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 다섯 센티
멈춘 바퀴의 베어링
재활 중인 소라온이 컬링장의 고장 난 경기용 휠체어와 멈춰 선 선수의 사정을 마주한다.
소라온은 멈추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 중이었다.
그날 재활치료사는 내리막에서 림을 한꺼번에 움켜쥐지 말고 라온이 연습한 방식으로 속도를 나눠 줄이라고 했다. 라온은 양손을 번갈아 대며 바퀴를 잘게 죽였다. 반 바퀴 돌 때마다 손을 떼고, 다시 잡고, 또 놓았다. 조금만 급해져도 손바닥이 뜨거워지고 어깨가 굳었다. 사고 전에는 빨간불 앞에서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두 손가락으로 당기기만 하면 됐다.
시립재활체육관 1층 경사로가 공사 중이라 지하 통로를 이용하라는 종이가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었다. 라온은 화살표를 따라갔다. 소독약 냄새가 옅어지고 찬 공기가 발등을 훑었다. 바닥에는 물기 없는 고무 매트가 깔려 있었고, 복도 끝 철문 위에 ‘컬링장’이라는 파란 글자가 보였다.
잘못 왔다고 깨달은 순간, 철문 안쪽에서 금속이 일정하게 우는 소리가 났다.
드르륵, 드르륵, 뚝.
라온은 손을 림에서 뗐다. 다시 소리가 났다. 바퀴가 도는 동안은 긁히고, 멈추기 직전에 한 번 걸렸다. 체인이 느슨한 소리도, 축이 휜 소리도 아니었다. 그는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작업대 위에 경기용 휠체어 한 대가 옆으로 눕혀져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앞바퀴를 돌렸다 놓으며 욕을 삼켰다. 의자 옆에서는 체격이 큰 선수가 팔짱을 낀 채 전광시계를 보고 있었다.
“예비 의자는요?” 선수가 물었다.
“규격 맞는 건 서부체육관에 있습니다. 가져오면 오후 훈련은 끝이에요.”
남자가 다시 캐스터 축을 조였다. 바퀴는 두 바퀴를 돌다 같은 자리에서 걸렸다.
라온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한 번만 반대로 끼워 보세요.”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봤다. 작업복 남자의 명찰에는 ‘임태규’, 선수의 가슴에는 ‘배진수’라고 적혀 있었다.
“뭘요?” 태규가 물었다.
“와셔요. 얇은 쪽이 베어링 바깥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진수의 눈썹이 좁아졌다. “보이십니까, 거기서?”
“안 보입니다. 들립니다.”
라온은 돌아가려고 바퀴를 돌렸다. 괜히 끼어들었다. 오토바이 정비소에서도 손님이 옆에서 아는 척하면 제일 먼저 돌려보내곤 했다. 그때 태규가 작은 자석 접시를 들어 보였다. 축에서 뺀 부품들이 순서대로 붙어 있었다.
“어느 겁니까?”
라온은 가까이 갔다. 경기용 의자의 앞 캐스터는 자신의 생활용 의자 것보다 작고 단단했다. 축 끝에는 얇은 와셔 두 장이 포개져 있었다. 한 장의 안쪽 면만 검게 닳아 있었다.
“이 면이 안으로 가야 해요. 반대쪽은 가장자리가 아주 조금 솟았어요. 베어링 실드에 닿은 것 같습니다.”
태규가 확대경을 가져왔다. 진수도 팔짱을 풀었지만 표정은 풀지 않았다.
“전에 이런 장비를 만져 봤습니까?”
“이건 처음입니다.”
“그럼 손대지 마시죠. 선수 몸에 맞춘 경기 장비예요.”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라온은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사고 뒤 사람들은 그가 못 하는 일을 먼저 셌다. 계단, 장거리 운전, 오토바이 배달. 이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말해도 자격부터 의심했다.
“그래서 직접 하겠다는 말 안 했습니다.” 라온은 검은 자국을 가리켰다. “확인해 보시라는 겁니다.”
진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때 빙판 쪽에서 짧은 호각 소리가 났다. 회색 머리 여자가 스틱을 짚고 작업실로 들어왔다.
