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1화

수심 43미터의 종

종이 울린 밤

조난 선박 수색 중 빈 구명벌과 생존자의 침묵을 마주한 강해솔이 사고의 첫 단서를 붙든다.

글자 크기

구명벌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해솔은 주황색 고무 가장자리에 팔꿈치를 걸친 채 안을 한 번 더 훑었다. 뒤집힌 물병 두 개, 포장지가 터진 비상식량, 한쪽 끈이 끊어진 운동화. 바닷물이 빠질 때마다 운동화가 바닥을 긁었다. 사람의 발목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도 손을 거두기가 어려웠다.

“빈 거 맞아?”

구조정에서 줄을 잡은 동료가 외쳤다.

해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도가 턱을 때려 대답 대신 짠물이 들어왔다. 구명벌을 선체에 붙이는 동안 손가락 두 개가 고무 밑에 끼었다. 통증이 늦게 왔다. 추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싫어졌다.

조금 전에는 저 안에 사람이 있으리라 믿었다.

청람호가 마지막으로 조난신호를 보낸 뒤, 수색선들은 그 믿음을 하나씩 건져 올리고 있었다.

해솔이 사다리를 올라서자 갑판 구석의 담요가 움직였다. 자신이 첫 수색에서 끌어올린 항해사였다. 문재필. 이름을 물었을 때는 말을 하지 못해, 젖은 신분증을 의료대원에게 넘겨주고서야 알았다. 그가 담요 밖으로 손을 뻗었다.

해솔은 그 손이 자신을 찾는 줄 알고 가까이 갔다.

“신발.”

재필의 시선은 해솔의 손에 들린 운동화에 붙어 있었다.

“아는 사람 겁니까?”

대답이 없었다. 의료대원이 재필의 손을 담요 안으로 넣어 주었다. 신발은 해솔의 손에서 더 무거워졌다.

구조정이 지휘선에 붙었을 때, 비는 그쳤지만 바다는 아직 비가 오는 것처럼 어두웠다. 해솔은 운동화를 표류물 바구니에 놓았다. 옆 바구니에는 손가락 길이의 플라스틱 봉인이 있었다. 빗물에 씻긴 숫자 아래로 철사가 꼬여 나와 있었다.

“그거 어디서 나왔습니까?”

낯선 남자가 바구니를 가리켰다. 구명조끼 아래 셔츠 소매가 반듯했다. 새벽부터 물을 뒤집어쓴 사람들 사이에서 그 반듯함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모릅니다. 저는 방금 올라왔어요.”

해솔이 지나가려 하자 남자가 종이를 내밀었다. 배의 윤곽과 작은 숫자들이 빽빽했다.

“청람호 항해사 구조하신 분이죠. 발견 위치가 여기 맞는지만—”

“그 사람 아직 자기 신발도 못 알아봅니다.”

남자는 종이를 내렸다.

“그분한테 묻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저한테도 묻지 마세요.”

해솔은 더 말하면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낼 것 같아 장비를 내려놓았다. 남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표류물 바구니 앞에 쪼그려 앉아 누가 봉인을 건졌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때 헤드폰을 쓰고 있던 대원이 손을 들었다.

“잠깐. 엔진 소리 좀 낮춰 주세요.”

대원이 한쪽 귀를 열고 해솔을 보았다.

“강 잠수사님. 이거 한번 들어보시죠.”

헤드폰 안에는 먼저 물이 있었다. 낮은 마찰음과 먼 기관음이 겹쳤다. 해솔이 이어 패드를 고쳐 누르는 순간, 가는 금속음이 그 틈을 뚫었다.

탕. 탕. 탕.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다시 세 번.

해솔은 눈을 감았다. 첫 소리와 둘째 소리 사이를 세다가 숫자를 놓쳤다. 소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기도, 아주 먼 곳에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했다.

“침몰 위치 쪽입니까?”

“그 부근에 내린 청음기예요. 방금부터 잡혔습니다.”

대원이 의자를 비켰다. 해솔은 앉지 않았다.

“녹음하고 있죠?”

“예.”

해솔은 헤드폰을 내려놓고 잠수감독을 찾았다.

***

“안 돼.”

감독은 해솔이 끝까지 말하도록 두지 않았다. 모니터에는 조금 전까지 해솔이 붙들고 있던 구명벌이 파도에 접히는 모습이 보였다.

“소리는 나도 들었다. 그런데 너 방금 어디서 올라왔어.”

“표면 수색입니다. 장비 교체하고 들어가겠습니다.”

“네가 갈 수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야.”

