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대신 쓴 두 글자
심야 편의점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배달 상자가 남해온에게 대신 적힌 두 글자의 의미를 묻는다.
밤 열한 시 오십칠 분, 푸른고개 편의점에는 손님보다 배달 상자가 많았다.
남해온은 삼각김밥 폐기 스티커를 떼며 오늘 버린 금액을 머릿속으로 더했다. 참치마요 두 개, 전주비빔 하나, 유통기한이 아홉 분 지난 샌드위치 한 개. 점주는 폐기 등록부터 하고 먹으라고 했지만, 바쁜 날에는 등록 버튼을 누르는 사이 손님이 들어왔다. 그걸 놓치면 CCTV를 돌려 보고 왜 수량이 안 맞느냐는 문자가 아침에 왔다.
문 위 종이 딸랑 울렸다.
“어서 오세요.”
손님은 없었다. 자동문 밖에는 비에 젖은 골목과 노란 가로등뿐이었다. 해온은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포스기로 돌아왔다.
딸랑.
이번에는 문 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기사님?”
해온이 밖으로 나가 좌우를 봤다. 오토바이 소리도, 우산도 없었다. 빗물이 계단을 따라 흘렀는데 상자 밑만 마른 사각형이었다. 반품 택배를 새벽에 두고 가는 기사도 있긴 했다. 그는 상자를 안으로 들였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상자는 보기보다 무거웠다. 누런 포장지에는 뿔 달린 얼굴이 웃고 있었고, 송장 수취인 칸에는 ‘김콩쇠’라고 적혀 있었다. 주소는 분명 푸른고개 편의점이었다. 전화번호는 000-0000-0000.
“성의가 너무 없잖아.”
해온은 배송조회 단말기로 바코드를 찍었다.
삑.
화면에 ‘수취 서명 필요’가 떴다. 반품 상자라면 물류기사가 아침에 회수할 테지만, 수취 물건이면 점주에게 연락해야 했다. 자정 직전에 점주를 깨웠다가는 상자보다 해온이 먼저 반품될 가능성이 컸다.
그때 냉장고 쪽에서 병뚜껑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탁, 타닥, 탁.
해온이 확인했지만 음료는 넘어지지 않았다. 계산대로 돌아오니 단말기 화면이 바뀌어 있었다.
‘수취인 대기 중. 남은 시간 00:03:00.’
“뭘 세는 거야?”
숫자는 실제로 줄었다. 2분 57초, 2분 56초. 해온은 고객센터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 대신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가 끊겼다. 다시 걸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자동문이 열렸다. 우비를 입은 취객이 비틀거리며 들어와 소주 두 병과 컵라면을 올렸다. 해온이 결제하는 동안 단말기는 계산대 옆에서 초를 깎았다. 취객은 상자 그림을 보고 혀를 찼다.
“도깨비도 택배 받네.”
“캐릭터 상품인가 봐요.”
“걔들은 금 나와라 뚝딱 하면 되지, 배송비가 아깝게.”
취객이 나가자 28초가 남아 있었다. 화면 아래에 작은 글씨가 떴다.
‘수취인 부재 시 보관자 서명 가능.’
평소라면 절대 대신 서명하지 않았다. 택배 분실로 한 번만 얽혀도 야간 근무자가 설명할 일이 열 번 생겼다. 그런데 주소는 가게였고 상자는 이미 안에 들어왔다. 보관자로 서명하고 아침 근무자에게 인계하는 편이 덜 귀찮아 보였다.
남은 시간 9초.
해온은 스타일러스를 집었다.
“남해온.”
두 글자가 아니라 세 글자 이름인데, 단말기는 첫 획과 마지막 획만 훔쳐 간 것처럼 ‘해온’만 붉게 남겼다.
서명 완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자정이 됐고, 가게의 모든 냉장고 모터가 멎었다.
웅웅거리던 소리가 사라지자 편의점이 믿기 어려울 만큼 넓어졌다. 형광등은 켜져 있는데 진열대 그림자가 계산대 쪽으로 길게 누웠다. 포스기 시계가 0시 정각에서 깜빡이다 멈췄다.
상자 안에서 누군가 헛기침했다.
해온은 스타일러스를 내려놓았다.
“방금 뭐였지?”
“배송 안내.”
상자가 대답했다.
해온은 폐기 삼각김밥을 방패처럼 들었다. “누구세요?”
“수취한 자는 해 뜨기 전 원래 주인에게 물건을 인도하라.”
“녹음이면 재미없거든요.”
“미배송 시 물건에 든 불운은 가장 가까운 야간노동자에게 이전된다.”
“그건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법 문제인데요.”
