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매듭의 방향
주황색 줄의 매듭을 조사한 강해솔이 위험한 잠수에서 돌아와 정우찬과 보급품 인수 기록의 의문을 좇는다.
해솔은 잠수복 목둘레에 끼어 있던 소금을 손톱으로 떼었다.
마르면 떨어질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자꾸 뜯었다. 눈을 감으면 화물창 손잡이에 매달린 종이 떠올랐다. 금속음에 맞춰 열렸다 닫히던 기대도 함께였다. 물속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을 때는 돌아오는 길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 뒤에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만 뜯어. 목까지 벗겨지겠다.”
잠수감독이 종이컵을 놓았다. 해솔은 손을 내렸다. 컵 안의 물은 따뜻했다.
“종은 이번 팀이 볼 겁니까?”
“그건 내가 정해. 너는 상태부터 말하고.”
감독은 물컵을 다 비울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해솔은 아픈 곳이 없다고 말하려다가 말을 바꿨다.
“들어가면 또 사람부터 찾을 것 같습니다.”
“그건 맞는 일이야.”
“그러다가 돌아오라는 말을 늦게 들을까 봐요.”
감독이 의자를 끌어 앉았다. 갑판 위에서 누군가 젖은 장비를 옮기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장비통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만 잠시 오갔다.
“그 말을 안 하고 들어가는 게 더 나빠.”
그는 다음 교대의 계획을 폈다. 수중에서 할 일은 이전보다 줄어 있었다. 선체 밖의 접근 가능한 구역을 확인하고, 종이 묶인 부분을 촬영한다. 안쪽으로 들어가겠다는 항목은 없었다. 해솔은 지도 가장자리의 검은 선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종을 못 가져와도 돌아옵니다.”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물속에서도 기억해.”
***
대기 끝에 허락된 수면은 여전히 잔잔하지 않았다.
잠수팀이 다시 내려가는 동안 지휘선에서는 다음 수색 위치를 부르는 무전이 끊이지 않았다. 해솔은 그 소리를 뒤로 남겨 두었다. 물속에서 세계는 헬멧등이 닿는 만큼으로 줄었다.
손잡이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보았을 때와 똑같았다. 청람호가 가라앉기 전에도 저 모양이었을 것이다. 해솔은 엉뚱하게도 배가 떠 있을 때 그 손잡이를 잡았던 사람의 손을 떠올렸다. 더러워진 작업장갑, 젖은 맨손, 잠깐 어깨를 기대고 담배를 물던 누군가.
지금 손잡이를 붙든 것은 주황색 줄이었다.
종은 그 아래에 있었다. 선체가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추가 벽을 건드렸다. 헬멧 안으로 들어오는 금속음은 멀리서 들었을 때보다 작았다. 이 소리를 듣고도 누군가는 한동안 살아 있다고 믿을 것이다. 해솔은 그 사실 때문에 종을 탓하고 싶었다.
하지만 종은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
“매듭 확인 중.”
해솔은 몸을 가까이 밀어 넣지 않고 촬영 각도를 바꿨다. 동료의 빛이 반대편에서 손잡이를 비췄다. 줄은 두 번 감겨 있었다. 끝이 결속 안쪽으로 접혀 있어, 떠다니던 줄이 우연히 걸렸다고 보기에는 모양이 지나치게 모여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 묶었는지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합의해 둔 범위 안에서 느슨하게 늘어진 끝부분만 표본으로 분리했다. 하중이 걸린 결속은 남겨 두었다. 동료가 보관 용기를 확인하자 해솔은 잘린 끝과 남은 줄이 한 화면에 들어오게 카메라를 돌렸다.
바로 그때 바닥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해솔은 종을 보던 눈을 내렸다. 화물창 문틈에서 검은 틈이 조금 넓어졌다. 문 자체가 열린 것인지, 문을 누른 것이 움직인 것인지 구분하기도 전에 어깨의 선이 팽팽해졌다.
몸이 옆으로 당겨졌다.
“정지.”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해솔은 바로 알지 못했다. 자신의 것일 수도 있었다. 시야 한가운데로 부유물이 터져 나왔다. 손잡이도 종도 사라졌다.
몸은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데 손은 손잡이를 찾으려 했다. 무엇이든 붙들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감독과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못 가져와도 돌아온다.
해솔은 손을 거두고 상태를 알렸다. 동료의 불빛이 탁한 물 너머에서 짧게 움직였다. 선이 걸린 위치를 확인하는 동안 헬멧 안에서는 호흡 소리만 커졌다. 해솔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도움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당김이 풀렸을 때에도 곧장 움직이지 못했다.
“귀환한다.”
이번에는 감독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해솔은 응답했다. 두 번째 부름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종은 가져오지 못했다. 잘린 표본은 보관 용기 안에 있었고, 남은 결속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이면 된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물속의 어둠은 자꾸 자신이 놓고 가는 것들을 세게 했다.
갑판으로 돌아와 장비를 벗었을 때, 해솔은 자기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
정우찬은 젖은 줄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인계대 건너편에서 해경 담당자가 용기를 확인하는 동안 기다렸다. 해솔은 질문을 받을 줄 알고 턱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우찬이 먼저 물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따뜻한 곳으로 가도 됩니까?”