“싸울 거면 스코어부터 정해요. 누가 앞서고 있습니까?”
태규가 사정을 설명하자 여자는 오미란 코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라온에게 공구를 내주지도, 진수에게 낯선 사람을 믿으라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사진부터 찍죠. 지금 조립 상태, 부품 방향, 마모면. 태규 씨가 다시 분해하고 이분이 말한 순서대로 놓아 주세요. 맞아도 최종 확인은 장비 담당이 합니다.”
진수가 물었다. “틀리면요?”
“틀린 기록이 남겠죠. 맞으면 오후 훈련을 살리고.”
라온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 대신 순서를 검증하자는 말이었다.
태규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라온은 축 너트를 풀기 전 바퀴 위치부터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품은 빼는 순서대로 자석 접시 위에 왼쪽부터 놓았다. 와셔를 닦자 한쪽 가장자리에 반달 모양 눌림이 드러났다. 라온은 정비표의 빈칸에 부품 번호를 받아 적고, 태규가 읽어 주는 조임 토크도 함께 적었다.
라온은 곧장 새 와셔로 바꾸자는 말을 삼켰다. 태규에게 예비품 포장을 보여 달라고 했고, 태규는 각인 번호와 두께를 확인한 뒤에도 먼저 기존 와셔의 방향만 바로잡아 증상을 다시 보기로 했다. 원인과 부품을 한꺼번에 바꾸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기 어려워진다고, 라온은 자신이 배달 오토바이를 손보며 배운 순서를 설명했다. 최종 판단은 경기 장비 담당인 태규가 맡았다.
“오토바이 수리하셨습니까?” 태규가 물었다.
“배달하면서 제 것만요. 돈 아끼려고 시작했다가 남들 것도 봐 줬습니다.”
“지금은요?”
라온은 짧게 웃었다. “오토바이가 저를 기다려 주는 직종은 아니라서요.”
태규는 더 묻지 않았다. 와셔를 뒤집고 축을 규정값으로 조였다. 캐스터를 돌리자 낮고 고른 마찰음만 남았다. 다섯 바퀴, 여섯 바퀴. 걸림은 없었다.
빙판에서는 스톤 두 개가 부딪쳐 맑은 소리를 냈다. 라온은 열린 문 너머를 잠깐 보았다. 선수 하나가 의자의 바퀴를 고정한 채 스틱으로 노란 스톤을 밀었다. 누구도 뒤따라가 얼음을 쓸지 않았는데 돌은 하우스 앞에서 느리게 방향을 틀었다. 미란이 “열넷 셋”이라고 외치자 대기석 선수가 즉시 숫자를 받아 적었다. 힘보다 출발 속도를 나눠 갖는 경기처럼 보였다. 라온은 정비표 옆에 놓인 투구 기록지를 보고서야, 이곳에서는 움직이는 사람뿐 아니라 멈춘 돌에도 정확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진수는 곧바로 의자에 올라탔다. 라온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저속으로 먼저 가세요. 고쳤다고 바로 세게 돌리면 원래 증상이 숨어요.”
진수가 쳐다봤다. 이번에는 경계보다 질문이 먼저였다.
“어디까지?”
“직선 세 번, 오른쪽 한 번. 마지막에 브레이크 잡고 쏠림을 보죠.”
미란이 빙판 입구의 고무 매트를 치웠다. 진수는 직선으로 굴렀다가 멈추고,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네 번째에는 오른쪽으로 빠르게 회전한 뒤 양손으로 림을 잡았다. 의자는 반듯하게 섰다.
“이상 없습니다.” 진수가 말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덧붙였다. “제가 먼저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의심할 만했습니다. 제 장비였어도 그랬을 겁니다.”
라온은 그렇게 답했지만 얼른 나가고 싶었다. 치료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경사로가 하나 있었다. 누군가 문을 잡아 주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말없이 의자 뒤에 손을 대는 순간이 싫었다.
예상대로 진수가 뒤에서 다가왔다. 라온은 등받이에 손이 닿기 전에 팔을 뻗어 막았다.
“밀지 마세요.”