상자 뚜껑이 안에서 한번 들썩였다. 동시에 편의점 밖 풍경이 달라졌다. 자동문 유리에 비친 것은 평소 골목이 아니었다. 지붕 끝이 위로 말린 검은 집들이 이어지고, 붉은 등이 빗물 없는 길 위에서 흔들렸다. 해온이 뒤를 돌아 실제 바깥을 보면 노란 가로등과 비가 보였다. 유리 속에만 다른 골목이 있었다.
해온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촬영했다. 화면에는 평범한 골목만 찍혔다.
“그래, 과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달 야간 일곱 번 연속의 결과가 드디어 왔네.”
“과로는 맞고, 나는 결과가 아니다.”
낮고 걸걸한 목소리가 라면 진열대 아래에서 났다. 해온이 몸을 숙이자 손바닥만 한 남자가 컵라면 박스 뒤에서 기어나왔다. 누런 조끼에 검은 고무신, 이마 양쪽에는 짧은 뿔이 났다. 키는 작았지만 등에 멘 배차 가방은 자기 몸보다 컸다.
“김콩쇠.” 작은 남자가 명찰을 툭 쳤다. “이 소포 원래 수취인.”
해온은 상자와 콩쇠를 번갈아 봤다. “그럼 가져가세요. 여기 서명.”
“못 가져가.”
“왜요?”
“네가 받았잖아.”
“수취인이 없어서 보관 서명한 겁니다.”
“요괴송장에는 보관이라는 말이 없어. 이름을 쓰면 책임까지 받는 거야.”
콩쇠가 상자 옆면을 손톱으로 긁었다. 평범한 택배 주의사항 아래로 붉은 글씨가 배어나왔다. ‘타인의 이름을 대신하여 수취를 완료한 자는 해당 배송의 책임과 경로를 인수한다.’
해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서명 전에 없었습니다.”
“작게 있었지.”
“안 보였어요.”
“인간 약관도 대개 그렇다며?”
“그렇다고 요괴가 따라 하면 안 되죠. 나쁜 것만 빨리 배우네.”
콩쇠는 반박하지 못하고 수염을 긁었다.
해온은 붉은 조항을 사진으로 찍으려다 멈췄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상자만 나오고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포스기 영수증 프린터가 저절로 움직였다. 가느다란 종이 위로 붉은 글자가 한 줄씩 찍혔다.
수취 책임자 남해온.
책임 개시 자정.
책임 종료 백 번째 해 뜰 무렵.
첫 배송 제한 일출 전.
해온이 마지막 줄을 잡아당겼다. 휴대전화는 0시 6분을 지나고 있었다. “백 번째가 왜 나옵니까?”
콩쇠가 시선을 피했다. “첫 배송을 끝내면 설명하려고 했는데.”
“지금 설명하세요.”
“대신 서명은 백일 계약이야. 하루 한 건씩, 정확히 백 건. 다 채우면 네 이름이 송장에서 빠져.”
“근로계약서는요?”
“방금 뽑혔잖아.”
“이건 영수증이고.”
“우리 쪽은 영수증이 계약서야.”
“그래서 반품 환불도 힘들겠네요.”
콩쇠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같이 정확하네.”
해온은 영수증을 구겨 던지려다 다시 폈다. 이상한 계약도 기록은 기록이었다. 버리면 자신만 손해였다. 그는 계산대 아래 클립보드에 종이를 끼우고 시간을 적었다. 포스기 시계는 멈췄지만 휴대전화 초는 계속 움직였다.
“일출까지 여섯 시간쯤 남았습니다. 원래 수취인이 당신이라면서 왜 당신에게 주면 배송완료가 안 됩니까?”
콩쇠가 상자 라벨을 가리켰다. ‘김콩쇠’였던 이름이 물에 번지듯 흐려져 ‘복달’로 변했다. 주소도 편의점이 아니라 알아볼 수 없는 구불구불한 획으로 바뀌었다.
“누가 송장을 갈아 끼웠어. 내 이름으로 이 문까지 불러 놓고 진짜 수취인은 저쪽에 둔 거야.”
“누가요?”
“발송인 표식이 없어. 요즘 이런 장난 치는 놈이 하나 있긴 한데—”
상자 안에서 쿵 소리가 났다. 매대 위 꿀병 하나가 이유 없이 넘어졌다. 뚜껑은 닫혀 있었지만 유리 표면에 금이 가느다랗게 번졌다.
콩쇠가 표정을 굳혔다. “불운이 새기 시작했어.”