감독이 화면을 돌렸다. 선체 주변에 내린 장비가 옆으로 밀려 있었다. 해솔은 검은 선이 기울어진 각도를 보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감독이 보여 주는 것이 서로 다른 언어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두드리는 거면요.”

“그러면 더 제대로 가야지.”

해솔은 이를 악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라는 이유로 견디기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뒤에서 여자가 젖은 모자를 벗으며 들어왔다. 어민협동조합장 차미례였다. 목까지 잠근 작업복에 비늘 한 조각이 붙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벌써 바다에 나갔을 배들이 오늘은 그녀의 무전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배들은 어디까지 들어가면 됩니까?”

감독이 손바닥을 폈다.

“침몰 지점으로 모이시면 안 됩니다. 작업선 움직일 자리를 남겨 주셔야 해요.”

“그럼 밖에서라도 찾게 해 주세요. 돌아가서 밥 먹으라고는 못 합니다.”

조금 전 봉인 바구니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문 옆으로 비켜섰다. 미례가 들고 온 수첩을 받아 펼쳤다. 어선 이름 아래 선장들의 전화번호가 눌러 적혀 있었다.

“지휘 쪽에서 구역을 나누면, 바깥 표류물 위치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직접 끌어올리기 어려운 건 표시만 하고요.”

“당신이 정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정해진 걸 배마다 전달하려는 겁니다.”

남자가 잠수감독을 보았다. 감독은 한참 화면을 들여다본 뒤 무전기를 들었다. 구조선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해솔은 창밖을 보았다. 수면에 엎어진 하얀 물결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바닷속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었다.

해솔은 장비표의 자기 이름 옆을 손끝으로 눌렀다.

“외부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 별도 판단하고요.”

감독은 대답 대신 예비 잠수사를 불렀다. 한 사람은 해솔의 장비를, 다른 사람은 연결 장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해솔이 버티고 서서 얻어 낸 허락이 아니었다. 상황이 바뀌었고, 감독이 다시 판단한 결과였다. 그것을 알면서도 헬멧을 받는 손이 조급해졌다.

낯선 남자가 종이를 다시 가져왔다. 이번에는 펴 보이지 않고 해솔에게 이름부터 말했다.

“정우찬입니다. 사고 조사 때문에 왔습니다.”

“보험사요?”

“선체하고 화물 쪽을 봅니다.”

“그럼 제 보고는 나중에 들으세요.”

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하나만 부탁하겠습니다. 뭘 발견하든, 들고 나오려고 무리하지 마세요. 물건은 거기 있어도 됩니다.”

해솔이 그를 쳐다보았다.

“아까는 봉인부터 찾으시던데.”

“그건 이미 갑판에 있었으니까요.”

옆에서 감독이 헬멧 통신을 확인했다. 해솔은 짧게 응답하고 물 쪽으로 돌아섰다. 우찬의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 바구니 옆에 무릎을 대고 회수자들의 말을 받아 적는 동안 갑판에 괸 물이 밴 모양이었다.

***

처음에는 헬멧등이 물을 밝히는 줄 알았다.

조금 더 내려가자 빛은 앞을 보여 주는 대신 눈앞에 떠다니는 것들을 드러냈다. 작은 부유물이 한꺼번에 지나갔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솔은 호흡 소리와 갑판의 목소리 사이에 자기 몸을 놓았다.

“통신 양호.”

대답이 돌아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는 그 목소리를 따라 한 번 숨을 골랐다.

선체가 나타난 것은 아주 가까이 다가간 뒤였다. 검은 면을 벽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 위로 사다리 하나가 비스듬히 지나갔다. 육지에서라면 당연히 위로 올라가야 할 사다리였다. 여기서는 어디로 향하는지 몸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해솔은 확인한 위치를 불렀다. 갑판에서 복창했다. 그는 난간과 출입구를 차례로 찾으며 움직였다. 옷자락처럼 펄럭이는 것이 보일 때마다 빛을 돌렸다. 한 번은 찢어진 덮개였고, 한 번은 빈 자루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무전으로 반복할수록 입안이 말랐다.

금속음은 갑자기 들렸다.

탕.

헤드폰에서 들었을 때보다 짧았다. 해솔은 움직임을 멈췄다. 헬멧 바깥에서 난 소리인데도 뼈 안쪽으로 울렸다. 그는 선교 쪽을 비추었다. 닫힌 문, 깨진 창틀, 흔들리는 케이블. 사람의 손은 보이지 않았다.

탕. 탕.

이번에는 소리가 아래쪽에서 왔다.

