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1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썰물에 남은 흰 껍데기

집단 폐사한 갯벌에 도착한 서가람이 어민들과 함께 사라지기 쉬운 증거를 보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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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흰 선이 남았다.

서가람은 처음에 소금 자국인 줄 알았다. 해오름만 동쪽 갯벌을 가로질러, 방파제 아래에서 공동어장 표지 말뚝까지 휘어지는 긴 띠였다. 장화를 신고 가까이 내려가자 선을 이루는 것이 바지락 껍데기라는 걸 알았다. 벌어진 껍데기 사이로 갯지렁이가 말라붙어 있었고, 어린 게 한 마리가 다리를 접은 채 진흙 위에 놓여 있었다.

강만석은 한참 먼저 갯벌에 나와 있었다. 어촌계장이라고 적힌 주황색 조끼 위에 낡은 우비를 걸치고, 삽자루로 사람들의 길을 막고 있었다.

“거기 밟지 마시오.”

가람은 들었던 발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지금은 아무 데도 가지 마요.”

만석은 대답 대신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가람은 서울에서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공익소송센터로 온 짧은 연락에는 ‘공동어장 집단 폐사, 공장 오염 의심, 증거보전 급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밤새 준비한 서류 가방은 묵직했지만 갯벌 앞에서는 어느 종이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

어민들이 방파제 위에 모여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죽은 바지락을 양동이에 퍼 담고 있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켠 채 공장 굴뚝 쪽을 찍었다. 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왔고 물비린내 사이로 낯선 쇠 냄새가 섞인 듯했다. 가람은 냄새를 맡고도 메모하지 않았다. 그가 맡은 냄새가 원인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 맞소?” 만석이 물었다.

“서가람입니다.”

“그럼 저걸 뭐라고 부를 거요?”

가람은 흰 띠를 보았다. ‘피해 현장’이나 ‘오염 추정 구역’ 같은 말이 입안에 떠올랐다.

“먼저 어장 이름부터 알려 주십시오.”

만석의 굳은 얼굴이 아주 조금 풀렸다.

“동끝밭이오. 우리끼리는 그렇게 불러요. 지도에는 3구역이라고 돼 있고.”

가람은 수첩 첫 줄에 ‘동끝밭(공동어장 3구역)’이라고 적었다.

“저 흰 띠가 어제까지 우리 밥상이었습니다.” 만석이 말했다. “공장 이름을 걸기 전에 사라진 양부터 제대로 세 줘요. 기자가 와서 죽은 것만 한 자루 가져가고 끝내면 우리는 또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니까.”

가람은 양동이를 들고 있던 사람에게 다가가 멈춰 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담은 것을 버리라는 말도, 더 담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가져갔는지부터 적자고 했다. 어민 한 사람이 코웃음을 쳤다.

“그거 적는 동안 물 들어오면 다 떠내려가요.”

“그래서 지금 보이는 범위와 시각부터 남기자는 겁니다.”

“우리 사진이 증거가 됩니까?”

“어떤 판단이 나올지는 제가 여기서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중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오늘의 위치와 상태를 다시 설명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장담할 수 없다’는 말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가람도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변호사를 불렀는데 변호사가 할 수 없다는 말부터 하면, 돈 없는 사람들은 또 기다리라는 뜻으로 들었다. 그는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제가 동쪽 끝에서 전체를 찍겠습니다. 만석 계장님은 평소 경계를 알려 주세요. 채취는 전문가가 올 때까지 최소한으로 하고, 이미 가져간 건 사람 이름과 위치를 붙여 따로 둡시다.”

“전문가는 언제 옵니까?”

“최다온 박사가 오는 중입니다. 한 시간쯤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 한 시간에 물이 차오른다니까.”

만석은 삽자루를 내던지듯 진흙에 꽂았다. 가람은 그의 화를 설득으로 누르지 않았다. 대신 방파제 벽에 남은 지난 만조 자국과 현재 물끝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계장님이 길을 정해 주세요. 제가 뒤에서 같은 방향으로 사진을 남기겠습니다. 누구든 먼저 밟은 자국 위로만 움직이고요.”

만석은 가람의 새 장화를 내려다봤다.

“빠지면 손 안 잡아 줍니다.”

“그건 곤란합니다. 오늘 제가 가장 비싼 건 서류 가방이라서요.”

방파제 위에서 누군가 피식 웃었다. 만석은 웃지 않았지만 삽자루로 진흙 위에 길을 그었다.

두 사람은 한 줄로 갯벌에 들어갔다. 만석이 먼저 발을 디디고, 가람은 같은 장화 자국에 발을 넣었다. 첫 폐사지점에는 붉은 깃발을 꽂았다. 가람은 깃발과 방파제 모서리, 멀리 보이는 표지 말뚝이 한 화면에 들어오게 찍었다. 두 번째 지점에서는 죽은 갯지렁이가 훨씬 많았고, 세 번째 지점에는 바지락 껍데기가 한쪽 방향으로 몰려 있었다.

“조류가 밀어 놓은 걸 수도 있겠군요.” 가람이 말했다.

“살아 있던 놈들이 한꺼번에 줄 맞춰 죽었다는 말보다야 낫겠지.”

“둘 다 지금은 가능성으로 적겠습니다.”

만석은 공장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만 건너편 해림합금의 굴뚝에서는 흰 김이 일정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사흘 전 밤에 저쪽 물빛이 달랐어요. 회색 거품도 봤고.”