해온은 삼각김밥 방패를 내려놓았다. 장난이라고 버티기에는 냉장고 모터가 여전히 멎어 있었다. 이대로 냉장식품이 상하면 점주는 원인을 해온 근무일지부터 찾을 것이다. ‘요괴 소포 때문에’라고 적으면 손해배상보다 병원 상담을 먼저 권할 게 뻔했다.
“미배송 불운이 가장 가까운 야간노동자에게 간다면서요. 지금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저고.”
“편의점 길 건너 세탁소에도 야간 직원 하나 있어.”
“그러니까 더 가야겠네요. 내 이름 쓴 실수 값을 남한테 넘길 수는 없으니까.”
해온은 근무지를 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곧 떠올렸다. 오전 일곱 시까지 혼자였다. 계산대를 두고 나가면 해고 사유였다.
“그렇다고 가게 문 닫고 갈 수도 없습니다.”
콩쇠가 배차 가방에서 오래된 놋쇠 종을 꺼냈다. “배송길에서는 사람 시간과 요괴 시간이 다르게 가. 저쪽에서 세 시간을 써도 여기서는 삼 분쯤일 거야.”
“쯤?”
“교통 상황에 따라.”
“그 말을 제일 믿으면 안 되는 직업이 택배인데.”
해온은 점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지 않자 메시지를 남겼다. ‘0시 11분부터 이상 배송물 확인을 위해 창고·냉장고 구역 점검. 계산대 비움 예상 3분. CCTV와 인수 송장 보존.’ 요괴 이야기는 빼고, 자신이 어디서 무엇 때문에 자리를 비웠는지는 남겼다. 그리고 현금함을 잠그고 담배 보관장 버튼을 눌렀다.
콩쇠가 감탄했다. “도깨비 장터에서도 그렇게 꼼꼼하면 미움받아.”
“저는 여기서도 이미 미움받아요. 그래도 시급은 들어옵니다.”
상자를 들자 아까보다 따뜻해져 있었다. 안에서 작은 방울이 세 번 울렸다.
콩쇠는 자동문 앞으로 갔다. 유리에 비친 검은 골목이 가까워졌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송장을 이리저리 기울였다.
“이상하네. 주소 화살표가 가게 안을 보는데.”
해온은 화살표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과자 매대, 커피 머신, 컵라면 온수기. 화살표는 그 모든 것을 지나 음료 냉장고를 가리켰다.
냉장고 첫째 문에는 요구르트와 치즈가 가지런했다. 둘째 문에는 탄산음료가 빛났다. 화살표가 멈춘 셋째 문에는 우유팩이 두 줄로 서 있었고 안쪽 조명만 꺼져 있었다.
해온이 셋째 문 손잡이를 잡자 안에서 바람이 불었다. 냉기가 아니라 비 냄새 없는 밤바람이었다. 진열된 우유팩 너머로 붉은 등이 흔들렸다.
“설마 이걸 다 빼야 합니까?”
콩쇠가 우유 두 줄을 보며 말했다. “첫 배송은 원래 짐 정리부터야.”
해온은 상자를 계산대 안쪽에 잠시 내려놓고 빈 카트를 끌어왔다. 콩쇠는 어깨를 주무르며 카트 손잡이에 기대려 했다. 해온이 작은 등을 손끝으로 밀었다.
“받는 사람이든 보내는 사람이든, 쉬는 사람은 아닙니다. 한 팩씩 드세요.”
콩쇠는 우유팩을 올려다보았다. 자기 허리보다 굵었다. 그는 고무신을 벗을 듯 발을 털더니 얼른 놋쇠 종을 꺼냈다.
“나는 길을 여는 기술직이야.”
“그 기술, 아주 편리한 순간에 나오네요.”
해온은 점주에게 설명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화면에는 우유밖에 없었다. 콩쇠도, 붉은 등도 나오지 않았다. 밤새 일하고도 아무것도 안 했다는 소리를 듣는 기분과 비슷했다.
포스기 시계는 여전히 0시 정각이었다. 그러나 상자 밑면에는 일출까지 남은 시간이 붉게 줄어들고 있었다.
해온은 냉장고 앞에 카트를 고정하고 콩쇠를 돌아봤다.
“백일 계약은 아직 인정 안 했습니다.”
“첫 배송은?”
“그건 갑니다. 사고 나면 제 이름이 찍혀 있으니까.”
그는 계산대를 한 번, 유리문 밖 비 내리는 사람 골목을 한 번 확인했다. 셋째 문 안쪽의 붉은 등은 우유팩 사이에서 더 가까워졌다. 해온은 첫 팩에 손을 얹었고, 콩쇠는 문턱을 살피기 위해 놋쇠 종을 들었다. 첫 배송은 아직 편의점 안에 있었지만 돌아갈 수 없는 서명은 이미 끝나 있었다.