“누가요?”
“저 말고, 강해솔 씨가요.”
해솔은 잠수감독을 보았다. 감독이 턱으로 선실을 가리켰다. 해솔은 얼굴을 찌푸린 채 걸었지만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장갑을 닦기 시작한 것은 선실에 들어와서였다. 이미 다른 장비와 구분해 둔 개인 장갑이었다. 손가락 사이의 바닷물을 마른 천으로 밀어 내고, 뒤집고, 다시 닦았다. 같은 곳을 세 번째 문지르고 있을 때 우찬이 문을 두드렸다.
“영상으로 봤습니다.”
“잘 안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해솔은 천을 놓았다.
“사람이 묶은 모양이었어요.”
“언제인지도 보였습니까?”
“그건 안 보이죠.”
대답이 날카로워졌다. 우찬은 반박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 종이 두 장을 놓았다. 하나는 수중 영상에서 뽑은 손잡이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선사 측에서 보낸 짧은 의견이었다.
해솔은 첫 줄만 읽고 종이를 밀었다.
“어망이 감긴 거라고요?”
“그쪽 주장은 그렇습니다.”
“직접 내려가 보라고 하세요.”
“안 내려가 봤으니까 반박할 자료가 필요한 겁니다.”
해솔은 바닥을 보았다. 화물창이 흔들릴 때 어깨에 걸렸던 힘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순간을 겪고 돌아왔는데, 종이 한 장은 그 일을 ‘우연한 접촉’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찬이 사진을 다시 해솔 쪽으로 옮겼다.
“저도 저 문장을 믿어서 가져온 건 아닙니다.”
“그럼 뭘 믿는데요?”
“아직은 그 줄이 저 손잡이에 있었다는 것요.”
그 말은 작아서 화를 낼 곳이 없었다. 해솔은 사진 가장자리를 눌렀다.
“끝이 이쪽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당기는 쪽을 알고 묶은 것 같았어요.”
우찬은 그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해솔은 그제야 어깨에서 힘을 조금 뺐다. 우찬의 눈은 자신의 떨리는 손이 아니라 사진 속 매듭을 따라가고 있었다.
***
문재필에게 사진을 보여 준 것은 의료진에게 짧은 통화가 가능한지 확인한 뒤였다.
화면 속 재필은 환자복 어깨가 한쪽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누가 옷을 바로 입히려 하자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그 손이 사진을 보는 순간 멈췄다.
“우리 식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화면보다 늦게 왔다.
“갑판에서 줄 끝을 저쪽으로 넣지 않아요. 풀 때—”
재필은 말을 끊었다. 해솔이 다음 말을 기다리자 우찬이 먼저 물었다.
“갑판부에서 직접 보신 방식 말씀이지요?”
“내가 그 배를 몇 년을 탔는데.”
“기관실이나 화물 쪽에서도 모두 같았습니까?”
재필은 화면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배를 오래 탔다는 말과 배의 모든 곳을 안다는 말은 다르다는 것을, 해솔도 바다에 처음 나가던 해에 배웠다. 그러나 지금 재필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는 일은 사람을 구하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모르시면 모른다고 하셔도 됩니다.”
해솔이 말했다.
재필이 다시 화면을 보았다.
“기관장은 따로 썼습니다. 보급창 열쇠도 그 사람이 갖고 있었고.”
우찬은 더 묻지 않았다. 재필의 눈이 감겼기 때문이었다. 통화가 끝나기 직전, 낮은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그 종이 사람을 못 살렸군요.”
해솔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우찬이 화면을 끈 뒤에도 두 사람은 탁자 앞에 서 있었다. 해솔은 종을 구조 신호로 믿었던 자신과, 종이 사람을 살렸기를 바라는 재필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손잡이 주변을 더 봐야겠습니다.”
“오늘 다시 들어가겠다는 뜻은 아니죠?”
“계획에 올리겠다는 뜻입니다.”
우찬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솔은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안도한 얼굴을 너무 크게 보이지 않아서였다.
저녁이 가까워져서야 보급품 목록이 왔다.
주황색 합성섬유 로프, 여섯 타래. 구명벌에서 확인한 줄은 파란색이었다. 같은 배의 줄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용도로 쓰이지는 않았다는 말이었다. 우찬은 화면의 품목명을 확대했다가 인수 확인란으로 옮겼다.
“재필 씨가 말한 기관장 이름입니다.”
해솔은 글씨를 보았다. 삐침 하나가 유난히 길었다.
우찬은 다른 날의 작업일지를 나란히 열었다. 이름은 같았지만 끝 글자가 돌아가는 모양은 달랐다. 해솔은 제 서명도 배 위에서는 달라진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우찬이 먼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배가 흔들렸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대신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없는 겁니까?”
“대신 받았으면 누가 받았는지 알아야죠.”
우찬은 이름 옆에 붙은 작은 인수 시각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해솔의 눈에는 줄을 묶은 사람의 손보다 먼저, 그 종이 위에 이름을 적던 손이 떠올랐다.
바다 밑에서 끝난 줄 알았던 매듭이 육지의 책상까지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