“선교 쪽이 아닙니다.”

해솔은 선체를 따라 빛을 내렸다. 출입구의 어두운 사각형이 나타났다. 가장자리에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머리처럼 둥글게 보였다.

팔이 먼저 나갔다.

“접근 멈춰. 위치부터.”

갑판의 목소리에 손이 멎었다. 해솔은 물체 옆에 붙은 손잡이를 확인하고 위치를 불렀다. 둥근 물체는 사람의 머리가 아니었다. 빛이 닿은 곳에 초록색 얼룩이 번져 있었다.

종이었다.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앉았다. 그제야 자신이 누군가를 붙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종 안쪽에서 추가 흔들렸다. 선체 어딘가가 크게 떨리자 쇳소리가 났다. 두 번 울리고 멈췄다가, 조금 뒤 한 번 더 울렸다. 수면에서 들은 세 번과 닮았지만 같지는 않았다.

“인위적인 타격은 확인 못 했습니다. 문 쪽에 종이 매달려 있습니다.”

갑판에서 답이 오기 전, 불빛 끝에 주황색 선이 걸렸다. 종의 고리를 통과한 줄이었다. 해솔은 빛을 조금 옮겼다. 줄은 손잡이 주위를 돌아 다시 종 뒤로 사라졌다.

우연히 걸린 것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한 뼘만 가까이 가면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출입구 안쪽에서 검은 덩어리가 미끄러졌다. 소리가 아니라 빛의 모양이 바뀌었다. 해솔은 몸을 뒤로 물렸다. 가라앉아 있던 침전물이 한꺼번에 솟았다. 종도 손잡이도 사라졌다.

“시야 소실. 뒤로 나옵니다.”

말을 하고 나서야 숨을 너무 빨리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군가를 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물속에서는 자신을 끌고 가는 줄이 될 수 있었다. 해솔은 보이지 않는 문을 더 찾지 않았다. 감독에게 상태를 알리고, 되돌아오라는 지시에 응답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두고 올라오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

갑판으로 돌아온 뒤에도 해솔은 바로 헬멧을 놓지 못했다. 장비 점검을 마치고 감독에게 확인한 범위를 설명할 때까지 손을 계속 움직였다. 다녀온 곳을 말로 옮기면, 보지 못한 구역이 더 커졌다.

“생존자 없음으로 적지 마세요.”

해솔이 말했다.

“내가 간 데서 확인 못 한 겁니다.”

우찬은 이미 쓴 문장을 지웠다. 종이를 돌려 보여 주었다. ‘외부 확인 구역에서 발견하지 못함.’ 해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에는 침전물과 흔들리는 빛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해솔은 마른 종이 위에 문을 그렸다. 손잡이와 종의 위치를 표시하고, 확실히 본 부분만 실선으로 이었다. 종 뒤로 사라진 줄은 그리지 않았다.

우찬이 지휘실 벽의 선박 사진을 떼어 왔다. 해솔의 손가락이 선수 쪽에서 멈췄다. 난간 안에 작은 종이 달려 있었다. 크기와 형태가 물속에서 본 것과 닮았다.

“원래 여기 있던 겁니까?”

“확인해야 합니다.”

우찬은 사진 뒷면의 날짜를 보았다. 그때 옆 칸에서 침대 바퀴가 문턱을 넘는 소리가 났다. 의료대원들이 재필을 옮기고 있었다. 미례가 비켜서며 담요 끝을 안으로 접어 주었다.

재필의 눈이 테이블 위에 멎었다.

“왜.”

쉰 목소리가 났다. 우찬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재필은 사진을 보지 않았다. 해솔이 그린 문과 종을 보고 있었다. 담요 밑에서 팔이 움직였지만 손은 나오지 않았다.

“거기 있을 리가 없는데.”

해솔은 종이 쪽으로 뻗으려던 우찬의 손을 막았다. 의료대원에게 먼저 시선을 보냈다. 대원은 지금은 이동해야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들것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우찬은 질문하지 않은 말을 입 안에서 삼킨 듯 한동안 조용했다. 밖에서는 미례가 어선 한 척에 새 수색 구역을 불러 주고 있었다.

“다음 확인 때 줄이 어떻게 걸렸는지 봐야겠습니다.”

우찬이 말했다.

해솔은 스케치의 실선 끝에 작은 점을 찍었다. 주황색 줄이 종 뒤로 사라지던 자리였다.

처음에는 사람이 종을 울리는 줄 알았다.

이제는 누가 그 종을 거기에 매달았는지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