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음악 고딕 미스터리 1화

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일흔두 번째 빈칸

폐쇄 방송국의 원반을 조사하던 한이솔이 72번 봉투와 목록의 일곱 번째 빈칸 사이에서 수상한 흔적을 발견한다.

글자 크기

폐쇄된 방송국은 새벽에도 전원을 완전히 놓지 못했다.

화영방송국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비상등은 한 칸씩 뒤늦게 켜졌다. 한이솔의 구두가 계단참을 밟으면, 머리 위 형광등이 낮게 울다가 희미한 빛을 토했다. 전파 송출은 십 년 전에 끝났지만 건물 어딘가에는 아직 돌아가는 모터가 있었다. 공조기인지 배수펌프인지 알 수 없는 진동이 벽을 타고 손잡이까지 올라왔다.

이솔은 그 소리를 기억해 두었다. 소리는 이름보다 오래 남고, 사람의 기억보다 덜 친절하게 진실을 반복했다.

“해 뜨기 전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뒤따라오던 강태오가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짙은 남색 코트와 빛나는 구두는 먼지투성이 지하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시청이 고용한 예술품 손실평가사였다. 건물 철거 전 기증품의 손상 여부와 평가액을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낮에는 철거팀이 엘리베이터를 씁니다.” 앞서 걷던 기록관리사 민혜주가 대답했다. “오늘 안에 원반을 반출하지 못하면 이틀 밀려요. 예산은 오늘까지만 잡혀 있고요.”

태오가 이솔 쪽을 보았다. “그러니까 복원 선생님도 속도를 내 주셔야 합니다.”

“복원사는 빨리 들으려고 부른 사람이 아닙니다.”

이솔은 철문 앞에서 면장갑 위에 니트릴 장갑을 겹쳐 꼈다. 혜주가 열쇠를 돌리자 문 가장자리의 고무가 긴 숨처럼 떨어졌다.

수장고 안에는 녹슨 이동식 선반 여섯 줄이 서 있었다. 선반 손잡이를 돌려 통로를 열자 종이와 곰팡이와 오래된 셸락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회색 중성지 봉투들이 낮은 상자 안에 세워져 있었다. 봉투마다 검은 연필 번호가 쓰여 있었다.

1부터 72까지.

이솔은 온습도계를 먼저 놓았다. 온도 13.4도, 상대습도 61퍼센트. 이상적이지 않았지만 원반을 곧바로 따뜻한 지상으로 옮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는 선반 전체, 상자 봉인, 먼지가 끊긴 자리부터 촬영했다. 혜주는 인수 목록을 펼쳤고 태오는 평가표 사본을 금속 서류판에 끼웠다.

“총 일흔두 장.” 혜주가 말했다. “실물 수량만 맞으면 포장팀을 부르겠습니다.”

셸락 원반은 가장자리가 깨진 것이 두 장, 라벨이 들뜬 것이 세 장이었다. 뒤쪽의 래커 원반은 얇은 알루미늄 바탕 때문에 휘지 않도록 눕혀 옮겨야 했다. 이솔은 봉투를 하나씩 들어 빛에 비추고, 번호를 읽고, 상태를 불렀다.

“육십아홉, 가장자리 미세 균열.”

혜주의 연필이 움직였다.

“칠십, 라벨 수축. 칠십일, 외관 양호.”

마지막 봉투를 든 순간 이솔은 손을 멈췄다. 회색 종이 위에는 ‘72’라는 숫자만 있었다. 다른 봉투에 적힌 곡명과 재생시간, 연주자 이름이 없었다.

“일흔두 번째, 미상.”

혜주의 연필이 종이에 닿지 않았다.

“잠깐만요.” 그가 목록을 앞으로 넘겼다가 다시 뒤로 넘겼다. “실물 목록에는 72번인데, 기증 목록에는 마지막 항목이 아니에요.”

“몇 번입니까?”

혜주는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일곱 번째 트랙. 곡명 공란. 연주자 공란. 길이 공란.

그 아래 여덟 번째 줄에는 다시 멀쩡한 곡명이 이어졌다. 실물은 일흔두 번째인데 목록에서는 일곱 번째였다. 숫자 하나가 잘못 옮겨졌다고 하기에는 비어 있는 칸이 너무 가지런했다.