“사진이 있습니까?”

“없소. 새벽에 그물 걷느라 손이 비어야 찍지.”

“본 시각과 위치를 적어 주세요. 사진이 없다고 못 본 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본 것과 짐작한 원인은 나눠 적죠.”

“법은 맨날 사람 말을 반으로 가르는군.”

“나중에 누가 계장님 말을 제 편한 쪽으로 합치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다.”

만석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가람에게서 수첩을 받아 날짜와 시각을 적었다. 손가락 마디에 밴 검은 진흙이 종이 가장자리에 묻었다.

방파제로 돌아오자 갈등은 이미 시작돼 있었다. 공장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어민들과 마주 서 있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온 노동자였다. 그는 죽은 조개를 보며 얼굴이 질려 있었지만, 누군가 ‘해림합금이 다 죽였다’고 외치자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증거도 없이 공장부터 세우면 우리 월급은 누가 줍니까? 여기 어민만 주민입니까?”

“당신들 월급 때문에 우리가 독 든 바다에 배를 띄우라고?”

한 여자가 양동이를 바닥에 놓았다. 껍데기들이 부딪치며 마른 소리를 냈다.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사람들 틈에서 울먹였다.

“우리 아들도 이 바다에서 컸어요. 공장 편이라서 죽은 조개를 안 무서워하는 줄 알아?”

만석이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가람이 팔을 뻗어 막지 않고 먼저 양동이 곁에 섰다.

“오늘 여기서 회사 책임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민들의 시선이 차갑게 꽂혔다. 가람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업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어느 회사 이름을 현수막에 먼저 쓰느냐가 아니라, 이 상태를 누가 언제 확인했고 무엇을 가져갔는지 남기는 일입니다. 공장에도 같은 시각에 현장 확인을 통지하겠습니다.”

작업복 남자가 물었다.

“그럼 공장 안 나오면요?”

“안 나왔다는 사실도 남습니다.”

“나오면 우리가 범인이라는 뜻으로 쓰겠죠.”

“아닙니다. 참여했다는 것과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통지문에도 그렇게 쓰겠습니다.”

가람은 휴대전화 화면에 문장을 적어 만석과 작업복 남자에게 함께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은 같은 화면을 보면서도 서로에게서 최대한 멀리 섰다. 합의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했다. 그러나 만석은 ‘공동어장 임시 출입 통제’라는 문구에 고개를 끄덕였고, 노동자는 ‘원인 미확정’이라는 말을 지우지 말라고 했다.

최다온이 도착했을 때 물끝은 붉은 깃발 가까이 들어와 있었다. 그는 서둘러 갯벌에 뛰어들지 않았다. 가람이 찍은 사진과 만석이 그린 길부터 확인하고, 채취병마다 지점을 구분했다. 어민 두 사람과 공장 측에서 나온 안전담당자 한 사람이 방파제 위에서 과정을 지켜봤다.

“이 냄새면 금속 오염 아닙니까?” 누군가 물었다.

다온은 병마개를 닫으며 말했다.

“냄새만으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나온 결과만으로 배출 지점을 바로 정할 수도 없고요. 정상 구역과 비교해야 합니다.”

만석이 씁쓸하게 웃었다.

“박사도 변호사랑 똑같이 모른다는 말부터 하네.”

“대신 무엇을 더 보면 되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온은 갯벌 지도를 펼쳤다. 폐사한 세 구역 바깥, 물길이 갈라지는 서쪽과 북쪽에 빈 원을 그렸다. 가람은 시료병을 건드리지 않고 각 병의 표식과 채취 시각을 사진으로 남겼다. 어민들은 그동안 오늘 나가지 못한 배, 걷지 못한 망, 이미 받은 주문을 종이에 적었다. 예정한 수확량과 실제 확인한 폐사량은 다른 칸에 썼다. 아직 손해액도 원인도 확정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살아온 하루가 빈칸으로 사라지지는 않게 했다.

오후가 되자 물이 갯벌을 덮었다. 사람들은 방파제 위로 올라와 젖은 장화를 씻었다. 만석은 수도꼭지 앞에서 가람에게 물었다.

“그래서 소송이 됩니까?”

가람은 진흙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를 보았다.

“아직 모릅니다.”

“또 그 말이오?”

“하지만 오늘 일을 없던 일로 만들기는 전보다 어려워졌습니다. 그다음은 시료 결과와 기록을 같이 보고 정하죠.”

만석은 수건으로 손을 닦다가 멈췄다.

“내일 바깥밭까지 막으면 배 세 척은 바로 돈줄이 끊겨요.”

“바다 전체를 한꺼번에 닫지 않으려면 정상인 곳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다온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그는 폐사선 바깥의 마른 둔덕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가람과 만석이 다시 장화를 신고 내려가자, 다온은 진흙 표면을 가리켰다.

작고 둥근 구멍들이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한 구멍 가장자리의 모래가 막 밀려나더니 칠게 한 마리가 집게를 내밀었다. 녀석은 세 사람의 그림자를 느끼고 재빨리 안으로 숨었다.

죽은 갯벌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살아 있는 구역이 남아 있었다.

만석이 붉은 깃발 하나를 건넸다.

“여긴 죽은 자리 표시가 아니오.”

가람은 깃발을 받아 구멍에서 멀찍이 꽂았다.

“압니다. 처음 비교할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