목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컸다. 빙판의 선수들이 이쪽을 봤다. 진수는 손을 바로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가 경사로 아래를 보았다. “그럼 문만 잡을까요? 경사가 끝나는 턱에서 앞바퀴가 걸리면 오른쪽만 받치고요. 그것도 싫으면 안 하겠습니다.”
라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와드릴게요’라는 말에는 늘 거절부터 나왔다. 그러나 진수의 제안에는 위치와 범위가 있었다.
“문만 잡아 주세요. 턱은 제가 넘겠습니다.”
진수는 정말 문만 잡았다. 라온이 경사로를 올라 턱 앞에서 앞바퀴를 들자, 손은 끝내 등받이로 오지 않았다.
치료실 접수대로 돌아왔을 때 태규가 뒤따라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수리 사례비입니다. 큰돈은 아닙니다만.”
라온은 봉투의 두께를 가늠했다. 이번 주 교통비에 보탤 수 있었다. 사고 후 배달 앱은 휴업 처리됐고, 손해 조정은 운행기록을 더 내라는 답만 보냈다. 통장 잔액은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만 정확했다.
미란도 접수대로 내려와 내일 오전 초보 체험 순번표를 내밀었다.
“고쳐 준 값은 당연히 드려야죠.” 미란이 말했다. “오늘 훈련은 장비 점검으로 끝났지만 내일 체험 자리가 하나 비어요. 빙판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장비인지 한 번 직접 보고 싶다면 그 자리를 드릴게요.”
“사례비 대신입니까?”
“아뇨. 그건 노동값이고, 이건 제안입니다. 서로 섞으면 나중에 골치 아파요.”
라온은 봉투를 받았다. 그 대답도 마음에 들었다.
세 사람은 접수대를 떠나 지하 컬링장 입구로 다시 내려갔다. 빙판 가장자리에는 경기용 의자 네 대가 줄지어 있었다. 선수들은 정리를 마치기 전 마지막 스톤을 한 번씩 밀어 보냈다. 누구도 돌을 따라가 빗자루질하지 않았고, 의자를 고정한 채 긴 딜리버리 스틱을 썼다. 얼음 위로 미끄러지는 돌의 소리는 오토바이 엔진과 전혀 달랐다. 조용한데도 속도를 숨기지 않았다.
미란은 빙판 안 하우스 반대편에 멈춰 있는 흰 스톤을 가리켰다.
“내일 저 돌을 목표로 한 번 던져 봐요. 정말 한 번만 해 볼 거면 여기 이름을 적고 가고요.”
순번표 위에서 연필이 멈췄다. 라온은 현금 봉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계산했다. 장애인 콜택시를 제시간에 잡지 못하면 일반 택시비가 들었다. 대관료는 이번 한 번만 면제라고 했다. 다시 오고 싶어지면 그다음부터는 돈이었다.
“한 번 던져 보고,” 라온이 말했다. “제가 싫으면 그때 끝내겠습니다.”
미란은 대답 대신 빈칸에 ‘소라온’을 적었다.
체육관을 나온 시각은 철물점 폐점 이십 분 전이었다. 라온은 버스 대신 두 정거장을 직접 굴러갔다. 찬바람에 손바닥이 얼얼했지만 택시비를 쓰고 싶지 않았다. 철물점 주인은 작업용 장갑을 세 종류 꺼내 놓았다. 두꺼운 것은 따뜻했지만 림과 스틱 감각이 둔했다. 라온은 가장 얇은 고무 코팅 장갑을 골랐다.
계산대에서 영수증을 접는데 휴대전화 화면에 내일 일정이 떴다. 오전 아홉 시, 컬링장 2번 시트. 그는 한참 보다가 알람을 여덟 시 십 분으로 맞췄다.
주머니 속 사례비에서는 장갑값이 빠졌다. 대신 내일 한 번이 남았다.
라온은 새 장갑을 낀 손으로 바퀴 림을 잡았다. 고무가 마찰하는 감촉이 낯설었다. 멈춘 바퀴를 고치는 일은 익숙했다. 자신이 어디까지 굴러갈지는, 아직 소리만으로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