태오가 두 장의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번호 체계가 다를 수 있죠. 기증자가 여러 상자를 합쳤다면 흔한 일입니다. 수량이 맞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수량이요?” 이솔이 물었다.

“총 일흔두 장.”

“목록상 일곱 번째 트랙이 독립된 물건이라면 일흔세 장이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분실액을 먼저 산정해야겠군요.”

태오가 평가표를 넘기려 하자 이솔이 손으로 막았다. “아직 분실인지도 모릅니다. 이 봉투가 7번인지 72번인지, 안의 원반이 목록 어느 항목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혜주는 벽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십오 분이었다. “철거팀이 여덟 시에 옵니다. 미상 한 장 때문에 전체 인수를 멈출 수는 없어요. 기타 미상 자료로 넣고 복원실에서 확인하면 안 될까요?”

이솔은 72번 봉투를 상자에 돌려놓지 않았다. 봉투 아래쪽이 다른 것보다 조금 무거웠다. 안의 원반이 중성지 안에서 아주 미세하게 미끄러지며 사각거렸다.

“기타가 되는 순간 이 물건의 자리가 사라집니다. 지금 상자 위치와 봉투 상태가 출처의 일부예요.”

“건물 전체가 사라질 판입니다.” 혜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도 버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보관비가 하루만 늘어도 결재를 다시 받아야 합니다.”

이솔은 혜주의 붉어진 눈을 보았다. 밤새 목록을 맞춘 사람의 얼굴이었다. 맞서야 할 상대는 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름 없는 원반을 폐기 예정 상자에 합칠 수도 없었다.

“나머지 일흔한 장은 예정대로 포장하세요. 이 한 장만 현 위치에서 상태를 고정한 뒤 별도 인수하겠습니다. 지연 사유는 제가 서명하죠.”

태오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명으로 보관료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보관료와 손실액을 계산하시는 분이라면, 무엇을 잃었는지부터 확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둘 사이에 수장고 모터 진동만 남았다.

태오는 마침내 서류판을 내렸다. “좋습니다. 단, 훼손이 더 생기면 현재 상태가 기준입니다. 사진에 시간과 위치가 나오게 하세요.”

이솔은 바닥에 새 중성지 지지판을 펼쳤다. 봉투를 그 위에 눕히고 네 모서리에 자를 놓았다. 혜주가 수장고 전체가 보이는 거리에서 먼저 촬영했다. 가까운 사진에는 봉투 번호, 봉인 흔적, 찢어진 곳이 없다는 사실이 담겼다. 이솔은 원반을 꺼내기 전에 손 위치와 순서를 말로 남겼다.

“화영방송국 지하 수장고, 6시 24분. 현장 표기 72번. 기증 목록의 7번과 동일성 미확인. 비접촉 관찰만 시행합니다.”

래커 원반은 검었다. 보존등을 낮게 비추자 표면의 홈이 검은 물 위 잔물결처럼 나타났다. 곡명이 있어야 할 라벨에는 방송국 로고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연주자 이름은 긁어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쓰지 않은 듯 매끈했다.

태오가 가까이 몸을 숙였다. “빈 원반 아닙니까?”

“재생 전에는 모릅니다.”

“홈은 보이는데요.”

“홈이 있다고 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음악이 없다고 기록이 없는 것도 아니죠.”

이솔은 원반 중심의 라벨과 바깥쪽 런아웃 영역을 접사 촬영했다. 표면에 스타일러스를 올리지는 않았다. 먼지도 털지 않았다. 잘못 닦으면 홈 바닥의 잔류물과 당시 재생 흔적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었다.

그는 원반이 놓였던 상자 칸에도 작은 번호표를 세웠다. 아래에는 반달 모양 먼지 자국이 남아 있었고, 오른쪽 벽에는 다른 봉투가 오래 기대 있었던 직선 자국이 있었다. 원반만 안전하게 옮겨도 자리가 사라지면 누가 어느 순서로 묶음을 손댔는지 알 수 없었다. 혜주는 철거팀이 들어오기 전 상자 칸을 봉쇄 테이프로 둘렀고, 태오는 그 추가 보존비까지 평가 메모에 적었다.

