 것 같았다.

빈 트랙에 사람이 없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의자 같은 물건이 삐걱였고, 기계로 짐작되는 진동이 돌았으며, 마흔두 번째 초에는 누군가 숨을 삼킨 듯한 소리가 남아 있었다.

이솔은 노이즈 제거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지워야 할 잡음과 지워진 사람 사이의 거리는 아직 한 칸도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