혜주가 목록 두 장을 투명 파일에 따로 넣었다. “봉투 번호 72와 목록 번호 7이 같은 매트릭스 묶음이라는 근거는 여기 있습니다.” 그는 납품번호를 가리켰다. 두 문서 모두 HBC 묶음의 끝자리가 같았다. “그런데 곡명, 연주자, 길이는 둘 다 공란이에요.”

“누락이면 보통 하나쯤은 남습니다.” 이솔이 말했다. “모두 비었다면 누군가 비운 형식일 수 있어요.”

태오는 평가표에서 같은 납품번호를 찾았다. 손가락이 어느 줄에서 멈췄지만 그는 곧 종이를 덮었다.

이솔은 그 손가락이 멈춘 위치를 눈으로 재 두었다. 아래에서 네 번째 줄, 붉은 테두리의 윗부분이었다. 지금 묻는다면 태오는 직무상 확인 중이라는 말로 닫아 버릴 터였다. 대신 이솔은 목록 사본의 쪽수와 열람 시각을 혜주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 감춰진 문서도 언제 누구 앞에 있었는지를 남기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뭘 찾았습니까?”

“아직은 아무것도요. 감정 부속표를 더 봐야 합니다.”

대답은 너무 빨랐다. 이솔은 태오가 덮은 쪽을 보았지만 억지로 빼앗지 않았다. 원반도 문서도, 알아내겠다는 마음만으로 훼손할 수는 없었다.

일흔한 장의 포장이 끝날 무렵 지상에서 드릴 소리가 울렸다. 천장의 먼지가 가늘게 떨어졌다. 72번 원반만은 최종 확인을 위해 기존 봉투와 함께 지지판 위에 남아 있었다.

“오늘 인수는 하루 늦어진 걸로 남겠네요.” 혜주가 말했다.

“이 한 장만요.”

“그 한 장 때문에 제 보고서는 세 장 늘고요.”

이솔이 미안하다고 말하려 하자 혜주가 먼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도 ‘기타 미상’ 한 줄보다는 낫겠죠. 나중에 제가 왜 버렸냐는 질문을 안 받아도 되니까.”

태오는 아직 비어 있는 봉인번호 칸을 보며 물었다. “복원실에서는 몇 번 재생할 겁니까?”

“상태를 검사한 뒤 결정합니다. 첫 재생이 마지막 재생일 수도 있어요.”

“소리가 없으면요?”

이솔은 검은 원반을 내려다보았다. “없다는 말을 증명해야죠.”

최종 포장에 들어가기 전, 이솔은 기존 봉투의 안쪽 접힘까지 촬영하려고 보존등 각도를 바꿨다. 누렇게 산화된 종이 섬유 사이로 푸른 점 하나가 비쳤다. 먼지인 줄 알고 확대하자 둥근 검수인 가장자리가 나타났다.

혜주가 숨을 들이켰다.

이솔은 봉투를 더 벌리지 않고 조명을 옆으로 옮겼다. 파란 잉크로 찍힌 숫자 두 개가 접힌 종이 안쪽에서 또렷해졌다.

07.

바깥에는 72, 안쪽에는 07.

겉의 72와 안쪽의 07은 우연한 기입 오류라고 넘기기 어려운 조합이었다. 두 번호가 언제, 누구의 기준으로 붙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머리 위에서 철거용 드릴이 다시 울렸다. 그러나 이솔의 귀에는 지하의 모터 진동이 더 선명했다. 그는 휴대용 녹음기를 켜고 방의 소리를 십 초간 받았다. 훗날 원반에서 같은 소리가 나온다면, 이곳에서 묻은 소리인지 오래전 녹음실에 남은 소리인지 가려야 했다.

“이제 재생해야겠군요.” 태오가 말했다.

이솔은 원반을 새 봉투로 바꾸지 않고 기존 봉투에 되넣어 두 장의 단단한 지지판 사이에 끼웠다. 기존 봉투와 함께 인계한다는 확인표를 붙이고 충격감지 스티커와 봉인번호를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봉인 테이프에 서명했다.

“아뇨. 이제야 들을 준비를 시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